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4화
제184편 최고야
“…….”
황제의 응접실.
나는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황제의 모습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칼론은?”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 황제.
그 물음에 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회귀 전과 이후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황제와 나.
큰아버지와 조카 사이인 우리 둘 사이에서 이렇게 차갑고 삭막한 대화가 오고 간 것이 말이다.
“칼론의 기사 작위는 해제가 될 것이다.”
“폐하!”
그런 생각을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황제의 통보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기사라는 자부심과 황태자인 나의 검이라는 사명을 자랑스러워 했고, 기사도를 그 어떤 기사보다 지켜가며 살아온 기사 칼론이다.
그런 녀석에게서 기사라는 작위를 해제하다니?
그것은 곧 그에게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팔을 뺏어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
놀란 나의 부름에 황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안다.
칼론이 이번에 얼마나 잘못했는지 말이다.
당장 반역이라는 죄를 뒤집어쓰더라도 할 말이 없는 칼론이다.
하지만, 황제는 나를 생각해서 기사 작위를 해제하는 것으로 끝을 내겠지.
그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 누구를 탓하겠는가?
칼론의 주군인 나.
내가 주군으로서 수하를 살피지 못한 탓이 크다.
“실망했다.”
아…….
그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귀에 들려오는 황제의 말에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처음이다, 황제에게 저런 단어를 들어본 것이…….
전생에서, 내가 무능력했을 때도 나에게 실망이라는 단어는커녕, 혼내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던 황제이다.
하지만 지금.
회귀 후, 천재의 삶을 살아가고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황제에게 실망이라는 단어를 들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너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상처받은 나의 귀로 또다시 들려오는 황제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도저히 고개를 들어 말을 하는 황제의 두 눈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대륙 최초로 젊은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오른 것? 대견하다. 오스란과 밀리언을 속국으로 삼은 것? 대단하다.”
“…….”
“하지만, 네가 그런 공을 세우지 않았더라도 나는 너에게 실망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맞습니다.
전생에서 폐하는 무능력하고 열등감에 빠져 삐뚤어져 있던 나를 항상 믿고 웃어주던 존재였습니다.
“나는 그냥 네가 아랫사람을 잘 헤아리고, 그들과 어울리며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했다.”
“…….”
“한데 너는. 황태자라는 지위, 황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친구 한 명도 지키지 못했다.”
“…….”
“큰아버지는 너에게 정말 실망했다.”
“죄송…… 합니다.”
가슴이 아팠다.
황제의 말이 비수가 되어 나의 가슴에 꽂혔다.
황제의 말이 맞았다.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개소리.
회귀 직후, 칼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었던 나 자신이 너무나도 병X 같았다.
그렇게 다짐하고, 내가 진심으로 아끼는 친구도 지키지 못한 내가 나를 믿는 신하들, 그리고 병사들. 나아가 수천만 명의 백성들을 지킬 수가 있을까?
“…….”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물러가거라.”
그런 나의 귀로 황제의 축객령이 들렸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방에서 벗어났다.
* * *
“심하셨습니다.”
황태자 요한이 물러가고.
구석 소파에 앉아있던 보스가 조금은 차가운 목소리로 황제를 향해 말했다.
원망이 담긴 보스의 어조에 피식 미소를 지은 황제는 고개를 돌려 눈치를 살피고 있는 막내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
황제의 물음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실.
그가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응. 요한 저 녀석, 그 누구보다 잘해내고 있는 녀석이야. 형도 알잖아?”
“호오?”
실의 말에 황제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실을 바라보았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요한과 실이다.
물론, 실과 요한 성격상 서로 츤츤 거리며 잘 지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앞에서 저 삐뚤어진 실이 저렇게 요한을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다.
황제뿐만이 아닌 보스 또한 놀란 표정으로 실을 바라보았다.
“아 뭐! 솔직히. 요한이가 큰형보다 낫잖아?”
그런 둘의 시선에 인상을 찌푸린 실은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소파 등에 몸을 기대었다.
그에 황제와 보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그런 거다.”
살짝 미소를 지은 황제.
그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채 편하게 앉아있는 막내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보스에게 말했다.
그런 황제의 말에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의문 어린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그 둘의 모습에 황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저 녀석. 너무 잘하고 있어. 한번은 넘어졌으면 했거든.”
“…….”
“내가 황제의 자리에 있을 때 넘어지면 내가 일으켜 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자리에 없을 때는? 나아가 너희가 없을 때 넘어진다면?”
“…….”
설명을 하며 자신들에게 묻는 황제의 모습에 보스와 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요한은 거침없이 앞으로만 나아갔다.
넘어지는 것 하나 없이 10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북부의 전쟁터에 나갔고, 큰 공을 세웠으며 설인들을 수족으로 삼았다.
또 성인이 되어서는 서부로 가서 엘프들을 굴복시키고 세계수를 되살렸다.
그뿐인가?
바로 그다음 해인 올해.
황태자는 남부로 내려가 사막을 정리하고 오스란을 수중에 넣었다.
대륙의 대부분을 손에 넣은 이는 황제도 아닌 바로 황태자 요한이었다.
그런 황태자 요한이 실수하고 중간에 넘어진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보스와 실이다.
그런 두 명의 동생을 보며 황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줘야지. 그래야 녀석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잖아?”
“노력하겠습니다.”
“…….”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황제.
그런 황제를 보며 보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실은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더럽게 멋있네.”
* * *
“오셨습니까, 전하.”
“…….”
황태자인 나의 궁에 위치한 칼론의 방.
그곳에 들어서자 칼론을 간호하기 위해 옆을 지키고 있던 성녀, 루멘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나.
그런 성녀를 지나친 나는 칼론의 침대 옆에 섰다.
그러고는 물끄러미 누워서 자고 있는 칼론을 내려다보았다.
회귀 이후 내가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다짐했던 칼론.
매일같이 녀석을 끌고 다니는 나 때문에 여인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녀석은 깊은 죄책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녀석은 사랑했던 여인을 잃었다.
심지어, 그 여인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만들었다.
또, 평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기사라는 명예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씨X……."
하나하나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한심한 주군이었다.
녀석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뭐 같은 소리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나는 무능력하다.
회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능력하다.
우웅.
“!!!”
그때,
나의 어깨에 앉아 가만히 아까부터 나의 눈치를 살피던 크산느가 마나를 끌어올려 실체화를 시전했다.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변신한 크산느.
그런 크산느를 보며 루멘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를 무시한 나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크산느를 바라보았다.
“크산느.”
어린 시절.
갓 회귀한 나의 10살 때 모습으로 변신한 녀석을 보며 나는 녀석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다.
스윽.
그런 나의 부름에 크산느는 조용히 손을 뻗어 나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
그런 크산느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느꼈다.
나의 붉은색 눈동자가 보석처럼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말이다.
“넌 이미 훌륭해.”
그때, 나의 귀로 부드러운 크산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시절의 나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그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크산느…… 아니,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는 어린 시절의 나.
그에 나는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꾸욱. 참았다.
그러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 나는…….”
“이미 칼론은 행복해했어. 네가 회귀하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네 덕분에 원래 죽음이라는 운명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어.”
“…….”
“원래 노예로 살아야 할 최악의 운명을 지닌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사내들이 누군가의 아이, 누군가의 가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고, 웃음과 몸을 팔아야 하는 노예가 될 운명인 여인들이 지금은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어.”
“…….”
“설인들에게 죽을 운명이었던 북부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북부의 병사들에게 죽어가야 할 운명이었던 설인들이 살아서 북부 인간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어.”
“나…… 나는…….”
“세계수를 살리고, 세계수를 수호하게 되어 인간들을 미워하던 엘프들이 인간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너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의학과, 교육 등 기타 문명이 발달이 되어 죽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던 엘프들이 살아나게 되었고, 인간과 전쟁을 해야 할 운명이었던 오크들이 전쟁을 하지 않고, 자치권을 얻은 중립도시에서 인간들과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어.”
“…….”
“이게 네가 회귀함으로써 가져온 변화야.”
나는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나의 말에 나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처음이다.
회귀를 한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 말이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몸에 힘이 풀린 나.
무릎을 꿇은 나는 나와 눈높이가 같은 어린 나에게 물었다.
정말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이냐고.
내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게 했고, 또 그들을 책임질 자격이 있냐고 말이다.
그에 어린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최고야.”
엄지를 치켜세우며 환한 미소를 짓는 어린 나.
그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크산느.”
어린 나, 아니 나를 위로하기 위해 고생을 해준 크산느를 향해 나는 감사 인사를 했다.
그에 크산느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퍼억!
그러고는 냅다 나의 얼굴을 후려쳤다.
“…….”
순식간에 일격을 허용하고만 나.
나는 순간 벙찐 표정으로 크산느를 바라보았다.
나 왜 맞은 거지?
파닥!
-정신 차려, 새꺄.-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날개를 파닥이며 얄밉게 말한 다음 창밖으로 유유히 도망가는 도마뱀 자식의 뒷모습을 말이다.
“야 이 새X야!”
치사하게 때리고 도망가냐.
창밖을 보며 날아가는 크산느를 향해 욕설을 내뱉은 나는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죽은 듯이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칼론을 향해 걸어가 녀석의 옆에 멈추어섰다.
그러고는 세상 편안하게 자고 있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일어나면 좀 맞자.”
화 좀 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