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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122화 (122/164)

<122화>

화산 전투(2)

도귀 장공은 천성이 강자와의 대결을 즐기는 사내였다.

화산을 습격할 때에도, 그는 가장 강한 상대를 찾았다.

‘아쉽군. 매화검선이 멀쩡했다면 한판 붙어 봤을 텐데.’

그 대신으로 선택한 사람이 바로 장문인 구양중이었다.

쇄애애액!

장공은 빠르게 쇄도하며 구양중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그물 같은 도강(刀罡)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그가 효초아에게서 받은 무공은 광섬멸절도(光閃滅絶刀).

마휘란과 마찬가지로 쾌(快)에 바탕을 둔 도법이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구양중은 화산의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를 전개해 도강을 피함과 동시에, 장공의 측면을 노리고 검을 찔렀다.

카앙! 도신으로 검을 막은 장공이 뒤로 물러났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구양중을 응시했다.

‘화신(花神) 구양중. 별호의 의미는 검끝에서 매화를 피워 내는 화산 검학(劍學)에 통달했다는 뜻이지. 무당과 더불어 검의 본산이라 불리는 화산. 그 화산의 검술의 진가를, 오늘 확인할 수 있겠군.’

여기까지 생각한 장공은 내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어디 보여 봐라. 네놈의 실력을! 나를 기쁘게 해 보란 말이다!’

구양중은 힐끗 시선을 돌려 유라를 쳐다보았다.

‘저 녀석이! 피하라니까…….’

유라는 구양중이 걱정되어 쉽게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구양중의 시선을 알아챈 장공이 입을 열었다.

“구양중. 저 계집이 신경 쓰이나?”

구양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차!’

무심코 쳐다본 것이 놈에게 약점을 알려 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실수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장공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대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우선 저 계집을 죽여 주마.”

단숨에 쇄도한 장공은, 유라를 향해 도를 내리쳤다.

‘빠르다! 피할 수 없어. 그럼 받아친다!’

삼매진화를 사용한 유라가 검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쩌엉!

벼락처럼 달려든 구양중이 장공의 도격을 막아 냈다.

“눈을 돌리지 마라. 네놈의 상대는 바로 나다.”

구양중의 싸늘한 외침에 장공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바로 그 눈이다. 한바탕 제대로 싸워 보자!”

구양중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유라에게 말했다.

“여기 가만히 서 있거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장문인…….”

“장문인의 말을 어긴 데 대한 문책은 나중에 하겠다.”

“……네.”

나직이 대답한 유라는 고개를 숙이며 한 걸음 물러났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공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문책을 하겠다고? 그 말은, 나를 상대로 둘 다 살아 나갈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오만한 것도 정도가…….”

“이곳은 화산이다.”

구양중이 이십사수매화검법의 검세를 취하며 말했다.

“영웅들의 혼이 잠든 이곳은, 너 같은 것들이 감히 발을 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지금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할 수 있으면 어디 해 보거라!”

장공이 광섬멸절도, 광섬뢰(狂閃雷)의 초식을 펼쳤다.

콰드득! 대지를 가르며 검은 참격이 날아들었다.

구양중은 빠르게 검막(劍膜)을 펼쳐 몸을 보호했다.

‘피하지 않고 막은 건 광섬뢰의 위력을 가늠하기 위함인가.’

쩌엉! 참격을 막은 구양중이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이십사수매화검법 21초식, 화란춘성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콱-! 검기가 폭우처럼 장공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장공은 도를 휘둘러 날아드는 검기를 모조리 쳐 냈다.

직후, 장공의 배후를 잡은 구양중이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시도는 좋았지만 네 수는 이미 읽혔다.’

장공은 몸을 빙글 돌리며 그대로 구양중의 허리를 베어 갔다.

그런데 살을 베는 감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도 잔상이었단 말인가! 그럼 실체는?’

그가 다급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날카로운 검격이 떨어졌다.

장공은 팔뚝과 어깨 등에 상처를 입으며 정신없이 물러났다.

구양중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가를 치르게 한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지켜보던 유라는 나직이 탄성을 뱉어 냈다.

‘분명 힘과 속도는 저자가 한 수 앞선다. 장문인은 그 차이를 경험으로 메꾸고 계신 거야.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저런 전투를 펼칠 수 있다니…….’

장공은 팔을 타고 흐르는 피를 응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경험의 차이라 이건가. 재미있군. 더 보여 다오!”

챙! 채채채챙!

장공은 광소를 터뜨리며 계속해서 참격을 날렸다.

구양중은 노련한 감각으로 장공의 참격을 흘리거나 피하면서 날카로운 반격을 가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이제 유라의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도검이 부딪칠 때마다 번쩍! 하고 섬광이 터졌다.

유라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결을 지켜보았다.

“이 정도로 강했을 줄이야. 구양중. 정말 기대 이상이다!”

장공은 광섬멸절도, 낙천뢰(落天雷)의 초식을 펼쳤다.

광섬뢰와 비슷하나 더 빠르고 위력적인 초식이었다.

구양중은 몸을 숙여 날아드는 일격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대로 파고들어 반격을 가하려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피가 눈을 가린 것이다.

‘완벽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가, 구양중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퍼억! 장공이 뻗은 주먹이 구양중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구양중은 외마디 비명을 토해 내며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아버……. 장문인!”

유라의 외침에도 잠시 기절한 구양중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앞으로 도달한 장공이 도를 수직으로 치켜들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결투였다. 네 몸이 노쇠하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승부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구나.”

장공의 도가 구양중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폭혈기공을 사용한 유라가 몸을 날리며 기습을 걸어왔다.

쩌엉! 유라의 화검(火劍)을 막은 장공이 뒤로 물러났다.

‘으음. 제법 묵직하군.’

유라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장공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감히 누구를!”

그녀는 분노에 찬 기합과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카앙! 도를 세워 검을 막아 낸 장공이 입을 열었다.

“그 정도 힘으로는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

장공은 장타(掌打)를 사용해 유라의 턱을 올려쳤다.

퍼억! 턱이 부서지며 고개가 위로 젖혀졌다.

비틀거리는 그녀의 명치로, 장공의 장풍이 작렬했다.

“커억!”

유라는 비명을 지르며 포탄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10년만 지났으면 훨씬 좋은 검사가 되었을 텐데…….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채 지는 것이 안타깝구나.”

장공은 쯧쯧 혀를 차며 절기, 광섬뢰를 쏘아 보냈다.

유라는 날아드는 검은 벼락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인가.’

최선을 다해 싸우다 죽었다. 억울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일렁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마음을 고백할 것을…….’

남량. 유라가 그 이름을 나직이 내뱉었을 때였다.

유라의 앞을, 어느새 달려온 구양중이 막고 나섰다.

푸확! 광섬뢰가 구양중의 심장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유라는 그 순간이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자, 장문인…….”

유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피를 토해 낸 구양중이 거친 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냉정하게 굴어서 미안했다.”

말을 마친 구양중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유라는 피 끓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

***

쩌엉! 방월 대사의 일장이 남량의 어깨에 작렬했다.

“커억!”

바닥을 몇 번이고 구른 남량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출수한 손을 거든 방월 대사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도 덤빌 작정인가? 이제 그만하게나.”

망신창이가 된 남량은 이를 부득 갈며 대꾸했다.

“비키십시오. 대사.”

“진정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시게. 자네는 지금 기력이 다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네. 그런 몸으로는 화산까지 달려갈 수도 없을뿐더러, 간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 못할 걸세. 그런데도 계속 고집을 피울 셈인가?”

“그럼 계속 싸울 뿐입니다.”

터엉! 공중으로 몸을 날린 남량이 방월 대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방월 대사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칼날을 잡았다.

“어쩔 수 없군. 잠시만 자고 있게나.”

방월 대사는 수도(手刀)를 세워 남량의 뒷목을 가격했다.

남량은 흐릿해진 정신을 억지로 붙잡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잠든 수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내 힘을 필요로 하는가?

이전처럼 거절하는 대신, 남량은 그에게 물었다.

‘정말 네 힘을 받아들이면 늦지 않게 화산으로 갈 수 있는가?’

-갈 수 있다.

‘내가 구하고자 하는 이들을 구할 수 있는가?’

-구할 수 있다.

남량은 사슬에 묶여 있는 수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럼 나와라. 네 힘을 내게 다오.’

남량이 자신의 의지로 수라를 받아들인 순간, 사슬이 풀리며 튀어나온 수라가 단숨에 남량을 집어삼켰다.

“크아아!”

기절한 줄 알았던 남량이 몸을 일으키자, 승려들은 기겁했다.

방월 대사는 남량의 두 눈이 붉게 변한 것을 보고 소리쳤다.

“이런……. 자네 설마 수라의 힘을 받아들인 것인가!”

그는 즉시 금나수법을 전개해 남량을 잡으려 했다.

소림의 금룡수(金龍手)가 펼쳐지는 순간, 남량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켜보던 홍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남북 십성인 대사의 눈을 속였단 말인가?’

방월 대사를 따돌린 남량은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방월 대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응시했다.

‘동료를 구하고자 하는 남량 도장의 절실한 마음이 결국 수라의 힘을 받아들이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두렵구나. 아미타불…….’

***

콰르릉!

벼락이 치며 한바탕 비가 쏟아져 내렸다.

효초아는 수라동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붉은 구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걸로 네 개의 심장 조각을 손에 넣었다.”

효초아가 손에 힘을 주자 구슬이 붉게 빛나며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수라여. 마지막 조각은 어디쯤 왔지?”

효초아의 물음에 수라가 대답했다.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그럼 내가 직접 맞으러 가야지.”

“미리 말했지만 내 조각들은 인간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네가 그의 조각을 빼앗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내가 바로 욕망의 화신인데 무엇이 걱정인가? 하하하!”

한 차례 광소를 터뜨린 효초아는, 문득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 탓이었다.

이내 도포를 펄럭이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효초아가 눈을 부릅떴다.

서늘한 빛을 흩뿌리는 검, 연화를 늘어뜨린 채 걸어오는 사내는 바로, 전(前) 남북 십성이자 매화검선으로 불린 유우화였다.

“말도 안 돼. 너는 분명 천마에게 당해 폐인이 되었다고…….”

“효초아.”

연화검을 들어 효초아를 겨눈 유우화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한 발자국도 지나가게 놔두지 않겠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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