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화
제51편 위즐리 해밍턴(2)
“아 참. 나도 정신이 없구나. 앉거라.”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세워둔 것을 자각한 선생님이 나에게 자리를 권하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우리가 자리에 앉자 대공가의 시녀이지만 선생님을 전담으로 모시고 있는 시녀가 차를 들고 와 나의 잔, 그리고 선생님의 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다음부터는 선생님을 우선으로 따르거라.”
“예 전하.”
나의 잔에 먼저 따르는 시녀의 모습에 내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시녀에게 말하자 시녀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너는 황태자이니 네가 먼저인 것이 당연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선생님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모순적인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황태자라고 예의를 차리실 거면 반말을 하지 마시든가.
“방금 반말하면서 예의 따지네 라고 생각했지?”
그런 나의 생각을 읽은 선생님이 찻잔을 들며 나에게 물었고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역시 대륙의 현자이십니다.”
“녀석.”
장난스러운 나의 대답에 선생님은 빙긋 미소를 짓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선생님이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나 또한 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북해의 차와 비교되는 맛이다.
아주 맛있었다.
“지금, 크산느 님도 같이 계시느냐?”
“네.”
-응?-
나의 머리 위에서 낮잠을 즐기던 크산느.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크산느는 잠에서 깨어났다.
“3일 전 나에게 드래곤의 존재를 아느냐고 물었지. 사실 알고 있었다.”
역시…….
3일 전 마법 수정구로 통화를 할 때, 설인들과의 이야기를 설명하며 북해신이 블루 드래곤이었다는 설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에게 드래곤의 존재를 아느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못 들었다.
한데 오늘 보니 대륙의 현자답게 역시 선생님은 알고 계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선생님을 바라보았고 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 테니, 크산느 님에게 틀린 점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전해주겠느냐?”
-틀릴 리가 없을 텐데 말이야…….-
선생님의 물음에 크산느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크산느 또한 선생님이 대륙의 현자라 틀리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구나 라고 결론을 짓고는 선생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우리의 크산느는 틱틱거리면서도 잘해주는 아이니 말이다.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선생님은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검술과 마법이 더 이상 발전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하였을 고대, 그때 대륙 최강의 종족 중, 어린 나이에 최강의 자리에 오른 한 블랙 드래곤이 마신을 죽이고 직접 신의 자리에 올랐다.”
“……?”
신이라는 존재가 나오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선생님을 바라보았고 나의 표정에 선생님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신은 있다. 그것은 내가 확신할 수 있다.”
“크산느.”
-계신다.-
선생님의 설명에 내가 크산느를 부르자 크산느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 있단 말인가?
하면 그 존재는 어디서 살며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결국, 천신과 마신의 아이들인 천족과 마족들을 납치해 그들을 실험체로 삼아 연구를 시작했다. 10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사는 천족과 마족들처럼 되기 위해 말이다.”
“…….”
“그리고 인간들은 성공했다. 그리고 인간의 잠재능력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 수많은 천족, 마족들은 물론 같은 종족인 인간들 또한 죽어 나갔다. 그에 분노한 마신이 직접 이 세상에 강림하여 인간들을 멸망시켰다.”
믿어지지 않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마 선생님이 꺼내는 이야기는 진실일 것이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크산느가 지적을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살아남았다. 아마 마신의 마지막 배려였겠지. 그렇게 인간들은 오크, 엘프들보다 약했기에 숨어가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약하기에 서로 뭉쳐 힘을 합치고 사냥을 하며 말이다. 우리는 그 시대를 암흑기라 부른다.”
“아…… 네.”
최초의 마법사 레이.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암울한 암흑기에 관해 공부한 적이 있는 나였기에 선생님의 말씀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것은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최초의 마법사, 레이를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왜 도와준 것입니까?”
“그것은 모른다.”
나의 물음에 선생님은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으셨다.
그에 나는 고개를 들어 크산느를 바라보았지만 크산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최초의 마법사 레이가 죽고 드래곤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최초의 마법사 레이 덕분에 마나라는 신비한 힘을 얻게 된 인간 특유의 욕심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종족전쟁이 시작되었고, 건국황제 에펜하르트 님이 총 승리를 거두셨지.”
“예.”
대륙의 패권을 놓고 일어난 종족전쟁.
오크, 엘프, 고블린, 인간.
이 네 종족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그리고 승리는 인간들의 승리로 돌아갔다.
개개인의 능력으로 인해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인간이지만, 그들의 가장 무서운 점, 독심과 서로 힘을 합치는 것, 그에 지고 말았다.
그 중심에 우리 조상 할아버지, 에펜하르트가 있었고 말이다.
“종족전쟁에 드래곤은 왜 나서지 않은 것입니까?”
“드래곤은 중간계의 조율자, 수호자이다. 그렇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 아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알지 못한다. 드래곤이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 하여 유희라는 생활을 즐기니 말이다.”
“…….”
“어쩌면 너 또한 지나가다 드래곤을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고민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농담을 던졌고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올려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드래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뭐……?”
생각지 못한 나의 말에 놀라셨는지 선생님이 두 눈을 크게 떴고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으니까요.”
* * *
“깜짝 놀랐군.”
요한이 나가고 난 에스란의 방.
에스란은 창밖에 보이는 요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요한이 자신에게 드래곤이었으면 한다는 말을 했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리고,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인님.”
“무엇이냐.”
그때, 아무것도 없던 천장에서 한 사내가 나타나더니 이내 바닥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에스란을 불렀다.
그 사내의 부름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에스란이 아닌, 차가운 표정의 에스란이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에 사내는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코피아 아가씨께서 또 빈민가에 나가셨습니다.”
“호위는?”
“렌을 보냈습니다.”
에스란의 가디언이자 쌍둥이 다크 엘프 린과 렌.
린의 대답에 에스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늘 말하지만, 코피아가 죽을 위기가 아니라면 나서지 말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에스란의 말에 린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에스란은 몸을 돌려 복잡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요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무 정이 들어버렸어…….”
중간계의 수호자, 드래곤 종족 중 지혜로움의 상징 골드 일족의 에스란. 그가 인간에게 너무 정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 * *
“저 혼자 다녀와도 됩니다.”
대공가의 정문.
말에 올라탄 칼론이 마차에 오르려는 나를 보며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의 옆에 있는 엘로나의 손을 잡아 들어 보이고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나 데이트하러 가는 거다.”
“데리고 가주시면 안 될까요?”
나의 말과 동시에 간절한 엘로나의 목소리.
그에 칼론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됩니다! 절대로 가능합니다!”
“훗.”
“풋.”
그런 칼론의 모습에 나와 엘로나는 입가를 가리며 웃었고 뒤에서 칼론과 같이 말을 타고 있던 위즐리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칼론을 바라보았다.
“형아. 루드비히 후작가면 맛난 것 많지?”
“나도 몰라.”
“내가 알아봐 줄게.”
칼론의 대답에 위즐리는 팔을 들어 보이며 씨익 미소를 지었고 그에 칼론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런 위즐리의 모습에 나는 물론, 우리를 따라나서는 코피아 또한 복잡한 표정으로 그런 위즐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칼론을 따라간다.
처음 보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는 칼론이다.
황태자의 호위기사, 또한 어린 기사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칼론이지만 나는 그래도 칼론과 함께 후작가에 가고 싶었다.
전생에서 칼론은 후작가의 인물들에게 무시를 당했었기에 이번 생에서는 나의 후광으로 당당하게 입성했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 건방진 칼론 자식은 계속해서 거절했던 것이고.
하여튼 바보 같은 놈.
아무튼 그렇게 나와 엘로나, 위즐리, 코피아 그리고 대공가의 기사단 블랙 기사단 30명, 20명의 사용인까지 조금은 대인원이 되어버렸다.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블랙 기사단 30명이 함께라면 후작가에서 칼론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대공령에서 말을 타고 삼 일 정도의 거리인 루드비히 후작령을 향해 출발했다.
약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에 두근두근한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마차에 오른 나와 엘로나, 코피아.
우리 셋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셋은 말이 없었다.
일단 나는 코피아가 싫었다.
전생에서 나를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나를 괴롭히고 시비를 걸었던 여인이었기에 같이 있는 것이 상당히 불편했다.
워낙 여우 같은 아이이기도 했고 말이다.
전생에서 나의 연인, 엘로나에게도 무례하고 함부로 굴었던 코피아였기에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아주 짜증 났다.
“저기…….”
움찔.
그때, 가만히 있던 코피아가 엘로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에 나는 움찔하며 살짝 놀랐다.
또 무슨 짓을 할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랐다.
어색한 표정으로 엘로나에게 말을 걸었던 코피아.
그에 엘로나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쉰 코피아가 미소를 짓고는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아름다우세요 왕녀님!”
“어머…… 아니에요, 에스란 영애도 아름다우세요.”
12살의 귀여운 소녀.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고 예쁜 것을 좋아할 때인 코피아의 말에 엘로나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은 다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코피아를 보며 그녀의 외모를 칭찬했다.
그런 엘로나의 칭찬에 코피아는 환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좋다는 듯 박수를 쳤다.
“와! 정말 감사해요! 왕녀님이 예쁘다 해주시니 정말 예뻐진 것 같아요.”
“…….”
-진심이군.-
크산느의 말대로다.
나는 전생과 너무 다른 코피아의 모습에 벙찐 모습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가식 하나도 없는 코피아의 모습.
정녕 전생에서 두꺼운 가면을 쓰고 사교계의 여왕이라 불리던 코피아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나의 눈을 속일 정도로 연기를 잘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