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9화
제219편 구원
“스승님!”
갑작스러운 나의 과격한 행동에 놀랐을까?
아이작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불렀다.
“크윽…….”
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작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바닥에 처박혀 괴로운 신음을 흘리는 엘론을 내려다보았다.
“아파?”
“크으윽!”
손에 쥐어진 엘론의 머리를 강하게 쥐며 바닥에 짓누른 나.
그런 나의 물음에 엘론 추기경은 대답 대신 신음을 흘렸다.
“칼론, 메이슨.”
“네 주군.”
“예 전하.”
“지금부터, 이 홀에서 아무도 못 나간다.”
“알겠습니다.”
나의 낮은 부름에 자세를 취하며 대답한 칼론과 메이슨.
그들에게 내가 명령을 내리자 둘은 짧게 대답하고는 바로 움직였다.
칼론은 파티 홀의 유일한 문인 대문 앞에 서서 검을 뽑았고 메이슨은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어 파티 홀의 유리창과 벽을 그대로 얼려버렸다.
그 두 명에 의해 절대로 나갈 수 없는 공간이 된 파티 홀.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머리를 잡힌 엘론 추기경을 내려다보았다.
“나. 이제 시작하려고.”
“크윽!”
나의 말에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엘론 추기경.
그런 추기경을 내려다보며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기 지치겠더라고.”
어서 이곳의 일을 처리하고 제국으로 돌아가서 엘로나와 신혼 라이프를 즐겨야 한다.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생각에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콰앙!
그리고 녀석의 머리를 바닥에 한 번 더 내리꽂았다.
추욱.
그런 나의 행동에 엘론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몸을 축 늘어뜨렸다.
걱정 마라, 죽지는 않았다.
그의 몸에서 희미하게 숨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기절해버린 엘론의 머리에서 손을 뗀 나는 허리를 폈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귀족들과 교회의 사제들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여기서 누구도 나가지 못한다. 불만 있는 자 있나?”
“아인츠 후작!”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곳의 주인인 아인츠 후작을 부른 아이작.
그의 부름에 가만히 있던 아이작이 앞으로 나서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예 폐하!”
“황제인 나를 부정하고, 나를 따르지 않는 모든 이들을 포박하십시오!”
“명을 받듭니다!”
황제인 아이작의 명령에 큰 목소리로 대답한 아인츠 후작.
그의 대답과 동시에 벽에 서 있던 후작가의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사전에 미리 이야기되었는지 각자가 맡은 인물에게 다가가 검을 겨누었다.
교회의 사제들과 교회의 속삭임에 넘어가 황제를 배신한 귀족들.
그들 모두를 포박하는 데 성공한 아인츠 후작.
그가 아이작의 앞에 다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신 아인츠! 황제 폐하의 명을 수행하였나이다!”
“고생했습니다.”
너무나도 듬직한 아인츠 후작의 모습에 아이작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후작을 격려한 녀석이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작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스승님이 생각하신 대로 행동하라고 말이다.
끄덕.
녀석의 눈빛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파티 홀의 정문에 위치한 칼론을 바라보았다.
“칼론.”
“네.”
나의 명령에 고개를 깊이 숙인 칼론.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가서, 엘론 추기경의 마차를 뒤지도록 해.”
“알겠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녀석이 몸을 돌리고 대문을 열었다.
쾅.
녀석이 밖으로 나가고, 이내 문이 닫혔다.
모든 귀족과 교회의 인물들이 포박되어 나갈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지 아이작의 기사, 루크가 문 앞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저런 자세 좋다.
“메이슨.”
“네 전하.”
이번에는 메이슨을 불렀다.
나의 부름에 어떤 명령이라도 내려달라는 듯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메이슨.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양주를 들어 메이슨에게 건네었다.
“이것 좀 시원하게 해주라.”
“…….”
개인적으로 시원한 술을 선호하는 나였기에 미안하지만 부탁했다.
그런 나의 부탁에 메이슨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우웅!
착한 놈.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은 잘 들었다.
나는 시원해진 위스키병을 건네는 메이슨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뽕!
그리고 손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에 만족하며 위스키의 뚜껑을 열고 컵에 따랐다.
그러고는 컵을 들어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흐음…….”
아주 진하고 괜찮은 술이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 동네는 나라는 아주 개판이지만 술은 참 괜찮은 동네인 것 같았다.
벌컥!
“전하!”
어, 왔다.
그렇게 술 한 컵을 모두 마실 시간이 지나고.
칼론이 파티 홀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 그……?”
그런 칼론을 반기기 위해 미소를 짓던 나는 칼론의 오른편에 있는 의문의 소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발을 지녔고, 또 신성력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소녀였다.
오랜 시간 제대로 된 영양분을 취하지 못했는지 피골이 상접해 있었으며, 소녀의 몸에 덮어진 칼론의 검은 망토 사이로 속이 다 보이는 얇은 나삼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등장과,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옷차림을 한 소녀의 모습에 나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누구야?”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성력을 지닌 소녀.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녀를 가리키며 내가 묻자 칼론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엘론 추기경, 아니 저 쓰레기 새X의 마차에서 발견했습니다.”
“…….”
“…….”
칼론의 입에서 나온 경악 어린 말.
그 내용에 파티 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시X.
* * *
“으음…….”
정말 오랜만에 푹 잔 것 같았다.
매일매일 늙은 괴물에게 시달려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내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숙면을 취한 게 언제였을까?
기억도 나지 않았다.
“……?”
잠에서 깨기 위해 두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
나의 등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감각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마치, 귀족들이 사용하는 고급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 같았다.
그에 의문을 느낀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노인이 나를 가지고 놀기 위해 태웠던 마차가 아니다.
너무나도 드넓은 방.
그곳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고급스러운 침대에 내가 있었다.
그에 화들짝 놀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은은한 달빛이 들어오는 창가.
그 창문 앞에 서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는 한 사내가 보였다.
새하얀 피부와 흑발이 너무나도 인상적인 사내였다.
그 사내를 발견한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너무나도 고귀해 보였고, 신비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스윽.
나의 입에서 나온 감탄 소리를 들었을까?
창밖을 바라보던 사내가 몸을 돌렸다.
“!!”
그러자 발견할 수 있었다.
붉은 루비처럼 아름다운 사내의 두 눈동자를 말이다.
“깼나?”
열린 사내의 입에서 나온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
사내의 물음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정신을 차린 나는 주변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이곳은……?”
터억.
내 물음에 와인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사내.
그가 걸음을 옮겨 내게 다가왔다.
이 사내도 나를 농락하려는 걸까?
나를 향해 다가오는 사내의 모습에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고는 경계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끌어올려 몸을 가렸다.
두렵다, 언제까지 이런 끔찍한 생활이 지속되는 것일까?
그만…… 죽고 싶었다.
피식.
웃음소리?
나의 모습이 웃겼을까?
발악으로 보였을까?
사내가 가소롭다는 듯 지어 보인 미소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흘러도 내 몸을 더듬는 끔찍한 손길은 없었다.
그에 의문을 느낀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보였다.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가 말이다.
“걱정 마라, 두려워하지도 마라.”
왜일까?
사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 사내는 누구일까?
또 나는 왜 이곳에 있을까?
그에 의문을 느낀 나는 사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
나의 물음에 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을 살펴볼 뿐이었다.
노인 또한 내 몸을 살펴보았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내는 달랐다.
붉은색의 두 눈가에 담긴 걱정이라는 감정.
그 감정을 느낀 나는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 나이가 몇이더냐.”
내 물음에 답하지도 않고 질문을 해버리는 사내.
그런 사내의 행동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내가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 지금 신성력 몇 년인지 알 수 있을까요?”
사내의 물음에 곰곰이 고민을 하던 나는 사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25년.”
그런 나의 질문에 짧게 대답한 사내.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17살이네요.”
23년, 납치되었을 당시였고 그때 내가 15살이었으니 말이다.
꽈악.
뭘까?
나의 대답을 듣자마자 사내는 얼굴을 찌푸리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내가 뭐라도 잘못했을까?
맞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그에 나는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미안함을 느꼈을까.
사내가 갑자기 사과를 건네었다.
미안하다.
이 간단한 단어, 하지만 듣기 너무나도 어려운 단어였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듣는 말에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를 구해줄 것이다.”
그때, 자신의 귀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구해주겠다는 사내의 말.
그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정말일까?
이 사내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2년 전 나는 다짐했었다.
돌아가신 부모를 대신해 나를 돌보아주던 이웃집 아저씨.
그가 나를 끔찍한 곳에 팔아넘긴 이후로 사람을 절대 믿지 않기로 말이다.
그렇게 다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이 사내를 믿고 싶은 것일까?
나는 알다가도 모를 나의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하일님의 사도이십니까…….”
매일같이 미하일님에게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올렸던 나.
비록,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나는 매일 매일 기도했다.
부디 구원해 달라고 말이다.
해서 혹시나 했다.
이 사내가 자신을 구하러 온 미하일님의 사도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의 물음에 사내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나는 실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나의 귀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하일의 형제, 에르님의 사도이다.”
“!!!”
천족인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미하일님의 형인 에르님.
어둠을 관장하는 마신이며, 용신이라고도 불리는 신.
미하일님이 친형처럼 따른다는 그 신 말이다.
그 신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미하일님의 형제, 에르님은 흑발의 머리칼을 지닌 사내라고 말이다.
혹, 내 눈앞에 존재하는 사내가 에르님은 아닐까.
아니, 제발 에르님이었으면 했다.
뚝.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나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 안도감에 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