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화
제52편 루드비히 후작(1)
-아니. 진심이다.-
그런 나의 마음을 잘 아는 크산느가 확신 어린 말투로 대답하자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코피아가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왕녀님. 우리 친하게 지내요!”
놀라는 나를 무시한 채 코피아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다음 엘로나에게 말했고 그에 엘로나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여인의 수다는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마차를 잠시 세웠을 때도, 밥을 먹으면서도, 밥을 다 먹고 다시 출발할 때도 이 두 여인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형……?”
그에 나는 마차 밖으로 나와 말을 타고 칼론과 위즐리와 함께 말을 몰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위즐리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고 칼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그저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하. 정말 마차에 오르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블랙 기사단의 부단장 레인.
미중년인 기사, 레인의 말에 나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응. 마차를 오래 탔더니 머리가 아파서 말이야.”
“아…….”
나의 대답에 레인은 납득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나에게 고개를 숙인 다음 물러났다.
“너도 마차 타고 싶으면 타도 된다.”
물러나는 레인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내가 짓궂은 표정으로 칼론을 보며 말하자 칼론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디 마차~? 아 시녀들이 타는 마차?”
“크흐흠!”
나의 놀림에 위즐리 또한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칼론에게 말하자 칼론은 헛기침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30명의 기사단과 함께 우리의 수발을 들기 위해 대공가에서 차출된 20명의 사용인,
그중 칼론의 그녀, 레브가 있었기에 나와 위즐리는 계속 음흉한 표정으로 칼론을 놀렸다.
움찔움찔하며 반응하는 칼론의 모습이 너무나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그렇게 3일 동안 아무런 사고도 없이 무사히 루드비히 후작령에 도착했다.
솔직히 산적이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워낙 치안이 깔끔한 대공령이었으니 말이다.
저 멀리 보이는 영주성의 정문.
그 앞에 잘 정돈된 50여 명의 기사와 20여 명의 귀족, 그리고 가장 선두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붉은 머리의 중년인과 금발의 아름다운 중년 부인.
“!!”
멀리 보이는 마들렌의 모습에 칼론의 두 눈가가 흔들렸고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칼론의 앞에 섰다.
그제야 마음을 다스린 칼론이 나의 뒤에서 말을 몰았고 이에 나는 후작의 앞에 도착했다.
“황태자 전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황태자 전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말에서 내리는 나를 향해 루드비히 후작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자 그 뒤에 있던 모든 귀족과 기사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인사에 나는 새삼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귀족들의 진심 어린 환영과 기사들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존경심.
전생에는 받아보지 못한 이 느낌에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는 루드비히 후작을 바라보았다.
“일어나시지요.”
“황공합니다.”
나의 말에 루드비히 후작은 짧게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드비히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고개를 돌려 마들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예를 취하고 있는 마들렌.
그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마들렌의 앞으로 걸어갔다.
덥석.
그러고는 마들렌의 두 손을 잡았다.
“……?”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마들렌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이모.”
전생에서 어릴 때 우리 어머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유모 마들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아들인 칼론보다 더 나를 챙기신 마들렌.
그런 마들렌을 보며 내가 환한 미소로 대답하자 마들렌은 두 눈가가 붉어지더니 이내 나를 부드럽게 안았다.
황태자인 나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무례한 행동이지만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마들렌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제 행복해야 해. 이모.”
“고마워요. 전하…….”
“나야말로.”
나의 말에 마들렌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다음 마들렌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한 걸음 물러났고 이내 고개를 돌려 칼론을 바라보았다.
“칼론. 부모님에게 인사드려야지.”
나의 말에 얼굴을 살짝 굳힌 칼론.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앞으로 걸어 나와 루드비히 후작과 마들렌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리고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루드비히 후작에게는 조금은 까칠하지만 마들렌에게 한해서는 부드러운 칼론의 목소리.
그런 칼론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루드비히 후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칼론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외교 총 담당관 루드비히 후작.
그가 칼론이 어떤 성격인지, 또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 칼론은 곧 루드비히 후작을 따르게 될 것이다.
루드비히 후작의 성격은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으니 말이다.
“고생했구나.”
어느새 장성해버린 칼론의 모습에 마들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반기자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숙였다.
“즐거웠습니다.”
에휴 저 과묵한 자식.
5년간 많이 바뀐 칼론의 모습에 마들렌은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전하. 안으로 드시지요.”
황태자인 나를 향해 루드비히 후작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황공합니다.”
예의 바른 나의 말에 루드비히 후작은 더욱더 고개를 깊이 숙였고 이내 우리를 직접 안내했다.
후작가의 직계를 위한 식당.
그곳의 가장 상석에 앉은 나는 나의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제가 괜히 온 것은 아닌지요…….”
예의상으로 하는 나의 말에 오른편에 앉아 있던 루드비히 후작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참. 전하. 오스란 왕국의 특산물인 소주가 있는데…….”
“여보.”
루드비히 후작의 은근한 말에 나는 두 눈을 반짝였다가 후작에게 눈치를 주는 마들렌의 모습에 입맛을 다셨다.
그런 나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은 루드비히 후작은 입을 가리고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돌아가시는 길에 챙겨드리겠습니다.”
역시 루드비히 후작.
정말 좋은 사람이다.
센스있는 루드비히 후작의 말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루드비히 후작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어서 드시지요. 참. 엘로나 왕녀님과 해밍턴 공자, 또, 에스란 영애도 많이 드십시오.”
나에게 권한 루드비히 후작이 엘로나와 위즐리, 그리고 코피아를 번갈아 보며 다시 말했고 셋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네 공자.”
조금은 아니 상당히 예의 없는 위즐리의 말투.
그의 부름에 칼론은 화들짝 놀라며 위즐리를 바라보았지만 루드비히 후작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루드비히 후작의 모습에 위즐리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말 편하게 하세요! 칼론 형아 아버지면 저한테도 아버지예요!”
“칼론이 인복이 있군요.”
위즐리의 대답에 루드비히 후작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움찔.
그런 루드비히 후작의 눈빛에 칼론은 움찔하고는 고개를 돌렸고 나는 혀를 차며 그런 칼론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후작과 칼론이 친해지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듯하다.
“아저씨, 아저씨. 아주머니랑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허허…… 그게 말이다.”
위즐리의 물음에 루드비히 후작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돌려 마들렌을 바라보았다.
루드비히 후작의 눈빛에 마들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루드비히 후작은 포크를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약 16년 전. 나는 루드비히 후작이 아니라 소가주였단다. 귀족가의 공자였지.”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기 시작한 루드비히 후작.
그에 나는 물론 엘로나, 위즐리, 코피아, 아닌척하면서도 칼론 또한 루드비히 후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 *
“형님!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루도 안 되어서 반란을 일으킨 자신의 동생.
루드비히 후작가의 소가주인 알든은 패륜아와 같은 자신의 동생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님! 조용한 산골에 들어가 조용히 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올해 20살의 알든.
그리고 18살인 자신의 동생.
알든은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동생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반 루드비히 후작파의 가신들에게 휘둘려 멍청하게 반기를 든 가여운 동생.
멍청한 그 가신들은 자신을 얕보았고 결국. 알든은 반 후작파의 모든 뿌리를 뽑아낼 수 있었다.
이제 완전하게 후작가를 장악하게 될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를 잃어야 했다.
바로 자신의 동생을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구걸하는 자신의 동생.
알든은 그런 동생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련님…….”
후작가의 충실한 기사 라이튼.
그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알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알든은 그런 라이튼의 시선을 무시했다.
스르릉.
그러고는 후작가의 상징인 붉은색의 검신. 레드 드래곤을 뽑았다.
피처럼 붉은 검신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레드 드래곤.
챙그랑.
알든은 그런 레드 드래곤을 자신의 동생 앞으로 던졌다.
그런 알든의 모습에 동생은 의문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알든을 바라보았다.
“후작가의 핏줄답게 명예롭게 죽어라.”
“도련님!”
“도련님!”
알든의 명령에 라이튼은 물론 알든을 따르는 가신들마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알든은 그들을 무시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뒤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가신들에게 다가가 작은 단검을 그들의 앞에 던졌다.
“모두 명예롭게 죽어라.”
“…….”
“도련님…….”
알든의 차가운 명령에 반란군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그를 지지하던 귀족들은 놀란 표정, 그리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알든을 바라보았다.
늘 환한 미소를 짓고 다니며 아랫사람에게도 예의가 바르던 건실한 귀족가의 공자.
용모단정, 품행 단정,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그 공자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명령을 내리자 놀랍고, 또 그가 받을 상처에 안쓰러웠던 것이다.
“뭐 하지?”
후작만을 위한, 후작만이 앉을 수 있는 대전 가장 상단의 의자.
그곳에 앉은 알든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알든의 동생이 레드 드래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알든을 노려보았다.
“정말 그대가 형인가?”
“…….”
“어찌 동생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네놈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느냐?”
울분에 가득 찬 동생의 소리침에 알든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대답에 동생은 아무 말 없이 알든을 노려보았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알든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
푸욱!
순식간이었다.
알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던 동생의 배에 라이튼의 검이 꽂힌 것이 말이다.
“끄르륵…….”
털썩.
피를 뿜어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동생.
알든은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는 정말 내 동생이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