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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3화 (13/200)

13화. 샴푸의 요정(1)

“치아 교정기만 뺀 거 맞아?”

겨우 치아 교정기만 뺐을 뿐인데, 너무 예뻐진 김설아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얼마 전에 정 쌤을 만나서 눈썹을 다듬었다고 했다. 두 가지의 단점을 걷어내니 완벽하게 재탄생 한 것.

김설아는 화장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또렷한 이목구비에, 맑은 피부를 지녀서,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들어왔다. 내가 반했던 그 김설아가 눈앞에서 생긋 웃고 있다. 항상 그녀를 보기만 해도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날 보고 있다.

“어서 가시죠. 미래의 탑스타님.”

나는 여왕 폐하를 모시듯이 다가가서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한국의 그레이스 켈리라고 불리는 그녀는 여왕이 되기에 충분했다.

“네.”

나는 그 길로 김설아를 데리고 미용실로 향했다. 김설아의 머리를 예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김설아 자체가 너무 예쁘기 때문에, 머리를 과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두상과 얼굴형에 맞게 드라이 해 주면 될 듯 싶었다.

정 쌤이 김설아의 메이크업을 해주며, 그녀의 미모에 감탄한 듯 말했다.

“와, 나 연예인 정말 많이 봤는데, 이 정도 미인은 별로 없어요.”

그녀는 김미선과 황신애까지 전부 메이크업을 해줬던 경력이 있다. 그녀가 인정할 만큼 김설아가 예쁜 것이다.

정 쌤이 추천하는 옷까지 갈아입은 김설아는 그 길로 S 대학 캠퍼스로 향했다.

김설아를 먼저 내려주고, 주차를 한 뒤 쫓아가는데, 앞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김설아를 보고 벌써부터 사람들이 모였는가 싶어서 얼른 쫓아갔다.

“설아씨.”

김설아는 웬 외국인 할머니를 부축하고 있었고, 주변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외국인 할머니가 넘어질 뻔한 것을 김설아가 부축한 모양이었다. 다들 외국인 할머니가 영어가 아닌 독일어를 하자 놀라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김설아는 할머니의 말에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인파 중에는 예쁜 여학생과 그 남자친구까지 섞여 있었다. 그들은 김설아가 그 김설아인 것을 깨닫지 못한 듯 보였다.

“우리 아들이 여기에서 공부를 하는데 어딘지 못 찾아서 그래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할머니는 독일어로 저렇게 물어보았다. 주변에서는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전혀 없는 듯 했다. 김설아는 정확한 발음으로 할머니의 말에 답해주었다.

“독일 학생은 몇 명 없어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찾아드릴 테니 이리 오세요.”

사람들은 김설아처럼 예쁜 학생이 독일어까지 유창하게 말하자 다들 놀란 눈치였다. 예쁜 여학생의 남자친구는 아예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우리 학교에 저렇게 지적이고 예쁜 사람이 있었어?

김설아가 할머니를 모시고 가자, 남학생이 말했다. 나는 슬그머니 그의 옆에 다가가서 대꾸했다.

“저 사람이 김설아잖아요. 내가 가장 예쁘다고 했죠?”

남학생과 예쁜 여학생은 김설아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심지어 김설아의 친구까지 놀라고 있었다.

“뭐, 뭐한 거에요? 수술했어?”

“수술이 일주일 만에 아물어요?”

나는 두 사람에게 코웃음을 쳐주고 김설아를 쫓아갔다.

두 사람은 우리가 가고 없는 중에도 계속 싸우고 있었다.

* * * * *

김설아를 모시고 이사장을 찾아갔다.

이사장은 김설아를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와, 완벽하네. 어디서 이런 보물을 찾은 거야?”

역시, 이사장은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다. 김설아가 탑스타 감이라는 것을 한 번에 알아챈 듯 보였다. 나는 팩트에 근거해서 데리고 온 것이지만, 이사장은 순전히 감이 좋은 것.

“정말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는 거야?”

“네, 없습니다.”

“하, 정말 아깝네. 아까워.”

이사장은 약속대로 내게 돈 봉투를 건네주었다. 이 돈은 아주 요긴하게 쓰여 질 전망이다. 어머니가 주신 돈은 이미 3배 이상의 수익을 내었고, 이 돈까지 얹어지면, 조만간 큰돈이 모일 것이다. 캡슐에 적어놓은 연도별 주식 투자 리스트는 정말 대단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룰 만큼의 액수가 되기엔 좀 모자란 액수이다. 좀 더 모아야 아버지의 부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사장이라는 사람에게 좀 더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제가 히트곡을 알아보는 귀도 있고, 특히 히트 드라마를 알아보는 재주가 좀 있습니다. 원하실 때 언제든지 말씀만 하시면 알아봐드릴 수 있어요.”

“정말인가? 그럼 내 가끔씩 부탁함세. 아, 물론 제대로 짚어주었을 시 대가도 짭짤할 거야.”

“네, 감사합니다.”

이제 돈을 조달할 방법이 좀 더 생겼으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사장과 볼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김설아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 이 귀한 여자가 내 앞을 막아주다니, 정말 꿈인가.

“무슨 일이십니까? 소속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김설아의 소속사는 사실 다른 데였으니, 어쩌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네.

하지만 김설아가 원한 것은 바로 나였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하는 이유가 뭔데요? 이야기 들어보니 메이크업은 직접 돈을 주고 구하신거라고 하던데?”

“전 돈을 벌려고 그런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돈이 목적인 것은 분명하다. 팬심은 그 뒤로 빼도 괜찮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어차피 사랑 따위 지겹도록 해봤고, 눈앞에 김설아는 넘볼 수 없는 상대다. 지금 좋네 어쩌고 했다가는 나만 손해를 볼 것이다. 냉정해지는 것이 가장 옳다.

“나한테 첫눈에 반했다고 그랬다면서요?”

“아, 그건…….”

정 쌤이 김설아에게 말한 모양이구나. 그래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일.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에요.”

김설아는 탑스타가 된 후 은퇴선언을 하고, 대한민국 검사랑 결혼해서 차기 대권주자의 아내가 될 인물이다. 나 같은 놈과 엮여서 좋을 것이 없다. 한국의 그레이스 캘리가 될 여자를 함부로 넘볼 수는 없다. 그게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김설아는 그 말을 평생 잊지 않았다.

* * * * *

김설아와 눈이 마주치고 웃었던 행복한 기억을 가득 담고서, 즐겁게 일하고 있는 중에, 한 원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박군아, 내 좀 보자.”

“네.”

한 원장은 나를 원장실로 조용히 불렀다. 한 원장의 표정으로 봐서는 좋은 일로 부른 것 같지 않아서 내심 불안하던 터였다.

“니 드라이 엄청 잘한담서?”

한 원장은 내가 원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물었다. 아마 정 쌤에게 어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원장실에 들어가자 정 선생이 따라와서 궁금해 하는 중이었다.

“아, 그게.”

“니 여자머리 다 마스터했을 기라고 그라던데 참이가?”

“아니, 조금 하긴 하는데 마스터는 아니고요.”

마스터 하긴 했지. 하지만 너무 빠르게 다 하게 된다면 문제의 여지가 많다. 거기다 이 미용실에서 앞으로 함께 회사를 만들어 갈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데, 저들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라믄 니 승급시험 없이 그냥 올라가도 되겠네? 안 그래도 이번에 니 공이 있어가 내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은 공이고, 승급시험 없이 올라가는 건 좀 그렇습니다. 다들 고생해서 올라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샴푸 단계에서 펌이나 드라이로 올라가려면 샴푸를 마스터 했다는 승낙을 받고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걸 뛰어넘는다는 건 다른 스텝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자 정 선생이 원장실로 들어왔다.

“100만원 채우려면 한참 남았는데요.”

“그기 언제 다 채울 기고? 쟈는 샴푸는 이미 마스터했다 아이가?”

“그래도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네, 저도 그런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정 선생은 내 말을 듣고 나를 달리 보는 듯 했다. 약간 건방지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전혀 그런 모습이 없어서 내게 호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야야, 쟈가 이번에 공을 세웠으니 그라는 거 아이가?”

“그래도 100만원은 채워야죠.”

100만원이라 함은, 스텝이 샴푸를 해서 손님이 마음에 들었을 때 팁을 받는데, 그 액수가 100만원을 넘어야 샴푸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만큼 샴푸에 정성을 다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인데, 나는 현재 50만원 조금 넘은 상태였다.

“저, 그럼 앞으로 제게 샴푸를 몰아주시는 것이 어떤가요? 공을 세운 보상으로 말이죠.”

“오, 그거 괜찮네.”

“야야, 니 그라다 주부습진 걸린다.”

“괜찮습니다. 스텝들 다 거치는 게 주부습진인데요.”

주부습진은 미용실 스텝의 1차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절은 2021년도보다 약이 더 독한 편이라, 거의 모든 스텝들이 주부습진에 한 번쯤 걸리곤 했다.

“그럼, 앞으로 샴푸는 거의 다 하는 걸로 오케이?”

“넵, 그렇게 하겠습니다.”

“음, 좋아. 준수씨 생각보다 멋진데?”

정 선생은 한껏 기분이 좋아서 나갔다. 마음에 들기 어려운 양반이긴 하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상당히 좋은 그런 분이 정 선생이다.

“정말 괘안겠나? 손이 마이 아플긴데?”

“네, 저만의 방법이 있어서 괜찮을 겁니다.”

그간 주부습진에 좋다는 건 다 해본 경력이 있으니, 웬만하면 잘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었다.

* * * * *

1997년도 IMF가 터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돈을 물 쓰듯 쓰던 시기였다. 경제가 호황이 이어지며 다들 그런 상태가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용실에는 손님이 미어터졌다.

“준수씨, 샴푸.”

저 소리만 오늘 백번은 들은 것 같았다. 샴푸는 세신사가 때를 미는 것처럼 샴푸를 하는 사람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작업이다. 남자 샴푸 정도는 아무렇지 않지만, 긴 머리 여자의 샴푸를 하고나면 배가 고파질 정도로 고된 작업인데, 오늘 그걸 계속 하고 있자니 기운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분 한 분 정성스럽게 해 주어야 팁을 받을 수가 있다. 다행인 것은 각 손님을 한번쯤 봐왔기 때문에 손님의 기호를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비위를 맞추는 것이 쉬웠다. 그렇게 한참을 샴푸하고 있는데, 문제의 손님이 다가왔다.

김성순 여사님, 곱슬머리의 원천이라고 불리는 사람. 흑인 곱슬머리를 연상케 하는 공격적인 곱슬머리의 소유자다. 이런 머리를 감기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모발에 물이 잘 묻지 않아서 문제이고, 머리가 너무 촘촘하게 박혀있어서 두피에 물조차 들어가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거기다가 머리가 엉켜있어서 그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도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분은 샴푸를 잘 해주었을 때 팁이 정말 많이 나온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안녕하세요. 여사님.”

“응, 샴푸의 요정이시네?”

“앗, 요정이라뇨. 하하.”

“나 머리 감은지 3일 되었으니 잘 부탁해?”

“넵.”

3일 된 머리는 일단 비눗물부터 나지 않는다. 이런 모발은 애벌빨래를 하듯이 한번 쓰윽 감기고 나서 다시 정식 샴푸를 하면 된다. 두피를 잘 씻기기 위해서는 샴푸 원액을 바르는 것 보다 샴푸를 물에 타서 거품을 아주 많이 낸 걸로 하면 좀 더 잘 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샴푸를 하고나니 김성순 여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음, 좋아. 정말 샴푸의 요정이시네?”

“아이고, 과찬이세요.”

“내 섭섭지 않게 해줄게.”

김성순 여사는 내 앞으로 5만원의 팁을 주고 갔다. 1997년도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팁을 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손님의 특징을 잘 파악해서 노력하면 금방 샴푸를 마스터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준수씨, 샴푸.”

샴푸를 해달라는 소리가 어쩐지 께름직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가 왜 그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손님은 두피와 얼굴이 피부병으로 망가져있는 손님이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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