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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43화 (43/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43화

제11장. 짧은 휴식(1)

포대전술이라는 나름 크나큰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제1포대.

인명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기도 하지만, 거기에 더해 연대장으로부터 훈련 내용을 극찬받았다는 점 때문에 한껏 이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대대장도 간부들을 소집해 회의할 때마다 제1포대가 최고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포대장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오늘도 대대장님께서 우리 포대를 얼마나 칭찬하시던지…… 다른 포대한테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대대장님께서 그렇게 기뻐해 주시니.”

포대장실에 초청받게 된 필두가 따스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포대장의 자랑에 맞장구를 쳐줬다.

이 이야기만 벌써 30분째 반복 중이다.

그래도 자랑은 어지간히 하고 싶은 모양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포대전술훈련 내용만 계속해서 읊조리고 있었다.

필두가 다 아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포대장이 필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게 다 행보관님 덕분입니다.”

“저 말입니까?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하! 너무 그렇게 겸손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은 삼포반장한테서 들었습니다. 대항군 잡는데 행보관님께서 위치를 다 알려주셨다고요.”

“…….”

삼포반장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건만, 결국 그 이야기가 바깥으로 새어나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큰일까진 아니었다.

“이거 참…… 삼포반장한테는 비밀이라고 했었는데, 결국 말해버리고 말았군요.”

“혹시 연대에 아시는 분이라도 계십니까?”

“아니요. 딱히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대항군들의 위치를 그렇게 정확히 알고 계셨던 겁니까? 저는 철석같이 행보관님께서 뭔가 수를 쓴 거로 생각했습니다만…….”

“다 방법이 있지요.”

마법을 사용해서 대항군의 위치를 알아냈다고 말해봤자 포대장이 알아주기나 할까?

천만에. 오히려 필두를 망상병 환자 취급할 게 뻔하다.

게다가 구태여 포대장에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본래 호랑이는 평상시 발톱을 숨긴 채 지내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강자일수록 자신의 강함을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된다.

지나친 자만심이 나중에 큰 화를 불러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삼포반장에게 신신당부를 했던 거였지만, 결과는 아쉬운 방향으로 도출되었다.

그래도 딱히 삼포반장을 불러 언질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본래 군대라는 곳이 바깥세상과 단절된 곳 아니겠는가. 작은 소문 하나가 순식간에 퍼지고도 남을 만한 환경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대장이 좀 더 자신을 의지하는 듯한 낌새를 보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된 거 아니겠는가.

이미 포대장은 필두의 말이라면 100% 신뢰를 할 정도였다.

그만큼 필두가 제1포대를 위해 한 일이 많다.

“나중에 제가 거하게 한턱 쏘겠습니다!”

“말이라도 감사드립니다, 포대장님.”

“말뿐이 아닙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들었습니다.”

“또 저에 대한 소문입니까?”

“소문이라고 해야 좋을지…… 목사님의 따님분하고 소개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

구태여 포대장에겐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었다.

딱히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 아직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목사님하고 따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민혜정 양입니다.”

“혜정 씨하고 같이 식사라도 하죠. 안 그래도 대대장님도 행보관님과 혜정 씨, 두 분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싶어하는 눈치더라고요.”

“벌써 소문이 대대장님한테 퍼졌나 보군요.”

필두가 눈을 흘기자, 포대장이 결사코 자신은 아니라는 식으로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저도 대대장님에게 들어서 알게 된 겁니다! 아무래도 목사님께서 직접 대대장님께 말씀드린 거 같습니다만…….”

포대장의 말을 듣는 순간, 이 모든 정황이 이해가 된 필두였다.

‘목사가? 과연…… 그렇군. 나와 민혜정이 사귀게끔 일부러 환경을 구축해나가려고 하는 건가.’

목사는 필두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필두와 혜정이 교제를 전제로 서로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을 구태여 대대장에게까지 흘릴 필요가 있을까?

천만에. 이게 다 목적이 있어서일 게 분명하다.

여하튼 이로써 대대장까지 필두와 혜정과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적어도 대대 내에선 두 사람이 암묵적으로 연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사귀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아니지. 남녀 간의 관계는 어찌 될지 모르니까. 나도 장담하긴 힘들어.’

스스로 확신도 없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여자에 굶주린 것도 아니고, 대대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과 존재를 견고히 다져두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제1포대부터 장악을 해야 한다.

하나 이번 포대전술훈련을 통해 필두의 1차 목적이 거의 달성된 듯해 보였다.

포대장의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필두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느껴졌다.

“아무튼 행보관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따로 날짜를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포대장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할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날을 잡아봅시다.”

“고맙습니다, 행보관님!”

제 딴에는 필두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줄 알 것이다.

하나 필두는 내심 귀찮을 뿐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제아무리 군대라 하더라도 사회생활 요령이 필요한 법이니까.

* * *

토요일 오전.

병사들에게 있어서 꿀맛과도 같은 휴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토요일 당직사관이 강필두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 강필두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 이들이 있었다.

“…….”

“…….”

“…….”

바로 지휘통제실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필두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힌 3인방.

류태만과 한지철, 그리고 나전구였다.

이들을 직접 언급하며 행보관실로 호출한 필두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내가 왜 너희 불렀는지 잘 알겠지.”

“그, 그게…….”

“훈련 도중에 누가 스마트폰 사용하라고 했나.”

“……!”

순간 이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갔다.

그때는 잘 넘긴 줄 알았다. 하나 그건 이들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필두는 다 알고 있었다.

“스마트폰, 누구 거냐.”

“…….”

“…….”

“설마 아직도 발뺌할 생각을 하고 있진 않겠지?”

확신에 가득 찬 필두의 말이 크나큰 압박으로 다가온 걸까.

결국 가장 선임인 류태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제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언제 반입했나.”

“……병장 정기 휴가 때입니다!”

“가져와라.”

“예, 알겠습니다!”

쏜살같이 바깥으로 튀어 나간 류태만이 곧장 숨겨뒀던 스마트폰을 필두에게 건넸다.

스마트폰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필두가 혀를 찼다.

“심지어 최신 기종이군.”

“죄송합니다!”

“어디 보자. 영창은 몇 박 며칠로 보내줄까.”

“……!”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스마트폰을 반입했다가 걸렸는데, 영창을 안 가고 어떻게 버티겠는가.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행보관님!”

이들의 눈빛에 간절함이 깃들었다.

영창은 곧 군 생활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것이 이들의 마음속에 새롭게 싹튼 소망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너희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도록 하지.”

희망의 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곧장 필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이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시기 바랍니다!”

“오케이, 알았다. 그 말, 기억하고 있도록 하마.”

수거한 스마트폰을 서랍장에 넣어둔 필두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 스마트폰은 너 말년휴가 나갈 때 다시 돌려주마. 그리고 너희가 했던 그 말은 절대로 잊지 마라. 언젠가는 작정하고 너희를 써먹을 테가 있을 테니까. 그때가 기사회생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 알고 있어라.”

“네!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단발성이지만, 그래도 필두는 일시적으로 자신에게 강한 충성심을 지니게 된 세 명의 병사를 얻게 되었다.

이들을 어떻게 굴리느냐 역시도 앞으로의 군 생활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 * *

스마트폰 사건 탓에 필두의 표정은 계속해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덕분일까. 당직사병과 당직병이 잔뜩 긴장한 시선으로 필두를 힐긋 바라봤다.

병사들이 가장 싫어할 만한 것들을 조목조목 알고 있는 필두였기에 더더욱 그의 심기를 건드리게 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는 일을 하기라도 한다면, 그날 즉시 일광건조와 대청소, 2연타 콤보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큼은 당직들에게도 피하고 싶은 일이다.

하나 오늘의 강필두는 다른 쪽에 신경이 몰려 있었다.

“흠…….”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강필두.

얼마 전…… 아니, 바로 하루 전, 혜정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필두 씨! 훈련 수고 많으셨어요.

아빠한테 들었는데, 오늘 당직이시라면서요?

괜찮다면, 훈련도 끝났는데 병사분들한테 맛있는 것도 먹이고 싶고 해서 아빠랑 같이 막사 좀 잠시 들릴 예정이거든요. 그때 한번 뵙게 되면 좋겠어요.]

실제로 오늘, 목사와 혜정의 부대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종교행사로 지정된 날이 아님에도 병사들의 노고를 위로해 주기 위해 친히 부대에 방문하겠다고 하는 부녀의 의지에 필두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귀찮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게다가 부대 내에선 자꾸 자신과 혜정을 엮으려고 하는 것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혜정이 싫다는 것도 아니다. 그녀만 한 여자도 없다.

외모면 외모, 그리고 성격도 좋다.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모난 곳도 없기에 정말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게 된다면, 필두는 굳이 막아설 용의까진 없었다.

문제는 시기다.

필두는 지금 당장 여자가 필요치 않다. 우선은 자신의 본래 힘을 되찾는 데에 집중하고 싶고, 더욱이 연애라는 것 때문에 괜히 자신의 허점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여자란 존재가 반드시 남자에게 이로운 점만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여색에 빠지면, 자칫 잘못하다가 인생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두는 그러한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다. 여색에 빠진 국왕 덕분에 한 나라가 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여자에 빠져서 괜히 일을 그르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스스로 최면을 걸듯 혼잣말을 삼켰다.

* * *

“안녕하세요, 행보관님! 저희 왔습니다.”

“충성. 고생이 많으십니다, 목사님.”

거수경례와 함께 반갑게 목사 부녀를 맞이하는 필두.

그들의 양손에는 치킨과 피자, 족발, 보쌈 등 먹거리가 가득 들려져 있었다.

꽤 많아 보이는 양들이었다.

“당직. 뭐하냐.”

“네! 바로 나가겠습니다!”

필두의 한 마디에 당직들이 바로 쏜살같이 막사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동시에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치킨이라니!”

“어제 잠자다가 피자 꿈꿨는데, 진짜로 피자가 왔지 말입니다!”

놀라움을 표하는 당직병들.

이들이 이런 과한 오버액션을 펼치는 것도 한편으론 공감되기도 했다. 외부와 격리된 채 지내는 병사들인데, 좀처럼 치킨과 피자 같은 음식들을 접할 수가 없다.

외출, 외박, 혹은 휴가 등등. 이런 경우가 아니고선 먹기 힘든 음식들을 영접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쁠까.

하나 언제까지 그 기쁨을 표출하게끔 가만히 방치할 수는 없었다.

“후딱 안 도와드리고 뭐하냐.”

“예! 죄송합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살짝 성이 난 필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들의 움직임이 배속으로 빨라졌다.

먹거리들을 들고 각 생활관에 들어서는 이들. 그러자 막사 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치느님이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삼겹살 회식도 그렇고, 오늘 목사의 깜짝 방문도 그렇고.

포대전술훈련 이후 계속해서 기쁜 일만 연달아 발생하고 있었다.

한편, 음식 배달을 마친 목사와 혜정이 필두를 따라 행보관실 내부로 들어섰다.

“당직, 커피 세잔 타와라.”

“예, 알겠습니다!”

닭다리 하나를 뜯기 위해 입을 쩍 벌렸던 당직병이 필두의 요청을 듣자마자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먼 길, 고생해서 왔는데 커피 한 잔 대접하지 않으면 실례되는 행동 아니겠는가.

“여기 있습니다, 목사님.”

“잘 마시겠네.”

“고마워요.”

당직병으로부터 커피를 건네받은 목사와 혜정이 각각 고마움을 표출했다.

이들의 맞은편 소파에 자리 잡은 필두가 커피를 내려놓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허허, 천만에요. 그보다 소식 들었습니다. 훈련 잘 받아서 연대장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셨다고 하더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칭찬의 말이 계속 들려오는 건 기분이 좋은데, 이게 때로는 부담으로 작용할 때도 있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뭐든지 적당한 편이 좋다.

“그나저나 행보관님.”

“예.”

“다음 주에 시간 되십니까?”

“다음 주면…… 주말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안 그래도 딸아이가 행보관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아서요.”

슬그머니 눈치를 주는 목사.

그러자 여태껏 잠자코 있던 혜정이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감췄다.

이윽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토, 토요일에…… 만화 전시회 하는데…… 티켓이 두 장 생겼거든요. 그래서 혹시 괜찮으시다면 같이 갈 수 있을까 해서요…….”

용기 있는 그녀의 고백에 필두는 속으로 난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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