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황성 전투(4)
황성. 양심전(養心殿).
복마십군의 일원인 권군(拳君), 엄호성(嚴豪晟)은 도망치는 황실 일가를 붙잡고 그들을 한 명씩 패 죽이고 있었다.
“언젠가 너희 황가(皇家) 놈들을 내 손으로 죽여 보고 싶었지. 항상 남들 위에 군림하며 오만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너희들이 죽을 때도 그 잘난 품위를 지킬지 궁금했거든. 그런데 보통 인간들과 별반 다를 게 없군.”
엄호성의 눈은 광기에 젖어 번들거렸다.
그는 복마십군 중에서도 가장 살인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퍼억! 나름 무예를 익힌 친왕(親王) 한 명이 그의 주먹을 막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버렸다.
“자, 다음은 누굴 죽일까?”
피에 젖은 주먹을 들며 다가오는 엄호성은 마치 악귀와 같았다.
누군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사, 살려 다오! 목숨만 살려 준다면 벼슬과 금은보화를 내리겠다!”
직후,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말한 사내의 머리가 사라졌다.
주먹을 내린 엄호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벼슬? 그딴 건 필요 없어. 이 세상은 어차피 곧 지월 님의 것이 된다.”
남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바로 그때, 자색 장포를 펄럭이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곰방대를 손에 든 채 여유롭게 걸어오는 그는 바로 독왕, 당지황이었다.
“내 상대는 저 근육 덩어리인 건가. 흐음……. 뭐, 저런 것도 가지고 노는 재미가 있긴 하지.”
엄호성은 잠시 그를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잠시 기다려. 한창 유희를 즐기고 있는 중이니까. 너는 이놈들을 전부 죽인 다음에 상대해 줄게.”
당지황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아. 나는 기다리는 걸 딱 질색하는 사람이라 그건 곤란하네. 유희를 원한다면 나와 더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 될 것 아닌가.”
“그게 뭐지?”
당지황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간단하네. 자네가 내 독공을 상대로 얼마나 버티는가. 그것일세. 마침 새로운 독을 개발하던 참이었거든. 그걸 실험해 보려고 하는데……. 어떤가?”
엄호성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도저히 정파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친 자로군.”
직후, 엄호성이 주먹을 뻗으며 묵직한 권강(拳罡)을 날렸다.
당지황은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권강을 피했다.
콰아아아앙! 날아간 권강은 뒤편에 있던 양심전을 무너뜨렸다.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네. 그럼, 놀이를 시작해 볼까?”
당지황은 공중에 뜬 상태로 천령독의 절기, ‘독룡(毒龍)’을 펼쳤다.
맹독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이 손끝에서 튀어 나가 엄호성을 덮쳤다.
푸확! 독룡은 엄호성에게 적중했다. 그러나 엄호성은 의복이 녹아내렸을 뿐, 멀쩡했다.
바닥에 착지한 당지황이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다.
“호신강기도 없이 맹독을 뒤집어썼는데도 멀쩡하다니! 이거 흥미롭군.”
엄호성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내가 지월 님에게 받은 권능. ‘교만(驕慢)의 권능’이다. 상대의 능력에 따라 신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지. 적이 강기를 사용한다면 내 몸은 금강불괴로 변하고, 지금처럼 독을 사용한다면 만독불침의 신체로 변한다.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다.”
당지황은 나직이 감탄하며 엄호성을 응시했다.
“그거 굉장한 능력이군. 아주 놀라워. 자네의 시체, 꼭 가져가고 싶군. 가져가서 하나하나 뜯어보고 싶어. 물론 그 전에 자네를 죽여야겠지.”
당지황은 최강의 독술이라 불리는 만령독(萬靈毒)을 꺼내 들었다.
당지황이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자, 독기로 이루어진 수천 자루의 창이 생성되어 엄호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만령독의 절기, ‘독뢰만참화(毒雷萬斬花)’였다.
엄호성은 양팔을 교차해 떨어지는 독창을 막아 냈다.
쾅! 쾅쾅쾅! 독창이 전부 떨어지자 엄호성은 팔을 내리며 웃었다.
“더 강한 독은 없나? 독왕이라는 이름이 울겠구나. 하하하!”
당지황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흐음. 만령독도 통하지 않는 건가. 역시 ‘그걸’ 사용해야겠어.”
쇄애액!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온 엄호성이 당지황에게 권격을 날렸다.
“죽어라, 당지황!”
쩌억! 당지황은 왼쪽 어깨로 엄호성의 주먹을 받아 냈다. 그의 어깨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그는 수도(手刀)를 세워 엄호성의 복부를 찔렀다. 엄호성은 낄낄 웃으며 조롱하듯 말했다.
“마지막 발악인가? 네놈의 독은 나에게 통하지…….”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어, 어라? 내가 왜 이러는 거지?”
당황한 엄호성에게, 당지황이 말했다.
“만 가지의 독이 침범하지 못하는 신체라면, 만 한 번째 독을 만들면 될 일 아닌가. 간단한 해법이지. 방금의 독은 내가 새롭게 개발한 독일세.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았는데, ‘마황독(魔惶毒)’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겠군.”
엄호성은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내 그의 피부가 갈라지며 그 사이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끄윽. 끄어어어…….”
당지황은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 시체는 내가 본가로 가져가서 활용하도록 하지. 잘 가시게.”
엄호성은 이내 온몸이 썩어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죽었다.
당지황은 욱신거리는 왼팔을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괴물들을 본 그가 폭소를 터뜨렸다.
“좋다, 좋다! 오늘은 흥미로운 실험체를 많이 얻을 수 있겠어!”
그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괴물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경인궁(景仁宮) 앞을 지나가던 남궁천의 앞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남량과 똑같은 백발에, 키가 크고 붉은 비단옷을 걸친 중년 사내였다.
걸음을 멈춘 남궁천이 사내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쩐지 이 근방에서 강한 기가 느껴진다 했더니……. 네놈이었군. 맹건(猛乾).”
맹건이라 불린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남궁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하제일의 검객이여.”
맹건. 복마십군의 ‘삼강(三强)’ 중 한 명이자 최강의 십군.
번개를 다루는 무공 덕분에 뇌군(雷君)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지월 님에게 가시는 겁니까? 그럼 저를 넘어서야 할 겁니다.”
스릉. 검을 뽑아 든 남궁천이 씨익 웃었다.
“좋다. 그럼 어디 한바탕 싸워 보자.”
콰르릉! 맹건이 손을 뻗자, 굉음과 함께 남궁천이 있는 자리로 한 줄기 낙뢰(落雷)가 떨어졌다.
남궁천은 즉시 경공술을 펼치며 번개를 피했다.
맹건이 공중에 손을 휘젓자, 번개의 구(球)가 생성되어 쏘아졌다.
남궁천은 참격을 날려 번개의 구를 요격했다.
스륵. 검을 내린 남궁천이 말했다.
“인사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시간이 없으니 처음부터 전력으로 하세.”
“바라던 바입니다.”
맹건의 전신에서 눈부신 섬광이 뿜어져 나와 주변을 밝혔다.
섬광이 사라지자, 그곳에는 온몸이 번개로 뒤덮인 맹건이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뇌왕체(雷王體). 맹건이 가진 최강의 비기였다.
“이것이 제가 가진 전력입니다.”
맹건이 입을 벌리자, 엄청난 위력의 전격(電擊)이 방출되었다.
남궁천은 번개가 닿는 범위 밖으로 물러났다.
파직! 다음 순간, 맹건이 남궁천의 등 뒤로 이동했다.
뇌왕체가 된 상태에서는, 움직임이 번개의 속도와 맞먹었다.
쩌엉! 맹건이 휘두른 주먹이 남궁천의 어깨를 강타했다.
뇌속(雷速)으로 후려친 주먹은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으음.”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선 남궁천에게, 맹건이 말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가진 전력을 꺼내 보시지요.”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남궁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창궁무애검 오의-. 천뢰제왕검형(天牢帝王劍形).”
스륵. 남궁천의 검신을 타고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맹건이 물었다.
“그게 당신의 전력입니까?”
“실망한 표정이군. 거창한 이름치고는 초라해 보여서 그런가?”
처억. 검을 수직으로 치켜든 남궁천이 말했다.
“천뢰제왕검형에는 총 3가지의 형태가 있다. 지금부터 하나씩 보여 주지. 모든 형태를 보기 전에 네놈은 죽게 될 것이다.”
“……!”
“먼저 제1검. 제왕검파(帝王劍派).”
남궁천이 검을 내리치자, 아무것도 없는 곳에 거대한 기(氣)가 모여서 그대로 방출되었다.
쩌어어엉! 백색의 섬광이 날아오자, 맹건은 즉시 뇌전의 장벽을 생성해 공격을 막아 내려 했다.
콰아아아앙! 두 기운이 충돌하며 엄청난 양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충격을 받고 바닥으로 추락한 맹건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으윽. 이런 위력이라니…….”
그가 생성해 낸 장벽은 허무하게 박살 났다. 뿐만 아니라 남궁천의 일검은 그의 팔과 어깨 등에도 제법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저 가볍게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맹건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남궁천이 서 있었다.
그는 다시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1검은 잘 막아 냈군. 이제 2검을 막을 차례다.”
우우우웅!
또다시 거대한 기가 한데 모이며 검신이 진동했다.
허나 이전과 다르게 방출되지 않고 칼날에 집중되었다.
“제2검. 제왕검참(帝王劍斬).”
남궁천이 천천히 검을 내리그었다. 그 순간, 맹건은 하늘이 둘로 갈라지는 듯한 환상을 목격했다.
맹건이 쌍장(雙掌)을 뻗자, 번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조(怪鳥)가 뻗어 나왔다.
맹건의 무공인 뇌전마공(雷電魔功)의 절기, ‘천뢰괴조(天牢怪鳥)’였다.
남궁천의 일검과, 맹건의 절기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직후, 괴조의 몸이 둘로 쪼개지며 맹건의 가슴팍에 긴 혈선이 생겼다.
푸화학! 이내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크악!”
맹건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동시에 뇌왕체가 풀려 버렸다.
그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생각했다.
‘격이 다르다. 이것이 천하제일검이라 불린 자의 전력이란 말인가!’
남궁천은 쓰러진 맹건을 바라보다 검을 내렸다.
‘예상했던 대로 3검을 쓸 일은 없겠군.’
그때, 죽어 가는 맹건이 몸에 번개를 두른 채 남궁천에게 달려들었다.
‘내 목숨을 바친 마지막 일격이다. 함께 죽자, 남궁천!’
마교의 간부 중 최강의 실력을 가진 자가 필사(必死)의 각오로 펼치는 일격이다.
남궁천은 하는 수 없이 마지막 3검을 꺼내 들었다.
검을 치켜든 남궁천이 나지막이 외쳤다.
“제3검. 제왕강림(帝王降臨).”
쿠구구구구구-.
그가 검을 내리긋자,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순수한 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검의 형상이었다.
달려들던 맹건은, 둘로 쪼개지며 허무하게 추락했다.
“오랜만에 힘을 과하게 썼더니, 조금 힘들군.”
후웅. 제왕검형을 푼 남궁천이 기를 갈무리하며 고개를 돌렸다.
지상에 떨어진 마도세계의 악마들을 발견한 그는, 굳은 표정으로 황궁 쪽을 응시했다.
“반드시 이기게. 남량 도장. 아니……. 남북 십성의 검황이여.”
그는 괴물들을 막기 위해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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