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21화
제6장. 훈련 준비(6)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는 민혜정.
그녀의 동공은 벌써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와 다르게 필두의 시선은 담담했다.
실제로 상식 밖의 힘을 사용하는, 게다가 그 힘이 흑마술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필두가 영화에 공포를 느낄 만한 요소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귀신이 등장할 때마다 하품이 나오는 걸 억제하느라 고생이었다.
반면.
“꺄아아아악!”
스크린 전면에 귀신의 얼굴이 등장함과 동시에 민혜정의 입에서도 비명이 튀어나왔다.
관객들의 숫자가 적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만석이었다면 혜정에게 눈치를 주는 시선들이 다수 쏟아졌을 게 분명했다.
혜정도 자신이 민폐를 끼쳤음을 깨달은 모양인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모습에 필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무서우신가 보군요.”
“그, 그렇지는…….”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말과 언행이 너무나도 달랐다.
언제 또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맹수 앞에 덜덜 떠는 작은 소동물과도 같았다.
당사자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그녀의 모습에 귀여움마저 느껴졌다.
물론 혜정은 일부러 자신의 연약함 어필과 남자에게 보호본능을 자극하기 위해 겁먹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무서워서 보여주는 반응이었다.
그건 필두도 잘 안다.
그렇다고 여기서 마땅히 그녀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필두였으나, 의외로 할 일이 생기게 되었다.
“피, 필두 씨.”
“예.”
“저기…… 소, 손잡아도 되나요?”
갑작스럽게 손잡기를 제안해 오는 혜정이었다.
그녀의 적극적인 스킨십 요구가 당돌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필두는 이 스킨십이 애정이 담긴 스킨십이 아닌 조금이라도 공포라는 감정을 없애기 위해 시도하려는 행동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땅히 거절할 이유도 없다.
“네, 괜찮습니다.”
필두가 먼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아줬다.
필두의 오른손과 혜정의 왼손이 서로 마주잡았다.
‘손이 상당히 작군.’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의 손은 대게 남자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필두와 혜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군인이라 그런지 노가다로 단련된 투박한 필두의 손이라 그런지 더더욱 그녀의 고운 손에 비교되었다.
고생이라는 걸 모르고 자라온 그녀다웠다.
그나마 필두가 손을 잡아준 덕분에 많이 진정이 된 혜정이었으나…….
“……!”
몸을 움찔움찔 거리는 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비명을 질러대는 수준까지는 안 가게 되었으니, 필두의 손잡아주기가 나름 크게 효과를 보긴 했다.
* * *
그렇게 혜정에게 있어서 지옥과도 같았던 공포영화 관람이 끝났을 때.
이미 해는 저물어 저녁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표정으로 영화관에서 나온 필두.
그러나 혜정은 거의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본 공포영화, 다크 포레스트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역대 급으로 무섭다는 평이 자자한 공포영화였다. 겁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다크 포레스트 앞에서는 치를 떨 정도라고 하던데, 그럼에도 필두는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피, 필두 씨는…… 평상시에도 공포영화 잘 보시나 봐요……?”
그런 필두가 신기하게 느껴진 모양인지 혜정이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해 직접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필두가 속으로 헛웃음을 머금었다.
흑마술사가 공포영화를 보고 겁에 질린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전 흑마술사이기 때문에 공포영화 같은 건 오락에 불과합니다.’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예. 원래 공포영화를 자주 접한지라 적응이 되어서 별로 놀라거나 하진 않습니다.”
“우와…… 그건 좀 부러워요.”
“뭣하면 혜정 씨도 평상시에 자주 공포영화를 접해서 단련하시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만.”
“괘, 괜찮아요! 굳이 그런 욕심까진 없어요.”
질색을 하며 거절하는 혜정이었다.
필두는 그녀의 아버지가 특정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초자연현상이라든지 이런 점에 대해선 나름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실제로 레디너스 대륙에서도 성직자들은 필두와 마찬가지로 초자연현상을 너무나도 많이 경험하고 다녔다.
아마 그들을 데려다 놓고 공포영화를 억지로 관람시킨다면, 아마 필두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럴 때에는 신성력을 쓰라고!’라는 말을 외치면서 귀신 퇴치 방법을 일일이 나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하튼 혜정이 그토록 무서워하던 공포영화 관람도 끝났으니. 이제 슬슬 저녁 식사를 하러 갈 시간이 다가왔다.
“밥이라도 먹으러 갈까요.”
“아, 네!”
계속 겁에 질려 있던 탓에 기력이 쭉 빠진 모양인지 오늘따라 유독 많은 허기가 그녀를 덮쳐왔다.
밥이라도 먹고 원기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에 필두의 제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혜정.
점심만 먹고 헤어지려 했던 필두였지만, 졸지에 오늘의 약속이 저녁 식사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대로 공포영화만 보고, 제 갈 길 가게끔 놔두게 하면 찝찝한 이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공포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던 사람은 다름이 아닌 필두였다. 한창 겁에 질렸던 그녀를 위해서라도 저녁까지 대접하는 것이 매너 아닌 매너다.
영화관 근처 고기 집으로 향하게 된 두 사람.
가게 안으로 들어선 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 혹시 행보관님 아니십니까?”
갑자기 필두에게 말을 걸어오는 한 남자.
사복을 입고 있던 탓에 첫눈에 누구인지 잘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머지않아 같은 부대에 근무하는 구진정 중사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참고로 구진정은 제1포대에서 통신반장의 직위를 담당한다.
“구진정. 네가 여기엔 무슨 일이냐.”
“애들이랑 같이 밥이라도 먹을 겸해서 외출 나왔습니다.”
구진정이 손으로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하나포반장을 비롯해서 부사관 포반장들이 자리에서 일어서 필두에게 거수경례를 해오고 있었다.
“충성!”
“어, 그래. 충성.”
민간 사회에 나와서 받는 거수경례는 뭔가 오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한편, 구진정의 시선이 필두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젊은 여성에게로 향했다.
“그보다 행보관님. 옆에 계신 여성분은…….”
목사의 딸임에도 혜정을 몰라보는 구진정이었다.
하기야. 혜정은 저번 주부터 아버지를 따라 군부대를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목사에게 다 큰딸이 있다는 건 간부들 역시 말을 통해서 많이 접해왔긴 했지만, 실제로 그 딸의 정체를 본 건 아직 많지 않았다.
필두야 저번에 직접 교회로 내려갔기 때문에 혜정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타이밍이 좋았던 것이다.
하나 다른 간부들은 교회로 저번 주에 교회로 내려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혜정이 부대 목사의 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목사님 따님이시다.”
“목사님 딸? 행보관님 혹시 다른 쪽 교회도 다니시는 겁니까?”
“아니. 우리 부대 목사님 딸이라는 소리다.”
“자, 잘못 들었습니다?”
구진정이 순간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그러자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절로 이들에게 향했다.
“밥 먹는 데 시끄럽게 하지 마라, 통신반장.”
“중사 구진정! 죄송합니다, 행보관님.”
“됐다. 그보다…….”
필두가 슬쩍 혜정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의 눈빛에 담겨진 뜻을 확인한 혜정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구진정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민혜정이라고 해요. 아까 필두 씨가 말씀하신 그대로 9090대대 목사님으로 계신 아버지의 딸이에요.”
“아, 안녕하십니까. 제1포대 통신반장, 구진정 중사입니다.”
어색한 인사가 오고 가는 동안에도 구진정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행보관과 목사의 딸이 왜 둘이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단 말인가.
“혹시 행보관님. 혜정 씨와는 어떤 관계인지…….”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 오늘 선 보러 왔는데 마침 혜정 씨가 나온 것뿐이야.”
“세상에. 대한민국 땅 참 좁지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그보다 부대에 너무 소문내고 다니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식사 잘하고.”
“네, 충성!”
“충성.”
통신반장을 다시 일행들에게 돌려보낸 필두.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다른 부사관들이 구진정을 향해 온갖 질문 폭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모습을 지그시 응시하던 필두가 잠시 관자놀이를 눌렀다.
들키고 싶지 않은 장면을 들키게 되었다.
괜히 부대에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지게 된다면, 혜정에게도 오히려 민폐를 끼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혜정 씨. 설마 이곳에서 부하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 괜찮아요. 오히려 더 좋은 걸요. 군부대에 일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잖아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다행이군요.”
바깥에서 군인을 만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 보였다.
인터넷을 보면 군복 입은 남자만 보면 절로 피하는 젊은 여성들의 실태도 간혹 목격되는 때가 있다. 그러나 혜정은 딱히 그런 부류에 속하는 여성은 아닌 듯했다.
애초에 군부대와 가깝게 지내온 목사의 딸이기도 해서 그런 걸까. 군인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없어 보였다.
필두의 입장에선 그나마 다행이라 볼 수 있었다.
* * *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차를 통해 혜정의 집 앞까지 바래다준 필두가 문을 열고 내리는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조심해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네. 아, 그리고 혹시 내일 종교 행사도 오시나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내일은 일요일. 오전에 종교 행사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 말인즉슨.
혜정도 내일,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9090대대로 올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아마도 그럴 거 같습니다만.”
어차피 내일 부대로 주말 출근을 할 생각이 있었던 필두. 할 것도 마땅히 없으니 종교 행사라도 직접 참가할까 했었다.
“잘 됐네요! 그럼 내일 또 뵐 수 있는 거죠?”
잔뜩 기대에 찬 눈빛을 하는 혜정에게 ‘아니오’라는 대답을 들려주기도 어려웠다.
“네, 그럴 거 같군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본래는 불교라든지 천주교 등 다른 행사에도 한 번씩 참가할 의도가 있었던 필두였지만, 당분간은 혜정 때문이라도 기독교 행사에 참가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차를 끌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한 필두의 입에선 절로 가벼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왜 거절하지 못한 거냐. 나란 놈은.”
과거의 드리무어였다면 단칼에 거절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드리무어가 아닌 강필두의 삶을 사는 중이다.
숫기없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남자의 인생은 여전히 드리무어와 잘 맞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