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대공가의 귀한 아들-75화 (75/226)

제 75화

제75편 에스란 후작의 분노(1)

“선생님!”

엘로나와 함께 황궁을 산책하던 나는 선생님의 방문 소식을 전해 듣고는 황궁의 정문으로 나가 선생님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잠시.

선생님은 에스란 후작가의 상징인 만년필 문양의 깃을 휘날리는 마차를 타고 도착했고 마차에서 내리는 선생님을 향해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하하. 죄송합니다.”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반기면서도 질책을 하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행동에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근래 선생님의 수업이 이 주일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기에 인사를 자주 드리지 못한 까닭이었다.

“아니다. 코피아도 황궁에 있지?”

나의 사과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은 선생님이 묻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좀 데리고 가십시오.”

“허허. 이제 내 말을 듣지 않아.”

농담 섞인 나의 말에 선생님은 허허 미소를 지었고 이내 나의 옆에 있는 엘로나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대륙의 현자. 에스란 후작님에게 인사드립니다.”

선생님의 인사에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엘로나.

선생님은 그런 엘로나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앤트 그 친구도 황궁에 있지?”

황궁의 궁정 마법사장이자 대마법사 앤트 후작.

할아버지를 찾는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곳저곳에서 꼬장 부리고 계십니다.”

“아직 건강하구나.”

“다행이지요.”

나의 농에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선생님을 반갑게 반긴 나는 선생님에게 배정된 별궁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황제의 스승이자 대륙의 현자인 선생님이다.

황궁에 선생님의 별궁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당장 코피아가 황궁에서 머무는 별궁 또한 선생님의 별궁이다.

아무튼, 선생님의 별궁으로 안내를 완료한 나는 별궁 앞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선생님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코피아를 찾으십니까?”

“이 녀석은 할아비가 왔는데도 얼굴도 안 비치는구나.”

나의 물음에 선생님이 답지 않게 투덜거리듯 대답하자 나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기 좋았던 것이다.

타핫!

그때. 우리 셋의 귓가에 힘찬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선생님과 나, 그리고 앨런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볼까요?”

선생님의 별궁. 그 뒤에 위치한 작은 연무장.

소리가 나는 그 방향을 가리키며 내가 묻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의 대답에 내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고 나의 뒤로 선생님과 앨런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잠시 후.

“타핫!”

“창끝이 흔들리는구나!”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작은 연무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거대한 창을 휘두르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인, 코피아.

그리고 뒷짐을 진 채 엄한 표정으로 코피아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갈색 머리의 중년인, 오스란 왕국의 시우 공작을 말이다.

“창의 무게를 이용하라니까!”

“죄송합니다!”

시우의 호통에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황급히 몸을 움직이는 코피아.

시우는 그런 코피아를 냉철한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엄격한 스승과 제자 관계였다.

“흐음…….”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재미있네.-

나의 어깨에 앉아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크산느.

녀석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흠칫.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의 차가운 눈빛을 말이다.

“선생님……?”

시우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에 내가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자 그제야 선생님의 차가운 눈빛은 사라졌다.

늘 그렇듯 푸근한 미소와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본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낯선 감정을 느꼈다.

“저자가 오스란 왕국의 시우 공작인가?”

“네. 오스란 왕국의 사절단 대표로, 제국의 귀빈입니다.”

“흐음…….”

나의 대답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선생님.

나는 그런 선생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재미있는 상황이군요.”

수련에 푹 빠져 나의 기척도 못 느낀 둘.

내가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말을 건네자 그제야 시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예 시우 공작님. 저 녀석을 가르치고 있으신 것입니까?”

시우의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숙인 나는 내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창을 휘두르고 있는 코피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 나의 물음에 시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고 했지만 무산되었다.

“코피아! 뭐하는 짓이냐!”

바로 선생님의 엄청난 호통소리가 들려와 시우의 입이 멈추었던 것이다.

멈칫.

코피아가 어린 시절 대공가에서 행한 개념 없는 행동 이후 처음 듣는 선생님의 호통.

그에 코피아는 창을 멈추었고 나 또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저벅저벅.

무서운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물론 시우, 코피아, 그리고 엘로나까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황태자 전하가 오셨음에도 창을 휘두르고 있다니! 이 무슨 예의란 말이냐! 너는 제국의 귀족이다. 어찌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야!”

코피아의 앞에 멈춰선 선생님.

붉어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자 코피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어서 무릎 꿇고 사죄를 드리거라!”

솔직하게 말하면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다.

제국의 황태자인 내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예를 차리지 않고 자신의 수련에 집중한 코피아.

심지어 그 수련이 날카로운 창이다.

반역과 다름없는 무례한 코피아의 행동.

하지만 나는 그런 코피아를 탓할 마음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코피아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으니 말이다.

코피아를 향해 언성을 높이는 선생님을 말리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 나의 옆으로 온 엘로나가 나의 팔을 잡고 고개를 가로저었기 때문이다.

나를 만류하는 엘로나의 모습에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선생님과 코피아를 바라보았다.

“송구하옵니다, 황태자 전하.”

양쪽 무릎을 꿇고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하는 코피아.

나는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송구하옵니다.”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존대를 하는 선생님.

나는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란 후작가의 영애 코피아. 그대의 죄를 용서할 테니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감사하옵니다.”

나의 용서에 코피아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선생님의 눈치를 보았다.

흠칫.

여전히 차갑고 무서운 표정의 선생님.

그의 모습에 코피아는 흠칫하고는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 녀석 심술부리는군.-

<뭐? 심술?>

처음 보는 선생님의 모습에 낯설어하던 나는 나의 귀에 들리는 크산느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륙의 현자이자 모든 행동에 기품이 넘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현명한 행동을 하는 선생님이 심술이라고?

우리 할아버지라면 모를까, 선생님이 그럴 리가 없다.

-내 말이 맞아. 에스란의 행동은 옳지만 분명 지나친 감이 있어. 그 정도 융통성도 없는 성격이 아니고.-

<그건…… 그렇지…….>

솔직하게 크산느의 말이 맞았다.

물론 선생님의 행동은 틀린 것이 없다.

코피아의 행동은 정말 잘못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정도의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코피아의 행동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너의 행동도 잘못된 것이 맞아.-

<…….>

-넌 제국의 황태자다. 너는 네 위치를 똑바로 자각하고 있어야 해. 에스란이 화내기 전에 네가 화내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정곡을 찌르는 크산느의 충고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크산느의 말이 맞았다.

코피아와 친하다고 하여도 나는 제국의 황태자이며 장차 황제가 될 존재이다.

절대 이렇게 봐주어서는 아니 되었다.

이렇게 봐주다 보면 상대방은 끊임없이 기어오를 테니 말이다.

크산느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엘로나가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시우 공작께서는 이곳에 어쩐 일이신지요?”

갑작스러운 이 분위기에 어색한 표정과 자세로 있던 시우.

그는 엘로나의 물음에 구세주라도 만난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영애께서 창술에 재능을 보이셔서 잠시 봐주고 있었습니다.”

“다음 대의 스피어 마스터가 될 시우 공작께서 봐주시다니. 코피아 정말 잘 되었구나.”

“네!”

시우의 대답에 엘로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코피아를 바라보자 코피아는 힘 있게 대답했다.

“반갑소.”

“반갑습니다. 시우 공작입니다.”

가만히 그런 시우를 바라보던 선생님이 먼저 한 걸음 나서서 인사를 건넸고 시우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자존심이 강하고 호전적인 남부의 성격답지 않게 예의 바른 시우의 모습에 나는 살짝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저 자존심 강한 양반이 선생님에게 숙이고 들어가니 신기했던 것이다.

“우리 손녀의 스승이 되어 준 것이오?”

“그렇습니다.”

흠칫.

시우의 대답과 동시에 느껴지는 엄청난 한기.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나와 시우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몸에서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는 것을 말이다.

꽈악.

그리고 나는 다시 놀랐다.

나의 옆에 있던 엘로나.

그녀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나의 팔을 강하게 잡은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엘로나 또한 정령궁술로 강자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와 시우 그리고 엘로나 세 명이서 느낀 것이다.

선생님의 몸에서 일어난 짧은 기세를 말이다.

“잠깐 이야기하겠나?”

“……예.”

선생님의 기세에 심각한 표정을 짓던 시우.

그는 이어진 선생님의 물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 전하. 그럼 소신은 먼저 물러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시우의 대답에 고개를 살짝 끄덕인 선생님이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선생님은 뒤를 돌아 별궁으로 들어갔고, 그의 뒤를 따라 시우가 안으로 들어섰다.

“코피아.”

멈칫.

그런 시우의 뒤를 따라 들어가려던 코피아.

그녀가 나의 부름에 걸음을 멈추고는 돌아보았다.

“너는 엘로나와 함께, 산책이나 하고 있어.”

“네……?”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코피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지만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는 지나쳐 걸었다.

“가자.”

뒤에서 엘로나가 코피아의 손을 잡고 이끄는 소리가 들렸기에 나는 안심하고는 별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시우 공작이 위험할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