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8화
제168편 칼론의 감옥 면회(2)
“감사합니다.”
지켜 자작의 안내로 감옥 복도에 들어선 칼론.
그가 간수장인 자작이 직접 안내해준 것에 감사를 표하자 자작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네, 그나저나 루멘이라는 여인을 만나러 온 것인가?”
“그것을 어찌……?”
자작의 물음에 칼론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묻자 자작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녀가 매일매일 나에게 물어보더군, 칼론 경이 밖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자라왔는지.”
“아…….”
지켜 자작의 설명에 칼론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고 자작은 그런 칼론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을 때이네, 청춘을 즐기게!”
“…….”
“그럼 나는 이만!”
칼론을 향해 두 손을 모으며 힘내 포즈를 취한 지켜 자작.
칼론은 그런 자작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자작은 눈치껏 서둘러 벗어났다.
어서 루멘과 만나서 해후를 나누라는 뜻이었다.
그에 칼론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전체적으로 어두웠지만 은은한 불빛으로 인해 앞에 무엇이 있는지 분간이 가능한 복도.
칼론은 그곳을 걸으며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칼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상상했던 감옥과는 너무나도 다른, 깔끔한 내부를 지닌 감옥이었기 때문이다.
흉악범들을 가두는 곳이 아닌, 가벼운 죄를 지은 귀족들을 잠시 구금하기 위해 만들어진 층이기에 사람들이 흔히 아는 끔찍한 감옥과는 달랐다.
그에 안도한 표정을 지은 칼론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칼론이 멈추어선 곳의 바로 앞.
철로 이루어진 문, 그 안으로 보이는 익숙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칼론 경…….”
갑작스럽게 등장한 칼론 때문인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칼론을 바라보는 여인.
“…….”
백금발과 황금색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떠오르는 여인의 얼굴이 실제로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칼론은 그런 루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러고는 놀란 루멘의 두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었다.
“괜…… 찮으십니까?”
조금은 갈라진 칼론의 목소리.
그가 힘겹게 루멘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이런 질문.
하면 안 된다는 것,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분명 머릿속은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를 걱정하지 말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가슴은 그러지 않았다.
가슴은 지금 당장에라도 이 감옥을 부수고 그녀를 데리고 가라고 하고 있었다.
그런 충동을 애써 참으며 칼론이 조금은 초췌해진 루멘을 바라보았다.
초췌해진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너무나도 아파왔다.
“괜찮아요.”
그런 칼론의 걱정을 루멘은 읽었을까?
그녀는 보란 듯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루멘은 자신 때문에 이 우직한 사내.
칼론이 아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황태자 전하께서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런 루멘을 보며 칼론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고 루멘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네, 믿고 있어요.”
“…….”
신뢰가 가득한 루멘의 목소리.
그에 고개를 살짝 끄덕인 칼론은 이내 한숨을 살짝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그녀를 보았으니 이만 돌아가야겠다.
“아…….”
그런 칼론의 표정을 읽은 루멘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철커덩.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감옥의 철문을 강하게 잡았다.
칼론.
그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직인 것이다.
멈칫.
그런 루멘의 행동에 다시 고개를 든 칼론.
칼론은 감옥의 철문을 잡고 있는 새하얀 루멘의 손을 바라보았다.
“왜…… 이런 것입니까?”
그리고 새하얀 루멘의 손등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
그런 칼론의 물음에 루멘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대답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상처를 살피는 칼론.
그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말문이 막혀버린 루멘은 입을 다물었고 루멘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감옥 안의 인물들을 둘러보았다.
“누가 괴롭히는 것입니까?”
살기가 가득 담긴 칼론의 물음.
그에 감옥 안에서 기도를 올리거나 쉬고 있던 인물들은 흠칫하며 벽으로 물러났다.
“아니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루멘은 황급히 입을 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을 쥐고 있는 칼론의 손.
자신의 손보다 반 배는 더 큰 그 손을 잡았다.
“화내지 말아요.”
루멘의 따뜻한 손길과 목소리.
그에 칼론은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자신의 마음이 순식간에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성녀…….”
“저는 괜찮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루멘을 빤히 바라보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칼론.
루멘은 그런 칼론을 보며 특유의 인자한 미소가 아닌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이다.
그에 칼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봐요.”
그런 칼론의 대답에 루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
바쁜 칼론의 시간을 더 이상 뺏을 수 없으니 말이다.
자신을 이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빼내기 위해서 칼론이 트레이 교단의 행사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요한을 통해 이미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 때문에 무리하는 칼론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루멘이었기에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은 본심을 억눌렀다.
아쉬운 표정을 애써 감추며 루멘은 칼론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었다.
덥석.
하지만 이내, 루멘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칼론을 바라보았다.
칼론의 손에서 힘겹게 빼낸 자신의 손.
그런 자신의 손을 칼론이 다시 잡은 것이다.
그리고 루멘은 단호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칼론을 볼 수가 있었다.
“기다려주시오.”
“네, 믿고 있습니다.”
칼론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은 루멘.
그런 루멘의 대답에 칼론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 말고.”
“……?”
“그대에게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이어진 칼론의 달콤한 말에 루멘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꿈에서라도 듣고 싶었지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말.
그 말을 실제로 듣게 된 루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칼론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각오한 듯 흔들림이 없는 칼론의 두 눈동자.
그 두 눈동자와 마주한 루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무리하지 말아요. 언제까지든 기다릴 테니까요.”
루멘은 정말로, 칼론이 온다고 약속만 해준다면 언제든지 기다릴 수가 있었다.
늙어 죽을 때까지도 말이다.
진심이 가득 담긴 루멘의 말에 칼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위즐리, 그리고 요한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부드러운 미소를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칼론은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모든 기억을 잊은 채 행복감을 느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이 여인.
평생 놓지 않을 것이다.
“이 악마!”
그때,
감옥 안을 쩌렁하게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칼론과 루멘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악마처럼 무서운 표정을 지은 레브를 말이다.
그런 그녀가 칼론을 노려보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악마가 성녀님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위험합니다! 성녀님이 타락하고 있어요!”
웅성.
감옥 안의 미하일 신자들에게 소리치는 레브.
그러자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며 칼론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보았던 레브는 독실한 신자였다.
그런 이가 악마라고 칭하니 칼론에게 호감 어린 눈빛을 보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덥석!
“성녀님 어서 물러나세요!”
그때, 성녀인 루멘의 반대쪽 손을 잡은 레브는 그녀를 강하게 뒤로 잡아당겼다.
악마와 손을 잡고 있는 루멘을 구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꺅.”
하지만, 레브의 생각과 달리 루멘은 더욱 괴로워졌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고 또 일반 여자가 낼 수 없는 강한 레브의 힘에 루멘은 그대로 뒤로 넘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레브는 그런 루멘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서!”
그저 루멘의 팔을 잡아당길 뿐이었다.
“레브!”
그런 레브의 행동과 안쓰러운 루멘의 모습에 노호성을 터뜨린 칼론.
그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레브를 노려보았다.
“어서 그 손 놔!”
괴로워하며 아파하는 루멘.
그녀의 괴로운 모습에 칼론이 무서운 표정으로 레브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닥쳐 악마!”
하지만 레브는 그런 칼론이 두렵지 않았다.
도리어, 정말 악마와 싸우는 전사 같은 표정을 지으며 칼론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이것 좀 놓으세요!”
“성녀님! 저 악마를 조심하세요!”
괴로운 소리를 내며 부탁하는 루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레브는 계속해서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레브의 모습에 극대노한 칼론은 결국 검을 뽑았다.
스르릉.
“악마가 본성을 드러냈다!”
그런 칼론의 모습에 레브는 다시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그런 레브의 소리침과 검을 뽑은 칼론의 모습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도들은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서둘러 레브의 뒤로 물러섰다.
퍼억.
그리고 그때.
레브가 쓰러졌다.
“저자는 악마가 아닙니다. 이단도 아닙니다.”
레브의 뒷목을 강하게 내려쳐 기절시킨 성기사단장 하인리히.
그가 자신의 옆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신도들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하지만…… 레브 님이 저자가 악마라고…….”
하인리히의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한 중년 사내.
바로 교국에서 파견된 전도사였다.
그의 말에 하인리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와 다를 뿐, 악마나 이단이 아닙니다.”
그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 보는 하인리히의 단호한 모습에 신도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그런 신도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하인리히는 바닥에 아직도 쓰러져 있는 루멘을 내려다보았다.
덜덜덜…….
두려움으로 인해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떨고 있는 루멘의 모습.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하인리히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약 10년 전, 자신이 거두어들이고 교국에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왔던 그녀다.
대주교인 카노사의 양녀가 되어 공부를 하고, 또 여행을 다니며 즐거운 추억을 만든 루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5년 동안이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그런 마을 사람들 때문에 시체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기억은 그녀에게 있어서 심각한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 그녀를 거두었던 하인리히는 그녀를 매일 같이 친딸처럼 보살펴왔었다.
5년이라는 시간 후, 다행히 괜찮아졌던 트라우마가 지금 재발한 듯했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그녀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하인리히였기에 화가 났다.
그녀를 이렇게 만든 레브를 당장에라도 죽여버리고 싶었고, 모든 일의 원인인 칼론에게 루멘의 앞에서 꺼지라고 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칼론의 앞에 선 루멘은 성녀가 아니라, 루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하인리히였기에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루멘이 그 누구보다 행복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성녀…….”
그때, 감옥 철제문 건너편에서 떨고 있는 루멘을 바라보며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칼론의 모습이 보였다.
늘 성녀로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남을 위해 살아왔던 그녀.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욕심이라는 감정을 내보였던 존재인 칼론을 보며 하인리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시지요.”
“하지만…….”
“물러나십시오.”
하인리히의 낮은 목소리에 칼론이 철제문을 강하게 잡으며 대답했지만, 이내 하인리히의 단호한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루멘을 바라보았다.
역시…… 자신은 루멘에게 다가가서는 안 될 존재인 것일까?
“…….”
칼론은 쓰러져 있는 그녀를 보며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러고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역시 자신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은 욕심이었다.
자신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녀는 괴로워질 것이다.
그녀가 괴로워지는 것은 너무나도 싫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물러날 수밖에.
다시 마음을 단념한 칼론은 몸을 돌렸고, 이내 힘없는 걸음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기다릴게요!”
멈칫.
그때, 칼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에 칼론은 몸을 멈추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두려움에 질려 아직도 몸을 떨고 있으면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루멘.
그녀가 칼론의 떨리는 두 눈동자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기다릴 거예요.”
“…….”
그녀는 두려웠다.
어린 시절 자신과 어머니를 괴롭혀왔던 마을 사람들이 다시 다가와 자신을 괴롭히는 것만 같았고, 어머니를 죽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그 생각에서 벗어났다.
단지 단 하나.
칼론,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칼론의 두 눈을 바라보며 똑바로 말했다.
기다리겠다고 말이다.
그러니 꼭 자신에게 오라고 말이다.
그런 루멘의 모습에 힘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칼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각오 어린 두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