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강남 미용실(3)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 죽도록 달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야 이 새#야 거기서!”
도둑은 나를 우습다는 듯 바라보고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다다다다.
길 건너편에 있는 재료상 앞에서 내가 건너오길 기다리던 김 실장이, 이 모습을 보고 놀라 턱이 늘어나도록 입을 벌렸다.
“도둑이야 도둑 잡아라!”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고 도둑을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개입하기라도 하면, 도둑을 잡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내 소리를 들은 건장한 사내가 도둑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도둑은 그냥 달리다가 잡힐 것을 깨닫고는, 갑자기 택시를 잡아 탔다.
“어어, 저 새끼가 진짜!”
나도 질세라 택시를 잡아타고 뒤를 쫓아갔다.
“어서 옵쇼.”
“아저씨 저 앞 택시 잡으면 따불!! 빨리 빨리 좀 가주세요!”
“아, 네! 갑시다 그려!”
아저씨는 말을 하자마자 무섭게 차를 몰았다. 덕분에 앞차를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교통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교통방송에 따르면, 바로 앞에서 우회전을 하면 차가 밀리지 않고 좌회전을 하면 차가 밀리는 상황이었다.
“아저씨 저 차 우회전하지 못하게 옆에 붙어서 몰아 주세요!”
“네, 그럽시다 그려.”
끼이이익. 끼이이익.
아저씨는 나의 말대로 차를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덕분에 앞차는 억지로 좌회전을 하고 있었다. 두 택시는 어느새 밀리는 도로에 근접했다.
“지긋지긋한 서울 주차장에 왔구먼.”
나는 차가 멈추자마자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아저씨는 놀라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어 이봐 택시비 내놔야지!”
“금방 올게요!”
나는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 택시 앞에 다다랐다. 그러자 앞 택시 안에 있던 도둑이 얼른 문을 잠갔다.
똑똑똑, 퍽퍽퍽
놈을 무조건 잡아야 내가 산다. 택시 문이 부서지도록 두드릴 수밖에.
“야 이 도둑놈의 새끼야 문 열어!”
내가 미친 듯이 차를 두드리자, 앞의 택시 기사가 창문을 조금 열어 소리쳤다.
“야 미친 새#야 썩꺼져!”
“기사님 저놈 제 돈 들고 튀었어요. 도둑놈이라고요!”
“뭐?! 도둑놈?”
1997년도의 감성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정의감에 넘친다고 해야 할까? 도둑놈을 태우고 도주를 도와줄 택시기사는 많지 않았다. 기사는 내 말을 듣고는 택시 문을 열어버렸다.
덜컥.
“아 뭐야 #발 택시비 안 받을 거야?”
놈이 욕을 하는 도중, 내가 재빨리 문을 열고 차안으로 목을 들이밀었다.
“택시비 내가 줄 거야 새끼야!”
나는 도둑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렸다. 도둑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도둑의 주먹이 꽤나 매서웠지만, 피하지 않고 도둑의 머리채를 잡아 쥐었다.
“돈 내놓으라고 이 도둑새끼야!”
“아아, 이거 놔!”
도둑은 소리를 지르며 택시 안 반대쪽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머리털을 잡았다 놓친 나는, 놈의 주머니 속에 있는 봉투를 잡았다.
그러자 도둑이 봉투 반대쪽을 잡았고, 둘이 실랑이를 하다가 봉투가 찢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만 원권 백장이 강남 한복판에 흩어졌다. 도둑은 그 틈을 타서 도망쳤다.
“야, 노랑머리! 너 거기서!”
지금, 돈을 포기하면 놈을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테스트 통과를 하려면 돈부터 구해야 할 것이다.
* * * * *
“그래서? 그 녀석이 아직도 안 왔다고?”
한원장이 직접 재료상에 들어왔다. 김 실장은 내가 걱정되는지 연신 창밖을 쳐다보았다.
“올거에요. 아주 죽자살자 쫓아갔다니까요.”
“그 녀석, 재수가 없었구만.”
드르륵, 딸랑딸랑.
난 괴롭고 힘들었지만, 숙제는 해야겠기에 죽을상을 하고 재료상으로 들어섰다.
얼굴에는 상처와 멍이 있었고, 손에는 지저분하게 구겨진 만 원권들이 들려 있었다. 머리 또한 엉망으로 뻗쳐 있었고, 옷에도 발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김 실장과 한 원장은 내 모습을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 돈 가져왔어요.”
“아이고, 꼴이 그게 뭐고?”
원장은 휴지를 가져와서 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원장의 표정에서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나를 반강제적으로 끌고 재료상을 나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 실장은 내가 앞으로 원장의 오른팔로 성장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얼떨결에 원장의 차에 탄 뒤,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안도감에 졸음이 몰려왔지만,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참아냈다. 원장은 근방의 종합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전 진짜 생각지도 못했는데 웬 노랑머리가.”
“노랑머리? 니 지금 노랑머리라 캤나?”
노랑머리, 1997년도에는 노랑머리가 흔하지 않았다. 노랑머리를 하고 누가 지나갈 때면 와! 하고 쳐다볼 정도였다. 어쩌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 노랑머리요. 얼굴은 제대로 못 봤어요.”
“몇 달 전에도 노랑머리가 돈 봉투를 쎄비갔다 켔는데, 설마 같은 놈인가?”
“아 그러고 보니 머리한지 몇 달 된 듯 3센치 정도가 자라 있었어요.”
“니 얼굴은 못보고, 머리 자란 건 보이드나? 천상 미용사네 하하.”
“아, 감사합니다.”
천상 미용사, 회귀 전 20년과 회귀 후 10년, 종합 30년동안 남의 머리를 만져왔음에도 지치지 않고 또 미용을 하겠다고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천상 미용사가 맞는 것 같다.
원장의 차는 한국대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별로 큰 상처도 아닌데 한국대 병원까지 온 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멋쩍게 웃었다.
“아, 저는 별로 안 다쳤는데, 이런데서 치료 안 해도 괜찮은데요.”
“내가 여기 볼일이 있다 와? 저번에 니헌테 청소 똑바로 하라고 욕하고 간 그 할매 있다 아이가? 그 할매가 여기 입원했는데, 자꾸 내한테 와서 머리 쫌 해 달라고 그칸다 내 예의상 한번은 와줘야 할 것 같아서 온기다.”
“아 그 곱슬머리 맨날 드라이 하시는 그 할머니요?”
“그래 그 할망구가 완전 흑인 곱슬 아이가? 아들이 한국대 부원장이라 카든데 머리카락은 어캐 치료가 안되는갑다.”
그때 당시에는 매직스트레이트가 안나왔을 때라서 곱슬머리를 피는 건 커녕, 드라이로 피는 것조차도 어려운 시기였다. 그래서 돈 좀 있는 곱슬머리는 매일 미용실에 드라이를 하러 오기도 했다. 그 할머니도 흑인처럼 심한 곱슬머리를 갖고 있었다.
“좀만 늦게 태어나셨어도…….”
“응? 그게 뭔 소리고?”
“아뇨, 나중엔 그런 곱슬머리도 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엥? 그런 게 나오믄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판대기 아무리 쎄가 빠지게 붙여 싸도 안되는디 뭔 수로?”
“헉, 네 하하.”
“와 웃고 자빠졌노 싱겁구로.”
내년에 매직스트레이트가 나오는데, 원장님 손에 장을 지지는 것을 볼 생각에 나는 웃음부터 나왔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치료를 하러 병원을 들어가고 있는 나의 주머니에서 삐삐 진동 소리가 울렸다.
엄마와 근영 엄마는 한 시간 간격으로 삐삐를 쳐댔다. 안 그래도 오늘 갈 생각이었다. 병원을 나온 뒤에, 어딜 먼저 들러야 하겠지만.
* * * * *
드르륵.
“어서오세요. 아, 오…….오셨군요?”
인쇄소 사장은 날 보자 긴장한 듯 눈을 파르르 떨었다. 마치 007 요원을 보는 듯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그럴 만 했지만, 사실 그도 돈을 받고 이 작전에 가담한 셈인데,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탁한 것은 다 되었겠죠?”
“네, 제 신변은 정말 보장해 주시는 거죠?”
“물론이죠. 걱정마세요.”
“네.”
인쇄소 사장은 내 대답을 듣고서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007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 시절 돈 가방의 상징인 007 가방.
“여기 있습니다.”
“뭘 이런데다 넣으셨어요. 하하.”
내가 007 가방을 받아들고 웃자, 인쇄소 사장이 정색을 하며 날 바라보았다.
나는 인쇄소 사장의 표정에 뻘쭘해서, 미소를 싹 거두고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약속한 돈 여기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서 건네자 얼른 받아 챙기는 인쇄소 사장.
“그럼, 이제 가시죠?”
드르륵.
그는 날 빨리 쫓아내려고 문을 열어주었다. 참 간이 작은 사람이구나.
“네네, 갈게요.”
나는 쫓겨나듯 인쇄소를 나왔다. 하긴, 위조지폐는 중범죄에 속하니 그가 이렇게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도 나도 이 일로 감옥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 * * * *
집에 도착하기 10초 전, 여행 가방과 007 가방을 들고서 10초보다 1초라도 더 안 들어가려고 애썼다. 아무래도 엄마가 등짝을 때릴 것만 같아서 말이다. 최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초인종을 누르려고 했는데 망쳤다.
근영 엄마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내 등짝을 사정없이 갈기는 것이다.
짝!
“이놈의 자식! 엄마 돈을 해먹어?”
“뭐야? 아줌마!”
누가 할 소리. 내 엄마 돈을 들고 나른게 누군데? 뻔뻔함이 극에 달하는 아줌마구나.
근영 엄마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내 덩치가 꽤 큰 편인데, 아줌마의 완력에 조금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돈 어따 두었어?
“아, 이거 놔요 놔!”
내가 아줌마를 밀치려는데, 집에서 엄마가 튀어나와서 아줌마를 잡았다.
“어머 왜 그래? 내 아들한테?”
“엄마.”
“이 녀석 내가 잡아왔어!”
엥? 이 아줌마가 지금 뭐라는 거지? 날 잡아와?
“아줌마, 그게 무슨?”
“이 녀석!”
와락.
날 보자마자 등짝을 때릴 줄 알았던 어머니는, 날 꼭 끌어안았다.
“그깟 돈 때문에 엄마를 안 보려고 그랬니?”
어머니는 울먹이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위조지폐 완성될 때까지 기다린걸요.
“아니에요. 돈 가져왔어요 어머니.”
나는 007 가방을 열어서 어머니에게 보여드렸다.
만 원권 천개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을 본 어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옆의 근영 엄마는 더 환하게 웃었다.
“역시 착한 아들이었어.”
근영 엄마는 방금 내 멱살을 쥐었던 사람인데, 내게 착하다 한다. 참으로 속물이다.
어머니는 돈을 보더니 나를 다시 끌어안았다.
“정말 돈 때문에 집에 안 온 거였구나.”
“아니에요. 강남의 미용실에 취직하게 되어서 좀 바빴어요.”
“그래도 그렇지, 집에는 들어와야지.”
“어머, 거기 연예인 많이 가는 곳이라고 그러더라.”
“아, 그래? 우리 아들 잘 풀리네.”
하, 이 아줌마가 내 미용실 뒷조사를 하고 다녔구나. 정말 소름 끼치는 아줌마다.
엄마는 나를 흐뭇한 얼굴로 보며 웃었다. 그제야 미소가 지어지는 모양이었다. 미안해 엄마, 아들이 다 계획이 있었다구.
“일단 집에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근영 엄마가 어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그거 들고 들어가면, 남편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근영 엄마는 007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기한테 맡기라는 뜻이겠지.
“그럼 지금 가져갈래?”
“좋지! 이자는 걱정 말고 있어. 매달 그 통장에 넣어줄게.”
“그래, 근영 엄마만 믿을게.”
엄마는 근영 엄마에게 약속을 했던 돈이기에 미련 없이 돈을 건넸다. 근영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가방을 들고 갔다. 거의 뛰어가다시피 하는 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근영 엄마는, 예상대로 다음날 바로 짐을 싸서 날랐다. 동네 사람들은 자기 돈을 잃어서 난리가 났지만, 우리 엄마는 태연하게 웃을 수 있었다. 내가 근영 엄마를 의심해서 위조지폐를 주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작전을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