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70화
제18장. 체육대회(2)
분대장 결산이 끝남과 동시에 생활관으로 돌아온 김조항이 분대원들을 소집했다.
그런 뒤, 분대원들에게 체육대회 출전 명단을 읊어주기 시작했다.
“소진언 병장님하고 진수가 축구, 농구에 성태, 그리고 줄다리기에 도혁이. 하나포는 이렇게 나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나야 축구 나가는 거 상관없긴 한데, 진수는 왜?”
모두의 시선이 황진수에게 집중되었다.
진언은 일병 때부터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축구를 해오던 멤버였다.
엄청 잘하는 수준까진 아니고, 항시 평타 이상의 모습은 보여 왔었다. 그렇기에 소진언이 축구 명단에 포함되는 건 쉽게 납득이 가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골키퍼 전문이었다. 중요한 포지션인 만큼 진언의 참가 역시 확정적이었다.
하지만 진수는?
이해가 잘 안 갔다.
“김조항 상병님. 그 명단, 정말로 행보관님께서 직접 싸주신 거 맞습니까?”
“어.”
정성태가 재차 확인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필두가 직접 짰다.
그 말인즉슨, 더 이상의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성태의 시선이 진수에게 향했다.
“너, 축구 잘하냐?”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근데 왜 행보관님이 널 추천한 거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 턱이 있나.
제아무리 마일더라 하더라도 필두의 머릿속을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필두와 사고방식 자체가 상반되는 남자였으니까.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절로 필두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행보관이고 진수는 이등병에 불과했다. 분대장인 김조항조차 쩔쩔매는 상대를 이등병인 자신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시키면 그대로 하면 된다.
그것이 군대라는 곳의 방식이었다.
* * *
체육대회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해야 3일.
마지막 주말 동안 이들은 연습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축구 연습에 처음 참가해 보는 진수.
가볍게 몸을 푸는 동안, 머릿속으로 축구라는 스포츠의 규칙을 계속 떠올렸다.
‘손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 했지. 두 발만으로 공을 차서 상대방 골대에 골을 넣으면 1점 획득이라.’
레디너스에 이와 비슷한 식의 스포츠가 있긴 했었다.
규칙을 되새기며 포대장의 주도하에 몸을 푸는 동안, 그의 시선이 위병소 쪽으로 향했다.
‘드리무어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진수가 의미 모를 축구 시합에 대비하는 동안 필두는 면회를 온 혜정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에 소형차를 뽑게 된 혜정. 연습 삼아 이곳 9090대대 근처까지 차를 몰고 온 김에 필두를 보고자 면회 신청까지 하게 되었다.
사전에 그녀가 온다는 연락이 없었기에 필두도 제법 당황스럽긴 했다. 그러나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매몰차게 돌아가라고 말할 수도 없었기에 위병소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다음 주가 체육대회네요. 준비는 잘 되나요?”
“네. 문제없이 잘 진행되는 거 같습니다.”
혜정도 9090대대가 다음 주에 체육대회를 한다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필두 씨도 참가하나요?”
“이어달리기에 나갈 예정입니다.”
“달리기요?”
“예.”
“힘들지 않나요? 달리기면 준비 많이 필요할 텐데…….”
체력 소모도 장난이 아닐 터였다.
게다가 필두가 20대도 아니고. 오히려 다른 젊은 부사관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도 작게나마 들었다.
그러나 필두의 생각은 달랐다.
축구에서 1등. 그리고 이어달리기에서 1등. 이렇게 최소 200점 이상은 무조건 기본으로 깔고 간다.
그렇게 되면 제1포대의 우승은 거의 확실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축구에 진수를 보내고 이어달리기에 자신이 참가하기로 명단을 짰다.
진수가 비록 필두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졌지만, 그것과 체육대회 우승은 별개였다.
마일더도 자존심 있는 남자.
스포츠라 하더라도 지고는 못 사는 강한 승부욕 때문이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물론 그건 필두도 마찬가지다.
레디너스 출신의 두 남자가 활약을 펼쳐준다면 제1포대 우승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하나 혜정이 이런 사실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필두가 괜히 고생을 자처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들었다.
“이래 봬도 달리기에는 자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그래도 다치지 않게 주의하세요. 아셨죠?”
“네, 물론입니다.”
“약속이에요. 꼭!”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강조하는 그녀의 모습이 한없이 귀여워 보였다.
그만큼 필두를 많이 생각해서 나오는 반응이 아닐까.
누군가가 자신을 이토록 걱정해 주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런 감정도 나쁘진 않군.’
이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 중 하나였다.
* * *
가벼운 몸동작으로 가볍게 몸을 푼 진수가 천천히 사열대 앞 작은 연병장에 발을 들였다.
11대 11. 한쪽은 체육대회 주전 멤버로 구성된 포대장 님, 그리고 다른 한 쪽은 예비 후보를 비롯해 다른 포대원들로 채워졌다.
주전멤버 팀으로 구성된 쪽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포대장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다들, 파이팅하자!”
“예!”
공격수를 담당하고 있는 포대장이 기운차게 외쳤다. 골키퍼에 소진언, 그리고 아직 실력을 검증받지 못한 진수는 수비수로 배치되었다.
같은 팀원들도 진수의 축구 실력을 의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규칙조차 모르고 있었다. 필두는 그런 진수를 무슨 자신감으로 내보냈을까?
이런 의구심을 품고 있을 무렵, 포대장이 먼저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2~3명에게 둘러싸인 포대장. 재빨리 옆에 있던 또 다른 공격수에게 패스를 했지만, 불행하게도 패스는 실패하고 말았다.
전도혁의 동기인 고만해가 공을 가로챘기 때문이었다.
“나이스, 고만해!”
“그대로 가라!”
주전멤버는 아니지만, 고만해도 축구 실력이 제법 되는 인재였다.
비록 상대가 포대장이라 하더라도 체육대회가 걸려 있는 이상 접대 축구를 할 수는 없는 법. 포대장도 그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고만해를 비롯해 스파링 상대가 되어주기로 한 상대팀도 전력을 다해 나오고 있었다.
빠르게 드리블을 하며 상대편 진영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하는 고만해.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미드필더들을 제치고 순식간에 수비 진영에 도착한 고만해의 패기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선사했다.
“진수야! 막아라!”
가장 가까이 있는 진수에게 수비 명령이 떨어졌다.
고만해 쪽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하는 진수.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만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네가 날 막을 수 있을까? 신병!”
“…….”
대답할 가치는 없었다.
왜냐하면 고만해의 움직임은 이미 진수에게 파악당한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좌측으로 파고드는 척하면서 우측으로!’
이미 고만해의 머릿속에는 진수를 가볍게 재치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있었다.
하나 진수가 더 위였다.
훼이크를 주며 우측으로 드리블하며 빠르게 빠져나가는 고만해였으나, 이미 진수의 발이 그의 공을 낚아챘다.
“엇……?”
“세상에!”
“만해가 저렇게 허무하게 털려?”
게다가 축구 규칙도 모르던 초보 중에서도 초보에게 공을 빼앗기다니.
굴욕이었다.
“운이 좋았어, 신병! 하지만 두 번이나 우연히 벌어지긴 힘들지!”
고만해의 승부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곧장 진수에게서 다시 공을 쟁취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휙!
고만해에게서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진수가 상대편 골대를 응시했다.
이미 그는 고만해든 뭐든 안중에 없었다.
“저기 저 골대에 이 공을 차서 넣으면 되는 겁니까?”
“어? 어…… 그렇긴 하지.”
너무나도 기본적인 질문을 받아버린 탓일까. 같은 편 선임 중 한 명이 어이가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차 확답을 받은 진수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가며 가볍게 공을 몰아갔다.
‘좀 더 속도를 내볼까?’
짧은 기합을 삼키며 가속해 나아갔다.
미드필더진, 수비진이 그를 향해 덤벼들었지만, 워낙 빠른 속도 때문에 따라잡기조차 힘들었다.
그건 같은 팀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 녀석! 뭐가 저렇게 빨라?’
‘보이지도 않을 정도잖아!’
포대장과 공격수들이 진수를 서포터해 주기 위해 뛰쳐나갔지만, 이미 진수는 골대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상대편 수비수가 반칙을 각오하고 백태클까지 걸었지만, 마치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공과 함께 가볍게 공중으로 뛰어오른 진수였다.
“어, 어떻게 그걸?”
상대편으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수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느려서 하품이 다 나오는군. 여기가 정녕 군대가 맞는 건가.’
마일더가 알고 있는 그런 군대와는 사뭇 달랐다.
훈련소에 있을 때에는 그래도 ‘이제 막 입대한 장병들이니까’라는 말로 그러려니 납득을 했었다.
그러나 자대에 있는 병사들의 움직임은 진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실망적이었다.
‘무기가 너무 좋아서 그런가? 체력 부족은 그렇다 치더라도 몸놀림도 약골 수준이군.’
스포츠라고 하나 이것을 통해 대충 이 세계의 군대 수준이 어떠한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실망할 시간이 아니었다. 선임들의 지시에 따라 골을 기록하는 게 우선이었다.
오른발을 살짝 뒤로 젖힌 뒤 그대로 공을 찼다.
그러자 빠아악! 하는 충격음과 함께 축구공이 골대를 향해 정확히 날아들었다.
“……!”
상대편 골키퍼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정확하게 골키퍼가 서 있는 곳으로 날아왔지만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 죽는다!’
살기마저 풍겨 나오는 공의 위력에 움직임조차 소극적으로 변했다.
결국 골망이 크게 흔들거렸다.
“잘했다, 진수야!”
“나이스 플레이!”
첫 골을 기록한 진수에게 포대장과 선임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의 얼굴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기뻐할 만한 일인가?’
진수의 입장에선 영문 모를 일이었다.
* * *
연습경기 결과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10대 0!
게다가 10골 다 진수가 기록한 스코어였다.
“저 새끼, 도대체 정체가 뭐야?”
“혼자서 10골이라니…….”
상대팀 선수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포대장 팀 선수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질 줄 몰랐다.
“행보관님께서 널 명단에 올리신 이유가 있었구나!”
진수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주는 진언의 한 마디였다.
처음에는 다들 진수가 왜 주전 멤버가 되었는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오늘 가진 첫 연습 경기를 통해 그가 왜 주전이 되었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하나 진수는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의 불만도 있었다.
‘몸풀기조차 되지 않았어.’
스포츠라고 하길래 진수는 레디너스 시절 당시 즐겼던 치열함을 떠올렸다.
그러나 조금 전의 경기는 애들 수준에 불과했다.
‘연습 경기라서 그런 걸까? 어쩌면 실전에선 달라질지도 모르지.’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해보는 진수였지만, 불안감은 가시질 않았다.
모처럼의 체육대회.
진수는 좀 더 자신의 승부욕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남몰래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