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7화
제157편 제국으로
“튜라칸!”
오스란 왕국 소속의 귀족.
그들 전부가 모인 대전의 왕좌에서 일어난 루틸루스는 튜라칸의 이름을 불렀다,
저벅.
그의 부름에 앞으로 나선 튜라칸.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녀석이 힘찬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귀족들이 그런 튜라칸을 바라보았지만 튜라칸은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하게 걸었다.
그러고는 루틸루스의 아래.
카펫 중앙에 당당하게 섰다.
짜식, 엄청 폼 잡고 있네.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폼을 잡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이곳에서 웃으면 조금…… 부끄러우니까 말이다.
“그대는 본국의 골칫거리였던 사막의 마적단들을 토벌하였으며, 단장 미라와 약 300명의 포로를 포박해왔다. 그에 짐은 그대에게 사막 군주라는 이명과 함께, 자치권을 수여한다! 또한 백작이라는 작위를 수여한다.”
“고맙다!”
루틸루스의 말에 씨익 웃으며 대답한 튜라칸.
역시 튜라칸이다.
존댓말 따위는 엿 먹으라는 듯 당당하게 반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나와 다른 귀족들은 그런 튜라칸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서지 않았다.
하긴, 이 분위기에 나서서 따지기는 좀 그러니 말이다.
“그래.”
그리고 국왕인 루틸루스.
그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 나설 명분도 없을 것이다.
단상 위에 있던 루틸루스가 갑자기 직접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계단을 내려와 튜라칸 앞에 멈추어 섰다.
이렇게 보니 아주 거대한 양대 산맥이었다.
아무튼, 튜라칸의 앞에 멈추어선 루틸루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튜라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알겠다. 걱정 마라. 약속은 지킨다.”
왕국에서 정한 통행세, 그리고 그 통행세의 일정 비율을 왕국에 상납.
그것을 상기하며 튜라칸이 대답하자 루틸루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사막 한가운데에는 무역 도시가 생겨날 것이며, 그곳은 오스란 소속의 자치도시가 될 것이다.
그곳을 통치하는 곳은 오크들이고, 총 지배는 튜라칸과 왕국에서 파견한 귀족일 테고 말이다.
아마…… 튜라칸의 새로운 벗, 램컨과 라한일 것이다.
“도시의 이름은 정했나?”
튜라칸과 악수를 마친 루틸루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묻자 튜라칸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저 자식, 이 타이밍에 왜 나를 봐?
튜라칸이 황태자인 나를 보자 귀족들 또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쏟아지는 시선에 나는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튜라칸을 바라보았다.
-와…….-
그런 나를 향해 크산느가 감탄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쿠라. 쿠라라고 지을 것이다.”
에르의 수하이자 고대시대의 오크 로드였던 쿠라.
그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 같았다.
그래서 에르의 성자인 나를 바라보았던 것인가?
하여튼 웃긴 놈이다.
“좋은 이름이군.”
그런 튜라칸의 대답에 루틸루스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사막의 군주라는 이명과 백작의 작위를 받은 튜라칸이 물러나고, 다시 단상에 올라 왕좌에 앉은 루틸루스가 입을 열었다.
“말하기에 앞서, 갑작스러운 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참여해준 그대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백여 명이나 되는 오스란의 귀족들.
귀족 중 건강상 참여가 불가능한 가문은 그의 후계자가 대신 참여했다.
갑작스러운 왕명으로 인해 귀족들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루틸루스는 그 이야기를 꺼내며 먼저 사과를 건넸다.
“아니옵니다!”
국왕인 루틸루스의 사과에 귀족들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긴, 그렇게 대답해야지 안 그러면 어쩔 것인가?
뭐? 왕인 루틸루스에게 따질 것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루틸루스를 바라보았다.
“다들, 이곳에 모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왕좌에 앉은 루틸루스.
그가 근엄한 표정과 말투로 말을 꺼내자 귀족들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루틸루스를 바라보았다.
정말 궁금할 것이다.
오스란 역사상 최초로 왕의 권한으로 모든 귀족을 모이게 한 자리이니 말이다.
“먼저, 황태자.”
“네.”
그런 귀족들의 시선을 받은 루틸루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나를 부르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벅.
그러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귀족들을 돌아보았다.
백여 명의 귀족들이 앞에 선 나를 바라보았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시선이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시선에 여유롭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듀크 제국의 황태자 요한 카르미언 듀크입니다.”
-아 토 마려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는 나의 모습,
마치 성인군자와 같은 나의 모습에 크산느가 툴툴 되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본 제국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원합니다, 앞서 백작이 된 튜라칸 경과 같은 오크들과 서로 어울려 살아가고, 서로 미워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세상을 원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 저는, 엘프 왕국 밀리언과 이야기를 나누어, 그들을 최대한 존중하며 평화를 약속하고 제국과 가족관계인 공국으로 맞이하였습니다.”
-지X, 동생 팔아가면서 억지로 공국으로 편입시킨 주제에.-
아…… 저 자식.
정곡을 찌르면서 선을 넘는 크산느의 말.
당장에라도 저 녀석의 뿔을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참았다.
저 자식을 죽이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표정 변화 없이 그저, 성인군자와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또한, 제가 사랑하는 여인이 속한 겨울의 왕국, 하이아칸과는 이야기가 잘되었고, 저와 혼약을 맺으며 가족의 연을 맺었습니다.”
이 말을 하며 나는 조용히 엘로나의 눈치를 살폈다.
마음속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혼인을 하는 것처럼 비칠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엘로나는 그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다.
그에 나 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하이아칸과 밀리언에 약속했습니다. 전쟁 없는 평화를. 그리고 물었습니다. 오스란에.”
웅성웅성.
마지막 나의 말.
오스란에 물었다는 말에 귀족들은 웅성거렸고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이제부터는 국왕인 루틸루스가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벌떡.
그리고 왕좌에 앉아있던 루틸루스가 일어났다.
“그에 나는 대답했다. 오스란의 골칫거리인 사막을 해결해달라고.”
“…….”
루틸루스의 말에 가만히 입을 다문 귀족들.
그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군주를 바라보았다.
무슨 결정이 내렸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중요 귀족들과 국정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모두 찬성했다.”
꿀꺽.
루틸루스의 이어진 말에 귀족들은 침을 삼켰다.
“제국의 가족이 되기로.”
“아아…….”
루틸루스의 대답에 귀족들은 탄식을 하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하지도, 또 슬퍼하지도 않는 그런 애매한 표정을 말이다.
“황태자는 약속해주었다. 이름만 달라지는 것일 뿐, 오스란 왕가는 계속될 것이며, 우리는 제국의 신하가 아닌, 가족이라는 것을 말이다.”
“…….”
“황태자!”
“네.”
어느새 계단을 내려온 루틸루스.
그는 굳은 얼굴로 나를 불렀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부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스란의 주인.
루틸루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를 향해 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와 동시에, 레게 후작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고 이내 모든 귀족이 레게 후작과 같은 행동을 취하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귀족들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 * *
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온 나는 갑작스러운 왕성 마법사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제국에서 급한 통신이 왔다는 것이다.
그에 나는 왕성 마법부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나는 마법부에 도착했고, 나를 안내하기 위해 마법부의 주인, 마법부장이 직접 나와 나를 안내해주었다.
그의 안내로 나는 통신실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정면에 비치된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수정구에 비친 레헤튼의 얼굴.
그에 내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레헤튼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용건만 간단히 합니까?]
“당연하지.”
짜식, 당연한 말을 물어본다.
내가 없는 동안 감을 잃었나 보다.
나의 대답에 레헤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당장 오셔야겠습니다.]
멈칫.
그리고 귀찮은 표정으로 귀를 후비던 나는 그대로 굳었다.
수정구 너머로 보이는 심각한 레헤튼의 얼굴.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설인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일단, 칼론부터 보내.”
[칼론은…… 지금 못 갑니다.]
“뭐?”
나의 명을 거부하는 것인가?
아니, 분명 이유가 있겠지.
나는 수정구 너머로 보이는 레헤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나는 그대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아…… 칼론…….
잠시 후.
마음을 추스른 나는 서둘러 통신실을 나섰다.
“전하, 통신은……?”
등 뒤로 마법부장이 뭐라 하는 이야기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저 정면을 바라보며 서둘러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장 먼저 왕의 집무실에 들러 루틸루스에게 먼저 제국으로 올라가겠다고 통보했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루틸루스는 당황했지만 나는 루틸루스의 반응을 살펴볼 새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런 다음 가벼운 짐을 챙겨 왕성의 가장 넓은 연무장으로 나섰다.
“형아! 무슨 일이야!”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위즐리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돌려 그런 위즐리를 바라보았다.
“너는, 국왕…… 아니 루틸루스 공왕과 함께 오도록 해.”
“형……?”
“알겠어?”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위즐리를 보며 언성을 높이자 위즐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부탁한다.”
그런 녀석의 어깨에 손을 한번 얹어준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크산느.>
-알겠다.-
나의 부름에 곧바로 대답한 크산느.
그는 이내 마나를 끌어올려 실체화를 했다.
우웅!
“꺄아악!”
갑작스러운 마나 회오리에 당황한 궁녀들.
궁녀들과 시종들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고, 기사들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으며 검병에 손을 얹었다.
갑작스럽게 미안하지만…… 지금 나는 급하다.
실체화를 마친 크산느.
거대한 블랙 드래곤이 나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나는 서둘러 크산느의 등 위에 올라섰다.
“요한!”
그때, 저 멀리서 엘로나와 실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같이 가!”
엘로나는 레브와 상당히 친하다.
친한 그녀가 함께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응.”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손을 내밀었다.
덥석.
나의 손을 잡고 엘로나는 크산느의 등 위에 올랐고 이내 나의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
“삼촌.”
“가라.”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실.
내가 그런 실을 보며 말하자 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양반, 무슨 일인지도 모를 텐데…… 고맙다.
나는 그런 실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다음 입을 열었다.
“크산느.”
-알겠다.-
펄럭!
나의 부름과 동시에 대답한 크산느.
녀석이 거대한 날개를 흔들었고 넓었던 왕궁 연무장에 거대한 바람이 생성되었다.
“최대한 빨리.”
-당연하다.-
그리고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크산느의 비늘을 잡았고 크산느는 급하게 날갯짓을 했다.
제국의 수도, 내 친구, 칼론이 있는 팔센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