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복마십군의 등장(1)
댕댕댕-.
종소리가 다급히 울려 퍼졌다.
잠에서 깨어난 화산의 도사들은 의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허겁지겁 도관을 나왔다.
창과 갑옷으로 무장한 수천의 관군들이 대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제자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과, 관군? 관군이 화산에는 왜 온 거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관복을 펄럭이며 들어온 섬서성 도지휘사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평소에 체력 관리를 안 해서 그런가. 힘들군.”
그는 주변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화산파의 장문인은 어서 나오시오!”
이내 공월 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찬야와 이화정도 함께였다.
“여기 장문인이시오?”
묻는 도지휘사에게, 공월 진인이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밤중에 군사를 이끌고 들이닥친 이유가 무엇이냐?”
도지휘사는 품에서 비단 두루마리를 꺼내 보였다.
“지엄하신 황제 폐하의 명을 전하러 왔소이다.”
황제의 명이라는 말에 공월 진인을 비롯한 화산의 도사들은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두루마리를 펼친 도지휘사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모두 잘 들어라! 지금 이 순간부터 무림인은 황실의 통제를 받는다. 만약 명을 거부할 경우, 역도로 간주하고 사형에 처할 것이다.”
도사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무림이 황실의 통제를 받는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찬야는 굳은 표정으로 생각했다.
‘설마 황제가 남북 십성을 북경으로 부른 것도 이것 때문이었나?’
두루마리를 접은 도지휘사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선 각지에 퍼져 있는 무림인의 신원부터 철저하게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소이다. 만약 도망가거나 숨는 자가 있을 시, 등 뒤에 있는 수천의 군대가 이곳을 순식간에 쓸어버릴 것이오. 당신들이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이만한 숫자를 당해 낼 수는 없겠지.”
공월 진인은 이를 악물었다. 도지휘사는 도사들을 향해 외쳤다.
“한 달 내로 무림을 관리하는 부서가 새로 만들어질 것이다! 너희들은 철저히 관의 지시에 따르도록! 그럼 앞으로 섬서 지부를 담당할 사람을 소개한다.”
군사들 사이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검은 장발에 애체(靉靆)를 쓴 준수한 외모의 사내였다.
직후, 도사들 사이에서 경악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전부 마교대전에 참가한 자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사내를 마주한 공월 진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너는! 네놈이 어떻게!”
사내는 싱긋 웃으며 공월 진인에게 예를 갖추었다.
“오랜만입니다, 홍매검 대협. 아니지. 이젠 장문인이라고 불러야 하나?”
찬야가 이화정에게 속삭였다.
“사숙. 저자는 누구입니까?”
이화정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저자는 지월의 수하인 복마십군(伏魔十君)의 검군(劍君). 적연(赤演)이다.”
찬야는 깜짝 놀라 적연을 응시했다.
“그럼 이게 전부 지월이 꾸민 계략이란 말입니까?”
찬야는 믿을 수 없었다. 지월이 황제를 움직일 힘을 가지고 있다니.
적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연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때, 매화검수 한 명이 노성을 지르며 적연에게 달려들었다.
“적연! 내 역적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자리에서 동문의 원수를 갚겠다!”
공월 진인이 매화검수를 향해 소리쳤다.
“진혜(眞慧) 도장! 그만두게!”
직후, 적연은 벼락같은 속도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촤악-! 진혜의 가슴팍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진혜 사숙!”
화산의 도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제자들은 그의 시체를 끌어안고 오열을 터뜨렸다.
“갑자기 달려들면 벨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적연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태연히 중얼거렸다.
“정말 엄청난 속도의 발검(拔劍)이군. 대단해! 하하하.”
도지휘사는 크게 웃으며 적연의 무예를 칭찬했다.
“적연! 네 이노오오옴!”
공월 진인은 짐승처럼 포효하며 적연을 노려보았다.
적연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잊지 마십시오. 당신들의 생사 여탈권은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을.”
공월 진인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들 때였다.
한발 앞서 적연에게 달려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찬야였다.
평소와 달리 서슬 퍼런 살기를 날리는 모습이, 마치 야차와 같았다.
“죽어.”
싸늘히 내뱉은 찬야가 적연의 정수리로 검을 내리쳤다.
‘호오. 이건 제법인데.’
속으로 감탄한 적연이 검격을 피해 두 걸음 물러났다.
직후, 찬야의 미간을 노리고 날카로운 찌르기를 날렸다.
찬야는 고개를 뒤로 젖혀 검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화산파의 표미각(豹尾脚)을 펼치며 발차기를 날렸다.
퍼억! 팔꿈치로 공격을 막은 적연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것 봐라? 내 공격을 피하는 걸로 모자라 반격까지 해?”
섬전처럼 지나간 공방(攻防)에 멍하니 있던 도지휘사가 뒤늦게 화를 냈다.
“이것들이 감히 황명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냐! 여봐라! 저자를 당장-.”
도지휘사가 군사들에게 명을 내리는 것을, 적연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는 찬야를 쳐다보며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검을 다루는 솜씨가 수준급이군. 한번 겨뤄 보고 싶을 정도야.”
적연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제안을 하나 하지. 네가 만약 나와 싸워 이긴다면 순순히 죽어 줄 뿐만 아니라 섬서성 지부장 자리를 넘기겠다. 어때?”
“저, 적 대인!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듣고 있던 도지휘사가 펄쩍 뛰었다. 고개를 돌린 적연이 말했다.
“먼 길을 오셨는데 이런 구경거리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질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이화정은 찬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찬야의 재능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수준이다. 그 재능이 개화해 최근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마교의 간부를 상대하기에는 이르다.’
잠시 침묵하던 찬야가 말했다.
“그 말, 똑똑히 기억했다.”
찬야는 이화정이 말리기도 전에 질풍처럼 적연을 향해 쇄도했다.
그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의 화조월석(花朝月夕) 초식으로 검을 휘둘렀다.
쇄애애액! 십자로 교차한 검강이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그래. 어디 덤벼 보거라.”
쩌엉! 적연은 검을 수직으로 내리쳐 찬야의 검격을 막아 냈다.
다음 순간, 적연의 손등에 그물 같은 상처가 생겨났다.
적연은 상처를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음? 분명 막았는데?’
적연이 상처를 입자, 긴장하며 지켜보던 제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반대로 도지휘사의 군병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검강의 궤적을 살짝 비튼 것이다. 신검합일에 오른 찬야이기에 가능한 기술.’
이화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같은 기술이 두 번 통할 상대가 아니다. 찬야! 놈이 네 전부를 파악하기 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내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 찬야가 재차 달려들었다.
그는 화란춘성(花爛春盛)에서 낙화유수(落花流水)로 초식을 연계하며 공격을 가했다. 적연은 쏟아지는 검강을 피하기 바빴다.
화산의 도사들이 한마음으로 그를 응원했다.
“우와아! 찬야가 마교의 간부를 몰아붙이고 있다!”
“공세(攻勢)는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왔다. 조금만 더!”
그러나 이화정의 안색은 조금 전부터 좋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이 불길한 느낌은 대체 뭐지?’
한바탕 공격을 쏟아부은 찬야는 조금씩 이상함을 느꼈다.
‘착각인가?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어.’
아직 내력은 충분히 남아 있다. 지칠 정도로 움직인 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왜?
눈을 가늘게 뜬 적연이 입을 열었다.
“슬슬 자신의 몸 상태를 알아차린 건가? 후후.”
“설마, 네놈의 짓이냐?”
“그래. 몸이 아주 무겁지? 그냥 싸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냐?”
“주변에 독을 풀었군.”
“독? 아니야. 내 능력은 그런 것과 차원이 다르다.”
적연은 두 팔을 벌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건 내가 받은 신의 권능 중 하나. 칠욕(七慾)의 하나인 ‘나태의 권능’이다.”
“나태의……. 권능?”
“그래. 너는 처음 달려들었을 때 이미 내가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 능력에 당하게 되면 아주 조금씩 의욕을 상실하게 되지. 타오르던 복수의 감정도 바닥나고 결국 살고자 하는 의지마저 사라진다. 확실히 내기가 정순하고 경지가 높은지라 오래 걸렸어.”
찬야는 이를 부득 갈며 소리쳤다.
“헛소리 집어치워. 내가 그따위 말을 믿을 것 같아?”
“믿지 못하겠으면 네 손을 잘 봐라.”
고개를 내린 찬야는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까지 손에 쥐고 있던 검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찬야는 다급히 검을 주워 들었다. 적연이 낄낄 웃었다.
“네 몸은 이미 싸우기를 거부하고 있군. 이제 곧 정신까지 무너질 것이다.”
“크윽!”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한번 볼까.”
순식간에 다가온 적연이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빌어먹을.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
찬야는 바닥에 몸을 굴리며 간신히 검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반격을 가하려는 순간, 또다시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적연은 검을 치켜올리며 찬야를 향해 말했다.
“나름 재미있었다. 화산의 도사여.”
찬야는 떨어지는 검을 응시하며 속으로 말했다.
‘운휘. 위지혁. 유라. 남량. 아무래도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푸확!
찬야는 피를 흩뿌리며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이화정이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찬야-!!!”
검을 회수한 적연이 떨어지는 해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군.”
그는 빙글 몸을 돌려 멍하니 서 있는 도지휘사에게 말했다.
“이만 가시지요.”
“아아. 알겠소이다. 이만 철수한다!”
도지휘사는 군대를 이끌고 물러났다.
공월 진인과 이화정은 다급히 찬야에게 달려갔다.
“당장 매월관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일단 상처부터 지혈하자!”
이화정은 장포 자락을 찢어 찬야의 상처를 동여맨 다음, 그를 업고 매월관으로 달렸다.
툭. 찬야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이화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찬야. 살아야 한다. 반드시!”
이화정은 더욱 속도를 냈다.
***
개방의 거지로부터 소식을 전달받은 남량은 미친 속도로 화산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문득 그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착각인가? 방금 전에 찬야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럴 리 없다. 화산에 있을 찬야의 목소리에 왜 들린단 말인가?
‘환청인가.’
남량은 눈살을 찡그렸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서둘러야겠군.’
쇄애액! 화산 방향으로 몸을 날리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지월. 만약 내 동료들 중 누군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네놈을 고통스럽게 찢어 죽일 것이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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