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화
제56편 해밍턴 백작가의 비사(3)
물론 나는 그런 백작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 또한 저 서류를 다 읽지 못했고, 또 분노했으며 슬펐다.
위즐리가 행한 행동이 너무 끔찍해 화가 났었고, 또 그래야만 하는 위즐리가 너무나도 불쌍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럴진대 친할아버지인 해밍턴 백작은 오죽할까?
하지만 여기서 나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
“해밍턴 백작.”
“예.”
찻잔을 내려놓으며 내가 마나를 은은히 실으며 그를 부르자 해밍턴 백작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나의 부름에 대답했다.
“위즐리가 이렇게 된 것은. 그대의 탓도 없지 않아.”
“그 무슨…….”
나의 말에 해밍턴 백작이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지만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런 해밍턴 백작을 바라보았다.
“지하 감옥에 있는 135명의 죄수.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이 죽지도 못하게 치료해가며 고문을 지속하고 있는 그대가 내 눈에는 더 괴물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
나의 말에 해밍턴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 모두를 죽인다. 이제 쉬게 해야 해. 그런 다음…… 위즐리가 더 이상 상처받을 행동을 하지 않도록 같이 노력하지.”
“전하…….”
생각지 못한 나의 말 때문이었을까?
나의 마지막 말에 해밍턴 백작은 감격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녀석은 내 동생이기도 하니까.”
* * *
해밍턴 백작과의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백작과 함께 바로 지하 감옥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도착하자 보이는 청량한 미소년, 위즐리를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엘로나와 코피아는?”
“정원 산책하러 갔어.”
나의 물음에 위즐리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해밍턴 백작을 바라보았다.
“…….”
“백작.”
화들짝.
아무 말 없이 위즐리를 빤히 바라보던 해밍턴 백작.
나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해밍턴 백작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백작의 모습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백작과 위즐리가 잠시 이야기를 나눌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어 한 걸음 슬쩍 빠진 것이다.
“위즐리.”
“응 할배.”
역시, 내가 한 걸음 빠지자마자 위즐리에게 다가가 말을 건 해밍턴 백작.
그런 백작의 모습이 낯선 위즐리가 약간은 긴장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이제 8년 전 과거에서 벗어나자꾸나.”
“무슨 소리야?”
덥석.
“내가 미안하다…….”
“할배……?”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더니 위즐리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버린 해밍턴 백작.
나는 조금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해밍턴 백작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손자를 괴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을까?
“형…… 뭐야…….”
그런 백작의 모습과 나의 표정에 위즐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들어가자.”
그런 위즐리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고 이내 우리는 지하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꼬옥.
해밍턴 백작과 위즐리는 서로의 손을 강하게 잡았고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둘을 뒤따랐다.
“모두 나가 있게.”
“예.”
지하로 내려오자 보이는 거대한 문.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병사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고 이어진 해밍턴 백작의 명령에 짧게 대답하고는 사라졌다.
기사가 사라지자 거대한 문에 조용히 손을 올린 해밍턴 백작.
덜컹.
끼익.
그 순간 백작의 손이 거대한 철문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버튼 누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윽.”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엄청난 악취.
그에 나는 조용히 인상을 찌푸렸고 위즐리는 소리 내 괴로워하며 자신의 코를 틀어막았다.
뚜벅뚜벅.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해밍턴 백작을 지나쳐 나는 가장 먼저 문 안으로 들어섰고 이내 보이는 참혹한 광경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미치겠군.-
바닥 곳곳에 스며들어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보였고 사람의 손톱, 손가락으로 보이는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구석에는 머리와 수염을 아무렇게나 기른, 인간으로 추정되는 괴물들이 벽에 몸을 기댄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크산느 또한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같은 인간이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광경에 나는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해밍턴 백작의 얼굴.
콰득.
나는 당장 달려가 그의 가증스러운 얼굴을 후려 쳐버리고 싶지만 참았다.
이들 또한 다른 이들을 끔찍하게 죽인 사람들이다.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놈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위로한 나는 고개를 돌려 백작의 옆에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위즐리를 바라보았다.
“어떠냐.”
“…….”
“너의 부모님을 죽인 원수들이다. 어떤 것 같으냐?”
“원하는 대답이 뭐야?”
나의 계속된 물음에 위즐리가 처음으로 정색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색하는 위즐리의 모습이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티 내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걸음을 옮겨 위즐리의 앞에 섰다.
덥석.
그러고는 위즐리의 멱살을 잡았다.
“이 사람들 보니까 복수한 것 같아?”
“…….”
그 끔찍한 인간들을 가리키며 내가 묻자 위즐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위즐리의 멱살을 신경질적으로 놓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해밍턴 백작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이들이나 당신이나 똑같아.”
“…….”
살기 어린 나의 말에 해밍턴 백작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숙였고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우웅.
그러고는 마나를 끌어올려 겔루 칼립스를 소환했다.
“어…… 어어…….”
갑작스럽게 소환된 겔루 칼립스에 정신을 차린 죄수들.
오랜 시간 동안 최소한의 수분만 섭취한 그들이었기에 목이 갈라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를 내지 않아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십여 년간 끔찍하게 목숨을 연명했던 이들.
그들이 제발 죽여서 편안하게 해달라는 듯 나를 향해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그에 나는 이를 까득 물었다.
“그대들이 살았던 삶. 후회하는가?”
수많은 사내들을 죽이고 여인을 겁간했으며, 여인을 납치하여 돈을 받고 팔고, 어린아이들을 사들여 여자아이들은 변태들에게, 남자아이들은 광산이나 끔찍한 일을 하는 곳에 팔아버린 이들이다.
말 그대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왔던 끔찍한 인간들이었다.
나의 물음에 죽은 눈빛으로 앉아 있던 죄수들이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알아달라는 듯 온 힘을 다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겔루 칼립스의 손잡이를 위로 하여 들어 올렸다.
디위니타스 (dīvínĭtas) 검술 사 식.
위대한 황제의 선물.
나에게 감히 적대하는 그대들.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온 그대들.
후회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선물을 받아라.
오직 나만이 내릴 수 있는 안식.
죽음의 안식을 선사한다.
새로운 검술.
위대한 황제의 선물.
나의 온몸에 퍼져 있는 마나가 겔루 칼립스로 모여들었으며 겔루 칼립스는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나의 의지대로 바닥에 박혔다.
푸욱!
쿠웅!
그와 동시에 일어난 엄청난 지진!
갈라진 땅 사이로 넘어지는 죄수들을 보며 나는 한 번 더 마나를 끌어 올렸다.
콰카캉!
“으어어!”
그와 동시에 더욱더 크게 갈라진 땅들.
그 사이사이로 135명의 죄수는 괴성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는 조용히 마나를 거두어들이고는 바닥에서 검을 뽑았다.
우웅!
쿠쿵.
그러자 거짓말처럼 갈라졌던 땅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위에 있던 135명의 죄수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치 땅으로 꺼진 듯 말이다.
해밍턴 백작과 위즐리는 자신들의 두 눈을 의심하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겔루 칼립스를 든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위엄을 끌어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 쓰레기들과 똑같은 이들이 되지 말고.”
“명을 받듭니다!”
* * *
콰앙!
“뭐 하는 자식들이냐!!”
고급 위스키병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테이블.
그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친 한 사내가 두 눈에 살기를 띠며 주위를 둘러보자 그의 수하들로 보이는 수십 명의 사내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국의 수도, 팔센을 중심으로 마약, 인신매매 등 온갖 불법적인 일을 행하는 전국구 범죄조직 카르텔.
그곳의 수장이자 암흑의 지배자라 불리는 라덴은 며칠 전부터 끔찍한 고문을 받다가 죽은 채로 발견되는 자신의 수하들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두려울 것이 없는 라덴이지만 최근에는 그마저도 두려워질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죽은 수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보스인 자신이 이런데 그 밑의 수하들은 오죽할까?
요즘 들어 조직을 나가려는 놈들도 많아서 보스인 라덴으로서는 상당히 골치가 아팠고, 서둘러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심지어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당한 수하들은 조직 내에서 한가락 한다는 준 보스들이다.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그 범인을 찾아내라 하였지만 범인이 누군 지는커녕 행적도 찾지 못했다.
그에 라덴은 격노했고 수하들은 마음속으로 자신들에게 불똥 튀지 않기를 빌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보스!”
“뭐냐!”
한창 수하들에게 분노를 토해내고 있던 라덴은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수하를 보며 인상을 일그러뜨린 채 소리를 질렀다.
이 상황에 눈치 없이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수하를 보며 별일 아니면 죽여버릴 것이라고 다짐을 하며 말이다.
그런 라덴의 모습에 수하는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련님께서 집으로 오고 있으시다 합니다!”
“!!! 아카데미는?”
생각지 못한 수하의 말에 라덴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고 수하는 어색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이번에 전교 1등을 하여 특별 외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뭐라? 푸하하!”
수하의 대답에 라덴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보스!”
그런 보스, 라덴의 모습에 수하들은 눈치껏 고개를 숙이며 큰 목소리로 축하를 건넸다.
하지만 그런 수하들의 축하 인사에도 불구하고 라덴은 거짓말처럼 웃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신의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움찔.
조금 전까지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라덴의 눈빛에 수하들은 몸을 움찔했고 라덴은 스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 일 준다. 찾아라.”
“예 보스!”
라덴의 명령에 수하들은 바닥에 이마를 박으며 소리쳤고 라덴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를 하기 위해 찾아온 수하를 바라보았다.
“가자!”
“네!”
돈 많은 평민들이 거주한다는 팔센의 주택가.
아들과 살기 위해 큰맘 먹고 구입했던 최고급 저택으로 라덴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근 반년 만에 그곳에 가는 라덴의 발걸음은 방금까지 화를 낸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