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대공가의 귀한 아들-164화 (164/226)

제 164화

제164편 성자가 성녀에게 하는 부탁

제국의 수도 팔센.

그곳으로 다시 돌아온 아비뇽은 자신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손에 들린 붉은 와인을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숨 막히는 침묵이 지속되고.

결국 참다못한 수하가 큰 목소리로 사죄했고 아비뇽은 조용히 와인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와인 잔을 내려놓았다.

“한밤중에…… 갑자기 사라졌다라…….”

자고 일어나니 십여 명의 전도사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주인장.”

“예, 나으리!”

나직한 아비뇽의 목소리.

그의 부름에 무릎을 꿇고 있던 여관의 주인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사실입니다! 아침 준비가 다 되었으니 내려오라고 알리러 갔을 때는 이미 아무도 안 계셨습니다.”

“짐은 그대로 있었고?”

“네!”

아비뇽의 물음에 주인장이 그렇다는 듯 힘차게 대답했다.

그런 주인장을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쉰 아비뇽.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주인장이 책임져야지.”

“네……?”

생각지 못한 아비뇽의 책임 전가.

그에 주인장이 벙찐 표정을 지으며 되묻자 아비뇽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의 여관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 주인으로서 책임을 져야지?”

“하지만 그것은 제 잘못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과는 너무 다른 아비뇽의 말에 주인장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 안쓰러운 주인장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비뇽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책임감도 없는 그대는, 미하일 님의 자녀가 아니구나.”

신성 교국의 성경.

제3장에 적힌 이야기.

-책임감이 있기에 인간이다, 인간의 가벼운 행동과 입에서 나오는 가벼운 말에도 책임이 있다, 인간은 그것의 무게를 생각하여 가벼운 행동과 언행을 삼가야 한다.-

성격에 적인 가르침대로 책임감이 없다는 이유로.

아니, 애초에 그의 책임도 아닌 이유로 이단 심판관 아비뇽은 주인장에게 죄를 물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억울해 죽을 것 같은 주인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항변하려 했으나.

퍼억.

이미 아비뇽의 거대한 메이스가 주인장의 머리를 후려쳐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터져 사방으로 뇌수와 피가 튀었고, 아비뇽은 인상을 찌푸리며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았다.

“찾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던 수하.

아비뇽의 차가운 목소리에 수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는 죽인 주인장을 안쓰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미하일 님의 자녀 자격이 없는 사탄이 죽은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단 심판관인 아비뇽이 이단이라 칭하고 죄를 물었다.

그러면 곧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수하의 생각이었다.

잠시 후.

수하는 다시 전도사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물러났고 홀로 남은 아비뇽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

와인 잔에 들어있는 붉은 와인.

그 위에 둥둥 떠다니는 하얀색의 물체를 빤히 바라본 아비뇽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꿀꺽.

그러고는 와인을 그대로 한 번에 들이켰다.

* * *

“오셨습니까.”

“고생이 많군.”

황궁의 지하 감옥.

그곳에 내려온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지켜 자작을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더 잘생겨지셨습니다.”

나의 반가운 인사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아부를 떠는 지켜 자작.

그런 자작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대는 여전히 못생겼군.”

“하하! 제 매력이지요.”

역시 정상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나의 디스에 지켜 자작은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쳤다.

너무나도 유쾌한 그의 모습에 나 또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대의 방을 조금 빌리고 싶군.”

“직접 가시지 않으십니까?”

나의 말에 지켜 자작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하긴, 이곳에 방문한 나는 항상 내가 직접 감옥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간수장인 지켜 자작의 방을 빌려 달라 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의아할 만하다.

그런 자작을 보며 조용히 자세를 낮춘 나.

지켜 자작은 그런 나의 모습에 따라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자작의 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밀 이야기를 해야 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장난기 섞인 나의 말.

그에 지켜 자작은 맡겨달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더니 이내 나를 안내했다.

-재미있는 놈이야.-

당당하게 안내하는 자작의 뒷모습을 보며 크산느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그에 동감한다는 듯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나는 지켜 자작의 집무실과 같은 간수장실에 들어섰다.

“깔끔하군.”

지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은 실내와 깔끔한 공기.

그에 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자작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제게 항상 미안하다며 공기를 깨끗하게 해주는 마도구와 밝게 해주는 마도구를 지원해주셨습니다.”

지켜 자작의 대답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의 지원은 필요할 것이다.

지켜 자작.

그는 대대로 황궁 지하 감옥을 지켜오는 가문의 수장이었다.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음지에서 활동하는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황제는 지켜 자작에게 최상의 편의를 제공해주었고, 자작은 그런 황제의 성심에 보답하듯 더욱더 일을 열심히 하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 자작을 바라보았다.

“나도 잘 부탁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미래를 생각하며 말한 나.

그런 나의 말에 자작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럼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래.”

자리에 앉은 나를 향해 지켜 자작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간수장실을 나선 지켜 자작이 한 여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백금발과 황금색 눈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

미하일의 선택을 받은 천족과 인간의 혼종.

바로, 신성 교국의 성녀 루멘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약 삼일 정도 감옥에 있었던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한 모습인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빈 의자를 가리켰다.

“앉지.”

“네.”

자리를 권하는 나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루멘.

잠시 후.

지켜 자작은 우리 둘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은 다음 물러났다.

은은한 향이 간수장실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지켜 자작, 몰랐는데 차에도 조예가 있나 보다.

쓸데없는 생각을 한 나는 부드러운 향을 내는 찻잔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들지.”

“네.”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루멘.

나와 그녀는 찻잔을 들어 먼저 향을 음미했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아주 좋은 차였다.

돌아갈 때 무슨 차인지 물어봐야지.

“아주 좋네요.”

그때, 차를 한 모금 마신 루멘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고 나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아주 맛있었다.

처음에는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 긴장감을 완화해주었고, 이후에는 입에서 단맛이 감돌아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미안하다.”

“…….”

찻잔을 내려놓은 나.

그런 내가 루멘을 바라보며 사과를 하자 루멘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것 또한, 미하일 님이 내려주신 시련입니다. 성자…… 아니, 전하께서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인 것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나를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위로하는 루멘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사과해야 하는데, 되레 위로하는 루멘의 모습이 웃겼던 것이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었다.

“아니,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

나는 미소를 짓는 루멘을 향해 한 번 더 사과했고 루멘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해봤자 미안한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불편한 상황은?”

“없어요, 오히려 오랜만에 같은 신자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의 물음에 진정으로 즐겁다는 듯 대답하는 루멘.

나는 그런 루멘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특이 상황은?”

“…….”

역시, 루멘도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일까?

나의 물음에 루멘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특이 상황이 있는 모습이다.

그런 루멘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너와 같이 있는 레브, 그녀를 잘 감시해줘.”

“그녀를 아십니까?”

나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은 루멘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 그녀가 칼론의 연인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나 보다.

“칼론의 연인이다.”

“!!!”

그런 루멘을 향해 나는 사실을 말해주었고, 나의 말에 루멘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늘 미소만 짓고 있는 모습이 아닌 놀란 표정이라.

상당히 신선했다.

-바람피우냐?-

쓸데없는 놈은 무시하자.

아무튼, 그런 루멘의 모습에 나는 그저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루멘의 생각이 정리되기 기다리는 것이다.

“아…… 그래서…….”

“응?”

차를 한 모금 마신 나.

그런 나의 귀에 납득이 간다는 루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루멘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리고 감옥에서, 레브가 올린 새벽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칼론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과 칼론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끔찍한 기도를 말이다.

진짜 화가 난다.

-이거 심각한 것 같다.-

연인인 칼론이 죽었으면 하는 바람.

종교가 다르다는, 아니 단지 미하일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가 죽길 바란다는 레브의 생각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크산느 또한 심각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그래, 나도 안다.

정말 심각하다.

왜 모르겠는가?

꽈득.

루멘의 이야기를 들으니 화가 난다.

감히…….

내 벗인 칼론을 죽여 달라는 기도를 올려?

“전하.”

그때.

분노로 가득 차 주먹을 강하게 쥐던 나의 귀에 루멘의 따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나는 고개를 들어 루멘을 바라보았다.

“진정하시지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말로 나를 다독이는 루멘.

그런 그녀의 행동에 나는 화를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그녀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즉각 나에게 알려줘.”

“네, 걱정 말아요.”

나의 부탁에 싱긋 미소를 짓는 루멘.

나는 그런 루멘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믿어도 되나?”

낮은 나의 목소리.

진지한 얼굴로 내가 루멘을 향해 묻자 루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또한, 칼론 경이 죽지 않았으면 해요.”

진심이었다.

루멘의 눈빛에 담긴 진심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짹짹!

저 작은 놈은 아까부터 계속 시끄럽다.

“이름이 짭새라 했던가?”

“네.”

나의 물음에 빙긋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앉은 작은 새를 쓰다듬는 루멘.

나는 그런 루멘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가 좋은가 보군.”

“네, 제 아이인걸요.”

나의 물음에 루멘이 싱긋 미소를 지었고 나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아이 아빠도 잘 지켜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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