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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94화 (94/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94화

제24장. 진급시험(1)

혹한기 훈련에 무장공비 침투 사건. 거기에 더해 제1포대는 최근, 포대 왕고였던 소진언의 전역까지 겪었다.

계속되는 이벤트 발생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병사들. 그러나 이번 주는 달랐다.

아침 점호를 받기 위해 사열대 앞에 집합하는 병사들.

월요일임에도 이들의 옷차림이 유독 눈에 띄었다.

“평일에 활동복 입고 점호받으려고 하니까 뭔가 좀 어색하네.”

“저도 그렇습니다.”

“주말인 줄 알았어.”

평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 아침. 그러나 이들은 전투복이 아닌 활동복 차림으로 점호 준비에 들어갔다.

병사들의 말마따나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건 국방부에서 직접 내려온 명령이었다.

이름 하야 강제 휴식.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서 보여준 9090대대의 맹활약은 이미 각종 매스컴을 통해 자세히 소개되었다. 심지어 무장공비 둘을 생포한 필두의 무용담은 육군 본부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끔 추진하고 있었다.

그만큼 9090대대가 보여준 이번 성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들이 고생했다는 건 모두가 다 인정하는 바였다. 그래서 국방부 장관의 특별 명령에 의해 9090대대는 이번 주 내내 휴식을 부여받게 되었다.

물론 최소한의 업무는 진행한다. 예를 들자면 탄약고 초소, 위병소 근무라든지 취사, 인사 관련 업무 등등.

작업이나 훈련 같은 건 웬만하면 당분간 병사들에게 시키지 말라고 공문이 내려왔다.

병사들로선 손해 볼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부대 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필두로선 이 강제 휴식 기간이 오히려 방해였다.

그래도 여태까지 고생한 병사들을 일일이 대동해 부대 관리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아무리 필두가 악마라고 하나, 국방부 장관이 직접 지정한 휴식 기간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부대 관리를 시키고 싶진 않았다.

설령 강제로 시킨다 하더라도 그건 결국 장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뜻이 되기도 한다.

여러모로 골치 아팠다.

그래서 필두가 택한 게 있었다.

하급 정령들을 소환해 부대 관리를 맡겨버렸다.

그 때문일까. 청소를 안 했음에도 제1포대 막사는 평소보다 더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전혀 모르는 병사들은 그저 평일 날 치러지는 활동복 점호에 어색함을 느낄 뿐이었다.

“다들 잘 잤냐.”

간밤에 당직사관을 맡은 통신반장이 가벼운 하품을 하며 병사들의 상태를 살폈다.

“예!”

“환자 있으면 거수해라.”

“없습니다!”

“오케이. 그럼 점호 간단하게 취하고, 바로 들어가서 아침밥 먹을 준비해라. 이후에는 웬만하면 터치 안 할 테니까 알아서 쉬고.”

“감사합니다!”

병사들의 목소리에 기쁨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평일에 업무도 안 하고 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울림이란 말인가.

그러나 필두와 더불어 강제 휴식 기간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하나포의 막내, 황진수였다.

‘그나마 있던 병기본 훈련도 못 받게 되다니.’

진수가 몸을 풀 몇 안 되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번 주는 강제 휴업을 당하고 말았다.

‘저녁때 헬스장이라도 가야겠군.’

섭섭함은 운동으로 달래는 게 최고였다.

* * *

휴식 기간 적용 범위가 오로지 병사들로만 한정된 건 아니었다.

간부 여기 마찬가지였다.

이번 주 오대기 소대장 로테이션에 딱 걸린 하나포 반장과 당직사관인 통신반장을 제외하고 행정반에 남아 있는 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부사관들과 전포대장은 관사에서 휴식 중. 포대장과 필두는 자택에서 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하나 도중에 익숙한 차량 한 대가 사열대 앞에 정차했다.

“저거, 행보관님 차 맞지?”

통신반장의 물음에 하나포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말입니다.”

하나포 반장의 대답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차량에서 내린 필두가 사복 차림으로 사열대 계단을 올랐다.

행정반에 들어서자 통신반장과 하나포 반장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충성!”

“충성! 행보관님, 부대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오늘 쉬셔도 되는데…….”

“그냥 잠깐 와 봤다.”

쉬는 날에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필두의 이 기습 방문은 이젠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그는 본인이 당직사관으로 근무하는 날이 아니더라도 주말에는 대다수 모습을 비췄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화요일도, 수요일도, 그리고 남은 평일과 주말도 계속 그럴 터.

어제 당직사관을 맡았던 통신반장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간밤에 특이사항은 없었나.”

“예.”

“병사들은.”

“아침 식사 마치고 지금 생활관에서 휴식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휴식을 취하는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눈앞의 휴식 때문에 다음 주에 있을 커다란 난관을 무시할 순 없었다.

“당직. 여기 명단에 적힌 병사들, 행정반으로 다 오라고 해라.”

명단을 건네받은 당직사병이 질문을 꺼냈다.

“외곽근무 나가 있는 병사는 어떻게 합니까?”

“지금 근무 나간 녀석들은 해당 사항 없을 거다. 이미 내가 근무 시간표도 다 확인했으니까 방송하면 알아서 다 올 거다.”

역시 필두다운 철저함이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찌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있을까.

마이크를 들고 바로 방송을 시작했다.

“아아.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 호명하는 병사들은 즉시 행정반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상병 윤병철, 상병 김조항, 상병 오태식, 일병 전도혁, 일병 정성태…….”

나열되는 병사들의 이름을 귀 기울여 듣던 통신반장이 이제야 이들의 공통점을 알아냈다.

“다음 주에 진급시험 보는 애들입니까?”

“맞다.”

진급 시험.

병사들에게 있어서 휴가 다음으로 신경 쓰이는 요소였다.

진급 시험에 합격하면 그다음 달, 바로 한 단계 위의 계급장을 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진급 시험에 떨어질 경우, 진급 누락이 되고 재시험을 봐야 한다.

9090대대가 속해 있는 사단 내규에 따르면, 누락은 최대 2회까지 허용되어 있다.

즉, 진급 시험을 제때 통과하지 못하면 동기들에 비해 두 달 늦게 계급장을 달게 된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생각을 해보라. 동기는 상병인데 본인은 일병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참을 만했다.

계급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이들은 동기니까.

하지만 이럴 땐 어떠할까?

한 달 차이 나는 맞선임과 맞후임이 있다고 치자.

맞선임은 진급 누락이 두 달 되고, 맞후임은 진급 누락 없이 바로 진급에 성공한다.

그렇게 되면 후임이 선임보다 상위 계급장을 달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된다.

물론 그렇다고 높은 계급장을 달게 된 후임이 선임을 멋대로 부하 취급하진 않는다. 군대는 결국 짬순이니까. 진급 누락이 되어도 선임 대접은 제대로 받는다.

하나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가 생긴다. 후임보다 계급이 낮은 선임! 이 얼마나 꼴사나운 경우란 말인가.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진급 시험에 사력을 다해야 한다.

특히나 진급 성공과 진급 누락의 결과는 포대 성적에도 반영된다. 진급 시험 대상자가 전원 진급 시험을 통과한 포대와 그렇지 않은 포대. 이미지가 확 차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필두가 여기에 욕심을 안 낼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안 내는 게 비정상이었다.

부대 관리의 신이라 불리는 그인데, 진급 누락자가 나왔다고 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짜증이 유발되었다.

어찌 되었든 방송을 통해 다수의 진급 시험 대상자들이 행정반에 모여들었다.

총원 22명.

포대의 5분의 1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하나포에는 진급 시험 대상자가 세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김조항, 전도혁, 정성태가 그 세 명의 정체였다.

“빠짐없이 다 모였겠지.”

“예, 그렇습니다!”

김조항이 대표로 대답했다.

이들을 쭉 훑어본 뒤 필두가 재차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뭔지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마.”

“…….”

“…….”

병사들도 알고 있었다.

왜 필두가 이들을 불렀는지.

여기 모인 병사들은 진급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다. 모른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마. 전원 진급 시험에 합격하도록 해라.”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였다.

전원 합격 미션! 이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도 병사들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이곳에는 진급이 누락되어 다음 달에 재수를 하는 병사들이 몇몇 섞여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여섯 포에 소속되어 있는 상병, 윤병철.

그는 김조항보다도 선임이었다. 본래라면 저번 달 전에 병장 계급을 달았어야 했으나, 본인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진급 누락을 당하고 말았다.

만약에 이번에도 진급에 누락하게 되면 후임보다 더 낮은 계급을 달게 된다.

반면, 김조항은 이번 상병 진급 시험이 처음이었다. 하나 부담이 없진 않았다.

그는 이제 하나포를 책임지는 분대장이 되었다.

분대장이라면 적어도 병장 계급 정도는 달고 있어야 타 분과한테 그나마 눈치를 덜 보게 된다.

안 그래도 포대 왕고였던 소진언이 전역을 함으로 포대에서 차지하는 하나포의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졌다.

본래 분과들끼리 경쟁이 붙는 일이 생길 때에는 소진언이 대다수 커버를 쳐줬다.

하나 이제는 더 이상 그의 활약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조항이 진언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진급 누락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

전도혁은 다른 의미로 진급 시험에 부담감을 지니고 있었다.

필두에게 A급 병사가 되라는 명령을 받은 지도 꽤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필두의 기준점을 통과해 왔지만, 진급 누락 한 번으로 그간 쌓아올린 공든 탑이 우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멧돼지 밥이 되기 싫으면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 그것이 전도혁의 의지였다.

진급 시험을 향한 각자만의 목표가 저마다 담겨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필두가 재차 말을 이었다.

“진급 누락을 한다 하더라도 너희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 대우를 하거나 하는 그런 것들은 하지 않을 거다. 하나, 너희 개인을 위해서라도 이번 진급 시험은 반드시 합격했으면 한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휴식 기간이라고 무작정 쉬지 말고 틈틈이 진급 시험 준비는 해둬라. 특히나 병장 진급 시험 대상자들은 더 철저히 준비해라.”

“예!”

병장 진급 시험은 여타 다른 진급 시험에 비해 어려운 편이었다.

합격 기준점도 높았기에 준비해야 할 게 한둘이 아녔다.

“하고자 하는 말은 여기까지다. 이만 해산하도록.”

“예!”

“충성!”

20여 명이나 되는 병사가 행정반을 한꺼번에 우르르 빠져나가니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이후 모든 병사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서야 당직병들이 한숨을 돌렸다.

“시간 여유 있는 당직 한 명 골라서 나 따라와라. 측각기 계단 멀쩡한지 확인하러 갈 거다.”

“일병 하승진! 제가 가겠습니다!”

짬순에서 밀린 하승진 일병이 동행을 자처했다.

쉬는 날임에도 필두는 여전히 부지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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