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57화 (157/164)

<157화>

황성 전투(7)

무림인들이 마도세계의 악마들을 상대로 전투를 시작했을 무렵.

남량 또한, 연회장 안에서 지월과 마주선 채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월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교의 숙적(宿敵)이여. 효초아와 탄영을 쓰러뜨리고 여기까지 올 줄이야. 정말 대단하구나.”

말하는 그의 모습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눈은 흰자위가 검게 뒤덮였고, 피부는 마치 시체처럼 창백했다.

등 뒤로 거대한 사기(死氣)가 일렁거리며 날개의 형상을 만들었다.

남량은 지월이 이미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음을 깨달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남량의 물음에 지월이 양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진화다. 나는 마도세계의 문을 열며, 또 다른 세계의 존재와 일종의 거래를 했지. 이승과 저승을 잇는 문을 만들어 준 대신, 악마의 힘을 건네받기로. 물론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해 죽을 뻔했지만, 결국 이렇게 살아남아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 나는 이 세계의 왕이자 신(神)이 될 것이다. 유일무이한 신이.”

남량은 그런 지월을 말없이 노려보며 생각했다.

‘미친 건가. 아니면 이게 너의 본모습이었던 것이냐? 지월.’

스릉. 남량은 화양검을 뽑아 들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그만 결착을 짓자.”

콰아앙! 검은 섬광과 기파가 터지며 남량은 수라의 모습으로 변했다. 화륵! 화양검의 날을 타고 자색의 화염이 피어올랐다. 지월이 말했다.

“수라의 심장. 그리고 자하신공. 화경을 넘어서 현경의 경지에 올랐군. 강한 기운이야. 자, 어서 오너라. 네가 가진 그 힘을 모조리 쏟아부어라. 그리고 압도적인 절망을 안겨 주마.”

푸확-! 지월의 전신에서 시커먼 기운이 안개처럼 터져 나왔다.

남량은 바닥을 박차고 쇄도하며, 지월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자하신공. 참천(斬天).”

남량이 자하신공의 절기를 펼친 것과 동시에, 지월이 손을 뻗으며 검은 기운을 내쏘았다.

콰아아아앙! 두 기운이 허공에서 출동하며 충격파가 터졌다.

지월이 허공에 손을 휘젓자, 시커먼 안개가 파도처럼 남량을 덮쳐 왔다.

“자하신공. 섬월(纖月).”

남량이 천천히 검을 내리긋자, 싸늘한 월광(月光)이 뿜어져 나와 공격을 막아 냈다.

지월은 진심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온 힘을 다해 끝까지 저항해라. 남량. 그리고 절망에 차 부르짖어라. 무력한 자신을 탓하며 눈앞에서 소중한 동료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남량은 매화천수검의 1초식, 낙영용섬으로 검을 휘둘렀다.

지월은 어둠의 장막을 생성해 남량의 검격을 막아 냈다.

남량은 초식을 변형해 매화천수검의 7초식, 유성초월을 펼쳤다.

콰드드드드득! 자색 화염을 휘감은 검강의 소용돌이가 지월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한 지월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초조해 보이는군. 남량. 동료들이 신경 쓰이는 건가?”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월은 눈을 감고 말했다.

“네 동료들은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구나.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복마십군을 상대하느라 기력을 거의 소진했을 테니. 그 몸으로 마도세계의 악마들을 상대하는 건 상당히 힘들 것이야. 동료들을 구하려면 서둘러야 할 거다.”

남량은 검으로 허공에 원을 그리며 매화천수검의 9초식, 천류신화를 펼쳤다.

자색의 검강이 이내 수천 송이의 매화 꽃잎으로 분해되어 지월을 포위했다.

“베어라.”

남량이 검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꽃잎의 파도가 지월을 덮쳤다.

다음 순간, 지월의 주변으로 검은 장막이 생성되어 그를 보호했다.

“이번에는 내가 반격할 차례다.”

지월이 쌍장(雙掌)을 내밀자,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흑광(黑光)이 쏘아졌다.

남량은 즉시 천양신경의 사자금강 능력을 사용해 지월의 공격을 막아 냈다.

바로 그때, 남량의 발밑에서 검은 창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피할 틈도 없었다.

푸욱! 창이 복부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남량은 나직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다친 부위는 수라의 재생력 덕분에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이걸로는 부족한가?”

지월이 발을 들어 지면을 찍었다. 그러자 수천 자루의 창이 남량의 발밑에서 솟았다.

그 순간, 남량은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지월이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건 설마 매화검선의…….”

그렇다. 남량은 꾸준한 수련 끝에 월인비의 최종 경지인 비행을 습득한 것이다.

지월은 폭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새 더 성장했다는 건가? 정말 놀라운 자로군. 남량.”

지월은 남량을 향해 손을 뻗으며 검지를 위에서 아래로 까딱였다.

직후,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며 남량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가 추락한 곳의 지반이 무너지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크윽!”

남량은 이 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북명마공(北冥魔功). 지월이 가진 본래의 힘이자 중력을 조종하는 무공이었다.

‘더 강해졌군. 그새 경지가 오른 것인가.’

이 힘을 상쇄하려면 더 강한 기운이 필요했다. 남량은 자하신공을 극성까지 끌어올렸다.

화르르르륵! 불길이 거세지며 몸에 가해지는 압력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남량은 천천히 구덩이 위로 걸어 올라왔다. 지월이 나직이 감탄했다.

“너를 보면, 마치 하늘이 나를 막기 위해 준비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알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정답이다.”

남량이 검을 휘두르자 검강이 수천 조각으로 분해되어 공중에 흩날렸다.

지월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전과 같은 기술인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두 눈 제대로 뜨고 봐라. 정말 이전과 같은 기술인지.”

지월은 흠칫 놀랐다. 검강의 조각이 어느새 검의 형상이 되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매화천수검의 비기(祕技)인 연화세계가 발현된 것이다.

“이대로 소멸해라. 지월.”

콰콰콰콰콰콰콱! 수천 자루의 검이 폭풍 같은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지월은 북명마공의 힘과 악마의 힘을 사용해 공격을 쳐 내며 소리쳤다.

“이걸로 나를 쓰러뜨리겠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쾅! 콰아아앙! 두 힘이 충돌하며 그 여파로 황궁이 무너져 내렸다.

콰르릉! 콰릉! 밤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번개가 내리쳤다.

쩌엉! 중력파를 쏘아 남량을 날려 보낸 지월이 크게 외쳤다.

“보이느냐? 참으로 멋진 광경이구나. 세상의 종말에 어울리는 그런 광경이야.”

바닥에 처박힌 남량이 피를 흘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월의 힘은 너무나도 막강하다. 자하신공을 극성까지 끌어올려도 도저히 이길 수 없어.’

이대로 복수를 마치지도 못하고 끝나는 것인가.

염라는 오직 자신만이 세상을 구할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다.

모든 걸 포기한 채 죽으면, 그 희망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세상은 지월의 손안에 넘어가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파멸하리라.

‘그렇게 두지 않는다.’

남량은 이를 악물고 검을 들었다. 지월은 그런 남량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계를 실감했을 텐데 절망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군. 대체 무엇이 너를 그리 강하게 만드는 거냐.”

처억. 남량이 검을 수평으로 세우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은 단지 복수의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변했어.”

남량은 긴 숨을 내쉬며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그래. 내가 우주검을 완벽히 깨닫지 못한 건, 지월에게 패배해 소중한 사람들을, 동료들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것을 벗어던지는 순간이, 우주검을 완벽하게 터득하는 순간이다.’

그가 검을 휘두른 직후, 지월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으, 으윽?”

지월의 상체가 비스듬히 잘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평범한 참격 따위에 내가 베일 리가 없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직후, 지월은 보았다. 그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곳의 ‘공간’이 일렁거리는 모습을.

‘설마, 공간을 벤 것인가.’

악마의 힘을 받아 인간을 초월했다고 해도, 공간을 베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월은 허탈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응시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마도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는데…….’

지월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량에게 말했다.

“너를 인정하지. 하지만 마도세계의 문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승리다. 남량.”

남량은 잠시 그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지월. 나 위광이다.”

지월의 표정이 일순 멍해졌다. 남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놀랐나?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지월은 위광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떠올리며 눈을 부릅떴다.

그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위광…….”

남량은 그에게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정말 세상을 파멸시키고 마도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나?”

잠시 침묵하던 지월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난 평생 이 세상을 원망했어…….”

남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와 함께하며 네 마음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네가 날 죽이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군.”

“하하.”

지월이 힘없이 웃어 보였다.

파스스-. 그의 몸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악마에게 힘을 얻은 부작용일까?

남량은 그가 사라지기 전, 다급히 물었다.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어. 마도세계의 문을 닫는 방법을 말해라. 어서!”

지월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닫는 법은 몰라. 다만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건…….”

남량에게 무언가를 전한 지월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러했다.

-안쪽에서 강렬한 기의 폭발을 일으키면 될 거야.

고개를 든 남량이 복잡한 표정으로 마도세계의 문을 응시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수라가 말을 걸어왔다.

-정말 그 방법을 쓸 거냐, 인간? 그럼 너는 죽게 된다.

“…….”

남량은 고개를 돌려 동료들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나직이 말했다.

“이미 내 복수는 모두 이뤄졌어. 지금 마음속에 남은 건 약간의 아쉬움뿐이야. 나, 위광. 마지막까지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

남량은 기합을 지르며 단전에 힘을 주었다.

“크아악!”

이내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황금빛의 작은 구슬이었다.

응룡의 여의주. 그가 지하미궁에서 찾아낸 기물이었다.

“응룡의 여의주는 강대한 힘을 품고 있으니, 이걸 부숴 버리면 마도세계의 문을 닫을 수 있겠지.”

여의주를 들고 몸을 날리려던 남량이 문득 실소했다.

천마 위광이 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뭐…….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군.’

남량은 바닥을 박차고 위로 솟아올랐다.

악마들을 상대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던 찬야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 외쳤다.

“남 사제?”

“남 사제라고? 어디?”

유라와 운휘, 위지혁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멍하니 남량을 응시했다.

남량은 속으로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한 뒤, 마도세계로 들어왔다.

그곳은 오직 어둠만이 가득했다. 남량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밀려오는 악마들을 발견했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남량은 여의주를 허공에 던진 다음,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여의주가 부서지며 거대한 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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