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6화
제176편 멸망의 검
“제길…….”
드높은 상공.
크산느의 등에 타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나는 초조함에 욕설을 내뱉었다.
아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괜히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괜찮을 거야…….”
불안한 나의 상태를 보고 함께 따라나선 엘로나.
그녀가 나의 손을 잡으며 나를 위로했다.
“…….”
하지만 평소와 달리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안해 미치겠다.
“크산느!”
-꽉 잡아라.-
점점 커지는 초조함에 나는 크산느를 불렀고 크산느가 나와 엘로나에게 경고했다.
그에 나와 엘로나는 크산느의 비늘을 강하게 쥐었고.
우웅!
크산느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 * *
히이잉!
제국의 유일한 항구도시 헤르만.
골목길에 들어선 칼론은 자신의 친구인 고대 정령, 쿠르스를 불렀다.
말 울음소리와 함께 등장한 새하얀 백마.
발굽과 등까지 난 갈기가 이글거리는 화염으로 뒤덮인 쿠르스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칼론의 옆에 섰다.
착!
그리고 그런 쿠르스의 등에 칼론이 올라탔다.
쿠르스의 등에 올라 적인 아비뇽을 내려다본 칼론.
그가 자신의 검으로 이단 심판관, 아비뇽을 겨누었다.
“제국의 수배자인 이단 심판관. 뻔뻔하구나. 감히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그러고는 보란 듯이 당당한 목소리로 아비뇽에게 말했다.
그런 칼론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은 아비뇽.
쿠웅.
그가 자신의 무기인 거대한 메이스를 바닥에 짚었다.
그러고는 손잡이 끝에 손을 얹고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미하일 님을 믿지 않는 이단아들.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너희들을 내가 벌하겠다.”
“개소리.”
헛소리를 지껄이는 아비뇽의 말에 위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품에서 날카로운 침을 꺼내 들며 아비뇽을 노려보았다.
부웅!
그때!
위즐리는 뒤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기운에 화들짝 놀라며 케한을 잡고 물러섰다.
“…….”
새하얀 로브를 입고 무감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 사내.
그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위즐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새롭게 등장한 새하얀 로브의 사내.
프리스트들의 수장이자 아비뇽의 수하인 잔크에게서 강자의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잔크의 기운에 위즐리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상대가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고 말이다.
우웅!
그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한 칼론은 자신의 몸에 존재한 화염의 마나와 고대 정령력을 모두 끌어올렸다.
화르륵!
엄청난 기운과 함께 전신이 화염에 뒤덮인 칼론.
그가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아비뇽을 노려보았다.
피식.
그리고 그 막대한 기운을 집중적으로 받아들이는 아비뇽은 여유로운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대공은 오지 않는다.”
흠칫.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대공, 보스에게 이 위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화려하게 기운을 끌어올린 칼론은 아비뇽의 말에 흠칫했다.
자신의 속셈을 눈치챈 아비뇽의 말에 당황했고, 또 당당하게 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비뇽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던 것이다.
우웅!
그리고, 그제야 느껴지는 기운에 칼론은 입술을 깨물었다.
10여 명의 오러 나이트 급의 강자들이 마나를 끌어올려 막을 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소드 마스터 중에서도 완숙한 경지에 오른 강자가 아니고서야 이 방어막을 뚫고 자신의 기운을 내뿜기는 어려웠다.
그에 칼론은 이를 악물었다.
당황해하면서도 심각한 표정을 짓는 칼론의 모습이 너무나도 즐거웠던 아비뇽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무기이자, 신의 철퇴인 자신의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지잉!
아비뇽이 메이스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빛이 생성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이 그의 메이스를 뒤덮었다.
새하얀 빛이 메이스를 뒤덮자 아비뇽은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 자세를 낮추었다.
그에 칼론 또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우웅!
콰앙!
그리고 칼론과 아비뇽이 부딪혔다.
붉은 기운과 새하얀 기운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격렬하게 부딪혔다.
태양이 지고, 달이 떠 어두워진 헤르만이 일순간 밝아질 정도로 엄청난 빛을 내며 부딪힌 두 명.
계속해서 서로를 잡아먹을 듯 부딪히는 붉은 기운과 하얀 기운이 계속해서 헤르만의 밤을 밝게 비추었다.
히이잉!
화르륵!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눈이 부신 밤이 지속되었고, 잠시 어두워진 사이로 쿠르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칼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이 더욱 강하게 일렁였다.
마치, 꺼지기 전 마지막 불씨를 태우듯 말이다.
지이잉!
그와 동시에 거대한 아비뇽의 메이스를 뒤덮은 빛은 또다시 뭉치고 뭉치더니, 이내 거대한 망치가 되었다.
부웅!
“세인트 해머.”
조용히 울리는 아비뇽의 목소리와 함께 그대로 칼론을 향해 덮쳐가는 거대한 망치.
“형!!!”
“우에에엥!”
보기만 해도 두려운 거대한 망치.
그것이 칼론을 덮쳐들어 가자 위즐리는 화들짝 놀라며 달려나갔고 케한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새하얀 망치.
그것을 올려다본 칼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보기만 해도 두려운 망치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분명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여지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칼론은 알지 못했다.
원초적인 공포라는 감정.
부모를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신의 벌과 같은 세인트 해머에 본능적으로 공포에 질려 자기 뜻대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이다.
“형!!”
저 멀리서 들려오는 위즐리의 절규.
그를 막아서는 한 사내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어떻게든 자신에게 달려오려는 위즐리가 보였다.
그에 칼론은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과 동시에.
콰콰콰쾅!!!
거대한 망치가 칼론을 뒤덮었다.
* * *
“아아…….”
먼지로 뒤덮인 참혹한 풍경.
위즐리의 푸른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먼지가 걷어지면서 보이는 처참히 부서진 주위 잔해들.
그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위즐리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에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우웅!
위즐리의 몸에서 올라오는 기운.
평소의 기운과 다른 끈적하고 불쾌한 붉은 기운이 위즐리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고.
“크크…….”
위즐리의 입에서 괴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더니 푸른색인 위즐리의 눈이 점점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살심으로 평정심을 잃고 몸에 지닌 내공이 역류가 돼버린 위즐리.
이계에서는 주화입마라 불리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정신 차려라.”
멈칫.
그때.
위즐리는 점점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자신의 의식을 붙잡는 것을 느꼈다.
그에 붉어지던 위즐리의 두 눈이 서서히 푸른색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고 걷어진 먼지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한 손으로 검을 들어 거대한 해머를 가볍게 막아서고 있는 흑발의 중년인.
바로, 제국 제일의 검이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 제국의 대공 보스 카르미언이었다.
“괜찮은 것이냐?”
그런 그가 위즐리를 정신 차리게 하고, 바로 자신의 뒤.
두 눈을 깜빡이며 멀뚱히 서 있는 칼론을 향해 물었다.
털썩.
보스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느껴지는 안도감에 칼론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고생했다.”
그런 칼론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건넨 보스.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거…… 좋지 않군.”
자신의 메이스를 가볍게 막아선 강자, 보스 카르미언.
그의 등장에 아비뇽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메이스를 거두었다.
그러고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네놈이 우리 아들을 귀찮게 하는 놈이구나.”
“후후. 그런가?”
그런 아비뇽을 바라보며 보스가 차갑게 말하자 아비뇽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아비뇽의 모습에 보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칼론, 위즐리. 케한을 부탁한다.”
“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보스의 목소리.
그에 칼론은 자리에서 일어나 케한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기절한 케한을 들어 안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너 움직이지 마라.”
흠칫.
그때, 칼론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위해서 검을 들었던 잔크는 자신을 향해 경고해오는 보스의 목소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보스의 단 한 마디.
그 한마디에 잔크는 자신의 몸이 쇠사슬에 묶인 듯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런 잔크를 한번 날카롭게 노려본 보스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아비뇽을 바라보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는 말 못 한 비밀이 하나 있다.”
“뭐?”
갑자기 비밀이라는 단어를 꺼내며 말을 하는 보스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아비뇽.
그가 신경질적으로 되묻자 보스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실보다 강하다는 것을.”
제국 제일검으로 알려졌지만 황제와 요한은 실보다 보스가 약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화르륵!
그의 검에서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검을 감쌌다.
대륙에서 보기 힘든 검붉은 기운.
그 기운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기색에 아비뇽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마…… 마기…….”
마신의 종이자 마족의 생명과도 같은 마기.
보스에게서 느껴지는 마기에 아비뇽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한쪽 입 꼬리를 올린 보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녕…… 악마로구나.”
보스의 몸을 뒤덮은 검붉은 색의 기운.
그것을 보며 아비뇽은 떨리는 목소리로 탄식했다.
결국, 악마가 이 세상에 강림하고 말았다.
이단 심판관인 자신이 저 이단들을 심판하지 않아 결국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비뇽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메이스를 강하게 쥐었다.
“하늘에 계신 미하일 님. 저는 오늘 저 악마를 죽이고 미하일 님의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신님께 각오했다.
오늘 저 악마를 죽이고, 자신 또한 죽겠다고 말이다.
그런 아비뇽의 중얼거림에 피식 미소를 지은 보스.
그가 검을 들었다.
검붉은 색의 기운에 휘감긴 보스의 검.
그 검이 하늘을 향했다.
쿠구궁!
그와 동시에 맑았던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웅!
점점 더 강대해지는 보스의 검붉은 기운.
그에 아비뇽은 이를 꽉 물었다.
위험하다.
보스의 저 검.
범상치 않은 물건이다.
아비뇽은 느껴졌다.
검붉은 색의 끔찍한 기운.
그것은 보스의 몸에서가 아닌, 저 검에서 나오는 것임을 말이다.
그에 아비뇽은 가진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지잉!
그와 동시에 뿜어져 나온 새하얀 빛이 아비뇽의 전신을 뒤덮었다.
“크아아아!”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공포라는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아비뇽은 일부러 큰 목소리로 기합을 내질렀다.
타앗!
그러고는 그대로 보스에게 달려들었다.
피식.
그런 아비뇽의 모습에 보스는 같잖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멸망의 검.”
쿠구구구궁!
보스의 작은 한마디.
그 한마디와 함께 하늘에 몰려있던 먹구름 사이로 거대한 검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