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3화
제143편 출정(1)
“너로구나.”
레브의 주택.
아담한 이층집 마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던 레브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새하얀 법복을 입고 있어 인자해 보이지만 언밸러스하게 보기만 해도 두려운 거대한 메이스를 들고 있는 중년 사내.
그 중년 사내에게서 익숙한 분위기를 느낀 레브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미하일 님의 자녀이십니까?”
“미하일 님의 자녀이자, 이단아들을 벌하고 있는 아비뇽이라고 하네.”
레브의 물음에 정중히 자신을 소개하고 고개를 숙이는 중년 사내, 아니, 교황의 명을 받아 트루히드 후작을 처단한 이단 심판관 아비뇽.
그런 아비뇽의 인사에 레브 또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분의 미천한 종인 레브라고 합니다.”
“아닐세. 모든 것이 그분을 위해서인데 어찌 고생이라 하겠는가. 반가우이.”
“역시…….”
아비뇽의 대답에 레브는 감탄 어린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교황 성하께서 그대를 믿고 있네.”
“저를요?”
갑작스러운 아비뇽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가리킨 레브.
그런 레브의 모습에 아비뇽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미하일 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구제를 기다리는 가여운 종이 가득한 이 대륙에서. 제국의 궁녀인 그대가 미하일 님의 뜻을 알고 구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에 아주 기특해하셨네.”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을…….”
아비뇽의 말에 레브가 당치도 않다는 듯 말하자 아비뇽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타 대륙인이라 걱정스러웠는데 직접 만나보니 아주 훌륭한 신도가 아닌가?
그에 레브가 마음에 든 아비뇽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구제 한줄기의 길에 앞서 걸어가는 선구자가 되어주기를 교황 성하께서는 기대하고 계시네.”
“물론입니다. 제 어미가 살아나고, 제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모두 미하일 님의 보살핌인데, 제가 어찌 구제 한줄기의 길을 나아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기특한지고…….”
레브의 대답에 아비뇽은 감탄 어린 표정을 짓고는 호감 가득한 눈빛으로 레브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이 대륙에서 미하일 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네.”
“물론입니다.”
“미하일 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을 보살펴주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이며 인간들의 아버지이시네. 이 분을 믿지 않고, 유일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다른 신을 믿는 이단아들이 있다면, 나에게 연락을 주게. 뼛속같이 악마의 종이 되어버린 이단아는 내 손으로 처단할 테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그대를 믿네.”
“감사합니다.”
자신들이 믿는 유일신 미하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더 주고받고 미하일의 가르침을 전한 아비뇽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덩달아 일어난 레브를 바라보았다.
“제국의 황족은 물론, 귀족들이 미하일 님의 존재와 가르침을 따랐으면 하네.”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하게.”
자신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레브의 모습에 아비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교국에서 파견된 십여 명의 사제.
귀족들의 눈길을 피해 신의 가르침과 구제 한줄기의 손길을 내밀며 전도하는 그들이 못 미더워 이곳을 찾았던 아비뇽은 예상외의 인재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미하일 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가르침을 따르려는 흐뭇한 신도를 만나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심지어 그 신도는 제국의 궁녀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귀족들과 황족들을 자주 만나며, 그들을 대하는 직종인 궁녀와 시종들에게 가르침을 전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심지어, 궁녀와 시종은 모두 귀족 출신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분명, 귀족들과 황족들에게까지 미하일 님의 가르침이 전달될 것이다.
그에 아비뇽은 기대가 되었고, 걱정스러웠던 마음을 접었다.
저 흐뭇한 신도라면 분명 잘해낼 테니 말이다.
레브의 주택을 벗어나 걸음을 옮기는 아비뇽의 발걸음은 아주 가벼웠고 빨랐다.
* * *
“오셨습니까?”
오스란 왕성의 별궁.
나는 내 방에 찾아온 익숙한 인물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있느냐?”
나의 반가운 인사를 무시하고 성큼 다가와 다짜고짜 있냐고 묻는 우리의 숙부 실.
그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살이 조금 빠지셨습니다.”
“아 있냐고!”
여유로운 나의 목소리에 결국 실의 인내심은 폭발했다.
언성을 높이며 물건의 유무를 따지는 실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칼럼의 농축액입니다.”
작은 병에 든 녹색 액체를 찰랑거리며 보여준 나는 두 눈을 반짝거리는 실을 보며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줘!”
그런 나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실은 손을 내밀며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금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실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요.”
“언제.”
나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인상을 찌푸린 채 묻는 실.
그런 실을 보며 나는 다시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적 다 토벌하면요.”
“…….”
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뭐야 이 양반.
평소대로라면 주먹을 쥐고 나한테 달려들어야 하는데?
“언제 출정할 생각이냐.”
“음…… 한 이틀 후에 출정할 생각입니다. 7군단 전원에 말을 지급해야 하니까요.”
“우리 둘이 가자.”
나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린 실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양반.
정력약에 눈이 멀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우리 둘이 가자니?
물론 우리 둘이 조금 고생한다면 마적 토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쪽수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수천 명의 도적,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두 명이 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삼촌.”
“뭐.”
“저는 삼촌이 좋아요.”
“……?”
갑작스러운 나의 고백에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실.
오우 뭐 그렇게까지 혐오하고 그래.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실을 보며 나는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비록 남자의 힘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우리 삼촌은 삼촌이니까요.”
“…….”
“삼촌 파이팅.”
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인상을 굳힌 실.
나는 그런 실을 보며 쐐기를 박았다.
양손을 주먹으로 쥐고 실을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응원을 보낸 것이다.
삐익!
그때, 나의 귀로 들려오는 거대한 새소리.
나는 실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불의 기운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크아아아!”
“푸하하!!”
괴성을 지르며 겔루 칼립스를 쥐고 있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실.
나는 그런 실의 모습에 큰 소리로 웃으며 실을 맞이했다.
삼촌과 신명나게 놀아 남자끼리의 우정을 쌓아야겠다.
아이, 쌤통…… 아니 좋아라.
* * *
“오랜만이네요.”
“충!”
출정식을 위해 오스란 왕성의 광장에 모인 최정예의 병력과 나.
나는 익숙한 덩치를 보며 살짝 반가운 표정을 지었고, 나의 인사에 부군단장 이자 7군단의 이인자인 할버드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경례를 갖추었다.
“내려, 내려요.”
그런 할버드를 보며 내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자 할버드는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멋져지셨습니다.”
“당연하지.”
할버드의 말에 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할버드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여전하십니다.”
“칭찬이지?”
“물론입니다.”
아리송한 할버드의 말에 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묻자 할버드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별일 없지요?”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축하해요.”
“하핫.”
오러 나이트 상급에 오른 할버드.
그런 할버드를 보며 내가 축하 인사를 건네자 할버드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정중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 전하에게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거 참…….”
장난스러운 나의 말에 폼을 잡고 고개를 숙이던 할버드는 콧잔등을 긁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잘 지냈지?”
“넵!”
실의 부관이자 오른팔이며, 7군단의 실질적인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파울로.
그를 보며 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파울로는 힘있게 대답했다.
“요새 편한가 봐?”
“엄청 편합니다.”
신혼인 실.
7군단의 주둔지에 잘 나오지도 않는 실로 인해 하루하루가 편안한 파울로는 팩트를 찌르는 나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백인장.
그 뒤에 있는 십인장들과 정예병사들.
10년 전부터 나의 등 뒤를 지켜주고, 또 내가 지켜주었던 나의 백성이며 병사들이다.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병사들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죽으면 알지?”
“삼족이 멸합니다!”
10년 전, 장난식으로 늘 말해왔던 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병사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출신 마을을 전부 불태워 버릴 거다! 그러니 살아!”
“저는 수도 출신입니다!”
그때, 열 명의 백인장과 같은 지위를 지닌 척후조장이면서 설인들에게 목뼈가 부러질 뻔했던 한스.
녀석이 손을 들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너희 집만 불태울게.”
“감사합니다!”
나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인사를 하는 녀석.
저 자식이, 그냥 안 죽으면 되지 꼭 저렇게 받아친다.
누가 삼촌인, 실의 수하 아니랄까 봐 말이다.
“삼촌, 한마디 해요.”
그런 병사들과 노닥거리던 나는 나의 뒤에 서 있는 실을 보며 말했고 실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7군단의 병사들과 오스란 왕국의 무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나 신혼이다.”
“…….”
갑작스러운 실의 말.
그런 실의 말에 좌중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갑자기 신혼이라니?
어쩌라는 것인가?
“나 집에 가서 마누라 보고 싶다.”
“…….”
“너네도 어서 집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 보고싶지?”
“가기 싫습니다!”
실의 물음에 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한 할버드.
실은 그런 할버드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밤이 두려우냐?”
“…….”
초인의 경지에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정력이 약한 할버드.
정곡을 찌르는 실의 말에 할버드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고 주변에 있던 병사들, 그리고 갈색 피부의 무사들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무룩한 할버드의 모습이 남 같지 않았던 것이다.
“마적들은 전갈을 타고 다닌다. 아나?”
꼬리에 독이 발라져 있는 거대한 전갈.
말 대신 전갈을 타고 다니는 마적들을 떠올리며 실이 묻자 병사들과 무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실은 피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전갈의 꼬리가 좋다.”
“……?”
“남자에게 좋단 말이다.”
한마디였다.
남자에게 좋다는 단 한마디에 병사들과 무사들의 눈빛이 변했다.
실은 그런 병사들과 무사들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전갈을 먹으면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그러면? 힘도 좋아지지.”
“오오…….”
“남자에게 좋은데……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
“오오!”
“신의인 위즐리가 인증해주었다.”
“와아아!!”
마지막, 신의라 불리는 위즐리가 인증해주었다는 한마디에 병사들과 무사들이 두 눈을 빛내며 큰 목소리로 환호했다.
매일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싫어 밤거리를 헤매던 병사들과 무사들.
집에서 잔소리를 하는 마누라, 그 앞에서 기도 펴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던 병사들과 무사들은 환호했다.
무너졌던 가장의 기강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이것은 일생일대에 있을까 말까 한 중요한 기회!
“가자!”
“와아아!!”
어서 가서 전갈 꼬리를 잡아야겠다.
실의 출정 선언과 동시에 환호하는 병사들과 무사들.
그들의 모습에 나는 서둘러 말을 몰았다.
먼저 가서 전갈을 잡지 않으면 선수를 빼앗길 것만 같았다.
“형아.”
멈칫.
그때, 앞으로 달려가려던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위즐리의 목소리에 몸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뒤돌아보았다.
“왜?”
어서 끝내라는 듯 압박을 주며 내가 건네자 위즐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저거 구라야.”
아 진짜 저 양반…….
이제는 하다 하다 구라까지 치는 양반이 되었다.
에휴…… 언제 철이 들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