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8화
제148편 튜라칸(2)
“타핫!”
“검 끝이 흔들린다!”
제국 북부.
북부의 대영주 라켄 백작령에 위치한 검투장.
그곳의 노예 검투사인 라만은 오늘도 어김없이 자기 아들을 훈련하고 있었다.
“쯧. 그래 봐야 노예일 뿐.”
“어차피 죽을 것 아니야?”
주위를 지나가던 자신의 동료, 아니 검투장에 올라가면 목숨 걸고 죽여야 할 적들이 라만을 비웃었지만 라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아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검투 노예가 되어버린 불쌍한 아이이다.
과거 A급 용병이었던 라만은 한 마법사와 함께 던전 탐사에 들어갔다가 큰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자신과 함께했던 용병들은 물론이고, 4 서클의 고위 마법사였던 노인 또한 죽었다.
운이 좋게 살아남은 라만은 큰 상처를 입은 채 숲 속에서 정신을 잃었고, 길을 지나던 한 오크가 그런 라만을 발견하고는 상처를 치료해주고 돌보아주었다.
인간형 이종족이라 하더라도 오크는 몬스터로 분류가 된다.
튀어나온 턱으로 인해 돼지처럼 보이는 얼굴, 거대한 덩치. 인간과 너무나도 달라 괴이한 모습이지만 라만을 구한 오크는 달랐다.
턱이 타 오크들처럼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오지 않았고, 오크치고는 덩치가 작았다.
물론 일반 남성 보다는 큰 키를 지니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오크를 통해 목숨을 구한 라만은 그녀의 집에서 머무르며 상처를 치료했고,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그녀의 모습과 행동에 라만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요리와 기본 상식을 가르쳤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고, 어느덧 라만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둘에게 축복이 내려왔다.
바로 인간과 오크.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생명이 그녀의 뱃속에 잉태가 된 것이었다.
그에 라만과 그녀는 크게 기뻐했고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 행복은 짧았다.
라만이 유일하게 터놓고 지내던 진정한 친구.
그에게 자신의 부인이 오크라고 사실을 고했고 친구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부인의 키와 지능을 떠올리고는 그럴 수 있다고 판단이 되었고, 귀족에게 이 사실을 고해 큰돈을 받았다.
돈이 많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능했던 귀족, 그렇기에 세상만사가 따분하던 북부의 대귀족은 그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워했으며 기사들을 보내 세 명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귀족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을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내는 여인.
라만과 아이의 어미인 여 오크를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타 인간들보다 월등히 큰 키.
보기 좋게 자리 잡은 잔 근육들.
그리고 인간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야수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평범한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외모에 흥미…… 아니 정확히는 이상한 것이 동하고 말았다.
라만과 그녀는 끝까지 저항하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그녀는 대귀족에게 화를 당하고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기사들에게 제압되어 그 모습을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지켜봐야 했던 라만과 아이는 대귀족가의 검투 노예가 되고 말았다.
정말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라만은 힘이 없었고, 라만을 구해줄 인맥도 없었다.
그렇게 라만은 아들과 함께 노예가 되었다.
“여기까지.”
한참 검을 휘두르던 자신의 아들.
튜라칸을 보면서 라만은 팔짱을 풀며 말했지만 튜라칸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튜라칸……?”
“저는 강해질 것입니다!”
훈련이 끝났음에도 검을 휘두르는 튜라칸.
그런 아들을 보며 라만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부르자 튜라칸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반드시! 어머니의 복수를 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의 어머니는 끔찍하게 죽었다.
아버지와 같은 인간에 의해서.
인간이 증오스러웠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매일 밤 말해주었다.
인간은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이 있다고.
그래서 튜라칸은 모든 인간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냥 나쁜 인간이 싫었다.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검으로 말이다.
“타핫!”
“…….”
라만은 두 눈에 불을 켜며 검을 휘두르는 아들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올해 7살인 어린 아들.
오크인 엄마를 닮아 성인과 같은 힘을 내는 아들을 보며 라만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났다면 튜라칸은 대단한 기사가 되지 않았을까?
이곳만 아니었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라만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아들에게 해줄 것이 없다.
그저 A급에 오른 용병검술이 전부인 라만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튜라칸을 내버려두고 방으로 돌아갔다.
* * *
“와아아!!”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지하 검투장.
튜라칸은 자신의 앞에서 인자한 미소를 짓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들…… 울지 마…….”
피가 묻는 손으로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아버지.
튜라칸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 아버지…….”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떨리는 팔과 손.
튜라칸은 떨리는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검.
정확히 자신의 아버지인 라만의 복부를 관통한 검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괜찮아. 너는 살아야 해.”
그런 아들의 모습에 라만은 다시 미소를 지었고 제 아들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아들.”
“네…….”
점점 식어가는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며 튜라칸이 대답하자 라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간을…… 미워하지 말렴.”
터억.
그리고 자신의 등을 쓰다듬던 아버지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한 튜라칸은 죽은 라만의 시체를 끌어안으며 소리쳤고…….
“와아아!!”
그것을 지켜보던 수많은 귀족들은 짜릿한 즐거움에 열광했다.
* * *
콰앙!
“…….”
라만이 죽고 3년간 수많은 인간을 죽이고 살아온 튜라칸.
그는 자신의 방, 아니 감옥을 부수고 들어온 한 노인을 바라보았다.
“…….”
무감정한 눈빛의 튜라칸.
그를 빤히 바라보던 노인이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가겠느냐?”
이제는 잊혀버린 용병왕 카르첸.
그가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대귀족의 가문에 쳐들어왔다가 오크의 힘과 인간의 지능을 물려받은 튜라칸을 만났다.
물론 튜라칸은 이 당시, 그리고 나중에도 카르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카르첸의 은원이 튜라칸에게도 이어질까 걱정스러웠던 카르첸이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15살이었던 튜라칸은 카르첸을 만나고 삶이 바뀌었다.
술이라는 즐거운 것을 알게 되었으며, 다양한 맛이 존재하는 음식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높게 솟은 산.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어린아이들, 듬직하다며 추파를 보내는 여인들과 사과를 건네주는 아주머니들.
카르첸의 손을 잡고 나온 세상은 튜라칸이 아는 세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튜라칸은 카르첸에게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소드 마스터인 카르첸은 튜라칸에게 모든 것을 전수해주었고 튜라칸은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카르첸의 모든 것을 빠른 속도로 흡수했다.
그리고 카르첸이 죽고, 용병이 되었다.
한참을 떠돌며 어느덧 괴물용병이라 불리며 유명해졌던 튜라칸.
“취익!”
그는 우연히 자신의 앞길을 막은 한 개체의 오크와 마주하게 되었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마주한 오크, 어린 시절 보았던 흐릿하게 떠오르는 어머니가 아닌 처음 만나는 오크였다.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종족인 오크를 보며 튜라칸은 반가운 감정을 느끼며 호감 어린 눈빛으로 오크를 바라보았다.
“취익?”
그런 튜라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크.
그가 조심스럽게 튜라칸을 향해 다가왔다.
“킁킁”
그러고는 튜라칸의 냄새를 맡았고 이내.
“취익!”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튜라칸을 안았다.
오크의 환대가 당황스러웠던 튜라칸은 오크를 밀쳐냈지만 오크는 그래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튜라칸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숲 속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튜라칸은 오크들에게 글과 검술, 그리고 병법을 가르쳤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순수한 녀석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 * *
“라켄 백작이라…….”
기억난다.
25년 전 의문의 습격으로 사라진 북부의 대영주.
당시 현 황제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의 숙청이 시작되던 시기였고, 라켄 백작가의 비리를 알고 있던 황제는 그 사건을 그냥 덮어버렸었다.
누구의 짓인지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물론 귀족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그들은 똑같은 돼지들이었고 황제는 모두 죽였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우리 큰아버지, 대단하네.
“하면…… 그 의문의 습격이 너의 스승이 일으킨 짓이겠구나?”
“그렇습니다.”
나의 물음에 튜라칸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은 나는 튜라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까처럼 해.”
“에르님의 선택을 받으신 분이 아니십니까.”
“괜찮아.”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 녀석을 보며 내가 손을 흔들며 말하자 녀석은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형님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나 너보다 어린데?”
떨리는 녀석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보다 15살은 많은 놈이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이거 양심이 없는 건지, 자존심이 없는 건지…….
한데 나의 말에 녀석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상관이 있습니까?”
진정으로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으로 되묻는 튜라칸.
나는 그런 튜라칸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너도 오크긴 오크구나.”
“저보다 강자에다가, 쿠라 님이 모시던 에르님의 대리자입니다. 형님으로 모시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 잘 부탁한다. 동생.”
녀석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녀석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네 형님.”
띠링!
그러자 반가운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몸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가 봐.”
“네 형님.”
고개를 숙이는 녀석을 보며 내가 턱짓으로 문을 가리키자 녀석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물러났다.
드디어 혼자…… 아니 크산느까지 둘이서 남게 된 나.
나는 이번에 새로 얻은 스킬을 확인하기 위해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창.”
작은 나의 목소리와 동시에 생성된 반투명한 홀로그램.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홀로그램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스킬창
디위니타스 (dīvínĭtas) 검술 (SSS)
건국황제 에펜하르트가 만든 검술.
광오하다, 오만하다. 검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제의 위엄에 그 누구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황제의 허락이 없으면 숨도 쉴 수 없다.
공간장악 검술이다.
성취도 9/12
디위니타스 (dīvínĭtas) 심법 (SSS)
건국황제 에펜하르트가 만든 심법.
디위니타스 검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심법이다.
자연의 친구 마나?
개 소리다. 마나를 제압. 마나를 굴복시키는 패도적인 심법이다.
성취도 9/12
냉(ice) 속성 내성(S)
그 어떤 추위, 얼음 마법에도 내성이 쌓인다.
성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내성이 강해져 나중에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얼음 마법을 무력화시킨다.
성취도 12/12
화(fire) 속성 내성(S)
그 어떤 열기, 불 마법에도 내성이 쌓인다.
성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내성이 강해져 나중에는 열기를 느끼지 못하고 불 마법을 무력화시킨다.
성취도 8/12
성자의 기적(SSS)
주신 중 한 명이며 마신인 에르의 대리자에게 내려진 권능.
지니고 있는 신성한 힘을 사용하여 사망한 지 10분이 되지 않았으며, 주어진 수명이 다하지 않은 자를 살릴 수 있다.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며, 운명을 거스르는 행동이기에 영구적으로 힘을 조금 잃는다.
신성력 -30, 체력 -10, 힘 -10, 민첩 -10,
미쳤다…….
나는 마지막에 새로 생성된 스킬.
‘성자의 기적’을 보고는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화 속성 내성은 계속 웃통을 벗고 있어서 그런지 성취도가 많이 올랐다.
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미 죽은 인물을 살릴 수 있다고?
물론 힘을 조금 잃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게 대순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단 한 번뿐인 소모성 스킬이지만 나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기쁨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 근데, 신성력 몇이냐? 저 스킬 사용 가능해?-
사용 시 신성력 스탯 -30.
그것을 콕 짚어서 크산느가 말하자 나는 아차 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이번 임무완수로 인해 신성력이 올랐을 것이다.
그럼 지금 나의 신성력 스탯은 몇이지?
“상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