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무림맹 전투(1)
결전 당일, 무림 연합 세력은 무림맹 앞으로 집결했다.
때는 진시(辰時:7~9시)라, 점점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연합 세력이 구축한 진영은 총 3군데였다.
먼저 용제와 검제, 도군이 맡은 좌(左)군.
그리고 불제와 금왕, 독왕이 맡은 우(右)군.
마지막으로 검성과 도제, 검황이 맡은 중(中)군이었다.
그들은 모두 백의(白衣)를 입고 백색 천을 머리에 둘렀다.
이는 무림맹주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기 위함이었다.
용제 유선은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말했다.
‘마교대전 당시 죽어 간 영웅들이여……. 무림 연합군을 보살펴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검제 태화 진인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늙은 목숨을 바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도군 유종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림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면, 기꺼이 바치겠소이다.”
불제 방월 대사는 나직이 염불만을 외우고 있었다.
금왕 노학개는 쯧, 하고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사기(死氣)가 진동하는 것이…….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구만.”
독왕 당지황은 곰방대 연기를 뿜어내며 끌끌 웃었다.
“탄영의 시체를 연구할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되는군.”
남량은 딱딱하게 굳은 매화오절의 표정을 발견하고 물었다.
“긴장되냐, 위지혁? 죽을까 봐?”
위지혁은 깜짝 놀라 외쳤다.
“기, 긴장은 무슨! 조금 흥분했을 뿐이야.”
“너는 이 상황에 무슨 허세를 부려…….”
네 명 모두 대규모 전쟁은 처음이다. 떨리는 건 당연했다.
“두려움은 몸을 굳게 만들지. 싸우기 힘들 것 같으면 빠져라.”
“무림 전체의 명운이 걸린 싸움인데 빠지라고? 하하.”
찬야는 농담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유라는 남량을 가만히 응시하며 생각했다.
‘남 사제는 탄영을 이길 자신이 있는 건가?’
운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사선(死線)은 수도 없이 넘었습니다. 두렵지 않아요.”
“그래. 너희들 모두 잘 들어라.”
남량은 네 사람을 향해 말했다.
“이 전쟁은 탄영을 죽이면 끝나는 싸움이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반드시 탄영을 죽일 테니까. 여기 있는 누구도 안 죽는다.”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든든해. 우리 남 사제.”
“그리고 명심해라. 무모한 짓은 하지 마.”
“내 목숨 귀한 줄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걱정 마라.”
도제 팽인호는 떠오르는 해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때가 되었군.”
그는 고개를 돌려 검성 남궁천을 불렀다.
“남궁 가주. 이제…….”
“음. 알겠소이다.”
백의 장포를 펄럭이며 걸어나온 남궁천이 연합군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 얼굴이 굳어 있군. 전쟁을 앞둔 공포 때문만은 아닐 터. 무림맹의 동료들을 죽여야 하는 사실이 무척 괴로울 테지. 나도 그렇다. 허나 명심해라! 우리가 이 전투에서 지면 모두 죽는다. 무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어라! 저들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네-!!!”
수천의 무인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천지가 진동했다.
남궁천은 검을 뽑아 들고 크게 외치며 몸을 날렸다.
“가자! 마교를 물리치자!”
연합군들은 함성을 지르며 무림맹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무림의 평화를 위해!”
“싸우자! 싸우자!”
“우와아아아아아아!!!”
거대한 인(人)의 파도가 무림맹을 향해 밀려들었다.
멀리서 함성 소리를 들은 탄영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오너라. 한 놈도 빠짐없이 이곳에 시체를 묻어 주마.”
제2차 마교대전, 무림맹 전투의 시작이었다.
***
우와아아아아아아!
선두에 선 무인들이 담장을 넘어 외원(外苑)으로 넘어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무림맹 대원들이 달려들었다.
무인들은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아악!”
“으아아아!”
피와 살점이 어지러이 흩날리고 비명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외원은 어느새 혈향(血香)이 진동하는 전장이 되어 있었다.
“당황하지 마라! 진형을 유지하라!”
각 진영의 지휘를 맡은 무인들이 소리쳤다.
촤악! 대원 한 명을 베어 낸 유선이 태화 진인을 향해 말했다.
“진인! 적들이…….”
“그래.”
태화 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림맹 대원들이 상상 이상으로 강해졌다. 탄영의 영향인가?’
남궁천이 남북 십성을 향해 외쳤다.
“아무래도 십성 중 한 명은 여기 남아야 할 듯하네!”
결국 노학개가 남아 이곳을 돕기로 했다.
남량은 나머지 십성과 함께 내원으로 달려가며, 고개를 돌려 네 명에게 말했다.
“조금만 버티고 있어라. 금방 다녀올 테니까.”
***
맹주전으로 달려가는 팽인호의 앞을, 아홉 개의 인영(人影)이 막아섰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 팽인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네들이…….”
팽인호의 앞을 막아선 자들은 각각 무림맹의 유풍검대, 풍림검대, 질풍검대, 열풍검대, 추풍검대, 풍운검대의 대주들이었다.
총대주 양악과 흑영대주 비설까지. 모두 있었다.
팽인호는 침음을 삼키며 거대한 도(刀)를 꺼내 들었다.
“금방 편하게 해 줌세. 정말 미안하네.”
팽인호는 도를 휘둘러 도강(刀罡)을 날렸다.
쩌엉! 다음 순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남북 십성의 일격을, 저들이 멀쩡하게 버틴 것이다.
직후, 그들의 전신에서 붉은 마기(魔氣)가 흘러나왔다.
‘으음. 탄영이 저들에게 힘을 불어넣은 것인가.’
팽인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조금 걸릴 듯하군.”
그는 천천히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의 자세를 취했다.
쇄애애액! 아홉 명의 대주가 동시에 짓쳐 들었다.
팽인호는 괴성을 지르며 그에 맞섰다.
한편, 당지황은 무림맹의 호법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끌끌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웃기는 광경이군. 무림맹이 위험에 처했을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호법들이 외려 무림맹의 적을 지키는 상황이라니…….”
스르륵.
당지황의 전신에서 옥색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당가의 비전절기이자 최강의 독공인 천화독(天禍毒)을 펼친 것이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호법들은 절로 뒷걸음질 쳤다.
“손속이 과해도 이해하게. 자네들도 이걸 바라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도중에 자네들의 몸을 조금 연구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겠지? 허허.”
당지황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무림맹 순찰당에 의해 가로막힌 유선도 전투를 시작했다.
달려드는 순찰당 무인들을 응시하며, 그가 검을 휘둘렀다.
파파파파파팟!
청운적하검의 검초가 펼쳐지며, 한 명의 무인이 쓰러졌다.
‘세 명을 쓰러뜨리려 했는데……. 움직임이 생각보다 빠르다.’
남은 무인들의 숫자는 대략 오십 명 정도였다.
그들은 검진을 펼치며 조금씩 유선을 압박해 왔다.
유선은 표정을 굳히며 몸을 날렸다.
파파팟! 건물 지붕을 내달리던 남궁천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자, 푸른 장포를 입은 창백한 인상의 미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입을 열어 말했다.
“그쪽으로 가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남궁천.”
“그 모습, 누군지 알겠다. 그대가 궁기 담승인가?”
“오호! 천하제일검이 나를 알고 있다니, 이거 영광이군요.”
“나를 막을 셈인가? 네놈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건 해봐야 알겠지요.”
쉬익! 순식간에 쇄도한 남궁천이 검을 휘둘렀다.
콰드득! 지붕이 반으로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착지한 남궁천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법이군. 그걸 피해?”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담승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과연 검성이군요. 무시무시한 검격입니다. 허나 그게 다라면 조금 실망일 겁니다.”
말을 마친 담승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신화 속 궁기의 모습처럼 변한 그는 등에 날개를 단 호랑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각오하십시오.”
담승의 말에, 남궁천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저거 정말 괴물이구만.”
방월 대사는 자신의 앞을 막고 선 이를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군. 도올 사환.”
마치 예전부터 그를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사환이 대답했다.
“마교대전 이후, 이 날만을 기다려 왔다. 불제여.”
“자네는 이미 내게 당한 적이 있네. 그걸 잊은 것인가?”
방월 대사의 말에, 사환이 으르렁거렸다.
“그때와 지금이 같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혈마의 힘을 받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방월 대사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사환을 노려보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일 걸세.”
쩌엉! 두 사람의 기(氣)가 부딪치며 대기가 진동했다.
“여기서 너를 죽이고, 과거의 오욕을 씻겠다.”
콰드득! 사환이 전설 속 도올의 모습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거대해진 그는, 호랑이의 신체에 멧돼지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되어 있었다.
쇄액! 사환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방월 대사를 후려쳤다.
방월 대사는 불영선하보를 펼쳐 사환의 공격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대력금강장으로 옆구리를 가격했다.
쩌엉! 장력에 적중당한 사환이 휘청거리며 소리쳤다.
“크윽! 네 이놈!”
출수한 손을 거두며, 방월 대사가 말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콰앙! 대전의 문을 박차고 유종학과 태화 진인이 들이닥쳤다.
탄영은 태사의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유종학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네년을 처단하고 말리라!”
천천히 눈을 뜬 탄영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처음은 검제와 도군인가. 몸 풀기로 적당하겠군.”
그녀는 피식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던졌다.
“너희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두 사람은 발치에 떨어진 언월도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무림맹주의 애병인 비천언월도였다.
태화 진인이 수염을 부르르 떨며 노호성을 질렀다.
“탄영!!!”
그의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탄영이 깔깔 웃었다.
“유품을 돌려주었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지. 안 그래?”
“네 이년……. 가만두지 않겠다.”
“하! 맹주를 이긴 나를, 네놈들이 무슨 수로?”
탄영이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늘 무림은 멸망한다. 나에게 대적하는 너희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린 다음, 이 세상의 신으로 군림할 것이다.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는 거야.”
“네 뜻대로 되게 놔둘 것 같으냐!”
태화 진인과 유종학이 내력을 끌어올리며 몸을 날렸다.
남량은 백발을 거칠게 휘날리며 맹주전 앞에 도착했다.
‘이 기운은 검제와 도군이다. 두 명이 먼저 도착했구나.’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쇄애액! 어디선가 검강이 날아왔다.
남량은 뒤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해 냈다.
‘잠깐, 이 기술은 설마…….’
바닥에 착지한 남량은 검강을 날린 상대를 확인하고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그를 가로막은 사람은 검은 비단옷을 입은 여인.
그의 충실한 수하이자 정인이었던 낭연청이었다.
탄영은 그녀마저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든 것이다.
“……청아.”
남량은 괴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스륵. 파팟!
검을 들어 올린 낭연청이 남량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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