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강남 미용실(2)
“여자 손님들에게 무조건 언니라고 불러야 한데이.”
“네?”
“와? 싫나?”
친구가 미용실을 박차고 나갔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딴에는 자존심 때문에 그건 할 수 없었던 듯 했다.
이 정도 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조금 걸리는 건, 미용실 정식 취업의 조건이 매우 힘들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쉬운 것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까짓 거 뭐 대수라고.”
“좋아. 그럼 내일부터 출근해라.”
“아, 그럼 저 통과 된 건가요?”
“글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미용실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누구는 귀엽다는 표정을 짓고, 누구는 안쓰럽게 보기도 하고, 누구는 표독스럽게 날 바라보았다.
미용실을 나오며, 뒤에 뭔가를 남기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뭘까? 뭐가 이렇게 내게 찜찜한 기분이 들게 하는 건가?
***
“니들 정말 부럽다!”
나와 승철이 강남의 미용실에 들어간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학원 동기들이 모였다. 나는 물론이고 승철도 강남역 근처에 큰 헤어샵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알아보니까 니네 미용실이 가장 유명하더라. 연예인도 많이 온다고 하던데?”
[스타일 헤어]는 드라마 [억수탕의 남자들]의 김미선 헤어스타일을 유행시키며 강남은 물론이고 전국의 헤어스타일을 주도한 곳이다.
“아, 김미선 아직도 온다더라.”
“이야, 니가 김미선을 볼 수 있는 거냐?”
“와 부러워. 우리나라 최고 미인을 만나볼 수 있구나!”
“에이, 무슨 쟤는 미스코리아가 애인인데.”
“맞다, 그 미스코리아는 헤어진 거야?”
“애인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래도 부럽다 짜식 김소연도 김미선도 평생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 아니냐.”
그렇게 애들이 떠들고 있는 사이, 승철은 소주잔을 연거푸 마셔댔다. 사실 [스타일 헤어]는 승철이 진짜 가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학원 원장에게 일부러 더 살갑게 대했던 건데, 거길 나에게 빼앗겼으니 편치 않겠지.
“쳇 여자 만날라고. 미용하냐 성공하려고 하는 거지.”
“그치, 성공은 당연한 거 아니겠냐 거기 출신이면.”
친구1이 눈치 없이 떠들자 친구2가 친구1의 옆구리를 찔렀다. 두 사람은 그제야 승철을 살폈다. 승철은 어느새 소주를 두 병째 마시고 있었다.
승철은 소주를 부득부득 씹어가며 마셨다.
그러게 왜 남의 여자를 꼬셔서 내 눈밖에 난건가? 하긴, 네놈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혼도 하지 않았을 테고 회귀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냥 인과응보라고 해 두자.
그러다 갑자기 친구1이 나를 붙잡고 물었다.
“근데, 너 집에 언제 들어갈 거냐? 너희 어머니 학원에도 찾아왔데!”
“아, 가야지.”
“야 말도 마, 어머니 친구라는 여자는 술까지 먹었는지 얼굴이 빨개져가지고.”
“헉, 그 여자도 왔어?”
돈을 들고 나왔으니, 우리 최이숙 여사께서 애가 타셨을 거다. 근영 엄마는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갑갑하시겠지. 이제 부탁한 물건도 다 되었을 테니 슬슬 집에 가볼까.
* * * * *
“와 바닥도 번쩍거리네.”
[스타일 헤어]의 입구는 유달리 반짝반짝했다. 복도며 문이며 새것처럼 빛나는 것이 거슬릴 정도였다. 그게 왜 거슬리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지만.
미용실로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경리가 나오더니 나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박준수씨.”
“네, 안녕하세요!”
경리는 다짜고짜 미용실용 앞치마를 손수 걸쳐주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겉옷을 벗고 앞치마를 메었다.
“이거 입고 들어가요?”
내가 미용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리가 나를 막아섰다. 경리는 나의 손에 수세미와 세숫대야를 넘겨주었다. 그걸 본 나는 뭔가 쎄한 느낌을 받았다.
“이거 가지고 문은 물론이고 복도 끝까지 전부 물세척하시고 들어오세요.”
“네? 저걸 다요?”
“네, 전부 다 반짝반짝하게요.”
나는 입구가 그토록 반짝거렸던 이유를 깨닫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복도 대청소를 마치고 미용실에 들어간 나에게, 계속해서 청소 요구가 빗발쳤다. 마치 내가 출근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청소 할 거리가 넘쳐났다. 나는 청소부 아주머니보다 더 많이 청소를 해댔다.
“미스터 박 이것 좀 치워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미스터 박 롯드 7호 한주먹 가져와요.”
오늘 갓 취업한 내가 (롯드 7호)를 알 리가 있나?
정 선생은, 또 다른 핑계로 나를 갈구려고 저 심부름을 시킨 것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7호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려 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7호가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당당하게 탕비실에 들어가자, 다들 내 다음 행동을 주목하였다. 정선생에게 왕창 깨지는 결말을 예상한 듯 흥미로운 표정들이었다. 그중 은서는, 웃고 있음에도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왜 그런 건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될 테지만.
탕비실에 들어간 나는 7호를 한주먹 쥐고 생각했다. 지금 7호만 그대로 들고 간다면 아무도 안 가르쳐 준 롯드 크기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셈인데, 괜히 쓸데없는 의심만 살 것 같았다. 나는 8호도 한주먹 손에 쥐었다.
롯드 진열대를 대충 보아하니 예상대로 롯드 크기에 맞춰서 차례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뭐 위에서 숫자대로 놓여있네.”
나는 씩 웃으며 탕비실을 나섰다.
내가 나오자 미용사와 스텝들이 전부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에 7호와 8호를 들고 나오자 모두들 조금 놀란 눈치였다. 나를 신경질적으로 바라보던 정 선생은 나의 손을 보고,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빨리 가져오라고요.”
“아, 네네.”
정 선생은 7호를 휙 빼앗아 들고는 나를 밀쳐냈다.
“순서대로 놓인 것 같았는데 맞나보네요. 하하.”
“8호는 필요 없으니 갖다놔요.”
정 선생은 갑자기 친절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순진하게 웃는 나의 미소 앞에서, 화낼 필요는 없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헤어디자이너들은 재미있는 드라마가 끝난 듯, 금세 자신의 일에 집중하였다.
은서는 피식 웃었는데, 아마도 비웃음일 것이다.
탕비실에서 롯드를 정리하고 있는데 은서가 들어왔다. 나를 본 은서는 친절하게 웃으며 나의 일손을 도와주었다.
“여기는 정식스텝을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 거 알아요?”
정식 스텝을 뽑지 않으면, 모두 임시란 말인가? 놀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늘처럼 계속해서 청소만 시키다가 스스로 그만두게 한다는 말이죠.”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지금 스텝이 차고 넘쳐요. 근데 청소아줌마는 비싸고 스텝 초보는 청소 아줌마보다 더 싸거든요.”
“쳇, 그렇군요. 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은서는 피식 웃고는 탕비실에서 나갔다.
나는 오래전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했다. 스텝 중 센스 없고 답답한 애들은 청소만 시킨다는 말이 있긴 했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더 센스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지, 여기서 나갈 수는 없어.”
나는 이곳에서 기술을 더 배우지 않아도 된다. 사실 그걸로 따지면 이곳에 더 남아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청소 열심히 하려면 운동이나 해둬야겠네 쳇.”
앞으로 디자이너가 될 때까지, 이곳에서 미용 관련 동료들과 사업 관련 동업자를 만나야 한다. 이대로 청소만 할 순 없다.
* * * * *
“하, 청소만 며칠째냐 미치겠다 정말.”
나는 미용실에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나도록 여전히 청소만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청소라도 잘하자는 생각으로 근력운동도 시작했다. 그러자 팔뚝에 근육이 붙고 급기야 알통까지 생겼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미용실 주변과 내부가 반짝거리던 이유가, 바로 앞전에 고생하던 그 분의 피와 땀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정 선생이 시킨 것 같은 미용 관련 작은 심부름을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청소 아줌마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미용장갑 대신,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미용실 중간을 지나가는데, 원장인 한선호의 추레이에서 커트빗이 떨어졌다.
털썩.
한원장이 어느 손님의 머리를 해주는 중이었고, 그 뒤에서 보조로 서있던 은서가 추레이에서 커트빗을 떨어트린 것이다. 그 빗이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졌다. 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얼른 빗을 주워들었다.
순간 주변의 모든 미용사가 나의 행동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장갑을 벗고 커트빗을 가지고 샴푸대로 뛰어갔다. 내 행동을 본 원장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은서는 내 행동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마도 내가 실수할 것을 예상했을 테지.
“여기 있습니다.”
나는 샴푸대에서 빗을 씻어서 가져왔다. 한원장은 나를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주변의 미용사들도 나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잘했다. 고마워요 미스터 박.”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미용실, 특히 큰 미용실 같은 경우에는 커트빗이 땅에 떨어졌을 때, 그 빗을 다시 사용하지 않고 씻는 것이 규칙이다.
왜냐하면, 땅에 떨어진 빗을 다시 손님의 머리에 사용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땅에 떨어진 물건으로 손님 모발을 빗는다는 것 자체가 대접받지 않는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빗을 닦아온 것이다.
이런 작은 습관과 선택에서도,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 정신이 보였던 나의 행동은, 원장과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주었다.
나는 다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롯드를 빨고 있었다. 사실 롯드 빠는 것도 초보에게는 시키지 않는다. 롯드에 묻은 파마약을 제대로 씻어내야, 다음 손님의 머리도 잘 나오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것 하나는 제대로 하고 있기에 다들 믿고 맡겼다.
그렇게 파마 롯드를 닦고 있는데 은서가 들어왔다. 은서는 나를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완전 청소아줌마가 따로 없네.”
“뭐, 할 수 없잖아?”
“착한 척 하지 마.”
“뭐? 지금 뭐라고 그랬어?”
은서의 조롱에 화가 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서는 표독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착한 척 하지 말라고! 잘 들어 내가 오빠 아니 당신보다 선배거든? 샴푸기술 하나라도 배우고 싶으면 알아서 기어. 아님 그만두던지!”
“어딜 가나 미친년 하나쯤은 있다더니 그게 너구나? 그럼 빗도 일부러 떨군 거냐?”
“하, 그래 내가 여기 오는 애들 전부 그 빗 떨구는 걸로 내보냈는데 그거 알아차린 놈은 너 하나야. 그렇지만 여기 남게 된 걸 곧 후회하게 해줄 거니까 기대해.”
“그래, 기대된다. 아주!”
“원장님이 너 나오란다. 빨랑 나와.”
나는 은서가 좋은 애가 아닌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미용사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상대를 잘 파악하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데, 30년 넘게 미용을 해 온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아 진짜 돌아이는 어디에나 있네.”
나는 분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나갔다. 문 앞에서는 한원장이 서있었다.
“이거 저 건너편에 있는 재료상에 갖다 주고 와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원장이 내민 봉투를 들고 미용실을 나섰다. 봉투에는 백만 원이나 들어있었다. 이렇게 한 달여를 개고생한 후에 백만 원을 손에 쥔다면, 누구라도 돈을 들고 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 큰돈을 맡겼다는 것은, 이게 말로만 듣던 테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이걸 반드시 전해줘야 정식직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네, 이제 청소 아줌마는 끝난 건가?”
나는 지금까지 고생한 게 이제 끝날 것을 기대하며 가볍게 걷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달려와서 나의 손에 쥔 봉투를 낚아채 갔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