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52화 (52/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52화

제13장. 내무 부조리 척결(2)

1시간가량 이어지던 가혹행위의 끝을 알린 건 바로 후번초 근무자들의 발걸음 소리였다.

탄약고 초소 문을 거칠게 박차고 나온 문석도가 썩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후번초 근무자들을 노려봤다.

“시간 아까우니까 그냥 다 생략하고 들어가라.”

“예, 알겠습니다!”

후임에게는 한없이 강한 남자. 그가 바로 문석도 상병이었다.

그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전도혁이 짧게 혀를 찼다.

‘사회에 나가면 한 주먹거리도 안 될 녀석이 지랄 발광을 다 떠네.’

실제로 문석도는 그렇게까지 체격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전도혁에 비해서 덩치도 작고 힘도 약했다. 그럼에도 문석도가 이렇게 미친 망아지 마냥 날뛸 수 있는 건 바로 계급과 짬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전도혁도 차마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이대로 여기서 주먹을 휘두르면, 그대로 영창이기 때문이었다.

가혹행위도 큰 문제였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선임의 안면에 주먹을 날리는 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전도혁은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다. 그 잔머리 덕분에 군대 시스템을 단번에 이해하고, 관심병사로 등극을 해 아무런 간섭 없이 군 생활을 편하게 보내려 했었다.

문제는 악마가 되어 돌아온 행보관, 강필두 덕분에 그 계획이 전부 무산되었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여하튼 문석도와 함께 다시 행정반으로 복귀한 전도혁. 그는 지금 더할 나위 없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복귀 신고를 하기 위해 나란히 마주 선 두 사람을 바라보는 필두 때문이었다.

“충성! 문석도 외 한 명, 탄약고 초소 근무 복귀했습니다.”

“고생했다. 들어가서 쉬어라.”

“예, 충성!”

문석도가 먼저 총기보관함에 K-2를 넣고서 먼저 행정반을 나섰다.

총기현황판 수정을 위해 컴퓨터용 사인펜을 꺼내 드는 전도혁에게 필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도혁.”

“이, 일병 전도혁!”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피하고 싶었던 바로 그 순간. 근무 준비 태만으로 필두에게 강도 높은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도혁의 몸이 절로 떨려왔다.

문석도로부터 받은 가혹행위보다 필두에게 받는 벌이 더 무서웠다. 필두의 존재감은 전도혁에게 그만한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잠깐 따라와라.”

“자, 잘못 들었습니다?”

“귓구멍이 막혔냐. 따라오라면 따라올 것이지 뭘 잘못 들어.”

“…….”

무의미한 저항은 관두는 게 좋았다. 괜히 필두의 화만 끌어올리는 꼴이 되니까.

* * *

보통 야간 외곽 근무를 끝내고 돌아올 경우에는 라면 취식을 하거나 혹은 담배 한 대를 피우고서 자는 경우가 꽤 많은 편이었다.

특히나 오늘처럼 날이 추운 날에는 따스한 라면 생각이 절로 샘솟는 법이었다.

그러나 전도혁은 관물대에 고이 모셔놓은 라면을 영접하기도 전에 강필두라는 강력한 난관을 먼저 넘어서야 했다.

“…….”

잔뜩 긴장한 채 그의 뒤를 따르는 전도혁이 무의식적으로 필두의 눈치를 살폈다.

이윽고 병사들이 자주 애용하는 흡연실에 도달하자, 필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지 걷어봐라.”

“바지…… 말입니까?”

“그래.”

“…….”

갑자기 왜 바지를 걷어보라고 하는 걸까. 그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른 누구도 아닌 필두의 명령이었기에 말없이 전투복 하의를 걷어 올렸다.

차가운 겨울 날씨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맨살. 정강이 부근을 응시하던 필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문석도 녀석의 짓이냐.”

“설마…… 보고 계셨습니까?”

“물론.”

전도혁은 필두에게 가혹행위까지 말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필두는 문석도가 폭력이라는 가혹행위까지 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퍼렇게 올라온 멍 자국. 그것을 보던 필두가 혀를 여러 번 찼다.

“쯧쯧쯧. 눈에 확 티가 날 정도구먼.”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다.”

전도혁은 필두의 이 말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필두의 의도는 정반대였다. 그가 ‘안 괜찮다’라고 말한 건 조만간 사단에서 나올 내무 부조리 관련 조사 때문이었다.

생각을 해보라. 그곳에서 나온 간부가 전도혁의 정강이에 새파랗게 새겨진 멍 자국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대대 전체가 다 뒤집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분명 필두에게도 악영향이 가게 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너 말고 가혹행위 당하는 병사들, 몇이나 있었냐.”

“그건…….”

“근무 준비할 때 실책한 거, 눈감아줄 테니까 속일 생각은 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털어놔라.”

필두가 전도혁에게 일부러 실수를 저지르게끔 한 거였지만, 일부러 말하진 않았다.

애초에 간부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말해봤자 해결은 고사하고 가해자에게 보복만 더 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것도 모르고 필두의 ‘봐준다’라는 말 한마디에 넘어간 전도혁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털어놨다.

“최근 문석도 상병이 집중적으로 괴롭히고 있는 병사는 저 포함해서 네 명 정도 됩니다. 주로 괴롭히는 방식은…….”

“근무 교대 때 일부러 암구호 틀리게 해서 갈구는 거잖냐.”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남은 세 명이 누군지나 말해라.”

전도혁이 잠시 망설이는 티를 냈다. 그 태도를 보자마자 필두가 성을 내기 시작했다.

“뭣 때문에 망설이는지 모르겠지만 잘 새겨들어라. 내가 악마 행보관이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문석도 같은 녀석 마냥 스트레스나 풀고자 너희를 일부러 굴리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리고 내 병사가 누구한테 맞고 다닌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간부가 어디 있겠냐.”

“…….”

“내 병사는 내가 지킨다. 그게 군 간부가 할 일이고 내가 할 일이다. 그러니까 너도 걱정말고 실토해라.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필두의 방식은 옳은 건 옳은 거고 아닌 건 아닌 거였다.

병사들을 굴리는 것에 사적 감정이 들어가 있진 않았다. 만약 정말로 그러했다면, 필두는 문석도와 같은 수준의 남자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한다. 엄격할 때는 엄격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을 때에는 과감하게 쳐낼 수 있는 남자. 그가 바로 강필두였다.

내무 부조리는 필두가 생각하는 악습 중 하나였다. 저항할 수 없고 힘없는 약자라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마음껏 괴롭힌다? 그것은 악인이 아니라 인간쓰레기다.

전도혁은 필두의 말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제야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필두를 단순히 악마 행보관이라고만 생각했었던 그 인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강필두라면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내무 부조리라는 이 오랜 악습을 뿌리 채 뽑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작은 희망이 전도혁을 움직이게 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 * *

금요일 오전.

오늘 하루만 버티면 내일은 황금 같은 주말이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넘어야 할 산 하나가 있었다.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병사들은 행정반으로 이유 불문하고 즉시 와주시기 바랍니다. 김상철 일병, 오서민 일병, 차성대 일병, 전도혁 일병. 이상 네 명은 하던 일 멈추고 행정반으로 바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하나포 포상에서 아직 곳곳에 쌓여 있는 눈들을 치우던 병사들의 시선이 전도혁에게로 집중되었다.

“도혁아.”

“일병 전도혁.”

“너, 또 무슨 사고 쳤냐?”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던 김조항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최근, 김조항은 소진언으로부터 분대장을 일임받았다. 어깨에 달린 초록색 견장의 무게감이 한창 무겁게 느껴질 시기였기에 자연스럽게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전도혁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사고 안 쳤지 말입니다.”

“무슨 일이길래 행정반에서 널 찾는 거야.”

“그건…….”

호명 당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문석도에게 폭력 당한 경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챈 소진언이 이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도혁이 그냥 보내줘라.”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

“조만간 알게 될 거니 신경 쓰지 말고.”

“……?”

소진언도 전도혁과 마찬가지로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문석도에게 주로 괴롭힘당한 후임급 병사들의 이름만 거론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충성!”

“어, 그래. 어여 가 봐라.”

“예.”

전도혁에게 어서 가보라는 식으로 오른손을 가볍게 휘저어 보이는 소진언이었다.

머지않아 김조항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소진언 병장님은 알고 계신 거 같은데.”

“알다마다. 내가 먹은 짬이 얼마인데 이런 것 하나 눈치 못 채겠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고심을 담은 듯, 짙은 입김이 길게 뿜어져 나왔다.

“곧 포대에 피바람이 불지도…….”

* * *

한편.

문석도에게 폭행을 당한 네 명의 후임급 병사들이 모이기 전이었다.

포대장과 전포대장, 그리고 통제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필두의 스마트폰을 응시했다.

스마트폰에 재생되고 있는 건 탄약고 초소에서 문석도가 전도혁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전도혁에게 발길질을 할 때마다 포대장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

포대장치고는 드물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부하들 앞에선 웬만하면 거친 언행은 자제하려 했던 그였지만, 필두가 직접 녹화한 이 동영상을 보면 욕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제관은 지금 당장에라도 문석도를 이 자리로 불러 세울 기세였다.

하나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건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었다.

냉정하게, 그리고 냉철하게 상황을 직관해야 한다. 그것이 요구되는 순간이었다.

재생이 끝나자, 본인의 스마트폰을 다시 회수한 필두가 곧장 입을 열었다.

“어제 탄약고 초소 순찰하면서 찍었던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아니, 행보관님께서 초소 근처까지 갔는데도 전혀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거기에 가혹 행위까지 하다니…… 허, 거 참!”

포대장은 이미 뒷목을 잡은 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근무 태만에 가혹 행위에 폭언에 폭행에…… 지적하려면 끝도 없었다.

문석도가 이러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증이 아닌 물증으로 보여준 필두. 그 덕분에 포대장을 비롯해 간부들 역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문석도. 이 녀석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간부들이 직접 나서야 했다.

병사들에게 맡겼다가 상부에서 나오는 인사 관련 검열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그 즉시 제1포대는 끝장이다.

“포대장님. 우선은…….”

필두가 본인이 생각한 해결책을 들려주려던 순간, 포대장이 버럭 외쳤다.

“당직! 지금 당장 호명하는 병사들, 당장 방송으로 불러!”

“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필두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포대장이 먼저 지시를 내렸다.

“전도혁하고 김상철, 오서민, 차성대. 그리고…….”

딱 거기까지가 좋았다.

우선은 피해자 입장인 병사 네 명을 불러놓고 면담부터 한 뒤에 차근차근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그것이 필두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불린 한 명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문석도도 오라고 해!”

“……!”

문석도의 호명은 애초에 필두의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다.

포대장의 극단적인 행동에 필두가 속으로 혀를 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