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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76화 (76/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76화

제20장. 혹한기(1)

운전석에 앉은 채 운전에 몰두한 필두를 곁눈질로 바라보는 소진언.

예전에도 필두의 차를 몇 번 타보긴 했지만, 탈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하기야.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민간 차량을 탈 기회도 그리 많지 않으니 이런 기분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필두는 여전히 앞만 보며 운전대를 굴렸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휴가 나가서 뭐할 거냐.”

“일단은 친구들 좀 만날까 합니다.”

“네 친구들은 다 전역했냐.”

“예. 제가 거의 마지막 라인입니다.”

“그렇군. 전역해도 심심하진 않겠어.”

“하하, 그렇지 말입니다.”

보통 20대 남자들은 친한 친구들끼리라 하더라도 서로 입대 시기가 맞지 않으면 몇 년 동안 얼굴도 못 보는 경우가 발생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진언은 운이 좋은 모양인지 대다수의 친구들이 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입대를 했다.

그 덕분에 전역 시기 역시 얼추 맞아 곧장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다.

“바로 복학할 거냐.”

“1년 정도 알바하면서 학비 벌고, 그때 되고 나서야 복학할 거 같습니다.”

“알바?”

“네.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서 학비는 제가 벌어야 합니다.”

“그랬었지.”

각 병사의 개인 신상 정보를 알고 있는 필두였기에 진언의 집안 사정 역시 얼추 눈치채고 있었다.

하나 워낙 많은 병사를 관리하다 보니 금세 그의 개인사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걸 잘 알기에 진언도 섭섭한 표정을 지어 보이진 않았다.

“힘들겠군.”

“아닙니다. 전 딱히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 생활도 잘한 거 같고. 행보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소진언은 긍정적인 남자였다.

비록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던 드리무어였으나, 이런 타입은 딱히 싫지 않았다.

긍정적인 마인드란 좋은 것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 이곳이라면 소진언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마인드가 더더욱 빛을 보게 될 것이다.

평상시라면 40분은 족히 걸렸을 거리였으나, 필두의 도움으로 짧은 시간 내에 시내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차한 소진언이 거수경례로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사고 없이 잘 보내다가 복귀해라.”

“예!”

그렇게 진언을 시내까지 데려다 준 이후.

“바로 출발해 볼까.”

이대로 퇴근하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제아무리 행보관이라 하더라도 평일 날 멋대로 퇴근을 하는 건 용납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오늘부터 혹한기 훈련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이 와중에 필두가 빠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할 일이 많겠군.”

벌써부터 각오를 굳히는 필두였다.

* * *

9090대대의 혹한기 훈련은 크게 2가지 형태로 나뉜다.

우선 첫 번째. 저번에 치렀던 포대전술훈련처럼 부대 이동과 방열을 번갈아 하는 훈련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혹한기 훈련 종료 이후 복귀 행군을 하게 된다.

혹한기 훈련은 이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평소 하던 훈련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혹한기가 유격과 더불어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혹독한 추위에 있었다.

혹한기 훈련은 1년 365일 중 가장 추운 시기에 거행되는 훈련이다. 게다가 전방 부대였기에 더더욱 추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에 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크나큰 괴로움이었다.

“분대장들 다 모였나.”

“예!”

행보관실에 모여든 분대장들. 진언을 데려다 주고 부대로 다시 복귀한 필두가 이들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방한 대비에 최대한 신경 쓰도록. 분대원들 컨디션도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감기라든지 이런 거 걸리면 큰일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특히 전입 신병 있는 분과들은 신병 관리에 유의하도록.”

“네.”

진수를 비롯한 신병들도 혹한기 훈련에 예외 없이 참가하게 된다.

처음으로 받는 자대 훈련이 혹한기라는 사실에 동정심도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타이밍이 안 좋은 걸 이제 와서 누굴 탓할까.

“이번에도 상급 부대에서 검열 올 수 있으니까 항시 유의하도록.”

“예.”

“그리고 FDC하고 통신. 상황실에 뭐 걸릴 만한 거 있는지 없는지 매번 검사할 테니까 잘 알아둬라.”

“아, 알겠습니다!”

류태만 병장이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몰래 반입한 스마트폰으로 장난치던 것을 필두에게 들켰던 경력이 있었다.

그래서 필두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크나큰 정신적 대미지(?)를 입었으니까.

“다른 분과도 괜히 걸릴 만한 건수 없게끔 잘 처신해라. 내 눈에 띄었다간 바로 영창행이니까.”

“예!”

살기가 뚝뚝 묻어 나오는 한 마디였다.

* * *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혹한기 훈련 대비.

도중에 필요한 비품 목록을 확인한 필두의 시야에 때마침 사열대에 모여 있는 병력이 포착되었다.

병력들을 집합시킨 채 작업 분류를 진행하던 통제관이 잠시 뒤를 돌아봤다.

“충성.”

“충성. 작업 분류 다 끝났나.”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럼 세 명만 빼도록 하지.”

“시키실 거 있습니까?”

“시내 가서 물건 좀 사오려고 한다.”

“그렇습니까.”

주고받는 대화가 병사들의 귓가에 들린 탓일까.

순간 그들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이나마 사회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너도나도 앞다투어 지원했을지도 몰랐다.

그때 당시에는 전도혁과 고만해, 두 일병이 필두와 함께했다.

그러나 그들이 겪은 건 지옥 그 자체였다.

갔다 오고 난 뒤 일주일가량 근육통에 시달렸던 두 사람. 그들의 모습을 보고도 필두와 함께할 기분이 나겠는가? 천만에. 오히려 도망 다녀야 정상일지도 몰랐다.

“비품 사러 갈 거다. 가고 싶은 사람 있나.”

“…….”

“…….”

“…….”

병사들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토한 필두가 대놓고 지목을 하기 시작했다.

“전도혁.”

“이, 일병 전도혁!”

“고만해.”

“일병 고만해!”

“너희 둘은 경력자니까 데리고 가마.”

“하, 하하하…….”

마음 같아선 단번에 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필두의 말을 어딜 감히 거절한단 말인가. 한 번의 안일한 선택이 또다시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몰랐다.

“어디 보자.”

남은 한 명을 고르기 위해 요리조리 병사들을 훑던 필두.

그의 시선이 멈췄다.

“황진수.”

“이병 황진수.”

“너도 간다.”

“…….”

순간 진수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내 표정관리에 들어간 진수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진수를 고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도혁과 만해보다 훨씬 더 쓸 만한 놈이기 때문이었다.

* * *

시내에 도착한 이들.

내리자마자 도혁과 만해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튀어나왔다.

“또 근육통 걸리겠네.”

“그러게 말이다.”

두 선임의 앓는 소리에 진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러십니까.”

“행보관님이 시키는 일이 생각보다 엄청 고된 거니까 그렇지. 너도 참 운 더럽게 없다.”

“그렇게나 힘든 일입니까?”

내심 진수의 눈빛에 기대감이 어렸다.

병사들이 ‘힘들다, 힘들다’하고 투덜거리는 작업들은 사실 진수에게 있어선 몸풀기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정말로 힘든 일을 맛보고 싶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진수의 바람 아닌 바람이었다.

그러는 동안 필두가 이들에게 손짓했다.

“이 자루들 옮겨라.”

‘시작됐다!’

‘이런 망할! 저번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데?’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두 일병.

이들의 얼굴에 절망감이 묻어나왔다.

그러나 진수는 별다른 말없이 한 번에 두 자루를 번쩍! 하고 들어 올렸다.

“이거, 차에다가 실으면 됩니까.”

“그래.”

필두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미련 없이 뒤로 돌아 차량으로 향하는 진수.

그의 발걸음이 상당히 가볍게 느껴졌다.

‘어라?’

‘이번에는 그렇게 안 무겁나 본데?’

진수가 가볍게 들 정도니, 저번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미친!’

‘한 자루 들기도 힘든데?’

나름대로 운동 좀 했다고 알려진 도혁조차도 한 자루 들기 간당간당했다.

그러나 이것을 두 자루나, 게다가 조금의 어려움 없는 동작으로 옮기는 진수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 * *

포대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생활관에 널브러진 도혁과 만해.

때마침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사들이 진수를 포함해 필두를 따라갔던 세 사람을 보자마자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고생 많았다.”

“오늘은 얼마나 힘들었냐.”

“마, 말도 못 할 정도입니다…… 아구구, 어깨야…….”

“삭신이 다 쑤십니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 불리는 20대 청춘의 두 장정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게다가 꽤나 힘 좀 쓴다고 잘 알려진 두 남자인데, 이렇게까지 고통에 찬 목소리를 낼 정도였으니…….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이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진수는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복귀했다.

“진수는 일 안 했어?”

조항의 물음에 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녀석이 가장 많이 했습니다.”

“근데 왜 진수는 멀쩡하냐?”

“저도 그걸 모르겠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그게 궁금했다.

하나 진수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냥 운동 수준밖에 안 됐습니다.”

‘우, 운동?’

‘평소에 무슨 운동을 해왔길래 저런 소리 하는 거냐.’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참으로 이해 안 되는 신병. 그가 바로 황진수였다.

* * *

혹한기까지 남은 일자는 고작해야 단 3일.

훈련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더욱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위장막 건조 잘 시키고! 저번처럼 곰팡이 슬어 있는 모습 나한테 걸리기라도 한다면 알아서 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포상 정리도 똑바로 해라. 입구에 쓰레기 안 보이게끔 해.”

“네!”

하나포 포상을 시작으로 상황실, 탄약고 초소까지.

제1포대가 관활하고 있는 모든 지역을 순찰하며 여러 가지 지적사항들을 들려주는 필두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날이 바짝 서 있었다.

병사들에게 일부러 긴장감을 유발하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포대전술훈련 때에는 필두 덕분에 무사히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그와 같은 사고가 반복해 벌어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인명피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에 확인을 거쳐야 했다.

다시 행정반으로 돌아온 필두가 그만의 공간인 행보관실로 걸음을 옮겼다.

전투모를 걸어놓고 의자에 앉아 TV를 켰다.

동시에 필두의 한쪽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건 때마침 TV에서 흘러나오는 일기예보 때문이었다.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폭우가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나 경기, 강원도 지방에는 많은 양의 눈이 쌓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필이면…….”

안 그래도 힘든 혹한기 훈련인데 눈까지 오게 되다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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