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9화
제189편 케한의 귀환
웅성웅성.
제국의 수도 팔센.
그곳의 백성들은 중앙대로를 가로지르는 황실 근위 기사들을 보며 놀란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당하게 말을 타고 움직이는 근위 기사들 뒤로, 순백색의 로브를 깊게 눌러쓴 인물들과, 새하얀 백발을 지닌 설인들이 대로를 가로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설인들의 모습에 백성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설인들을 바라보았고, 설인들은 그런 백성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계속 옮겼다.
“충!”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아아, 성자님!”
황성의 정문 앞.
그곳에 마중 나와 있는 황태자 요한을 발견한 근위 기사들이 행렬을 멈추고는 황급히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었고,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요한에게 고개를 숙였다.
성자의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백성들에게 존경을 넘어, 이제는 추앙을 받게 된 요한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벌컥.
모든 행렬이 멈추자 함께 멈추어진 마차.
그곳의 문이 열리고,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미소년, 케한이 내렸다.
“!!!”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당당히 걸음을 옮기는 케한의 모습에 요한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형님.”
자신을 향해 성숙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는 케한.
그런 동생의 모습이 살짝 놀라웠던 요한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요한은 한쪽 무릎을 꿇고 양팔을 벌렸다.
“이리로 오거라.”
부드러운 미소와 음성.
평소 요한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기에 주변 인물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요한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주변 시선을 신경 쓰며 예를 차리는 동생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런 요한의 모습에 케한 또한 다른 주변 인물들처럼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저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곳에는 수많은 백성들과 기사들, 그리고 귀족들이 있었다.
자신의 실수가 곧 요한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인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어서 오래도?”
하지만, 케한의 귀에 다시 요한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자신을 보며 어서 오라는 듯 미소를 지는 요한.
그런 요한을 보며 케한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형아!”
와다다!
와락!
그러고는 요한을 크게 부르며 쪼르르 달려가 요한의 넓은 품에 안기었다.
“내 동생…… 고생했다.”
그리고, 요한은 그런 케한의 등을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
퍼억!
“크윽…….”
황태자의 집무실.
나는 나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잔크의 얼굴을 그대로 걷어찼다.
그와 동시에 옆으로 쓰러진 잔크.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런 잔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일어서.”
“네.”
나의 차가운 말과 동시에 다시 무릎을 꿇은 잔크.
나는 다시 그런 잔크를 때리기 위해 주먹을 들었다.
“요한, 잠깐만. 일단 이야기 듣고 때리자.”
그때, 가만히 나의 옆에 있던 칼론이 나서서 나의 팔을 잡았다.
그런 칼론의 행동에 나는 차가운 눈으로 칼론을 바라보았다.
“비켜.”
“다 때리고, 고문하다가 죽이면 되잖아.”
“…….”
진심이 가득 담긴 칼론의 충고에 나는 순간 당황한 표정으로 칼론을 바라보았다.
“저 자식, 내 배 찌른 놈이야.”
아, 칼론의 배 찌른 놈이 저놈이었나.
칼론의 말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중에 네가 조져.”
“나한테 맡겨, 알잖아? 갈구는 게 내 특기인 거.”
나의 말에 씨익 미소를 지은 칼론이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현생에서는 안 그랬지만 전생에서 칼론은 정말 능글맞고, 깐족거리던 놈이다.
지금의 나보다 더 말이다.
“칼론 형이 이상해졌어…….”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위즐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칼론은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
그 이야기를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꽁.
“시끄러 이 자식아.”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다니…….”
결국 칼론에게 꿀밤을 한 대 맞은 위즐리.
그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면서도 다시 중얼거렸다.
그에 칼론은 다시 손을 들었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무릎을 꿇고 있는 잔크를 바라보았다.
“요한.”
“말해.”
“네가 할래? 내가 할까?”
나의 말에 씨익 미소를 지은 칼론.
녀석이 나를 향해 묻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할 테니, 나가서 데이트나 해.”
“뭐래, 아무튼. 거절하지 않고 나는 나가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불러.”
나의 농에 피식 미소를 지은 칼론.
그가 손을 흔들며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집무실을 벗어났다.
녀석, 전생의 기억을 되찾으니 역시 옛날 성격 나온다.
세상 쿨하게 인사를 하고 사라진 칼론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형…… 나 적응 안 돼 죽겠어. 저 사람 누구야?”
칼론이 나가고, 위즐리가 나의 옆으로 달려와 칭얼댔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시간이 약이다.
나중에 위즐리도 칼론에게 적응할 것이다.
아무튼, 그런 위즐리를 무시한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잔크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다 말해.”
“네.”
그리고, 나의 차가운 말에 잔크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것을 토해내었다.
궁금하지 않은, 신성 교국의 권력 경쟁구조와 프리스트들이 수행해 왔던 명령들까지 모두 말이다.
* * *
“…….”
팔센에서 말로 족히 한 시간은 달려가야 나오는 작은 동산.
그곳에 올라서 칼론은 자신의 앞에 위치한 작은 무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칼론.
그가 품속에서 작은 술병 한 개를 꺼내었다.
“마셔라.”
그러고는 뚜껑을 열어 레브의 무덤에 뿌려주었다.
에르의 선택을 받고 칼론 자신 또한 전생의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요한이 죽고, 그에 분노한 자신은 무분별하게 싸우다 결국, 암살자들의 검에 맞았다.
그 이후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 자신 또한 그때 죽었을 것이다.
아무튼, 전생에서의 레브와 현생에서의 레브의 모습이 겹쳐진 칼론은 살짝 슬픈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던 것이냐.”
전생에서, 얼굴을 붉히며 매일같이 자신을 쫓아다니던 여인이었고, 현생에서는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이다.
그리고, 미쳐버린 여자이기도 했고 말이다.
꿀꺽꿀꺽.
레브의 무덤에 술을 뿌리고, 나머지 술을 그대로 들이켠 칼론.
말없이 술병을 모두 비운 칼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아직, 싹도 자라나지 않은 무덤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나 후회 안 해.”
그녀의 목을 직접 벤 칼론.
그가 가벼운 어조로 무덤을 향해 말했다.
“…….”
역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에 칼론은 품속에서 다른 술 한 병을 꺼내어 그대로 들이켰다.
그렇게 또 한 병의 술을 들이켠 칼론.
그가 빈 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사람은 환생이라는 것을 한다고 하더라.”
트레이 교단의 교리와 미하일 교단의 성경에 나와 있던 이야기.
사람은 죽어서 영혼이 되고, 그 영혼은 생전의 업을 모두 해결하고, 다시 인간으로 환생한다.
그것을 떠올리며 칼론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 생에서는 행복해라.”
“…….”
이번에도 역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애초에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칼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던 칼론.
그가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휘이잉.
그런 칼론을 향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칼론은 자신의 머리칼을 넘기는 바람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번 생에서 행복할게. 날 원망하려면 해라. 다음 생에서 나를 죽여도 좋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미련 없이 말이다.
* * *
“그대가, 북부 설인들의 족장인가?”
“그렇습니다. 3개의 부족 중, 눈보라 일족의 족장을 맡고 있는 위천이라고 합니다.”
황궁의 가장 중앙에 위치한 황제의 대전.
황좌에 앉은 황제의 물음에 한쪽 무릎을 꿇은 위천이 예의 바르게 대답하였다.
그런 위천의 대답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황태자의 수하라고?”
“북해신의 대리자인 요한 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황태자가 아닌, 북해신의 대리자를 따르고 있다는 당돌한 위천의 대답에 황제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저 대답의 속에는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각오 또한 포함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건방지네.”
황좌의 아래, 왼쪽에 서 있던 실이 그런 위천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우웅.
실의 미소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가공한 기운.
초인의 경지인 엘리멘탈 마스터의 기운에 위천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양쪽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그런 위천의 모습에 실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더더욱 강하게 기운을 끌어올리려던 그 찰나.
“그만하거라.”
대전에 위엄 어린 황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의 명에 실은 뒤로 물러서며 즉시 기운을 거두어 들었다.
그에 작게 심호흡을 한 위천.
황제는 그런 위천을 내려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황태자는 지금, 에르라는 신의 선택을 받은 성자이다.”
“들었습니다.”
“하면, 그대들이 믿는 북해신이 에르 님이겠구나.”
“…….”
솔직하게 위천은 복잡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북해신.
그의 대리자인 요한이다.
한데 갑자기 에르라는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그럼 자신이 믿었던 북해신이 곧 에르라는 뜻인가?
자신들이 믿었던 북해신은 신이 아닌, 드래곤이었던 것을 모르는 위천과 나머지 설인들이기에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황제의 말에 위천은 아직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에 황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요한을 믿지 않는 것이더냐?”
“그분은 북해신님의 대리자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면, 북해신이 곧 에르 님이라는 뜻이 아니더냐?”
“…….”
위천의 대답에 재미있다는 듯 다시 말한 황제.
그의 말에 위천은 다시 고개를 깊게 숙였다.
“생각 정리가 필요해 보이는구나.”
“송구합니다.”
그런 위천의 귀에 들려오는 황제의 목소리.
그에 위천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건 이곳에 머물며 차차 생각하고, 그대들과 함께 온 프리스트라는 놈들. 그대들과 우리 조카. 케한을 납치한 놈들이 맞느냐?”
“맞습니다만…… 조금 다릅니다.”
“뭐?”
황제의 물음에 위천이 애매하게 대답하자 황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맞으면 맞는 것이지, 조금 다르다니?
말장난을 하자는 것인가?
황제의 짜증 섞인 되물음에 위천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우리를 납치한 것은 그들의 수장이었습니다만, 그는 주군의 아버지…… 대공 전하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흐음…….”
위천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황제.
그에 위천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가 죽자, 프리스트들은 저희에게 용서를 구하며 오히려 이곳에 오는 것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흐음…… 자신들의 대장을 바로 배신한 것인가?”
“신의 이름을 팔아가며, 수하들을 속여 왔고 수하들은 신의 이름에 넘어가다가 도를 넘는 수장의 모습에 의심을 한 듯했습니다.”
말끔한 위천의 정리에 황제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제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위천을 바라보았다.
“너는 프리스트들의 편을 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