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미용재벌-14화 (14/200)

14화. 샴푸의 요정(2)

“이쪽으로 오세요. 손님.”

피부병 손님은, 자신의 머리를 누가 감겨주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듯 보였지만, 절차상 샴푸를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은 그다지 심하지 않은 아토피 수준이고, 두피는 지루성 피부염으로 보였다.

“잠시만요,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나는 지루성 두피를 가진 손님에게 가끔씩 권해주었던 방법이 생각났다. 그래서 손님이 오기 전 얼른 화장실에 뛰어갔다 왔다.

“샴푸하기 바로 전에 다른 제품으로 한 번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루성 두피는 염증성 진균이 문제이기 때문에, 그 균을 죽여주는 것이 첫 번째다. 2021년도야 균을 죽이는 샴푸가 많이 나와서 괜찮지만, 1997년도에는 그런 샴푸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현 시점에서 균을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치약이다. 치약으로 먼저 균을 죽인 뒤에 샴푸를 하면, 피부병을 직접 치료하지는 못해도 일시적인 효과는 얻을 수 있다. 바로 그 치약을 가지러 뛰어갔다 온 것이다.

나는 모발을 잘 적신 뒤 치약으로 두피를 마사지 하였다. 염증성 피부는 두피에 각질이 많아서 그걸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사지가 과하게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너무 과도하게 문지르면 나중에 두피에서 더 많은 진균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는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치약 처리를 한 뒤 마사지를 약하게 하였다.

“샴푸를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치약을 씻어내고 샴푸를 하면서, 너무 과도하지 않게 부드러운 마사지를 시행하였다. 고객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정말 시원하군요.”

“만족하시니 다행입니다.”

피부병 고객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일어났다. 그 과정을 지켜 본 오 선생도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 세워주었다.

“대단해 준수씨.”

“아닙니다. 허허.”

오 선생은 피부병 손님을 항상 깍듯하게 모셔왔었다. 그가 아주 유명한 소설가라고 하였는데, 그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박준수씨라고 하였죠? 내가 정말 고마워서 그런데 싸인 책을 선물하고 싶어요.”

“앗, 감사합니다.”

피부병 손님은 내게 자신의 싸인이 적힌 책을 건네주었다. 책을 보자마자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의 하루키라고 불리는 대단한 소설가로, 피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대작을 쓴다는 박주영 작가님이었다. 지금 내민 소설은 그의 두 번째 소설로, 세 번째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하게 된다.

“와, 박주영 작가님이시구나?”

“날 알아요?”

“네, 알죠. 한국의 하루키시잖아요.”

“어이구, 과찬이십니다.”

박주영 작가님은 내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내심 좋아하였다. 아직 세 번째 소설을 쓰지 않았으니, 그러실 만도 했다.

사실 나는 박주영 작가님의 작품을 본적이 없었다. 드라마만 좋아하니까.

내가 그를 아는 건 김설아 때문이었다. 김설아가 매일 들고 다녔던 책이 바로 저 양반의 책이니까. 김설아가 너무도 존경한다는 그 작가가 바로 박주영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저 양반을 안다.

“세 번째 작품 나오면 꼭 들려서 주고 가야겠네요.”

“네? 아유, 감사하죠 저야. 그 대작을 직접.”

나는 천기누설을 할 뻔 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피부 때문에 좀 더 고통을 받고 난 뒤 쓰는 작품이라서 지금보다 1년은 더 있어야 한다. 먼저 설레발쳤다가는 귀한 작품에 초를 치는 격이다.

“대작요?”

“대작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하하, 네 고맙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네요.”

박주영 작가는 아주 기분이 좋아서는 십만원을 팁으로 주고 갔다. 한 원장 말로는 지금까지 나온 팁 중 가장 높은 금액의 팁이라고 한다. 내가 그야말로 샴푸의 요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조금만 고생하면 승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누구도 내 승급에 토를 달지 않을 것이고,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게 모두는 아니었다. 누군가는 끝까지 내 방식에 딴지를 걸 거란 생각을 미리 했었어야 했다.

* * * * *

“세상에나, 손이 그게 뭐니? 괜찮은 거야?”

“아, 괜찮아요. 미용사 다 그렇죠.”

어머니가 내 손을 보시고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짧은 기간에 많은 손님의 샴푸를 맡아서 한 탓에, 내 손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손에 좋은 파라핀과 바세린은 연신 가져다가 바르고 자고를 반복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방법은 먹히질 않았다. 주부습진이 제대로 걸린 것이다.

“미용사가 되는 관문이에요. 저라고 별수 있나요.”

“무슨 그런 관문이 있다니? 너무 속상하구나.”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겠어요.”

“근데 아들, 내 천만원은 잘 있는 거지?”

“그럼요, 조만간 드릴게요.”

“어머, 아니야. 이천만원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으니 만들어서 주려무나.”

“하하, 네.”

손은 아팠지만, 엄마가 옆에 계시고, 아버지도 변하지 않았으며, 동생은 여전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내 종잣돈이 아버지의 빚을 갚아낼 수 있다면, 우리 가족은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만 잘하면 된다.

나는 오늘 받은 팁을 가지고 준희의 방에 들어갔다. 준희는 한번 공부를 시작하면 깊게 빠져드는 아이라서 웬만하면 방해하지 않아야 하지만, 용돈을 준다면 좋아하겠지.

똑똑.

“준희야.”

“우씨, 방해하지 말라고.”

준희가 인상을 구기는데, 그 앞에 십오만원을 내밀었다.

준희의 인상은 돈 앞에서 활짝 펴지고, 웃다 못해 입이 귀에 걸렸다.

“오잉, 웬 돈이야?”

“용돈. 이 오빠가 주는 용돈이다.”

“웬일이래? 으, 그 손은 왜 그래? 난리났네?”

“손이 이렇게 되도록 니 뒷바라지 할 거야 내가.”

“오잉? 오빠가 날? 왜? 장가나 가지?”

“장가는 나중 문제고, 넌 꼭 공부 열심히 해서 법대 가야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준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떻게 알았어? 내가 법대 가고 싶은 거.”

“넌 그게 어울리니까. 부모님이 반대해도 넌 꼭 법대에 가야 해. 난 널 끝까지 도와줄 거야.”

“쳇, 겨우 십오만원 주고 생색은. 빨리 가 나 공부해야 해.”

준희는 내 말에 큰 위로를 받은 듯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준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방에서 나왔다. 이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녀석이 모두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했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더 커졌다. 정말 꼭 도와줄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방을 나섰다.

* * * * *

이제 십만원만 더 받으면 샴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손가락이 욱신거리고 아팠지만, 꾹 참고 열심히 샴푸를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아픈 탓에 제대로 된 테크닉이 나오지 않고 삐걱거렸다. 어쩐 일인지 오늘은 샴푸 팁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때, 김설아가 우리 샵에 들어왔다. 김설아는 첫 CF 촬영을 앞두고 컨셉을 잡기 위해서 한 원장님을 찾아왔다. 나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고 반가웠지만, 내색을 하진 않았다. 미용실 사람들은 내가 그녀를 발탁한 것을 다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잘 부탁드려요. 박준수씨.”

“네.”

평생 김설아를 만나보는 게 소원이었던 내가, 그녀를 자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어쩌면 이번 회귀의 보상을 이미 받은 것처럼.

“샴푸 미션이 있다고 하던데?”

“어? 어떻게 알았어요?”

“이사장님이 그러더라구요. 아는 사람은 팁을 주면 안 된다고 하던데 난 모르는 사이잖아요? 아직은?”

“네, 뭐 그렇죠.”

“그래서 꼭 팁을 주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아, 괜찮아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요? 원하는 대로 줄 수 있어요.”

“싫습니다. 정당하게 하고 싶어요.”

“어유 벽창호도 아니고.”

김설아는 내가 그렇게 나오자 내심 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을 멋지게 본 듯했다. 정정당당하게 도전하는 모습이 믿음직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옆에 있던 송은석이 듣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가 듣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김설아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십만원을 팁으로 주고 갔다. 한 원장은 내 미션이 끝났다며 박수를 쳐 주었는데, 송은석이 다가와서 소리를 쳤다.

“그 여자 준수씨 아는 여자잖아요.”

“엥? 뭐라는 거고?”

“아, 그게.”

“저 여자와 준수씨가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습니다. 둘이 아는 사이에요.”

“참말이가?”

“아 그게 아는 사이긴 한데, 제가 주고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주고 간 건 맞잖아요. 하지 말라고 했더라도 주고 갔으니 짜고 친 거지.”

송은석은 나에게 순서가 밀릴까봐 전전긍긍하던 차에 약점을 잡은 것. 그에게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 주고 간 거는 그냥 니 갖고 다음 걸로 하믄 되겠네.”

“아니죠, 패널티라는 게 있잖아요. 벌금을 줘야죠.”

“야야, 뭔 벌금을 주노? 쟈 손 좀 봐라. 엉망이잖아.”

그러자 송은석이 자신의 손을 들어 보여주었다. 그도 손이 많이 망가진 모습이었다.

“저도 손 엉망이거든요. 누구는 샴푸 밀어줘서 빨리 승급하고, 난 준수씨보다 먼저 들어왔는데 밀리고, 그건 아니죠.”

“야야, 그람 니도 샴푸 마이 해라. 그람 되겠네.”

“벌금 주시라니까요?”

송은석은 벌금을 주지 않으면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내가 양보하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네, 제가 번 십만원 무르는걸로 하죠. 앞으로 이십만원 벌면 승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야야, 오만원만 하자.”

“아뇨, 그냥 깔끔하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죠. 공평하게요.”

“네, 공평하게. 그럼 저는 샴푸하러 가보겠습니다.”

나는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쿨하게 인정하고 돌아갔다. 그게 아니네 어쩌네 하며 시간을 끄는 것보다 빨리 샴푸나 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송은석도 내 반응을 보고 자기가 오버한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물릴 생각도 없었다. 자기가 억울한 건 못 참는 성격이기에.

그렇게 나는 꼬박 보름동안 열심히 샴푸만 해댔고, 승급하게 되었다. 이은석은 내가 승급하고 한 달이 지나서 승급하였다. 샴푸에서도 자기가 밀린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걸 수긍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 * * * *

“나 폼에 살고 죽고, 폼 때문에 살고, 폼 때문에 죽고, 나 폼 하나에 죽고 살고, 사나이가 가는 오 그 길에 길에…….”

얼마 뒤, [스타일 헤어]에 하루 종일 젝키스 노래가 울려 퍼졌다. 젝키스의 앨범은 대박이 났고, 그 스타일을 맡았던 원장님과 정 선생은 일약 스타 미용사로 급상승 했다. 그들의 헤어스타일은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의 워너비가 되었고, 미용실 앞에는 그들의 팬들이 모여들었다.

한 원장님은 안 그래도 유명하던 차에 더욱 유명세를 떨쳤고, 돈을 다 세어보지 못하고 쓸어 담기 바빴다. 덕분에 나도 원장님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원장님은 매번 내가 승급을 빨리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것 때문에 적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아 마다했다.

나의 활약상은 강남의 여러 미용실에 전해졌고, 승철의 귀에도 어김없이 들어갔다. 승철은 그때마다 질투심에 화를 내며 노력했다. 내가 자신의 복을 다 가져간 거라며 분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원장이 나를 고급 술집으로 불렀다. 공짜 술을 얻어먹을 것에 좋아서 쫓아간 나는 한 원장의 말에 놀라서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원장님! 제발 다시 생각해 주세요!”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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