<106화>
암살 계획(1)
이틀 뒤, 문연회(門宴會)가 열렸다.
문연회는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화산의 행사였다.
연회가 열리는 장소는 낙안궁 앞 연무장이었다.
연무장에 설치된 탁자에는 각종 음식과 술이 차려져 있었다.
그날은 화산의 삼백 제자들이 수련을 멈추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었다.
연회장에 도착한 남량이 술병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도사들이라 술은 자중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군.”
찬야가 끌끌 웃으며 말했다.
“당장 장문인부터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무리야.”
유라가 일행에게 물었다.
“올해도 장기(長技) 대회가 있다는데, 너희들은 나갈 건가?”
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상품으로 매화단을 준다며?”
찬야가 손을 들었다.
“나도 참가할 거야. 마음대로 한 번 화산을 내려갈 수 있는 권한도 상품으로 준다고 하더라.”
유라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내려가서 뭐 하려고?”
“화음에 기루 하나가 새로 생겼다고 해서 구경을 좀…….”
퍼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라가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끄악! 무슨 짓이야!”
“그냥 대회 시작하기 전에 죽어라. 이 색마 자식아.”
“하하하!”
찬야가 당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운휘가 남량에게 물었다.
“형님. 형님도 대회에 참가하실 건가요? 형님이 단상에서 검무(劍舞)를 추면 한 폭의 그림 같을 텐데!”
“난 관심 없어. 위지혁, 너는 어때?”
남량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위지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량이 한 번 더 질문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무슨 생각을 그리 하길래 듣지도 못해?”
“아, 아무것도 아니야. 하하…….”
위지혁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잠시 그를 응시하던 남량이 고개를 돌렸다.
곧 연회가 시작되었다. 제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누었다.
매화오절도 각자 흩어졌다.
운휘는 이대제자들을 한군데 모아 두고 자신의 활약상을 들려주었다.
“내 공격이 진공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 거야. 나는 당황했지.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검을 던지고 무작정 달려들었어. 그런데 놈이 전혀 반항을 하지 못하더라고? 설마 내가 허리를 붙잡고 같이 떨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한 거지.”
“그의 허를 제대로 찔렀군요! 대단해요!”
“그렇지? 음하하! 내가 좀 대단하긴 해.”
찬야는 특유의 화려한 말재주로 여제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참가자 중에는 여인들도 많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우리 사매들만 못해. 우아함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사매들의 매력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지.”
“어머! 정말요?”
“그럼. 정말이고말고……. 으악! 내 귀!”
찬야의 귀를 잡아당긴 일 장로 노백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강호를 돌고 오면 조금은 바뀔 줄 알았더니만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이리 오너라. 너는 장로들과 같이 차나 마시자꾸나.”
“자, 장로님! 아니, 할아버지! 귀 떨어져요, 귀! 귀!”
찬야는 비명을 지르며 한 곳으로 끌려갔다.
유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사제들을 향해 말했다.
“죽음을 각오한 대가로 나는 새 경지에 발을 딛을 수 있었다. 너희들도 진정 원하는 경지를 손에 넣고 싶다면 목숨마저 걸 정도로 간절해야 한다.”
“네. 사저의 말을 새겨듣겠습니다.”
“저희도 사저처럼 강해질 수 있겠지요?”
사제들의 물음에 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내가 결국 남궁월을 이긴 것처럼 너희들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어.”
“더 노력하겠습니다.”
남량의 곁으로는 매화검수들이 다가왔다.
일전에 심사에서 남량에게 패배한 검수들이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자네가 보았을 때 내 동작에 부족한 점이 무엇이던가?”
“21번째 합에서는 어떻게 그런 판단을 내린 거지?”
“자네는 어떤 생각으로 대련에 임하는가?”
남량은 속으로 생각했다.
‘훗날 내 편이 되어 싸울 사람들이다. 조금이라도 더 쓸 만한 검으로 만들어 두는 편이 낫겠지.’
남량은 모든 질문에 친절히 대답했다.
검수들은 남량의 말을 경청했다.
이화정은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다들 배울 자세가 되어 있군.”
남량은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에 멍하니 서 있는 위지혁이 들어왔다.
‘저놈 상태가 영 이상한데……. 아무래도 물어봐야겠군.’
남량이 위지혁에게 다가가려는 때였다.
공월 진인이 그를 이름을 불렀다.
“남량. 조금 뒤에 열리는 장기 대회에 참가하거라.”
“네? 저는 참가할 생각이 없습니다.”
“남북 십성의 후계자인 네가 모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매화천수검을 펼친다면 사기를 올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남량이 결국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탁자가 치워지고 원형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장기 대회를 위한 무대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단상 위에 앉은 구양중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장기 대회를 시작하겠다.”
“우와아아!”
제자들은 신이 나서 크게 함성을 질렀다.
과연 누가 어떤 장기를 보여 줄지 기대가 되었다.
처음으로 나선 도사 한 명은 고금(古琴)을 연주했다.
도사가 현(絃)을 튕길 때마다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자들은 잠시 눈을 감은 채 고금 소리를 감상했다.
연주가 끝나자 도사가 일어나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정말 멋진 연주로군.”
구양중이 감탄하며 말했다.
연로한 도사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리 와서 술 한 잔 받게.”
구양중은 장기 대회의 관례대로 장기를 선보인 도사에게 매화주 한 잔을 내렸다.
귀를 만족시키는 연주 다음은 운휘의 차례였다.
운휘는 두꺼운 청석을 가져와 바닥에 놓은 다음,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설마 저걸 맨손으로 부술 생각인가?”
“쉽지 않을 텐데……. 내력을 쓰겠지?”
소매를 걷은 운휘는 수도(手刀)를 세우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내력을 쓰지 않은 채 수도를 들어 청석을 내리쳤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청석이 반으로 쪼개졌다.
지켜보던 제자들, 그중에서도 외공(外功)을 익힌 도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내력도 쓰지 않은 채 저걸 부수다니!”
“심지어 손에는 상처 하나 없네. 대단하군.”
그들은 운휘가 금강불괴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더 놀랐을 것이다.
찬야는 운휘를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잘했어! 역시 몸 쓰는 건 네가 최고다! 하하하.”
운휘도 마찬가지로 구양중에게 매화주를 받아 마셨다.
다음 차례는 바로 찬야였다.
그는 헛기침으로 목을 풀고 시를 읊기 시작했다.
객행만산설(客行滿山雪)
나그네 온산의 눈을 밟고 가는데
향처시매화(香處是梅花)
향기 나는 곳에 매화가 있다네
정녕명월야(丁寧明月夜)
정녕 달이 밝은 밤에는
기취영횡사(記取影橫斜)
그림자가 비껴 있는 모습을 기억하리라
남량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송나라 시대의 매화시로군.”
유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런 진중한 면도 있었나.’
운휘는 코를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멋있기는 한데, 정말 안 어울린다.”
어쨌든 반응은 좋았다. 매화주를 받아 마신 찬야는 제자들의 함성 소리를 즐기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소(簫)를 연주한다든가 날아가는 기러기를 활로 쏘아 맞히는 등, 다양한 장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량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검을 들고 천천히 무대로 걸어 나왔다.
스릉.
검을 뽑아 든 남량이 자세를 잡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화산의 삼백 제자들이 도전했다 모두 익히기를 포기한 매화천수검의 전승자다. 그들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남량을 응시했다.
“후우.”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은 남량이 검을 휘둘렀다.
첫 번째 초식, 낙영용섬이 펼쳐지자 이십사수매화검법과 일자매화검을 익힌 제자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두 번째 초식, 옥녀유영이 펼쳐지자 매화영롱검과 사전절검 등을 익힌 제자들이 눈을 반짝거렸다.
세 번째 초식, 매농낙화가 펼쳐지자 매화삼릉검(梅花三凌劍)과 반천검을 익힌 제자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 번째 초식, 뇌전포화가 펼쳐지자 칠절매화검과 구궁검 등을 익힌 제자들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다섯 번째 초식, 상청도월이 펼쳐지자 태을미리검과 구궁검 등을 익힌 제자들이 가볍게 몸을 떨었다.
여섯 번째 초식, 화운용무가 펼쳐지자 매화홍주검과 신학검 등을 익힌 제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곱 번째 초식, 유성추월과 여덟 번째 초식, 단천열화가 펼쳐지자 무극청풍검, 칠십이파검(七十二波劍) 등을 익힌 제자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아홉 번째 초식, 천류신화가 펼쳐지자 이십사수매화검법과 오행매화검 등을 익힌 제자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화산의 제자들이 남량의 검에서 자신의 검을 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남량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유우화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것이 바로 매화천수검이다.
저 검 안에 화산이 담겨 있었다.
후욱.
9초식을 마친 남량이 검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이상입니다.”
제자들 중 누구도 함성을 지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라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었다.
고요한 적막 가운데, 구양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훌륭한 솜씨였다.”
남량은 검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남량은 매화주를 받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위지혁의 불안한 시선이 남량을 따라갔다.
그는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쪼르륵.
구양중은 새 병의 마개를 따고 술잔에 따랐다.
투명한 술이 잔에 가득 채워졌다.
“한 잔 들거라.”
남량은 두 손으로 잔을 들며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이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말 이 독을 마시게 되면 1년 동안 천천히 죽어 가는 거요?’
‘그렇습니다. 천년살(千年殺)이라 불리는 이 독은 서역과 남만 등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며 무색무취라 누구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독을 한번 마시게 되면 독기가 체내에 자리 잡고 아주 조금씩 생명을 갉아먹지요.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떤 전문가가 와도 사인(死因)을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걸 해독할 수 있는 해독제가 존재하오?’
‘아니요. 전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도사님에게 이 독을 추천해 드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내력으로 독기를 몰아낼 수도 없고?’
‘설령 절대고수라 해도 불가능합니다. 이걸 복용하는 순간 그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건은 고개를 돌려 유우화를 노려보았다.
‘잘 봐 두거라. 네놈 제자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모습을 말이다.’
남량의 입술이 찻잔 끝에 닿았다.
이건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됐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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