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황성 전투(2)
파팟! 교태전(交泰殿) 앞을 지나가던 유라와 운휘는 문득 달리던 걸음을 멈추었다.
저벅저벅.
복마십군의 화군(火君) 방림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라를 알아본 방림이 입을 열었다.
“너는 남궁세가에서 본 그 여자로군. 화공(火攻)을 다루는.”
운휘가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엄청 강해 보이네. 같이 상대할까?”
유라가 팔을 뻗어 운휘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네가 상대할 적은 따로 있어.”
“그건 그렇지. 그럼 먼저 간다.”
운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를 떠났다.
방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혼자서 상대할 자신이 있는 건가? 이미 남궁세가에서 실력의 격차를 깨달았을 텐데. 너의 삼매진화는 내 광열마공(狂熱魔功)에 미치지 못한다.”
유라는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니. 이번에는 내가 이긴다.”
방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천천히 내력을 끌어올렸다.
몸이 녹아버릴 듯한 극양(極陽)의 열기가 주변을 가득 뒤덮었다.
유라를 도우러 온 무림인들은 근처에 가지고 못하고 발을 멈추었다.
그들과 함께 온 남궁월은 유라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유라 도장이 저자를 혼자서 이길 수 있을까?’
방림은 유라를 향해 좌장(左掌)을 뻗으며 말했다.
“만용을 부린 대가는 네놈의 목숨으로 받아 가겠다.”
투콱-! 유라의 발밑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지켜보던 무인들과 남궁월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유라 도장!”
화르륵! 방림은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남궁세가에서 보여 주었던 힘의 3배다. 받아 낼 수 없을 테지……. 그럼 이제 남북 십성을 찾으러 가야겠군.”
바로 그때, 불길이 걷히며 유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의복과 피부, 모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였다.
방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 정도 화염 저항을……. 그새 삼매진화의 경지가 오른 것인가?’
유라는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며 피식 웃었다.
‘천잠사 실로 만들었다더니, 마음에 드는군.’
고개를 든 유라가 방림에게 말했다.
“네놈이 자랑하던 광열마공은, 고작 이 정도인가?”
“건방진 것이……. 한 번 공격을 막아 냈다고 아주 기고만장했구나. 방금 그 일격이 내 전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냐?”
방림이 쌍장(雙掌)을 뻗었다. 우우웅! 그러자 주변의 열기가 손바닥으로 몰려들었다.
“광열마공의 멸절염룡(滅絶炎龍). 어디 받아 보거라.”
화르륵! 방림의 손바닥에서 화룡(火龍)이 생성되어 쏘아져 나갔다.
집채만 한 크기의 용은 아가리를 벌린 채 그대로 유라를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앙! 한바탕 폭발이 일어나며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라. 화산의 도사여.”
방림이 몸을 돌리는 순간, 불길 속에서 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멸절염룡이라. 이름만 거창했지 별것 없군.”
“아니?!”
방림은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불길이 좌우로 갈라지며 유라의 검강이 방림에게 날아들었다.
쩌엉! 양팔을 교차해 검강을 막은 방림이 뒤로 밀려났다.
검강을 막은 곳의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흘러내렸다.
방림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유라를 응시했다.
‘믿을 수가 없군. 멸절염룡마저 소용이 없단 말인가?’
유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선염로의 열기에 비하면 이건 따뜻한 정도야.’
방림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강해졌군. 좋다. 인정하지. 내가 가진 최강의 절기로 너를 상대해 주마.”
말을 마친 방림은 내력을 끌어모은 다음, 기합을 내질렀다.
콰아앙! 폭음이 일며 바닥이 갈라지고 돌풍이 휘몰아쳤다.
먼지가 걷히자,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 방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열마공. 열왕체(熱王體). 이 기술을 사용하는 한, 너는 내 몸에 손끝 하나 댈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마치 용암에 손을 대는 것과 같을 테니까.”
콰앙! 방림이 바닥을 박차고 쇄도했다. 후끈한 열기가 불어닥쳤다.
쇄애액! 방림이 내지른 일권(一拳)이 유라의 명치를 노려 왔다.
유라는 처음으로 몸을 날려 방림의 공격을 피했다.
쩌엉!
방림의 권격은 유라의 옆구리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단지 그것만으로 옆구리의 의복이 터지고 화상을 입었다.
유라는 나직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주먹을 회수한 방림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판단은 제법이다만,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도 더는 피할 생각 없다.”
처억. 유라는 길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내력을 끌어모았다.
“그동안 너를 뛰어넘기 위해 수련을 했지. 그 결과를, 지금 보여 주마.”
직후, 유라의 전신을 두른 삼매진화의 불꽃이 점점 누런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열기를 감지한 방림이 다급히 전투 자세를 취했다.
‘더 뜨거워지고 있다?’
화르르륵-. 황색으로 타오르던 불꽃은 이내 새하얀 백색이 되었다.
다음 순간, 눈부신 화광(火光)이 주변을 가득 뒤덮었다. 남궁월을 비롯한 무림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이, 이건……. 설마!’
방림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외쳤다.
“백색화염의 경지? 네까짓 것이 어떻게!”
온몸에 백염(白炎)을 두른 유라가 방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매화홍주검 31초식-. 열화대참(烈火大斬)!”
거대한 불의 검이 생성되어 방림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유라의 일격은 방림의 육체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켰다.
눈을 뜬 무인들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후웅-. 백색화염을 푼 유라는 신음을 흘리며 휘청거렸다.
‘백색화염……. 위력은 확실하지만 그만큼 내력 소모도 극심해. 돌아가면 열심히 수련해야겠다.’
마도세계의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유라는 밤하늘을 가득 채운 괴물들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간신히 복마십군을 잡았더니 그보다 더한 게 오는군. 하아.’
한숨을 내쉰 그녀가 남궁월과 무림인들을 향해 말했다.
“전투는 이제 시작입니다. 갑시다.”
***
종남파의 장문인, 도군 유종학은 똑같은 칭호를 가진 복마십군의 도군, 조표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챙! 채채챙! 조표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유종학을 몰아붙이며 말했다.
“탄영과의 대결에서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기량이 이 정도로 떨어졌을 줄은 몰랐군.”
채앵! 유종학의 도를 쳐 낸 조표가 눈을 번득였다.
“시시해졌다. 이만 끝내자.”
날카로운 칼날이 유종학의 목을 가르기 직전이었다.
쇄애애액! 한 줄기 검강이 조표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파팟! 도를 거두며 검강을 피한 조표가 버럭 소리쳤다.
“누구냐!”
유종학의 옆에 착지한 운휘가 퉁명스런 어조로 대답했다.
“나다. 개자식아.”
잠시 운휘를 노려보던 조표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 그래. 전에 팽가에서 상대했던 금강불괴 애송이구나.”
“이 새끼가……. 내 이름은 운휘다, 운휘! 똑똑히 기억해 둬라.”
“흥. 굳이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나?”
“널 죽일 상대의 이름인데, 기억해 둬야지. 안 그래?”
“여전히 건방진 놈이군. 죽이기 전에 그 혀부터 도려내야겠어.”
쩌엉! 운휘와 조표의 기운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충돌의 여파로 충격파가 터지며 주변의 무림인들이 뒤로 물러났다.
조표는 그새 달라진 운휘의 기운을 감지하고 이채를 띠었다.
‘이놈 봐라? 그새 영약이라도 복용한 건가?’
유종학이 운휘의 어깨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덕분에 한숨 돌렸구나. 위험하니 이만 물러나거라.”
운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문인은 몸도 성치 않으신데, 저놈은 제가 상대하도록 하죠.”
“자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두고 보세요. 저놈을 잡기 위해 나름 열심히 수련했거든요.”
직후, 조표가 날린 묵빛 도강(刀罡)이 운휘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쩌엉! 뒤로 날아간 운휘가 내성의 담벼락을 부수고 아래 처박혔다.
“주제를 알아야지. 애송이가 감히 누굴 상대하겠다고…….”
비웃음을 흘리던 조표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운휘가 잔해를 치우며 멀쩡하게 몸을 일으킨 것이다.
“젠장. 한 방 먹었네. 이게 치사하게 기습을 해?”
그는 의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투덜거렸다.
“금강불괴의 경지가 높아진 건가? 그래 봤자 부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
운휘는 내력을 끌어올리며 광영자와 수련한 비장의 절기를 꺼내 들었다.
우우웅-.
운휘를 감싼 거대한 명왕의 형상을 바라본 무림인들이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저건 대체 뭐지……?”
금강명왕(金剛明王). 금강불괴의 숨겨진 비술(祕術).
기(氣)를 몸 주변으로 내뿜어 명왕의 형상을 만드는 기술이다.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몸을 두른 단단한 갑옷과 같았다.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했다.
명왕의 기세에 순간 압도당한 조표가 이를 부득 갈았다.
“그런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상처를 입어도 내가 가진 ‘식탐의 권능’으로 재생해 버리면 그만이야!”
운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꾸했다.
“알고 있다. 그래서 네놈을 단 일격에 끝장낼 생각이다.”
쩌엉! 바닥을 박찬 운휘가 공중으로 솟구치며 검을 내리쳤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검이 하늘을 가리며 떨어져 내렸다.
조표는 감히 그것에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거리를 벌렸다.
콰아아아아앙! 검이 닿는 범위에 있던 궁궐 하나가 무너졌다.
유종학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가공할 위력의 일검(一劍)이구나. 남궁 가주에게도 밀리지 않겠어.’
스윽. 고개를 돌린 운휘가 조표를 응시했다.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군. 이번에는 어림없다.”
조표의 마음속에서 여유가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던 조표가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나는 살아남을 거다. 살아남아서 지월 님이 만드신 세상을 봐야만 해! 너 같은 애송이에게 죽을 수는 없단 말이다!”
조표는 자신이 가진 최강의 절기, 비뢰만참(飛雷萬斬)으로 도를 휘둘렀다. 도강이 바닥을 가르며 매서운 기세로 날아들었다.
콰아앙! 그러나 조표의 도강은 명왕에 의해 가로막혔다.
운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조표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아. 내가 막을 거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을 거야! 그러니 너는 이만 지옥으로 꺼져 버려!”
운휘의 검이 조표의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조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한 줌의 핏물로 변했다.
조표를 처리한 운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비술, ‘금강명왕’을 해제했다.
“헉. 허억.”
금강명왕을 터득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것을 자유롭게 다루기까지는 수련이 더 필요할 듯했다.
“아이고. 온몸의 뼈가 아주 비명을 지르네.”
바닥에 드러누운 운휘에게, 유종학이 다가왔다.
“너희 화산의 제자들은 항상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그렇죠? 하하.”
운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유종학은 운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아직 싸워야 할 상대가 저리 많구나.”
눈을 돌려 괴물들을 쳐다본 운휘가 한숨을 내쉬며 손을 잡았다.
“싸울 수 있겠느냐?”
유종학의 물음에, 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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