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화
제12편 내가 가야 할 길(1)
“네 도련님.”
나의 말에 알베르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한 다음 거대한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똑똑똑.
“도련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이도록.”
문 안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 속, 분노라는 감정을 읽은 나는 몸을 살짝 움츠렸다.
-쫄지 마.-
‘뭐. 때리기밖에 더할까? 죽이지는 않겠지?’
크산느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대답한 다음 이내 열린 문 사이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뚜벅뚜벅.
문이 닫히고, 나는 아버지의 앞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불렀다.”
“앉아도 됩니까?”
“서서 듣도록.”
“쩝.”
건방져 보이겠지만 나는 당당했다.
아버지의 거절에 나는 입맛을 다시며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당당하게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잘못한 것이 없느냐?”
“네.”
만년필을 내려놓은 아버지가 나를 향해 묻자 나는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정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너무나도 당당한 나의 행동에 아버지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고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심기를 상하게 만들었다면 죄송합니다.”
10살의 어린 아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예의 바르고 당당한 자세.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어린아이의 치기로 후작에게 무례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노렸던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기사도가 무엇이냐.”
당당한 나의 모습에 아버지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물었고 나는 여전히 정중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자세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용, 성실, 명예, 예의, 겸양, 약자보호. 기사의 덕목이며 기사가 가야 할 길. 기사도입니다.”
“너는 그 중 예의와 겸양을 지켰느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은 다음 아버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버지.”
“말하거라.”
나의 말에 아버지는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더 패론 후작은 아버지의 후배이며, 황실의 검이라 불리는 근위 기사단장입니다. 물론 저보다 기사도를 먼저 걸은 선배이며, 인생의 선배이십니다.”
“잘 알고 있구나.”
나의 대답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를 가르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이 되어 거절했습니다.”
“뭐라? 그런 오만함을 버리는 것이 기사도의 겸양이다.”
“오만함이 아닙니다.”
우웅!
나의 대답에 아버지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와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버텼다.
입술에서 피가 났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오만함이 아닌, 자부심입니다. 저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렇게 판단이 된 것입니다.”
“뭐라?”
“겸양을 지키며 후작에게 검을 배웠다면 저는 1년이라는 시간을 버린 것과 같게 됩니다.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것이 네가 생각한 길이냐?”
‘아…… X나 아프네.’
입술에서 계속 피가 흘렀고 나는 입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입을 열었다.
“기사도를 지키기 위해 멍청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길을 걷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기적이구나.”
“이럴 때는 실용적이라고 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기사의 모본이라 불리는 고결한 기사 보스 카르미언.
그의 가치관에 아들인 내가 당당하게 반박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이며 변화지만. 어떻게 보면 아들이 38년간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을 부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당했다.
꺾이지 않는 나무처럼 늘 꼿꼿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항상 위태로워 보였기에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 차마 꺼내지를 못했었다.
하지만 그 용기가 회귀하고 난 지금이 되어서야 생기게 되었고, 진심을 담아 말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나의 대답에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꿀꺽.
‘아유 어지러워.’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삼키며 말이다.
그렇게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고.
끝이 없을 것 같던 억겁의 시간이 끝났다.
아버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너의 기사도구나.”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손해 보지 않고 살겠습니다.”
“…….”
나의 똑 부러진 대답에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천재 한번 믿어 보십시오.”
* * *
내 이름은 칼론.
나는 대륙에서 막강한 군사력과 부를 지닌 제국, 대공가의 시종이다.
내가 모시는 도련님은 로얄 공자라 불리시며 제국의 주인이신 황제 폐하의 조카이자 황위 서열계승 3위이시다.
1위 2위가 현 황제의 동생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 도련님이 다음 황제가 될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런 도련님을 모신, 시종 중 가장 출세했다고 할 수 있는 나는 오늘도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눈을 뜬 나는 뒤척이지 않고 바로 일어나 도련님이 나를 위해 친히 준비해주신 모래주머니를 손목과 발목에 찬 후 연무장으로 나와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그러고는 늘 도련님이 하시는 것처럼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도련님을 위한 연무장을 고작 시종인 내가 사용하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지나가는 시녀들은 물론 기사들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
우리 도련님이 나에게 기사 수련생이라는 신분과 연무장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한 번씩 나의 볼을 잡아당기고 괴롭히고, 허공에 대고 헛소리를 하며 혼자 웃는 이상한 행동을 하시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불과 얼마까지만 해도 자신의 무능함에 실망하여 엇나간 생활을 하던 도련님이었지만 약 한 달 전부터 정신을 차리시더니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셨다.
황실의 검 더 패론 후작마저도 실력이 부족하다며 거절하신 우리 도련님.
그전에 무능한 척 연기하시면서 멋대로 사셨고 이제 제대로 살기 위해 마음먹은 것 같았다.
너무 부럽다.
나도 저렇게 천재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아침수련을 끝낸 나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도련님을 깨웠으며 시종이 해야 할 일을 했다.
해야 할 일이라 해봤자 세숫물을 가져다주고 도련님에게 볼을 잡아 당겨지며 괴롭힘을 받는 것뿐이었다.
분명 나와 동갑인데 요즘 부쩍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아무튼 우리 도련님은 일어나고 간단히 세면을 한 다음 아침을 먹고 연무장으로 나섰다.
15일 만에 기초검술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도련님은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연무장에서 달리고, 목검을 휘두르실 때 항상 미소를 달고 계셨다.
누가 봐도 ‘아…… 즐기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 정도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도련님을 보며 다시 감탄했고, 반성했다.
천재도 저렇게 즐기면서 노력하는데 범재인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달리기가 끝난 도련님에게 다가가 수건을 건넸다.
“아. 고마워.”
부쩍 어른스러워진 말투와 행동.
그렇게 감사인사를 표한 도련님은 내가 건넨 수건으로 땀을 닦았고 이내 나에게 다시 수건을 건넸다.
수건을 다시 받은 나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고 도련님은 목검을 들었다.
원래라면 연무장에서 도련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남아 있으면 안 됐지만…… 오늘만큼은 도련님의 검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조용히 구석에 서 있었다.
다행히 도련님은 그런 나를 발견 못 하신 건지 그냥 내버려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에 나는 조용히 그런 도련님을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하셔…….”
한 달간 완벽한 기초검술을 한 번도 빠짐 없이 매일매일 수련하던 도련님.
오늘도 어김없이 약 한 시간 동안 기초검술을 펼친 도련님은 심호흡을 하며 두 눈을 감았고 나는 감탄하며 그런 도련님을 바라보았다.
매일 매일 질리지도 않으시단 말인가?
잠시 후.
도련님은 두 눈을 뜨셨고 이내 목검을 바른 자세로 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두 눈을 반짝였다.
기초검술이 아닌 다른 검술을 펼치시는 듯한 모습에 괜스레 기대가 되었던 것이다.
도련님이 목검을 위로 드는 그 순간!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연무장의 모든 시간이 멈추었다.
공간의 주인이 도련님이 되었고 그 누구도 도련님의 심기를 거스르지도 못했다.
흡!
숨을 내쉬던 나는 도련님의 허락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대로 숨이 막혔고 이내 숨을 쉴 수가 없게 되었다.
소리치고 싶었지만 소리칠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의 주인은 목검을 들고 있는 도련님이었으니 말이다.
터벅.
털썩.
목검을 든 자세로 앞으로 한 걸음 나선 도련님.
그와 동시에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감히 그분의 앞에서 내가 서 있다니 제정신이란 말인가?
이 공간의, 아니 이 세상의 주인인 도련님이시다. 감히 나 같은 존재가 숨을 쉬고 도련님을 마주 볼 생각을 하다니? 이 무슨 미친 생각이란 말인가?
아아…… 진정한 이 세상의 주인이신 우리 도련님.
너무나도 성스러웠고 멋있으셨다.
팟!
그 순간!
나를 발견한 도련님이 두 눈을 크게 뜨시더니 이내 공간을 지배하던 장악력이 사라졌다.
“멋있…….”
그리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 * *
“후우…….”
평소와 같은 일상을 마친 나는 심호흡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 이제 펼쳐봐.-
황제의 검법, 디위니타스 검술과 심법을 얻은 지 오 일.
크산느의 도움으로 아주 조금 이해를 한 나는 크산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검을 들었다.
그 순간. 세상은 멈추었다.
이 주변의 공간은 나의 것이 되었으며 그 누구도 나를 쳐다보지 못한다.
오로지 나의 허락 하에 살아 있는 생물, 존재하는 사물이었으며 모든 생명이 나의 허락 없이 숨을 쉬지 못한다.
조막만 한 마나가 내 몸속을 돌아다녔고 나는 황제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디위니타스 (dīvínĭtas) 검술 일 식.
위대한 황제의 한 걸음.
나의 한 걸음에 모두가 무릎을 꿇고 나를 경배하리.
-요한!!-
팟!
그 순간!
나의 귀에 울리는 크산느의 목소리.
나는 화들짝 놀라며 검술을 멈추었고 이내 연무장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칼론을 발견했다.
“멋있…….”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는 칼론의 모습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그런 칼론에게 달려갔다.
“칼론! 정신 차려!”
나의 부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칼론.
나는 황급히 그런 칼론을 안아 들었다.
-내버려둬.-
“뭐?”
-호흡곤란으로 잠시 기절한 것뿐이야. 곧 정신 차릴 거야.-
“정말이야?”
크산느의 말에 내가 되묻자 크산느는 파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아니 공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디위니타스 검술이다. 너의 한 걸음에 칼론은 감히 숨 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너를 경배했겠지. 그러니 괜찮아.-
“그러니까…… 디위니타스 검술로 인해 내가 칼론을 기절시킨 것이라고……?”
크산느의 설명에 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크산느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칼론이 아직 어리고, 수련이 되어 있지 않아 너의 약한 검술에도 당한 것이다.-
“허어…….”
-이 검술은 황제의, 황제에 의한, 황제를 위한, 지배자의 검술이다. 검술을 성공시킨 것도 상당히 놀라운데…… 지배까지 했구나. 대단했다.-
“헐…… 지금 네가 날 칭찬한 거냐?”
갑작스러운 크산느의 칭찬에 내가 벙찐 표정을 지으며 묻자 크산느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노력마저 즐기는 너는. 칭찬받을 만하다.-
“그만해. 소름 끼쳐.”
-나도 그렇다. 그만하지.-
크산느의 말에 나는 몸서리치며 말했고 크산느 또한 동의한다는 듯 파닥거리며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