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45화 (145/164)

<145화>

황제의 부름(3)

“지월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대략 5년 전쯤이었네.”

제국의 황태자, 민(敏)이 남북 십성을 향해 말했다.

5년 전이라면……. 마교 내 반란이 끝난 직후다.

역시, 지월은 처음부터 황제를 이용할 속셈이었나.

“놈이 무슨 수로 폐하의 눈에 든 것입니까?”

남량의 물음에, 민이 대답했다.

“황상께서는 매년 겨울, 온천에 가신다네. 황실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지. 그곳을 다녀오시는 길에, 습격이 있었네. 황실 근위대조차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자들이었는데…….”

“지월이 폐하를 구했겠군요.”

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지월을 의심했네. 계획적으로 황상께 접근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로웠으니까. 그래서 황상께 고했지만, 황상은 듣지 않으셨다네.”

절체절명의 순간,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다.

황제도 사람인 이상, 냉철한 판단보다 감사의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습격한 자들은 아마도 지월의 수하들이겠지.’

민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목숨을 구해 준 보답으로 지월은 한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았네. 황실 만찬에 초대되거나 황상께서 차를 마실 때 항상 그를 부르고는 하셨지. 황상이 그를 너무 총애하자 대신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네. 지월이 황상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정사에 관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일세. 허나 그 걱정은 곧 사라졌다네. 지월은 가끔 자신의 재주를 펼쳐 보이며 황상의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을 뿐, 정사엔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가 있는 것이 대신들에게는 더 좋은 일이 되었네.”

“어째서입니까?”

민이 씁쓸하게 웃었다.

“황상은 평소 성격이 거센 불과 같으셔서 대신들이 눈치를 보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네. 헌데 지월이 온 뒤로 황상의 성격이 많이 누그러지셨어. 조정의 분위기가 연일 훈훈하니 대신들이 그에게 고마워할 수밖에. 나 역시 그러했고.”

일순, 민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놈의 진정한 목적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네.”

민이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이었다.

그는 황후가 몸살이 났다는 말을 듣고 곤녕궁(坤寧宮:황후의 침전)으로 향했다.

둘만 있는 자리에서, 황후는 이상한 말을 꺼냈다.

“태자. 지월, 그자를 조심하세요.”

민은 의아해하며 황후에게 물었다.

“어마마마. 왜 그러십니까?”

“그자가 황상의 귀에 독을 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이라니요?”

“태자는 황상과 근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나요?”

민은 고개를 저었다. 일찍이 무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장성한 이후 국경 지대에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외적을 상대하느라 황궁을 비울 때가 많았다.

“최근 황상의 어조가 조금 달라진 것 같더군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지월을 마치 하늘이 보낸 사자(使者)처럼 표현하고 그의 말을 지나칠 정도로 신뢰하고 있어요. 특히 그가 몸담았던 곳의 교리(敎理)를 설명하실 때는 광기마저 엿보이더군요.”

민의 표정이 굳었다. 황후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민은 곧장 건청궁(乾淸宮:황제의 침전)으로 향했다.

황제와 대화를 해보고, 만약 황후의 말대로 황제가 사교에 현혹되었다면 당장 지월을 찾아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오오, 민이 왔느냐!”

황제는 민을 반갑게 맞이했다. 민은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부황(父皇).”

“국경을 지키느라 수고가 많다. 앉거라.”

민은 황제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황상은 사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더 심각한 점은, 본인이 그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황. 아무래도 지월을 멀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꺼낸 직후, 민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

황제의 눈에서 살기(殺氣)가 넘실거리며 피어오른 탓이었다.

‘단지 지월을 부정적으로 언급했을 뿐인데, 자식인 내게 살기를?’

이 순간, 민은 깨달았다.

지월을 죽이는 즉시, 자신도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황제는 잠시 민을 노려보다 말했다.

“지월은 유능한 인재다.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거라.”

“소자가 실언을 한 것 같습니다. 송구합니다.”

민은 황제의 비위를 맞추는 척하며 지월의 속내를 알아내려 했다.

“지월은 자신의 깨달음을 백성들에게도 전파하고자 한다. 헌데 그 무림이라는 곳에 속한 자들이 방해를 할 것 같다는구나.”

“무림이라면…….”

“그래서 지월의 간언에 따라 무림인을 관리하는 부서를 만들 생각이다. 놈들이 지월을 방해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 힘을 짐을 위해 쓰는 것이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자 아니냐? 하하.”

“그렇군요.”

민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대로 있다간 백성들 전체가 사교에 빠질 것이다. 오직 무림만이 지월을 막을 수 있다. 그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현재로 돌아와, 민이 말했다.

“이게 자네들을 찾아온 이유일세.”

이야기를 들은 남궁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월을 막아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지월이 백성들에게 포교를 하는 건 막아야 할 일입니다. 허나 폐하의 명은 절대적입니다.”

“만약 명을 내리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민의 말에, 남북 십성의 안색이 변했다.

“전하. 방금의 말씀은 역모(逆謀)를 뜻하는 것입니까?”

남량의 물음에, 민이 그를 응시하며 대답했다.

“1년 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일세.”

민은 찻잔을 들었다가 차가 식었음을 깨닫고 다시 내려놓았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민은 한 차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황실 근위대를 이끄는 대장과 군부의 수장들. 각 부처의 관리들까지 포섭을 끝내 두었네. 남은 건 무림의 세력뿐일세. 사실 지월과 그가 거느린 자들의 능력을 보았을 때, 무림의 도움이 없다면 역모는 승산이 없네. 그래서 내가 직접 이곳에 온 것이야.”

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북 십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부탁이네. 힘을 빌려주시게. 나라를 구하고 백성들을 구하기 위함이네.”

“전하.”

다들 곤란한 표정을 지을 때, 남량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따르겠습니다.”

유선과 태화 진인 등이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남량 도장! 그렇게 간단히 결정할 일이 아닐세!”

“무려 반란이네!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해야 해!”

남량은 오히려 그들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두 분. 언제부터 사람을 구하는 일에 그리 신중해지셨습니까?”

“뭐라고?”

“반란이라서요?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입니까? 애초에 우리가 칼을 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악으로부터 약한 자들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었나요? 그게 무림 아닙니까?”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남량이 계속 말했다.

“악은 지금 저곳 황도에 있고, 우린 놈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역적이 되는 것이 두려우시다면 빠져 있으십시오. 저는 싸울 겁니다.”

“남량 도장의 말이 맞습니다.”

벌떡 일어나 말하는 사람은, 바로 남궁천이었다.

“오직 우리만이 백성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팽인호가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역적이 되는 건 조금도 두렵지 않소! 나도 힘을 보탤 거요.”

유종학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종남도 황태자 전하를 따르겠습니다.”

당지황은 끌끌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반란이라. 거참 화려한 말년을 보내게 생겼군.”

방월 대사는 나직이 염불을 외웠다. 노학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구나.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

고개를 들며 탄식을 내뱉은 태화 진인이 말했다.

“빈도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줘서 고맙소. 다들.”

유선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저도 따르겠습니다.”

남량이 그들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모두의 뜻이 하나로 모였군요.”

남량은 민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전하.”

잠시 멍하니 있던 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불처럼 거세게 타오르는 눈으로 말했다.

“다들 고맙네. 그럼 설명을 시작하지.”

바로 그때였다.

콰앙! 문을 부술 듯 박차고 들어온 거지 한 명이 다급히 외쳤다.

“큰일입니다! 황제가!”

***

그 시각. 화산.

찬야는 정자 위에서 이화정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나머지 셋은 각각 남궁가, 당가, 팽가로 가 버렸다.

‘흥. 다들 친한 벗이 생겼다 이거지? 나도 청랑 도장을 따라갈 걸 그랬나.’

이화정이 눈살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서 두지 않고 뭐 하나?”

“좀 기다려 봐요. 묘수를 찾고 있는 중이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찬야는, 문득 화산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생겨났다.

‘응? 저거 방금 움직인 것 같은데?’

직후, 찬야와 이화정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불빛은 이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겨나 마치 붉은 용처럼 보였다.

붉은 용이, 화산 초입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저, 저게 다 뭐야?”

경악한 이화정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장문인께 알려야겠다. 너는 가서 제자들을 깨워라.”

이화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정자를 벗어났다.

찬야는 아래쪽을 응시하며 이를 악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오대세가. 구파일방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오거라!”

달려 나온 운휘는 팽가의 외원을 가득 메운 수천의 군세(軍勢)를 향해 소리쳤다.

“빌어먹을! 이것들은 대체 뭐야!”

팽자엽은 허리춤에 찬 도병(刀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오다니!”

군사를 이끌고 온 하북성 도지휘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딱 보면 모르겠나? 나라가 하는 일이다.”

도지휘사는 팽자엽의 손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가문을 피바다로 만들기 싫으면 잘 생각해 보고 뽑아.”

팽자엽은 이를 부득 갈며 도지휘사를 노려보았다.

이천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당가에 들이닥친 사천성 도지휘사는 외원을 산책하듯 돌아다니며 말했다.

“여기가 당가인가? 무림 집안도 의외로 별것 없군.”

당가의 가주, 당서군이 도지휘사를 향해 싸늘히 말했다.

“별게 뭔지 보여 주기 전에 여기 온 목적이나 말해라.”

“어이쿠. 무서워라. 뭐, 독뱀이라도 풀 생각인가? 하하.”

도지휘사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낄낄 웃었다.

지켜보던 당룡이 눈을 부릅뜨며 걸음을 내딛었다.

“사형. 진정하세요.”

그의 어깨를 붙잡은 위지혁이 관군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전부 무장하고 왔어요. 놈들은 오늘 전쟁도 불사할 생각입니다.”

남궁세가의 문하생들은 검을 빼 들고 관군과 대치 중에 있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어디 관리 앞에서 검을 빼 들어? 전부 끌려가고 싶어?”

안휘성 도지휘사의 외침에 문하생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장포를 펄럭이며 앞으로 나온 남궁월이 도지휘사에게 물었다.

“관리면 다짜고짜 집안에 쳐들어와 행패를 부려도 되는 겁니까?”

도지휘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누가 행패를 부렸다고 그래? 엄연히 명령을 받은 몸이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유라는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남북 십성이 황궁으로 불려 간 일과 관련이 있는 건가? 남 사제는 무사한 걸까?’

제2차 마교대전은 점차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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