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61화 (61/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61화

제15장. 야간 행군(4)

조연도와 전도혁, 그리고 정성태는 분명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지면에 발을 붙이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갑자기 불어온 강풍 덕분에 그들의 몸이 스프링처럼 외곽 쪽으로 튕겨 나갔다.

아니, 나가떨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게 더 옳았을지도 몰랐다.

문제가 있다면 그 방향이 낭떠러지 쪽이라는 점이었다.

“애들아!”

놀란 김조항이 손을 뻗어봤지만, 군장의 무게 때문에 곧장 대처 반응을 하지 못했다.

이대로 가면 세 명 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결국 이들을 구하기 위해 행동에 임한 이가 있었다.

전직 흑마법사, 강필두가 빠르게 자신의 몸에 몇 개의 버프를 걸었다.

움직임을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게 만드는 헤이스트 마법을 비롯해 투명화 마법, 거기에 덧붙여 근력을 일시적으로 상승시켜주는 버프까지 중첩했다.

군장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의 몸놀림이라고 보기 힘든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이들 세 명에게 도달한 필두.

병사들과 같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필두의 손놀림은 거침없었다.

“흡!”

짧은 호흡과 함께 발밑을 향해 강한 바람속성 마법을 발동시켰다.

후우우우우웅!

엄청난 회오리가 생성되며 이들의 몸을 공중으로 치솟게 했다.

바로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닥을 향해 매섭게 낙하하던 세 명의 몸이 대뜸 역방향으로 붕 뜨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필두가 또다시 마법을 발동시켰다.

중력 마법을 발동시켜 행군 대열이 있는 곳을 향해 이들을 끌어당겼다.

콰당!

육중한 소리와 함께 세 명의 병사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괘, 괜찮냐!”

“연도야, 정신 차려라!”

“포대장님! 부상자 있습니다!”

안전하게 필두로부터 병사 세 명을 인도받은 행군 대열이 바삐 대응했다.

한편, 병사들에게 시선이 집중된 사이에 남몰래 투명화 마법을 풀었다.

이윽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전도혁을 비롯해 큰 위기를 겪었던 세 명의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정신이 드나.”

“여, 여긴…….”

“방금 저희, 떨어질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랬었는데…….”

어벙한 표정으로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던 세 남자.

그때, 낭떠러지를 바라보는 순간 이들의 온몸에 절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낭떠러지 바닥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공포를 자아내고 있었다.

만약 그대로 낙하했다고 한다면…….

분명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떻게 산 거지?’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사건의 당사자들조차도 자신들이 어떤 기적과 마주했기에 아직도 멀쩡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순간, 전도혁이 무의식적으로 필두를 응시했다.

“혹시 행보관님이…….”

“내가 뭘.”

“아, 아닙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필두였다.

하기야. 이들을 구해줄 당시 그는 투명화 마법을 발동시킨 상태였다.

강풍을 만들어내 이들을 구한 존재가 강필두란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 * *

갑작스레 발생한 사건 덕분에 행군이 잠시 중지되었지만, 이내 모두가 무사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난 이후에 다시 재개되었다.

행군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필두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건 분명 마법이었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마법의 흔적이었다.

행군이 다시 재개되기 전, 필두는 마법의 근원지를 향해 수색을 나섰다.

그러나 그 흔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민혜정과 데이트를 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기척을 감지한 적 있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마법이 발동되었고, 인명 피해를 낳을 뻔한 사건으로까지 커졌다.

물론 필두의 기질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었다.

마법을 사용했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필두에게 피해를 주려 했다.

이것은 위해였다.

‘설마…….’

절로 떠오르는 하나의 가정.

레디너스에서 파견된 추격대였다.

시공을 넘나드는 마법은 레디너스 대륙에서도 거의 금지되다시피 한 마법이었다.

그러나 필두를…… 아니, 드리무어를 추격하기 위해서라면 금기든 뭐든 제약을 두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그를 찾고자 발버둥칠 것이다.

드리무어는 언제 또 레디너스를 암흑기로 빠지게 할지 모르는 큰 위험 요소였으니까.

그러나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추격대가 이곳에 도달했다면, 이런 어설픈 시도보다 필두를 확실히 죽일 방법을 구상했어야 했다.

그들은 필두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런 거에 필두가 얌전히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해 안 가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행군만 아니었다면 좀 더 상세하게 조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기가 적절치 않았다.

‘어차피 추격대가 왔다면, 분명 다음에도 나를 노리는 행동을 보일 터. 그때 확인해도 늦지 않겠지.’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안고서 행군에 임하는 동안 첫 번째 산행이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산에서 내려오자 타 부대 위병소 입구가 이들을 반겼다.

위병소를 통과해 연병장에 접어들자, 간부들이 이들에게 휴식을 명했다.

“군장 내려놓고 분과별로 라면 취식 준비한다!”

“예!”

병사들의 목소리에 힘이 가득 실렸다.

안 그래도 춥고 배고팠는데, 라면 취식이라는 말을 들으니 없던 기력도 절로 생길 정도였다.

타 부대 식당은 9090대대에 비해 꽤 넓고 쾌적해 보였다.

“여기가 우리 부대 식당이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부러움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직 신식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9090대대에 비해 이곳 부대의 시설은 상당히 좋아 보였다.

제1포대 병력들이 일렬로 줄을 서며 놓여 있는 먹을거리들을 하나씩 챙겼다.

1인당 컵라면 하나, 탄산음료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빵도 한 봉지씩 배급되었다.

“건빵은 필요 없는데.”

소진언이 마치 원수라도 본 듯한 눈빛으로 속내를 표출했다.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병사들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차라리 초코바 하나가 더 도움되지 않을까.

제각각 자리를 잡은 병사들이 컵라면의 은총을 받는 동안에도 필두의 시선은 여전히 조금 전, 이들이 통과한 산언저리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던 통제관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행보관님.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별거 아니다. 그보다 라면 배급은 다 끝났나.”

“예.”

“출발 시간은 언제지?”

“1시입니다.”

“부상자는?”

“아직까진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사단장님 곧 오실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간부들한테도 그리 전해둬라.”

“예, 알겠습니다.”

아직 사단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사단 측에서 사단장이 언제쯤 갈 것이다 하고 예상했던 시간은 새벽 1시부터 2시 사이.

그다음 행군 코스에서 사단장을 맞이할 확률이 가장 높았다.

‘하필이면 병사들이 가장 졸릴 시간 때 오는군.’

라면 취식 이후, 몸도 마음도 따스해진 병사들이지만 덧붙여 가장 큰 부작용도 같이 찾아온다.

바로 졸음이었다.

‘일부러 이 시간을 노린 건가.’

사단장은 빈틈 찌르기를 상당히 좋아하는 인물이란 정보를 사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부대가 방심할 때를 노려 기습 방문을 하는 게 사단장의 특기 아닌 특기였다.

부하된 입장에선 상당히 괴로운 상관이기도 했다.

‘아까 그 마법도 그렇고, 사단장도 그렇고.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군.’

어쩌면 포대전술훈련 때보다도 더 어렵게 된 건 아닐까 싶었다.

* * *

라면 취식이 끝난 이후.

시간이 1시를 가리켰을 때, 병사들은 이미 군장을 짊어지고서 출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알파 포대! 파이티잉!”

“파이티이이이잉!”

포대장의 선창에 따라 병사들이 파이팅 구호를 후창 했다.

부러운 신식 부대를 뒤로하고 다시 고단한 행군길에 오르는 9090대대.

그러기를 대략 20분 정도 지났을 때. 필두가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

“…….”

병사들 몇몇이 마치 병든 닭처럼 머리를 꾸벅꾸벅 끄덕였다.

한눈에 봐도 졸음에 빠져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손을 뻗어 병사의 어깨를 툭! 하고 건드리자, 잠시 단잠에 빠졌던 병사가 황당한 얼굴로 필두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잠을 깨운 존재가 필두임을 뒤늦게 깨닫고 관등성명을 외쳤다.

“이, 일병 김상천!”

“졸지 마라. 잘못하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예! 죄송합니다!”

졸음은 비단 김상천 일병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필두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게 조는 병사를 손수 깨웠지만, 그 숫자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번 깨웠던 병사들조차 다시 졸음의 함정에 빠져드는 모습도 더러 보였다.

제1포대도 그렇지만, 다른 포대 병사들 또한 졸음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필두가 때마침 졸다가 딱 걸린 전도혁에게 자신의 수통을 내밀었다.

“마셔라.”

“……?”

“못 들었나. 마시라니까.”

“행보관님 수통을…… 말입니까?”

“그래. 새로 나온 수통이니까 물맛도 좋을 거다. 이거 마시면 잠도 깨겠지.”

“그건 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물론 신 수통 물맛이 궁금하긴 하지만, 이거 마신다고 잠이 확 깨진 않을 거로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았으니까.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필두의 명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수통을 받아들었다.

꼴깍! 하고 한 모금을 음미하는 순간.

“……?”

갑자기 전도혁의 두 눈이 번쩍 뜨여졌다.

분명 평범한 물이었다. 각성제라든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고작 한 모금 마셨다고 졸음이 싹 달아날 수가 있나?

“어때. 정신이 좀 드냐.”

“예!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전도혁을 시작으로 졸음에 약한 병사들을 좇아 한 번씩 순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하나포 약골, 조연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게 소문의 행보관님 표 각성제!”

“이상한 별칭 붙이지 말고 후딱 마시기나 해라.”

“예!”

앞선 병사들처럼 조연도 역시 크게 한 모금 벌컥 들이켰다.

동시에 전시에 강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로 나온 수통의 위력이라기보다는 필두의 마법 덕분이었다.

안에 담겨진 물에 각성 효과를 담은 마법을 걸어뒀다.

효과는 그리 길지 않았다. 2시간 정도?

그러나 그 2시간도 꽤 컸다. 적어도 사단장이 방문했을 때 시들시들한 병사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이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병사들은 그저 ‘신식 수통의 위력이다!’라고 입을 모아 감탄할 뿐이었다.

그렇게 행군을 계속 이어갈 무렵, 포대장들에게 지급된 P96K에서 대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대장이다. 내 목소리 들리나.

“알파 포대, 감도 양호합니다!”

제1포대를 비롯해 다른 포대들도 잘 들린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그 후, 이들을 바짝 긴장케 하는 무전 내용이 뒤를 이었다.

-앞으로 15분 뒤에 사단장님께서 도착하신다고 한다. 각 포대장들은 신경 써서 대열 정비할 수 있도록.

사단장의 방문!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