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화
제41편 종전(2)
“…….”
나의 말에 칼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린 채 칼론의 멱살을 놓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설인들과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너희를 지킨다. 그것이 곧 나다.”
우웅!
나의 한마디와 함께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위엄.
그에 설인들과 병사들은 한쪽 무릎을 꿇었고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칼론을 바라보았다.
“알겠나? 모든 이들을 지킬 정도로 강한. 그것이 바로 너희들의 주군이다.”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나의 말에 칼론은 가만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런 칼론을 지나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너무 아름다우세요!”
가만히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겨주는 시녀의 손길에 두 눈을 감고 있던 엘로나.
그녀는 시녀의 칭찬에 살짝 미소를 짓고는 두 눈을 떴다.
그러자 거울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
은은한 청색을 띠는 은발에 사파이어처럼 밝고 아름다운 푸른색의 두 눈.
작은 얼굴에 새하얀 피부, 오뚝한 콧날에 앵두같이 붉은 입술.
자신이 봐도 상당히 아름다운 여인이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참. 왕녀님 들으셨어요?”
“무엇을 말이니?”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그녀의 목소리.
시녀의 물음에 엘로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묻자 시녀는 호들갑을 떨며 입을 열었다.
“글쎄! 제국의 황태자 전하가 설인족과의 전쟁을 끝낸 주인공이래요!”
“뭐……?”
생각지 못한 시녀의 말에 엘로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시녀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쩜…… 1년 전 잠깐 왕궁에 오셨을 때 너무나도 잘생긴 모습에 깜짝 놀랐는데 뛰어난 능력까지 지니셨다니…… 너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엘로나의 머리를 빗는 것조차 잊고 감탄을 하는 시녀의 모습에 엘로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에 아버지와 같이 돌아오시겠구나.”
“이미 왕성에 오셨는걸요?”
“뭐?”
엘로나의 물음에 시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엘로나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아마 지금쯤이면 대전에서 이야기를 끝내셨을…….”
“뭐하니?”
“네?”
시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로나가 급한 표정으로 말하자 시녀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엘로나는 거울 앞에 다시 앉아 입을 열었다.
“머리카락, 어서 빚으렴.”
그러고는 거울 앞 책상에 놓인 보석함을 뒤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예쁜 귀걸이와 목걸이를 찾기 위해 말이다.
* * *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하이아칸 왕국의 대전.
문밖에서 들리는 시종장의 목소리에 양옆에 서 있던 귀족들은 고개를 숙였고 왕좌에 앉아 있던 카자르와 코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왔다.
벌컥.
이내 문이 열리고, 흑발과 붉은 눈이 너무나도 매력적인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뚜벅뚜벅.
당당한 발걸음으로 대전의 카펫을 밟으며 걸음을 옮긴 사내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카자르와 코르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이아칸 왕국의 국왕 전하, 왕비 마마에게 인사드립니다.”
“고생했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사내, 아니 제국의 황태자이자, 하이아칸 왕국의 영웅.
요한이 고개를 숙이자 카자르와 코르 또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요한을 반겨주었다.
그런 다음 카자르는 왕좌에 돌아가지 않은 채 요한의 앞에 마주 서서 입을 열었다.
“왕국의 입장에서, 설인들과의 전쟁을 끝내준 그대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네. 정말 고맙네.”
하이아칸 왕국의 중앙귀족이 모두 보고 있는 대전.
이곳에서 카자르와 코르가 정중하게 요한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요한 또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서로 예를 차린 셋은 서로를 마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국왕 전하. 왕국의 은인이신 황태자 전하에게 보답을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되옵니다.”
“그래. 그렇지.”
하이아칸 왕국의 공작.
흰색의 머리칼을 곱게 뒤로 넘긴 말끔한 노년 신사.
아이션 공작의 말에 카자르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은인,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뭐 원하는 것 있는가?”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하게.”
요한의 대답에 카자르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고 요한은 그런 카자르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인족들의 자유, 그리고 그들의 영역을 보존시켜주십시오. 또한 그들에게 일정한 식량과 물자를 보내주십시오.”
“…….”
웅성웅성.
생각지 못한 요한의 요구에 귀족들은 웅성거렸고 카자르의 얼굴은 찌푸려졌다.
이때까지 하지 않았던 얘기를 갑자기 꺼낸 요한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희가 설인족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이 됩니다.”
카자르의 허락이 있기도 전.
아이션 공작이 안 된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요한은 고개를 돌려 그런 아이션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공작님께서는 계속 전쟁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문명이 뒤처진 일족을 도와주는 것을 원하십니까?”
“…….”
요한의 물음에 아이션 공작은 아무 말 하지 못했고 요한은 다시 몸을 돌려 카자르를 바라보았다.
“대답은 나중에 들어도 되겠습니까? 피곤하군요.”
요한의 말에 카자르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입을 열었다.
“그러게. 저녁에 그대의 축하파티가 있으니 꼭 참가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카자르의 말에 싱긋 웃은 요한은 대전을 벗어났고 카자르와 코르는 다시 계단을 올라 왕좌에 앉았다.
요한이 사라지고 잠시 후.
가만히 있던 아이션 공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전하. 설인들은 저희 왕국의 원수입니다. 그들에게 죽어간 저희들의 병사들과 백성 수가 천을 넘어갑니다. 한데 그들의 영역을 지켜주고 식량과 물자를 보내주다니요? 절대 말이 안 됩니다.”
“그럼 공작의 생각은 어떠한가?”
아이션 공작의 격렬한 반대에 카자르가 묻자 아이션 공작은 고개를 숙였다.
“모든 설인족을 멸족시켜야 한다고 생각되옵니다.”
“그럼 또 전쟁이군?”
“그 야만족을 없애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옵니다.”
“그럼 그대가 전쟁터에 나갈 것인가?”
“…….”
갑작스러운 카자르의 물음에 아이션 공작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아이션 공작의 모습에 카자르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또다시 설인족들과 전쟁을 벌인다면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어가겠는가? 또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지겨운 전쟁을 이어가자는 말인가? 그리고 입장 바꾸어 생각들 해보게. 우리만큼이나 동족을 잃은 이들이 설인족들이네.”
“하지만…… 그들은 말도 못하는 야만인들로서…….”
“말 아주 잘하네.”
아이션 공작의 반론에 카자르는 칼같이 그의 말을 잘랐다.
카자르의 말에 아이션 공작은 고개를 들어 카자르를 바라보았고 카자르는 그런 아이션 공작을 내려다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주 똑똑하더군. 술도 잘하고 말이야.”
* * *
대전을 나온 나는 문 앞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는 뮬란을 발견했다.
“전쟁을 끝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미소를 지으며 먼저 감사인사를 건네는 뮬란.
나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뮬란을 바라보았다.
“내가 좀 대단하지?”
장난스러운 나의 질문에 뮬란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대단하십니다.”
“됐어.”
그런 뮬란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걸음을 옮기려다가 다시 뮬란을 바라보았다.
“뭐 시키실 일이라도……?”
그런 나의 모습에 뮬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나중에 왕비 마마에게 독대를 원한다고 좀 전해줘.”
“네. 허락이 있으시면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나의 말에 뮬란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나는 싱긋 웃어주고는 몸을 돌렸다.
-인기 많구나.-
훗.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시녀들의 목소리.
왕국의 영웅인 내가 너무나도 잘생겼다면서 나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크산느가 놀리듯 나에게 말했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 기분 너무 좋았다.
전생에서 시녀들은 뒤에서 나를 욕하기 바빴다.
외모만 멀쩡하지 능력 없는 쭉정이라며 말이다.
시녀들의 뒷담을 들었음에도 나는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녀들의 말이 맞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회귀 후 나의 평가는 정반대이다.
어찌 좋지 않겠는가?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에게 안내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고생하게.”
나의 방문을 지키는 기사.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기사에게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기사는 고개를 숙인 다음 입을 열었다.
“왕녀님께서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음?”
갑작스러운 기사의 말에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기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시던 위즐리 공자께서 왕녀님이 오시자 칼론 기사님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위즐리 이 기특한 녀석!
나는 위즐리와 칼론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 둘을 부른 상태였다.
한데 뜻하지 않게 엘로나가 나의 방에 찾아왔고 눈치가 빠른 위즐리가 칼론을 데리고 사라진 것이었다.
아주 예뻐 죽겠다.
“알겠네.”
기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한 다음 나는 직접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
그러자 보였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내가 들어오자 활짝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리는 아름다운 그녀.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후광이 되어 더 아름다운 엘로나의 모습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전하.”
“오랜만입니다. 왕녀.”
엘로나의 인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왕국의 왕녀로서, 전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엘로나의 인사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나의 방에 마련되어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앉으시지요.”
“고마워요.”
나의 말에 엘로나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나 또한 자리에 앉고는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어쩐 일이신가요?”
움찔.
나의 물음에 엘로나는 움찔했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움찔거리다니?
“아…… 그냥……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당황하며 말을 꺼내는 엘로나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보고 싶어서 직접 찾아온듯하다.
“제가 찾아가서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로나의 마음을 직감한 내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엘로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찾아오실 생각이었나요?”
빙고.
백 퍼센트였다.
환하게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 엘로나의 모습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의 행동에 엘로나는 기분 좋은 듯 헤실헤실 미소를 지었다.
그런 엘로나의 모습에 살짝 심쿵한 나 또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여인은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