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0화
제160편 황제의 생각
내가 없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갑작스러운 국교 발표에 내가 벙찐 표정을 짓자 크림슨은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교단을 인정해주시고, 제대로 밀어주시기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도대체 왜……?”
크림슨의 말에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저번에 설명할 때 분명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근데 이렇게 제대로 밀어줄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황위 계승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 아닐까요?”
“……?”
뭐?
크림슨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크림슨은 서둘러 마저 입을 열었다.
“트레이 교단이 대중화가 되고 백성들이 신인 에르님을 믿게 된다면…… 황제가 되시는 성자님은 황제이자 신의 대리자가 될 것입니다. 황명은 곧 신명이 된다는 뜻이지요.”
“야.”
“예, 성자님.”
싸늘한 나의 목소리.
그곳에 담긴 분노를 읽었을까?
크림슨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신을 이용하자는 것이냐?”
“이용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성자님께서 황제가 되실 생각을 지니고 있으시지 않으십니까?”
나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 크림슨.
그래, 나는 황제가 될 것이다.
내가 아니면 그 누가 황제가 된단 말인가?
당연한 말을 내뱉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등받이에서 몸을 때고 앞으로 기울였다.
나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크림슨의 모습은 아무래도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준비한 것 같았다.
크림슨이 준비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화를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런 나의 자세에 크림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종교의 자유를 중점으로 전도를 합니다, 원하지 않는 이에게는 절대 강요하지 않으며 미하일을 믿든 에르님을 믿든 그것은 사람들의 자유입니다.”
“…….”
“그리고 그런 저희를 황제 폐하께서 밀어주시는 것입니다. 황제 폐하 입장에서는 미하일이든 에르님이시든 솔직히 같은 신입니다. 왜냐? 신이라는 존재를 생각해본 적도,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이다.
나 또한 에르의 목소리를 듣고, 그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의 존재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크림슨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얘기해.”
나의 말에 크림슨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마저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입장에서는 솔직히 종교는 탐탁지 않아 하셨습니다, 황권이 약해지니까요, 하지만 종교에서 위대한 존재인 신, 그분의 선택을 받은 분은 성자님이십니다. 신의 힘을 사용하시며 신과 대화도 가능하신 분이죠.”
“해서?”
“황제 폐하께서는 그 종교가 반대로 황권을 더욱더 강하게 해준다고 결론을 내리신 것입니다.”
“하여…… 성자인 나. 그런 내가 황제가 되었을 때의 황권을 위해 종교를 인정하고, 내가 속한 교단 트레이 교단을 국교로 인정한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큰 잘못도 아니지 않습니까.”
“…….”
그래, 큰 잘못도 아니지.
황태자인 내가 성자로 있기 때문에 트레이 교단을 국교로 선택하고 밀어준다고 약조하였다.
그리고 황제가 나서서 트레이 교단의 신도임을 자처한다면?
백성들 또한 신을 무시하지 못하고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귀족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게 불법도 아니고, 신을 이용해서 악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것뿐이다.
어떻게 보면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한데…….
“난 왜 이렇게 기분이 찝찝한 거지?”
그렇다.
나는 기분이 심히 찜찜했다.
-나도 동감이다.-
어깨에 앉아있던 크산느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나에게 동감했다.
그래…… 분명 나쁜 짓은 아니다.
오히려 현명하다.
한데 왜일까?
“일단, 제국 내에서 활동하는 타 대륙의 세력들부터 찾아.”
“…….”
“왜 대답이 없지?”
나의 명에 대답이 없는 크림슨.
그런 녀석을 보며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크림슨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미…… 황제 폐하께서 모두 잡아들이셨습니다.”
* * *
“심판관님!”
“……”
오스란의 수도 렌의 항구.
교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던 이단 심판관 아비뇽은 자신을 부르며 헐레벌떡 달려오는 수하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멈추어선 수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체통을 지켜라, 우리의 행동이 곧 미하일님의 행동이니.”
그런 아비뇽의 경고에 화들짝 놀란 수하는 서둘러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끄덕.
그런 수하의 사과에 고개를 끄덕인 아비뇽.
그가 고개를 다시 드는 수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제국에 있던 전도사들이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뭐……?”
제국에 남아 미하일 님의 가르침을 전하기로 했던 전도사들.
그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수하의 보고에 아비뇽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런 아비뇽의 모습에 수하는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저께부터 한 통도 연락이 없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어제 서신을 보냈지만…… 지금까지 답이 없습니다.”
어제 보내었다면 늦어도 오늘 아침에는 답신이 도착해야 한다.
한데 오후인 지금까지 답신이 없다?
이 뜻은 전도사들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 아이는?”
황궁의 시녀인 레브.
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신자였던 그녀를 떠올리며 아비뇽이 묻자 수하는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
수하의 대답에 아비뇽은 침음을 흘렸다.
도대체 왜일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
설마 그 아이가 배신을 한 것인가?
“아니지.”
아비뇽은 방금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부정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브가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이 보았던 레브, 그녀는 눈이 정상이었지만 정상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신에게 모든 것을 기대어 의존하며 살아가는 신자의 모습이었다.
그런 이들은 교국에서도 많이 보았고, 또 그런 이들이 신님을 배신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비뇽이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판관님…….”
고민에 빠진 아비뇽을 보며 수하가 그를 조심스럽게 부르자 아비뇽은 고개를 들어 수하를 바라보았다.
“배에 올라야 할 시간입니다.”
큰 배에 오르는 사람들을 가르치며 수하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아비뇽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제국으로 간다.”
“예!”
* * *
“어서 오거라.”
황궁의 대전이 아닌 황제의 집무실.
그곳에 들어선 나는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황제를 만날 수 있었다.
“황제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집무실 의자에서 일어난 황제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인 나.
황제는 그런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서신은 잘 받았다, 오스란을 공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네, 곧 루틸루스가 직접 제국에 방문할 것입니다.”
인자한 미소를 지은 황제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잘했다, 오스란을 공국으로 맞이하기 전, 황태자로서 공식 석상에 얼굴 좀 비치고, 함께 루틸루스를 맞이하도록 하자꾸나.”
“예, 알겠습니다.”
“그래.”
나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황제.
나는 그런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응?”
그런 나의 부름에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황제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미하일의 신자들을 모두 잡아들이셨습니까?”
“그렇다.”
나의 물음에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
무언가 잘못되었냐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황제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신 것입니까.”
“한 달 후에는 풀어줄 예정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나의 물음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 대답하는 황제.
그런 황제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묻는 의도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도대체 왜 그들을 포박했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 얼굴을 찌푸렸냐는 듯 다시 미소를 지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폐하.”
“그만.”
나의 부름에 손을 내밀며 나의 말을 막은 황제.
그의 경고에 나는 입을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보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대공가로 가서 자고, 내일 황궁으로 들어오거라.”
“…….”
나의 입을 막은 황제가 인자한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그런 황제를 바라보았다.
명백한 축객령이다.
이 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알겠습니다.”
그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대공가로 돌아가기 전.
나는 잠시 황태자궁에 들렀다.
그리고 나의 방에 들어선 나는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엘로나와 칼론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소파에서 일어나는 두 명.
“레브는?”
“…….”
나는 그런 둘을 보며 물었고, 나의 물음에 칼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뭐지 무슨 일이 또 있었나?
그런 칼론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감옥에.”
“……?”
그때, 칼론의 옆에 있던 엘로나가 칼론 대신 대답해주었고 생각지 못한 대답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옥에?
“황제 폐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어.”
“아…….”
미하일의 독실한 신자인 레브.
황제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레브를 잡아들인 것이다.
“시종장님이 그저 잡아두기만 하는 것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셨어.”
굳어버린 나를 보며 위로하듯 엘로나가 말했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간수장인 지켜 자작에게 잘 말해 놓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방금 폐하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달 후에는 모두 풀어주기로 약조했어.”
“예, 주군.”
나의 말에 그제야 안심한 칼론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대었다.
“피곤하네…….”
“쉬시겠습니까?”
조용히 중얼거린 나의 말에 칼론이 물었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등받이에서 몸을 떼었다.
“아니, 대공가로 가야지.”
“아…….”
“같이 갈까?”
나의 말에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당연히 제가 모시겠습니다.”
나의 호위기사인 칼론.
그런 녀석의 대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가야지.”
내가 묻기도 전에 대답한 엘로나.
그녀의 대답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가자.”
우리 집인 대공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