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옥룡교의 비밀(1)
운남에 도착한 매화오절은 옥룡설산(玉龍雪山) 인근 객잔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옥룡교(玉龍敎)? 그럼 용을 섬기는 집단이라는 거야?”
운휘의 물음에, 유라가 대답했다.
“석 달 전에 생긴 신흥 종교인데, 옥룡을 믿으면 살아서는 무병장수하고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신선들이 사는 선계로 갈 수 있다는 게 저들의 교리(敎理)야.”
위지혁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사교 놈들이 하는 말이란 늘 비슷하지. 그리고 세상에 용이 어디 있어? 그런 걸 믿다니 한심하군.”
찬야는 위지혁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저 녀석……. 남 사제가 응룡의 여의주를 품고 있다고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데?’
유라는 차를 마신 뒤 말을 이었다.
“무림맹에서 두 차례 흑영대 대원들을 보내 조사하게 했는데, 전부 실종됐다.”
위지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흑영대가? 그렇다면 단순한 사교가 아닐 가능성이 높겠군.”
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교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지. 우리 임무는 두 가지다. 실종된 흑영대원을 수색하는 것과 옥룡교의 실체를 조사하는 것. 만약 옥룡교의 정체가 마교이며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즉시 물러난다.”
“수색은 옥룡교의 교당(敎堂)부터 시작해야겠지?”
마침 점소이가 주문한 음식을 들고 다가왔다. 일행은 식사를 마친 다음 옥룡교의 교당이 있는 옥룡설산으로 향했다.
***
웅성웅성.
옥룡설산의 초입(初入)에 도착한 매화오절은 산길을 따라 쭉 이어진 행렬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충 세어 봐도 오천은 족히 넘겠군.”
“대체 뭐라고 저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옥룡교의 인기가 생각보다 엄청난데?”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난 유라가 말했다.
“교당으로 가는 것 같으니 따라가 보자.”
네 명은 옥룡교의 교도(敎徒)로 보이는 인파를 따라 산길을 올랐다. 한참을 가자 교당으로 보이는 거대한 궁전이 나타났다.
“장관이네.”
일행은 나직이 감탄을 내뱉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대전 중앙에는 거대한 용의 석상이 있었다.
교도들은 석상 앞에 일제히 엎드리며 크게 외쳤다.
“옥룡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한다!”
“옥룡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한다!”
위지혁은 허리를 굽히며 일행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계속 서 있다간 의심당하겠어. 일단 따라 하자.”
찬야는 난감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원시천존(元始天尊:도교의 최고신)께서 보면 진노하시겠군.”
그렇게 매화오절이 교도들을 따라 주문을 외칠 때였다.
석상 뒤편에서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화려한 용포(龍袍) 차림에 머리에는 봉황 장식의 관을 썼다.
마치 황제라도 되는 것마냥.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교도들이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교주님께서 오셨다!”
“옥룡의 현신이시여!”
일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반면, 매화오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다들 느꼈지? 미약하지만 분명 마기야.”
“예상대로 옥룡교의 실체는 마교였군.”
“어떡할 거야? 지금 나서서 공격할까?”
일어나려는 운휘를, 유라가 붙잡아 눌렀다.
“지금은 아니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그들은 일단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잠시 대전을 둘러본 사내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도 용의 자식들이 많이 모였구나.”
‘용의 자식’이란 옥룡교의 교도들을 칭하는 말인 듯했다.
“미개한 백성들은 한낱 인간에 불과한 황제를 천자(天子)라 부르며 칭송한다. 그가 죽어 저승으로 가도 계속 황제 노릇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뒷짐을 진 채 말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조금씩 격양되었다.
“허나 너희들은 다르다. 용의 가호를 입은 자들은 황제처럼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살아서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을 노예처럼 부리게 될 것이다. 영생불멸한 신선이 될 것이다. 그걸 믿는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옥룡이시여! 가호를 내려 주소서!”
교도들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며 사내가 손짓을 했다. 그러자 붉은 피풍의를 두른 여인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너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먼저 가진 재물을 선뜻 내놓을 수 있을지 보도록 하겠다. 재물을 더 많이 바칠수록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여인들은 주머니를 든 채 대전을 돌기 시작했다.
교도들은 앞다투어 수중의 재물을 주머니에 넣었다.
운휘의 앞에 선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를 흔들었다.
운휘는 손가락으로 위지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돈은 전부 이 친구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위지혁이 눈을 부릅뜨며 운휘를 노려보았다. 운휘는 헛기침을 하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여인은 위지혁을 향해 주머니를 내밀었다.
위지혁이 돈을 꺼내 담자,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옥룡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여인이 자리를 뜨자, 위지혁은 이를 부득 갈며 운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 나중에 잠깐 보자.”
“고맙다. 옥룡께서 기뻐하실 거야.”
찬야는 고개를 숙인 채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유라는 빵빵해진 주머니를 응시하며 싸늘히 중얼거렸다.
“거대한 궁전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 알겠군.”
수금을 마친 사내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설교를 시작했다.
대략 두 시진가량의 설교가 끝난 뒤, 넷은 교당을 나왔다.
“이상하네. 흑영대원들을 제압했다면 상당한 실력자일 텐데, 교주는 전혀 강해 보이지 않았어.”
“우리처럼 기운을 숨겼을 수도 있어. 아니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강자가 있을 수도 있고. 그것보다 운휘 너! 죽여 버리겠어!”
“내 돈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으니 이해해라.”
유라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무림맹으로 전서를 보내 옥룡교의 정체를 알리고 오늘 밤, 교당 내부로 잠입하자.”
***
그날 밤, 매화오절은 야음을 틈타 교당 건물로 접근했다.
도복 대신 어둠에 스며들기 적합한 검은색 무복 차림이었다.
기척을 숨긴 채 건물 벽에 붙은 네 명은 준비해 온 갈고리를 지붕에 던져 건 다음, 갈고리 끝에 연결된 밧줄을 붙잡고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지붕으로 올라온 그들은 검을 뽑아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갈 구멍을 만든 다음, 천장으로 숨어들었다.
“천장 청소 좀 하지. 먼지 때문에 숨을 못 쉬겠어.”
“이 높이에 있는 천장을 어떻게 청소해?”
운휘와 위지혁이 나직이 투덕거릴 때였다.
유라가 검지를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래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천장 사이에 난 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낮에 보았던, 붉은 피풍의를 두른 여인들이 수레에 무언가를 잔뜩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유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
수십 명의 사람이 밧줄에 묶인 채 실려 있었다.
저들을 구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유라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저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면 실종된 흑영대원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인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바로 석상 앞이었다.
스윽. 그중 한 명이 손을 뻗어 석상의 꼬리 끝부분을 만졌다.
그러자 바닥이 갈라지며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생겼다.
여인들은 수레를 끌고 지하로 내려갔다.
‘마교 놈들. 사람들을 잡아다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일단 저들을 따라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소리 없이 대전 바닥에 착지한 매화오절은 여인들을 따라 지하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걷던 도중, 운휘가 중얼거렸다.
“분뇨 냄새가 나.”
콧등을 찡그린 채 일행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공동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던 그들은 나직이 탄식을 내뱉었다.
공동 안에는 수십 명가량의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그중에는 흑영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매화오절을 발견한 여인 한 명이 외쳤다.
“침입자다! 침입…….”
파파팟! 바람처럼 달려든 찬야가 여인의 수도(手刀)로 여인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나머지는 지풍(指風)으로 수혈을 짚어 잠재웠다.
“잘했다. 찬야.”
흑영대원에게 다가간 유라가 그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정신이 드십니까?”
대원은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으으……. 자네는?”
“화산파 매화검수 유라입니다. 옥룡교를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고 왔습니다.”
정신을 차린 흑영대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도망치게……. 도망쳐서 남북 십성을…….”
“그들이 사람들을 잡아 가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주. 그자는 사람이 아닐세……. 여기 있는 모두가 그의…….”
기력이 다한 대원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유라는 그를 바닥에 눕히며 생각했다.
‘교주가 사람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위지혁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다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유라의 물음에,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찬야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교주 놈이 짐승이라도 키우는 건가?”
유라는 문득 흑영대원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바로 그때, 입구 쪽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다급히 여인들을 뼈의 산 뒤로 숨기고 자신들도 몸을 감추었다. 기척도 완벽하게 지웠다.
터벅터벅.
지하로 내려온 사람은 다름 아닌 교주였다.
그가 내려오자 시체처럼 누워 있던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외침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유라는 그녀답지 않게 긴장한 표정으로 교주를 응시했다.
교주는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래. 오늘은 누굴 먼저 먹어 줄까?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스무 명은 먹어야겠다.”
교주가 말을 마친 직후였다. 매화오절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고 굳어 버렸다.
으득. 콰드득.
교주의 몸이 기이하게 뒤틀리더니, 몸이 집채만큼 거대해지고 머리가 늑대의 그것으로 바뀌었으며, 털이 길어지고 날개가 생겨났다.
‘저건 분명 전설로만 전해지던……. 사흉(四凶)이라 불리는 괴물 가운데 하나인 혼돈(混沌).’
유라는 그제야 교주의 정체를 깨달았다.
‘장문인에게 들은 정보가 맞다면, 놈은 탄영의 심복인 사흉마(四凶魔) 가유(賈劉)다. 옥룡교 교주의 정체가 마교의 간부였을 줄이야.’
전설에 따르면 혼돈은 식탐이 많고 인육을 좋아한다 했다.
사교를 만든 것도, 교도들을 납치해 잡아먹기 위함이리라.
여기까지 생각한 유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이라면 도망친다. 그래야 하지만…….’
먹잇감을 정한 가유가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표적이 된 젊은 여인이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꺄아악!”
그 순간, 눈을 번쩍 뜬 유라가 검을 뽑아 들었다.
‘화산의 도사로서, 어찌 위험에 처한 사람을 두고 도망친단 말인가.’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검을 뽑아 든 찬야가 말했다.
“가자. 저 괴물 죽이러.”
파파팟! 기척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매화오절이 가유를 향해 몸을 날렸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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