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1화
제191편 황태자의 의료개혁(2)
“왕녀님.”
황성에 위치한 수많은 별궁 중 하나.
그중 하나를 배정받은 엘로나는 자신의 방에서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런 엘로나의 머리를 빗겨주던 시녀 하빈의 부름에 엘로나는 고개를 들어 거울 속에 비친 하빈을 바라보았다.
“무슨 걱정 있으세요?”
황제와 만난 이후, 표정이 좋지 않은 채 계속 생각에 잠겨있는 엘로나의 모습에 하빈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에 엘로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데요. 말해봐요.”
하지만 하빈은 엘로나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여인이다.
그녀에 관한 것은 솔직히, 부모인 국왕과 왕비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렇기에 하빈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엘로나의 모습이 거짓인 것을 간파하고는 엘로나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런 하빈의 모습에 엘로나는 미소를 짓다가, 끈질긴 하빈의 질문에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왕국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
“갑자기요? 왜요?”
갑작스럽게 왕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엘로나의 말에 하빈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러고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와 싸우셨나요?”
황태자 요한이 하이아칸의 왕녀인 엘로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대륙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황태자의 지휘하에 만들어진 왕녀와 황태자의 로맨스 소설은 일반 백성들은 물론, 귀부인들과 귀족들의 영애들에게까지 인기가 높을 정도였다.
얼굴도 잘생긴 데다가 달콤한 로맨티시스트인 황태자인데, 그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왕녀님이 갑자기 왕궁으로 돌아가겠다 하는 것인가?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하빈의 물음에 엘로나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애초에 내가 요한에게 화낼 일은 없어.”
그런 엘로나의 부정에 하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하긴 황태자 전하와 왕녀님의 싸움이라니……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네요.”
서로 좋아 죽는 사랑꾼 두 명이다.
그 두 명이 싸움을 한다?
가볍게 토라지는 것은 몰라도 고국으로 돌아갈 만큼 크게 싸우다니,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 왜 갑자기 돌아가는 거예요?”
“왕국에 손님이 찾아왔다나 봐.”
엘로나의 대답에 하빈은 더욱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손님이기에 제국에 있는 왕녀까지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무슨 손님이기에 왕녀님까지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타 대륙, 신성 교국에서 온 인물들인가 봐.”
“…….”
현재 대륙인들은 모두 알고 있다.
타 대륙에서는 트레이 교단과 다른 신을 모시고 있는 신성교국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현 판게아 대륙인들 중에서 극소수지만 미하일을 믿는 신도들도 있다.
제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미하일 교단의 극단적인 신도들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성녀인 루멘이 직접 나서서 백성들에게 사과하고 더욱더 선행을 베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왕국으로 신성교국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제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엘로나와 함께 교육을 받아왔던 하빈이었기에 엘로나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기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싫어하실까 봐 그런 거죠?”
“응……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는 설인족들과 함께 돌아와서 일을 도와달라고 하시는데…… 내가 간다고 하면 요한이 싫어할 것 같아서.”
하빈의 물음에 엘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엘로나의 모습에 입꼬리를 씨익 올린 하빈.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흐음…… 황태자 전하랑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구요?”
화들짝.
“아니거든!”
정곡을 찔린 것일까?
하빈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엘로나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고 그에 하빈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하빈.”
“죄송해요 왕녀님.”
무서운 표정으로 하빈을 부르는 엘로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웃는 하빈.
그녀가 웃으면서 사과를 하자 엘로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왕녀님.”
“응?”
그런 엘로나를 부른 하빈.
엘로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하빈은 씨익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하에게 얘기해요. 아마 전하는 같이 가자고 할걸요?”
“요한은 타 대륙으로 가야 해.”
하빈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 엘로나.
그런 엘로나를 보며 하빈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전하가 왕녀님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왕녀님이 왕국으로 돌아가서 타 대륙의 인물들을 만난다고 하면 크산느 님을 불러서 타고 날아갈걸요?”
“에이, 설마.”
하빈의 말에 엘로나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요한은 국정을 돌보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작 그 정도로 나를 따라올까?
아닐 것이다.
물론 자신이 부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부탁은 하기 싫었다.
“겸사겸사잖아요. 어차피 신성교국에 찾아갈 거니까 북쪽으로 넘어가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국에 가겠지요. 제국 입장에서는 왕국에서 신성교국의 손님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파악도 해야 하구요. 정치적 관계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
논리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얘기하는 하빈의 모습에 엘로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로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는데 정치적 관계를 들먹이며 설명하는 하빈의 모습은 마치, 국정 일을 오랫동안 돌본 귀족 같았다.
그런 엘로나의 시선에 씨익 미소를 지은 하빈.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우리 왕녀님을 위해서, 저는 이런저런 정보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답니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하빈의 모습에 엘로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엘로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하빈을 바라보았다.
“너…… 요새 요한의 시종인 샌드와 자주 어울리더니…….”
“그 녀석이 알려주더라구요. 하여튼 예쁜 건 알아가지고. 아주 귀찮아 죽겠어요.”
엘로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칼을 넘기며 하빈이 말하자 엘로나는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어? 왜 웃어요?”
매일매일 잘생긴 남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던 하빈이다.
한데 이번에는 반대로 다른 남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너무나도 웃겼다.
그렇기에 엘로나는 웃었고 하빈은 입술을 삐죽이며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호호!”
그런 하빈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엘로나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 * *
“어서 오십시오.”
“이리로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까?”
황태자궁의 파티 홀.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문 앞에 선 샌드는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샌드의 인사에 한 손님이 안을 가리키며 묻자 샌드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르갈 의사님.”
“나를 아시오?”
샌드의 대답에 화들짝 놀란 의사.
남부, 오스란 공국 출신인 이르갈이 깜짝 놀라며 대답하자 샌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시종으로서, 손님들에 대한 신상과 얼굴 파악은 기본입니다.”
“허어…….”
모든 손님의 신상과 얼굴을 외운다는 샌드의 말에 이르갈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살짝 미소를 지으며 샌드를 바라보았다.
“역시, 황태자 전하의 시종이오. 그럼 실례하겠소.”
“좋은 시간 되십시오.”
미소를 지으며 말한 이르갈.
그를 향해 샌드는 고개를 숙였고 이르갈 또한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수십여 명의 손님을 파티 홀로 들인 샌드.
그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올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모두 왔다.-
샌드가 고개를 들자마자 그의 귀에 들리는 게슈레의 목소리.
그에 샌드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웠다.
이제, 자신의 주군인 황태자를 부르러 가야 했다.
* * *
“왔네.”
“그러네.”
방안에 앉아있던 나와 칼론, 그리고 위즐리.
나의 방으로 다가오는 샌드의 기척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칼론과 위즐리 또한 그런 나를 뒤따라 일어섰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방문을 열었다.
벌컥.
퍼억!
“으악!”
갑작스럽게 열린 문으로 인해 이마를 박고 그대로 주저앉은 샌드.
나는 그런 샌드를 내려다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왜 길을 막고 그래?”
“…….”
크큭.
열 받았나 보다.
약 올리는 듯한 나의 질문에 샌드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후우…… 아닙니다.”
그것도 잠시.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샌드를 보며 나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다 왔어?”
“네.”
나의 물음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샌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런 샌드를 지나쳤다.
“가자.”
“저도 갑니까?”
그런 나의 말에 움찔한 샌드.
녀석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샌드를 바라보았다.
“싫어?”
“어유, 좋지요.”
나의 말에 손사래 치며 미소를 짓는 샌드.
하여튼 저놈도 정상은 아니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그때, 그런 샌드의 어깨에 손을 얹은 칼론이 샌드를 이끌었고 샌드는 울상을 지으며 칼론에게 이끌려 나의 뒤를 따랐다.
-어쩔 생각이야?-
“알아서 뭐하게.”
그렇게 복도를 가로지르며 파티 홀로 걸음을 옮기던 나는 나의 머리에 앉은 크산느의 질문에 삐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자식이.-
“뭐 자식아.”
그런 나의 대답에 크산느는 신경질을 냈고 나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며칠 전 나를 놀리고 갑자기 사라진 녀석이다.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었던 나였기에 나는 평소보다 더 삐딱하게 대답했다.
그런 나의 태도에 화가 났을까?
크산느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더니 이내, 나의 머리를 물어버렸다.
하아…… 이 자식 요새 잠잠하다 했다.
“이 검은 도마뱀 자식이!”
머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크산느의 꼬리를 잡아당겼다.
끈질긴 녀석.
내가 꼬리를 잡아당기자 더욱 강하게 무는 크산느였다.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녀석의 꼬리를 놓았다.
“그만해.”
-츄릅.-
아 더러운 새X.
진지한 나의 말에 침을 닦으며 나의 머리에서 이빨을 땐 크산느.
물론 영체화인 상태라 내 머리가 도마뱀의 타액으로 인해 촉촉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츄릅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나빴다.
그런고로.
쭈욱.
방심을 한 크산느의 뿔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치사한 놈!-
“흥이다.”
갑작스러운 나의 공격에 방심한 크산느는 나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나의 뿔 공격에 크산느는 괴성을 질렀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또 크산느 님이랑 싸우는 거야?”
나의 허벅지를 깨무는 크산느를 보며 더욱더 강하게 뿔을 당기던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칼론의 목소리에 입을 열었다.
“아니, 서열 정리 중.”
“서열이 어디 있어. 친구라며?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크산느 님이 위지. 제국의 수호룡이신데.”
-마다, 카로 또또하다 (맞다, 칼론 똑똑하다.)-
칼론의 말에 나의 허벅지를 깨문 채 대답하는 크산느.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크산느의 나머지 한쪽 뿔도 잡아당겼다.
“자자. 그러지 말고,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풀어. 크산느 님도 푸세요, 아시겠죠?”
나와 영체화로 인해 칼론의 눈에 보이지 않는 크산느.
그런 우리 둘을 향해 칼론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나는 크산느를 내려다보았다.
-그르자.-
나의 눈빛에 동의한 크산느.
그에 나는 칼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하나.”
왠지 익숙한 장면이다.
“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셋!”
쭈우욱.
콰득!
그리고, 이 망할 도마뱀 새X도 변하지 않았다.
“으아아아!”
-크으으으!!-
“하아…….”
그렇게 우리 둘의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고 칼론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헤헤! 싸워라 싸워!”
그런 나와 크산느의 싸움에 위즐리가 대놓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그런 위즐리의 모습에 나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위즐리를 노려보았다.
위즐리 저 녀석, 나중에 한 대 때려야지.
“헤헤.”
그리고, 위즐리의 옆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 샌드 저 자식은 참수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