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화
제36편 겔루 칼립스(2)
“어…… 어…….”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소녀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었다.
“호오…….”
이곳에 있는 모든 존재가 은발에 은안이다.
대륙에서 흑발만큼이나 보기 어려운 은발과 은안이 이곳에 가득히 있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자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흑발의 사신이다!”
나를 흑발의 사신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존재.
바로 설인족들이었다.
벌떡.
한 설인족 무투 전사의 외침에 모든 설인족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설인들을 무시한 나는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며 두려워하는 소녀를 일으켰다.
이제 1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위즐리의 또래로 보이는 소녀이다.
이 어린아이를 이 제단에서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이봐.”
그 사실에 분노한 나는 싸늘한 눈빛으로 지팡이를 들고 있는 주술사를 바라보았다.
“왜, 이 아이를 죽이려 한 거냐?”
우웅!
마나를 실은 나의 목소리에 주술사는 움찔하더니 이내 두려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북해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주술사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제물? 북해신이 원하기라도 했나?”
“당연히 그분이 원하신 것이다! 내가 바로 주술사이니!”
나의 물음에 주술사가 당당히 말했고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눈에 힘을 주고 주술사를 바라보았다.
움찔.
내가 눈에 힘을 주자 주술사는 물론, 설인족의 전사들이 움찔하며 긴장했고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우우웅!
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와 위엄.
이제 이 공간은 내가 지배한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털썩.
오러 나이트에 올라 더욱더 강해진 나의 장악력.
그에 모든 설인족 전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개중에는 꿇지 않으려고 마나를 끌어올려 버티는 자들이 있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 공간에서 그 누구도 나의 허락 없이 행동할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한 존재가 바로 나이고, 디위니타스의 힘이다.
모든 설인족이 꿇은 것을 확인한 나는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바로 북해신이니.”
우웅!
그와 함께 나의 반지에서 푸른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갑작스럽게 보이는 강력한 빛에 설인족들은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고 난 이후.
설인족들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
나의 오른손에 생성된 대검을 보며 주술사와 설인들은 두 눈을 부릅떴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를 향해 경배하라.”
“북해신을 뵈옵니다!!”
나의 한마디에 모든 설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 * *
족장들의 천막.
“말이 안 됩니다…….”
주술을 사용하고 민족의 제사를 담당하는 눈꽃 일족.
그곳의 족장이자 주술사인 알룬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명의 족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 입 닥치게.”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짧은 머리칼에 거대한 덩치는 지닌 한 중년인.
제단 위에서 소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 두 눈을 질끈 감았던 중년인, 눈보라 일족의 족장 위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알룬에게 말했다.
“진정하시오.”
그때,
호리호리한 체형에 길게 늘어뜨린 장발을 묶은 사내, 눈비의 일족 족장 워레인이 둘의 사이를 말렸다.
그런 워레인의 만류에 알룬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위천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저자…… 아니, 저분이 북해신의 신물. 겔루 칼립스를 들고 있다는 것은…… 저분이 곧 그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둘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자 알룬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절대 아닙니다!”
알룬의 강한 부정에 워레인은 한숨을 내쉬었고 위천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런 알룬을 바라보았다.
“네놈이 말하지 않았나? 북해신의 신물은 선택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하지만…….”
“네놈. 정말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는 한 것이냐?”
움찔.
정곡을 찌르는 위천의 말에 알룬이 움찔하다가 이내 정색을 하며 위천을 바라보았다.
“그대, 선을 넘는군.”
“내 딸을 죽이라고 명한 놈이 할 말인가?”
알룬의 말에 위천이 기세를 끌어 올렸고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알룬 또한 기세를 끌어 올렸다.
“하아…….”
그런 둘의 모습에 워레인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뭐 하는 거지?”
움찔.
그때.
흑발의 사신이라 불리는 사내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고 알룬과 위천의 기세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워레인은 사내, 요한에게 정중히 한쪽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눈비의 일족을 맡고 있는 워레인이라고 합니다.”
“반갑군.”
“영광입니다. 혹, 겔루 칼립스를 한 번 더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요한의 인사에 워레인이 최대한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워레인의 부탁에 요한은 피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의심하는 것인가?”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약간은 서늘한 요한의 목소리에 워레인은 나머지 한쪽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
그런 워레인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은 요한은 마나를 끌어 올렸다.
우웅!
그러자 천막 안의 공기는 무거워졌고, 알룬과 위천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요한의 마나는 위엄이 담겨있는 마나다.
그가 마나를 끌어올리니 무방비로 있던 알룬과 위천의 고개가 숙여지는 당연한 결과!
솨아.
아무튼.
푸른색의 고대문자가 새겨진 대검이 이내 요한의 손에서 생성되었고 요한은 보라는 듯 대검을 그들의 앞에 박아버렸다.
푸욱.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깊게 박힌 겔루 칼립스.
워레인은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겔루 칼립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요한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눈비의 일족, 워레인이 북해신에게 인사드립니다.”
“눈보라 일족, 위천이 북해신에게 인사드립니다.”
무투가의 일족인 눈보라 일족, 설인족에서 가장 강한 대전사 위천 또한 자신의 딸을 구해준, 겔루 칼립스의 주인 요한에게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당신은 우리 동족을 수도 없이 죽인 사신입니다.”
“나는 세 명의 설인을 죽였다. 그 이외의 설인들은 오히려 돌려보냈지. 살려서 말이야.”
알룬의 말에 요한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요한은 5년간 수많은 전쟁에 참여하면서도 설인을 죽인 적은 단 세 번뿐이었다.
다른 설인들을 살려준 횟수가 훨씬 많았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봐. 위천이라고 했나?”
“말씀하시지요.”
요한의 부름에 눈보라 일족의 족장 위천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요한은 그런 위천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설인족의 전투 인원은 대부분, 무투가의 일족. 눈보라 일족이지. 족장인 그대가 보았을 때 어떤가? 내가 살려준 이들이 더 많나? 아니면 죽인 이들이 더 많나?”
“살려서 보낸 이들이 더 많습니다.”
위천의 대답에 요한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온몸을 부르르 떠는 알룬을 바라보았다.
“또 불만 있나?”
“모든 전사가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호오?”
* * *
띠링!
21. 북부의 원주민, 설인족을 지배하라.
설인족의 대전사 시험을 통과하여 모든 설인족의 인정을 받으시오.
성공보상 : 위엄 +2, 상태변화.
“호오?”
오랜만에 듣는 경쾌한 알림 소리와 함께 보이는 새로운 임무.
근 3년 만에 보이는 임무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건방지게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알룬을 바라보았다.
“대전사의 시험. 내가 치르지.”
“북해신이시여.”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나의 폭탄과 같은 선언에 위천과 워레인은 나를 말렸지만 나는 그들을 무시한 채 건방지게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알룬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인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묻는 나의 모습에 알룬은 차가운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전생에서 설인족 중 대전사 시험을 통과한 이는 단 한 명, 눈보라 일족의 족장 위천뿐이었다.
대륙에서 나누는 계급으로 따진다면 위천은 오러 나이트 상급의 강자였다.
그가 겨우 통과한 시험을 약관도 되지 않는 내가 통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나 보다.
그러니 저렇게 건방지게 미소를 짓고 있지.
하지만 알룬이 모르는 사실이 두 가지나 있다.
첫째는 내가 약관보다 5살이나 어린 15살이라는 것과 둘째는 내가 오러 나이트의 경지에 올랐으며, 냉 속성의 내성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생에서 카자르 또한 대전사의 시험을 통과했고 그 시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엘로나부터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시험이었는지 뻔히 아는 나였기에 통과할 자신이 있었고, 오랜만에 울린 알림이 기분이 좋아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 * *
멈칫.
“뭐라고 했지?”
7군단장 실의 천막.
가볍게 와인을 병째로 마시던 실은 자신의 수하, 7군단에서 가장 발이 빨라 정찰조장으로 임명된 한스의 보고에 와인을 마시는 것을 멈추었다.
그런 실의 모습에 한스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 전하께서, 설인족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
“형아…….”
조금 전과 똑같은 한스의 보고에 실은 조용히 술병을 내려놓았고 옆에 있던 위즐리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요한을 불렀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주둔지에서 벗어나 마치 아는 곳에라도 가는 듯 바로 그리로 가셨습니다, 끌려간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벌떡.
“군단장님. 지금 바로 출진하시지요.”
한스의 보고를 들은 할버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실에게 말했고 위즐리 또한 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출진해서 요한을 구해야 한다는 할버드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었다.
“아니.”
“군단장님!”
“저기요!”
실의 부정에 할버드는 언성을 높였고 위즐리는 두 눈에 힘을 주며 실을 불렀다.
하지만 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내려놓았던 와인병을 들어 다시 입에 가져다 대었다.
“형 뭐라 말 좀 해봐!”
그런 실의 모습에 분노한 위즐리가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칼론을 보며 말했지만 칼론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
그런 칼론의 모습에 위즐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할버드와 파울로 또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장 요한을 걱정할 칼론이 가만히 있으니 예상외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칼론은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는, 3일 후에 돌아오신다 하였다. 아직 하루 남았으니 기다려. 저는 수련하러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위즐리에게 짧게 대답을 해준 칼론은 실에게 고개를 숙였고 실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도 된다는 듯 손짓했다.
그렇게 칼론이 나가고, 할버드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린 채 자신의 앞에 놓였던 와인을 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들이켰다.
그런 할버드의 모습에 파울로 또한 한숨을 내쉬며 와인병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