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4화
제144편 출정(2)
“허우.”
“장난 아니군.”
사막과 푸릇한 풀이 자라나는 경계선.
나는 경계선 너머로 보이는 모래바람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실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것을 입으셔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선두에 서서 행렬을 이끌던 시우 공작.
그가 나에게 검은색의 비단옷을 건네며 말하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시우가 건넨 옷을 받아 온몸에 둘렀다.
전신이 검은색에다가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헐렁하기 때문에 사막에 있어서는 최적화된 옷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군말하지 않고 시우가 건넨 옷을 받아들였다.
물론 나의 옆에 있던 엘로나와 7군단 병사 모두 또한 마찬가지로 옷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됐소.”
우리의 삐딱한 삼촌.
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부했다.
그에 시우는 당황하지 않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시우 공작.
은근히 눈치가 빠르다.
아마 시우 공작이 한 번 더 권했다면 저 망할 성깔의 실은 신경질을 냈을 것이 분명하다.
안 봐도 그림으로 그려진다.
에휴 저 성질 더러운 양반.
괜히 실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던 나는 말을 몰아 실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너무 센 척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고대 불의 정령과 친구이다. 어찌 사막의 더위 따위를 무서워하겠느냐?”
나의 물음에 실은 말에 올라탄 채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저물어져 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주 똥폼을 잡으면서 대답하는 실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개뿔.”
탁.
“하핫.”
나의 혼잣말을 들은 실은 귀신같이 주먹을 들어 나의 머리통을 후려치려 했지만 나는 가볍게 막았다.
나의 손에 공격이 막힌 실은 인상을 찌푸렸고 나는 상큼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 양반아.
맨날 당신에게 뒤통수를 맞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퍼억.
아…… 방심했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나는 나머지 실의 손을 간과하고 말았다.
결국 나는 뒤통수를 한 대 허락하고 말았다.
“군단장님! 황태자 전하이십니다!”
그때.
가만히 잇던 파울로가 언성을 높이며 나섰고 옆에 있던 할버드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옆에 섰다.
“너희들 뭐냐?”
자신의 수하이면서 나의 편을 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실이 인상을 찌푸리며 파울로와 할버드를 번갈아 보자 둘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어떻게? 재판에서 증인 해드릴까요?”
이 자들.
눈치가 빠르군.
세상 돌아가는 정세를 잘 아는 듯하다.
나를 걱정하는 둘을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실을 바라보았다.
“실 공작.”
“뭐.”
나의 부름에 삐딱하게 대답한 실.
나는 그런 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다음 말을 앞으로 몰았다.
“갑시다.”
7군단을 포함한 총 2,030명의 최정예.
오늘부터 일주일 내로 나는 사막에 있는 모든 마적을 토벌할 생각이다.
* * *
“단장님!”
“닥쳐!”
왕국의 습격을 알리기 위해 마적단의 단장인 미라의 집무실로 들어선 수하.
미라는 헐레벌떡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수하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그런 미라의 모습에 수하는 급히 입을 다물었고 미라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앞에서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검은 머리의 청년.
세상을 모두 발아래 둔 듯한 오만한 모습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미남자.
장차 제국의 주인이 될 것이며 역대급 천재로 주목받는 영웅 황태자 요한 카르미언 듀크.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던 눈빛이 도저히 잊히지 않았다.
자신을 마치 하찮은 미물을 바라보는 듯한 무심한 눈빛.
그 무심한 눈빛이 미라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만약 그자가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면?
아마 자신은 바람에 흩날리는 한 줌의 먼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날 황태자의 모습은 공포로 자신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 되어 있다.
한데…….
“시X!”
쨍그랑!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미라는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책상에 있던 꽃병을 집어 던졌다.
그 공포스러운 황태자가 병력을 이끌고 이곳에 왔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땡땡땡!
그때!
집무실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비상 경종 소리에 미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었다.
“벌써 쳐들어온 것인가!”
사막에 들어오자마자 이곳으로 바로 진격했단 말인가?
자신들의 주둔지인 이곳을 어찌 알고?
“배신자가 있었던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미라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벽에 걸려있던 자신의 애검을 들었다.
비록 황태자가 두렵다 하더라도 자신은 소드 마스터다.
검의 주인!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초인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향해 주술을 걸며 미라는 힘찬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크아아악!”
“취이익!”
그러자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의 주둔지에서 학살하고 있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돼지들을 말이다.
“오크……?”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종족 몬스터 오크.
최초의 마법사 레이의 등장으로 인간들에 의해 거의 멸족이나 다름없는 피해를 봤고, 지금에 들어서는 꾸준히 토벌을 당하고 있어 보기가 어려운 오크가 이곳에서 자신의 수하들을 죽이고 있었다.
“어째서……?”
이 믿기지 않는 광경에 미라는 얼이 빠진 채 죽어가고 있는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찌 오크가 이곳, 사막에 있단 말인가?
“취익! 그대가 미라인가?”
그때.
미라는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2m 50c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오크.
다른 오크들과 달리 인간의 형태에 더 가까운 오크의 모습에 미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었다.”
놀란 표정의 미라를 보며 오크는 신경질적으로 되물었고 미라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검을 들어 오크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 너는 누구지?”
“나 말인가?”
미라의 물음에 피식 미소를 지은 오크.
그가 자신의 거대한 대검을 들고는 바닥에 내려찍었다.
쿠웅!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무거웠는지 굉음을 내며 바닥에 박힌 대검.
미라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자신보다 큰 대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오크를 올려다보았다.
“오크 로드, 튜라칸이다.”
콰앙!!
그리고, 마적단의 본거지였던 주둔지에는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 * *
띠링!
34. 오크 로드, 튜라칸을 막아라!
인간과 오크의 혼종 튜라칸.
인간들의 노예생활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튜라칸은 그곳을 탈출하여 천성적인 거력으로 오크들을 굴복시켰다.
노예생활을 하며 인간들의 지식을 몰래 배워왔던 튜라칸은 무지한 오크들에게 지식을 가르쳤으며 또 체계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전투방식과 병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오크 로드라는 지위에 올라 오크들에게 선언했다.
최초의 마법사 레이가 등장하기 전.
오크가 대륙을 지배하던 시절로 돌아가자고.
인간들을 혐오하는 오크 로드 튜라칸을 막아라.
그리고, 그를 죽이지 말고 회유하라.
절대.
죽여서는 아니 된다.
성공보상 : 신성력 +20, 스킬 성자의 기적 획득.
실패 시 : 오스란 왕국, 밀리언 공국 멸망, 엘프의 멸족, 오크와 인간의 대륙 전쟁 시작.
오랜만에 들려오는 반가운 알림 소리.
사막 입구에 막사를 설치하고 잠시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눈앞에 펼쳐진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얼굴을 굳혔다.
“이 씨X…….”
처음 보았다.
임무 창 가장 아래, 실패시라는 단어를 말이다.
그리고 실패할 시 너무나도 큰 피해에 나는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미치겠군.-
그런 나와 같은 마음인지 어깨에 있던 크산느 또한 욕설을 내뱉었다.
“뭐야? 갑자기 오크가 왜 나와?”
-그러게 말이다. 나도 궁금하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임무에 내가 벙찐 표정으로 묻자 크산느 또한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오크 로드라니…….”
오크.
대륙에서는 자주는 아니지만 한 번씩 보였다.
인간들의 마을을 습격하는 오크떼.
번식력이 너무나도 강해 아무리 죽여도 또 어디선가 나타나기에 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오크 토벌을 행하고 있다.
지식도 없고, 말도 못하는 오크들이 병력을 이루었다고?
인간과 오크의 혼종 한 놈 때문에?
이거 큰일 났다.
“미치겠군.”
인간들보다 강한 힘으로 평범한 성인이라면 절대 이기지 못하는 오크이다.
잘 훈련된 병사 2명은 있어야 잡을 수 있는 것이 오크인데, 그 오크가 병력을 이루고 있다면 골치가 아파진다.
거기에다가 전투방식과 병법을 배웠다 하지 않았는가?
-하면 이곳에 오크가 있단 말인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던 나의 귀에 들리는 크산느의 목소리.
그런 크산느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내가 사막에 들어오고 나서 이 알림이 울렸다는 것은 이곳에 오크 로드 튜라칸이 있다는 뜻과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하면 마적들은……?”
-아마…… 오크들에게 죽었고 마적들의 주둔지를 오크들이 차지했겠지.-
나의 물음에 크산느는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크산느의 대답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 말고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크들이 등장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한데 왜 하필 사막일까?
내가 알기로는 오크들은 숲에서 생활을 할 텐데 말이다.
“형아!”
“왜.”
그때, 위즐리가 다급한 모습으로 나의 막사 문을 열어젖히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 나는 다급히 나를 부르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오크가 마적단들의 주둔지를 습격이라도 했냐?”
“…….”
나의 앞에서 숨을 고르던 위즐리.
녀석을 보며 내가 묻자 녀석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고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마적들은 전멸당했고 그 자리에 오크들이 눌러앉았나?”
움찔.
이어진 나의 말에 몸을 움찔한 위즐리.
나는 그런 위즐리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성자가 되더니 이제는 미래라도 보는 거야?”
그런 나의 모습에 위즐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자식이.
여기서 성자 얘기가 왜 나와?
“비상 회의인 거지?”
아무튼.
녀석을 한번 째려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고 위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응. 형아 근데 정말 신 내린 건 아니지……?”
“까불래?”
앞장서는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묻는 위즐리.
나는 녀석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고 녀석은 그제야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어서 가시지요, 황태자 전하.”
“닥쳐. 내가 알아서 갈 거야.”
깐족거리는 녀석을 보며 나는 장난스레 말한 다음 막사를 나섰다.
일단, 수뇌부들끼리 회의를 해봐야겠다.
오크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고, 또 오크 로드라는 녀석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회유할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