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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5화 (15/200)

15화. IMF는 안됩니다!(1)

“전국에 스타일 헤어 분점을 낼 생각이라고.”

한 원장의 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한국에 IMF가 터질 것이고, 유명한 대기업들이 무너지게 될 것이며, 그 하청업자들이 줄줄이 도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원장이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것이 어그러질 것이다.

“원장님, 지금 사업을 확장하시면 위험합니다.”

“얌마, 그게 무슨 소리고? 지금 우리 샵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아이가? 차리기만 하면 대박난다 그카드라! 안 그래도 우리 샵에 돈 대주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그 돈 대주겠다는 사람들이 조만간!”

“그래, 조만간 뭐?”

돈, 특히 투자금은 그 자체가 거품이다. 경제가 무너지면, 그들은 사채업자들처럼 돈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 분명하다. 전국에 분점은 그야말로 전국에 사채를 빌린 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원장님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게 함정이었다.

“다른 데에 투자할 거에요. 돈은 왔다가도 금방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니까, 그 돈을 투자해서 미용실을 전국에 만들겠다는 거 아이가? 아가 와 이리 답답하노.”

“아니, 아니 곧 있으면!”

나는 IMF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이제 곧 벌어질 일인데 굳이 지금 알려서 무당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한 원장님은 돈이 너무 많다. 그걸 주체 할 수가 없어서 지금 저렇게 뻘 소리를 하고 있다.

IMF가 터지면 부동산 매물이 쏟아지고, 강남 아파트를 헐값에 살 수 있으니 그때는 그걸 투자하면 되는 일인데, 지금 당장 돈을 써도 안전한 곳은 단 두 군데 밖에 없었다. 달러와 금, 그 외에는 전부 헐값으로 떨어질 테니.

“달러, 금을 사두세요. 그게 휠씬 이득…….”

“야야, 지금 뭔 소릴 지껄이는 거고? 만다고 그걸 사노? 돈이 썩었나? 베짱이보다 개미로 살아야제!”

'하……, 큰일이다. 원장님 고집 생기면 꺾기 어려운데, 이걸 어쩌지?'

나는 어떻게든 한 원장을 설득시켜야 했다.

“아니 제가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

“그래 뭐가 돌아가는 긴데? 뭐 제대로 알고나 하는 말이가?”

현재 한 원장에게는 스티브 잡스가 와서 설명한다고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암튼 안 됩니다. 돈을 저한테 맡기시면 3배로 불려드릴 테니, 분점은 참으세요.”

그때, 뒤에서 정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 선생은 조금 흥분한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분점을 내신다고요?”

“어 왔나? 내 전에 얼핏 야그 했다 아이가?”

“어머 분점이요? 어머나”

정 선생 뒤에는 조 실장과 다솜이도 들어오고 있었다. 세 사람 다 분점 이야기에 반색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점을 낸다면, 차례대로 가게를 얻어서 나가 원장님으로 승격할 수 있으니 당연히 좋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원장님, 조금만 생각을 해 보시고…….”

내가 또다시 이야기 하자 세 사람이 정색을 하며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의 눈초리에 놀라 딸꾹질을 하고, 기침까지 해댔다.

“저 그게 아니고, 콜록, 콜록……, 켁,켁.”

“하던 이야기마저 하시죠. 원장님.”

“어머, 원장님 잔이 비었네?”

쪼르륵, 짠.

정 선생과 조 실장은 한 원장의 옆에 붙어서 사업을 진행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원장님 한 명도 막기 힘든데 저 사람들 전부 막아야 하다니.

“많이 먹어, 여기 비싼 데야. 허허.”

“원장님, 분점 1호점은 어디에 내실 생각이세요?”

“어머, 난 종로가 좋겠어.”

“원장님 생각을 묻잖아요.”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벌써부터 자기가 분점의 주인이 된 양 들떠서 원장님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했다. 나는 그저 소주잔만 비워대고 있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 * * * *

“어머, 원장님 조심하셔야죠. 넘어질라.”

“그래, 내 니는 제일 먼저 분점 내 줄 거다 걱정 말그라 알제?”

한 원장이 조실장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이야기 하였다. 조 실장은 약간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했다.

“어머, 원장님 술 취하셨어. 어머.”

정 선생은 그걸 보고 열이 확 오르는지 손부채질을 해댔다. 정 선생의 얼굴은 붉다 못해 귀까지 빨개졌다. 슬프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서 그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나는 재빨리 원장님을 받아 들쳐 업고 길로 나갔다. 이럴 때는 ‘갑’을 빨리 집에 보내는 게 상책이니까.

원장님이 택시에 타고, 집이 같은 방향인 다솜이도 따라 탔다. 조실장은 술이 취한다며 후다닥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그렇게 돌아서는데, 정 선생이 내 앞에 떡하니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좀 전까지의 표정과는 180도 다른 아주 차가운 얼굴을 하고서.

“준수씨는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정 선생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자, 놀란 나는 멍청하게 서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원장님이 이뻐한다고 그렇게 함부로 끼어들고 그러면 안 돼. 준수씨는 본점 하나만 있어도 미용사로 성장하는데 지장이 없겠지만, 나나 조실장님은 본점에서 뻗어나가서 더 큰 그림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알아?”

“아뇨 저는 한보그룹 부도 때문에 다른 기업도 휘청하고 그래서 경제가…….”

“하하하하하하, 무슨 경제가 뭐? 그래서 당장 달라지는 게 있어? 경제가 좋다가도 나빠지고 하는 거지 뭐가 문제야?”

“아뇨, 이제 곧 경제 위기가 닥쳐온다고요!”

“하하하하하, 뭔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뭐 됐고, 앞으로 분점 내는 일에 끼어들지 마. 부탁하는 게 아니고 경고하는 거야 알았어?”

정 선생은 큰 눈으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는,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정 선생의 카리스마에 주눅이 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한숨만 푹푹 쉬었다.

원장님을 말리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어졌지만, 그렇다고 그걸 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냥 말리는 것 보다 좀 더 확실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 *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사장님.”

나는 이사장의 사무실에 찾아가서 면담을 신청했다. 이사장은 아무리 바빠도 내가 만나자하면, 무조건 먼저 만나주곤 했다. 문론 이사장이 나를 호출하는 일이 훨씬 많았다. 우리는 제법 친해져 있었다.

“그래, 오랜만이야. 어쩐 일로 먼저 보자고 했나?”

“아, 그게 뭐 좀 상의드리고 싶어서요.”

양비서가 커피를 내어주었다. 양비서 뒤로 다른 매니저들이 이쪽을 흘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이 바닥으로 올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아서 매니저들의 경계 1순위가 되었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안 그래도 이 바닥에 지각변동이 있을 거라는 예측이 여기저기서 나왔어.”

“아, 이사장님은 알고 계셨네요.”

다행이다. 말이 통하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라니…….

“그래서 올해 안으로 국제통화기금이 들어온다는 확신이 든다고?”

“네, 아마 달러와 금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겁니다.”

“하, 자넨 진짜 내 밑으로 오라니까 내가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하하, 아닙니다. 저는 그냥 머리 만지는 게 좋아요.”

“그래, 아까워 정말.”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 시간이나 경제이야기를 했다. 사실 나도 경제에 대해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를 알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는 것뿐이었다. 그때 당시의 진짜 나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가 원장님을 설득하는 방법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근데, 굳이 설득해야 하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설득하지 말고 바쁘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 말이야.”

“아, 맞네요. 맞아!”

“올해 말까지 바쁘게 만들어 그건 좀 쉬운 일이 아닌가.”

“네, 알겠습니다.”

나는 현명한 답변을 듣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 바쁘게 하는 방법도 만만치가 않았다. 어떤 식으로 한 달 간만 바쁘게 할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근데 자네가 저번에 박근미 의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네? 아 그랬나요?”

“그래 박근미씨에게 의원이라고 했어 자네가.”

“아…….” 박근미는 그때 당시 재단이사장만 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냥 습관처럼 그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하긴 대통령이라고 하지 않은 게 어딘가?

“아 이거 참, 자네는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단 말이지. 박근미씨가 국회에 입성 준비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네가 한 말이 떠올랐지 뭔가.”

“아, 그랬군요.”

박근미 의원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뭔가가 떠올랐다.

“고향! 한 원장님 고향이 양서군이네요?”

“어, 그쪽이라고 들었는데.”

그건 한 원장님도 박근미 의원의 골수팬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이야기다. 만약 박근미 의원의 헤어라도 맡게 해 주면 열 일 제치고 그 일에 매달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거네요, 그거!”

“응? 무슨 소리야 갑자기?”

“사장님, 저 박근미님을 만나게 해 주실 수 있으세요?”

“아니, 우리 애도 박근미님을 평생 몇 번 밖에 못 봤다고 하더라고……, 나라고 별 수 있겠나?”

“아, 그렇군요.” 나는 박근미씨를 만나기 위해 당장 어디로 갈지도 막막했다. 2021년이야 검색만 해도 누가 사는 집 따위는 금방 알 수 있지만, 그때 당시 그런 건 일급비밀처럼 어렵게 찾아내고 그랬었다.

“어디에 사는지는 내가 알려줄 수 있다네. 그것만이라도 알려줄까?”

“아 네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람은 인맥이 좋아야 한다고 하던 어른들, 아니 2021년도의 친구들 말이 떠올랐다. 지금, 그 인맥이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실감이 나고 있었다.

* * * * *

이사장은 나에게 박근미씨의 주소를 알려주었고, 친히 그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나는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그냥 서 있었다.

“하, 집만 알면 뭐하나 쳇.”

그때, 그 시절 어디서도 보기 힘들다는 벤츠 차량이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차량을 따라가면 박근미씨를 만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마침맞게 그 앞에 택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앞뒤 따질 것도 없이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아저씨, 저 앞차 좀 따라가 주세요. 놓치면 안돼요!”

“네네, 알겠습니다.”

부릉. 부르릉.

택시는 박근미씨가 탄 차량을 열심히 쫓아갔다. 앞차에 탄 사람은 운전기사와 뒷좌석에 여자 한명이 있다.

‘저 사람이 박근미네!’

벤츠는 동네를 벗어나 강남쪽으로 향했다. 택시 아저씨는 돈이 많이 올라가자 연신 싱글벙글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주머니 속에 든 돈보다 택시비가 더 많이 나올까봐 무서워하며 지갑을 열어 돈을 확인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택시비보다는 돈이 더 있었다. 갑자기 앞차가 멈춰 섰다.

끼이익.

덜컥, 쿵.

재빨리 택시에서 내렸다. 앞차에서는 운전기사가 내려서 뒷좌석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나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살피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박근미씨에게 다가갔다.

‘어, 생각보다 뚱뚱한데?’

차에서 내려오는 다리는 박근미씨의 다리라고 하기엔 좀 두꺼웠다. 얼핏 봤던 박근미씨의 사진은 매우 마른 몸이었는데 저건 뭔가 이상했다. 설마?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만, 인정하기는 싫다.

“어! 저, 저건!”

차에서 내린 사람은 박근미씨가 아니었다. 그, 아니 그녀는 바로…….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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