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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6화 (16/200)

16화. IMF는 안됩니다!(2)

“최순진!?”

내가 쫓아간 것은 다름 아닌 최순진의 차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박근미씨의 근방에는 늘 그녀가 있을 거란 걸 미리 생각했어야 했다.

최순진은 내가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특유의 강렬한 포스를 뽐내며 내게 다가왔다. 미래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어린데도 포스는 여전히 매서웠다.

“너 누구야? 누군데 내 이름을 알지?”

“아, 그게.”

“잡아, 저 새끼 잡아!”

두두두. 척.

운전기사는 순식간에 달려와 나의 팔을 잡았다. 그는 최순진의 경호도 같이 하는 듯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 아파요. 왜 이러세요.”

놈이 잡은 팔이 아픈 것 보다 두려운 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최순진이 가버리는 것이었다.

“네놈, 아까부터 택시 타고 쫓아온 거잖아.”

“아니 그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최순진은 나의 눈을 몇 초 동안 계속 쳐다보았다. 진심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그때는 드라마 왕건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이기 때문에, 궁예의 관심법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때였다. 최순진의 눈빛은 궁예의 그런 눈빛이었다.

“그래 말해 보거라.”

최순진은 아까보다는 조금 편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눈짓을 하자 운전기사가 팔을 놓아주었다.

“제가 헤어숍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요.”

“그래서?”

“박근미님 헤어를 당분간 맡게 해 주셨으면 해서 찾아왔습니다.”

최순진은 내 말을 듣고 깔깔거리며 웃더니, 성큼 다가왔다.

10센티가 떨어진 근거리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최순진. 마치 내 머릿속을 헤집고 바라보는 것 같은 눈빛에 숨이 막혀왔다.

“뭔가 준비는 해 왔겠지?”

“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이 이해되질 않았다.

최순진은 답답한지 자신의 가방 속 봉투를 은근슬쩍 보여주었다. 나는 그걸 보고서야 최순진의 뜻이 뭔지 알았지만, 준비해 온 돈은 당연히 없었다.

“아, 그게 제가 미리 준비를 못…….”

“됐다. 어서 썩 꺼져라.”

최순진은 말을 더 듣지 않고 가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최순진을 붙잡으러 쫓아갔다.

“제가 다음에 꼭 준비를 해서 올 테니까 다음에 한 번만 더 만나주십시오. 네?”

최순진은 아무 이득이 없는 일에 나설 사람이 아니지. 사실, 이 상황에서 내 말을 듣고 있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뒤도 안보고 가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우, 재수 없어.”

하기야 돈이 있다고 해도 최순진의 마음에 들 정도의 돈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어딜 가나 돈이 문제네.”

한 원장에게 돈을 해 달라고 하는 건 무리일 것이고, 이사장님에게 부탁해야 한다. 지금 내 돈은 주식에 물려있는 상황이라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우니까.

* * * * *

“박근미씨는 만난건가?”

이사장은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박근미씨는 못 만났어요. 대신 측근인 최순진을 만났어요.”

“아, 그 여자 이야기 나도 듣긴 들었는데 사실이었어?”

“실세죠. 박근미를 움직이는 숨겨진 진짜 실세.”

그러자 이사장이 갑자기 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텁. 읍읍.

이사장은 나의 뒤에서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다른 매니저 쪽을 쳐다보며 뒤로 가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말아야 해.”

“아, 네. 그래야죠.”

1997년, 생각보다 더 무식한 시절. 말에도 발이 달린 시절.

“그래서, 그 여자한테 부탁하고 온 건가?”

“제가 부탁을 했더니, 가방을 열어 봉투를 보여주더라고요. 봉투를 넣으라는 거겠죠? 하하”

그때는 진짜 그러했다. 봉투를 주면 학교 선생님이 인생 스승이 되고, 직장 상사가 친절하게 변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렇겠지, 그래서 돈은 줄 수나 있고?”

이사장에게 부탁하려고 왔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거 받게나.”

이사장은 뒤에 있는 쇼핑백을 가져와서 나에게 내밀었다. 쇼핑백 안에는 명품백이 들어 있었다. 뜻밖의 호의에 놀란 나는, 물건을 받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이사장이 손수 나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집에 널렸어. 사고 또 사고 또 사는 통에 미칠 지경이야. 이거 하나 없어져도 마누라는 모를 걸세.”

“하, 이걸 어떻게 받아요. 제가.”

“자네한테는 아깝지 않아.”

하, 이분은 정말 좋은 분이다. 이런 분에게 우리 김설아씨를 소개해 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아 정말, 저는 좋은 어른을 만났어요.”

“좋은 어른은 무슨, 감동받을 거 없어. 자네가 한 만큼 주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네 좋자고 하는 일도 아니고, 한 원장 걱정돼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 보고 나도 감동받았어.”

단순하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 일은 명백히 한 원장을 위한 일이었다. 그런 모습이 좋게 보인 이사장은 날 더 신뢰하게 되었다. 선의는 선의가 되어 돌아오게 되어있다. 적어도 이사장은 그런 남자였다.

* * * * *

나는 명품백을 들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박근미의 집 앞에 갔지만, 최순진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미용실에서는 1호점은 물론이고 20호점까지 넓힐 수 있는 투자자가 생기게 된다.

나는 다급해 졌다. 어떻게든 최순진을 만나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

“야야, 대학로가 낫겠노. 종로가 낫겠노?”

“그쪽은 무조건 가로수길이……, 아니 가로수가 많은 종로가 좋겠네요.”

“종로랑 대학로 다 내죠 뭐.”

“야야, 그라고 지방점 1호는 말이다 대구로 하믄 어떻노. 내 대구사람이다 아이가.”

“아, 시간이 안가네.”

다들 기분이 업 되어 떠들어 댔다. 나 혼자만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소리를 해댔다. 그때, 가게에 전화가 왔다.

“원장님 전화 왔습니다.”

“예, 전화 바꿨는데요. 오, 괜찮네. 거가 어딘교? 아 알겠습니다. 우리 아 중 하나 보낼게요.”

부동산에서 계속해서 가게 자리를 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일일이 다 가서 보고 결정해야 했지만, 한 원장은 시간이 없는 사람이다.

“신당동에 자리 있다 카든데 누가 함 보고 올래?”

“신당동이요?”

신당동은 박근미 의원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낮 시간대에 그곳에 갈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제가요, 제가 갈게요.”

“어? 니가 웬일이고? 그래 댕기온나.”

그동안 분점 일에 나 몰라라 했던 내가 나서자, 한 원장은 내심 좋았던 모양이다. 내게 가라고 택시비까지 쥐어주며 끝나고 집에 그냥 가라고 하였다. 감사하게도.

* * * * *

신당동 지역 가게 자리를 빛의 속도로 본 나는, 곧바로 박근미씨의 자택 앞으로 뛰어갔다.

다다다다.

“헉, 헉.”

나는 마음이 너무 급해졌다. 내일 당장 2호점 계약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녁까지 꼼짝도 않고 이곳에 서 있을 각오를 하고 있는데, 집에서 최순진의 차가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차를 놓칠세라 빛의 속도로 달려갔다.

“저기요, 저기요!”

죽어라 달려가서 최순진의 차를 막아섰다.

끼이익.

차가 멈추고 운전기사가 나와서 뒷문을 열어주었다. 최순진은 마치 왕국의 공주처럼 대우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뭐야 너, 또 왔구나?”

최순진은 계속해서 조선 시대 공주나 왕비가 쓰는 말투를 쓰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내시 같은 말투로 최순진을 대해 주었다. 대체 왜 그러는지도 모르게 저절로 경어가 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또 왔습니다. 하하.”

“눈치도 없는 게 체력은 좋구나?”

“눈치는 이번에 챙겨왔습죠.”

나는 쇼핑백 속에 들어있는 명품백을 꺼냈다. 그걸 본 최순진은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보는 눈을 하고서 다가왔다.

“이건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선물이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요.”

최순진은 백을 들고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 중 가장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백을 다 구경한 최순진은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어 나에게 건넸다.

“너희 원장에게 내일 아침부터 이곳으로 오라고 전하 거라.”

“아 그게 제가 부탁드렸다고 하지 마시고요. 그쪽에서 부탁하시는 걸로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담당 헤어디자이너가 휴가를 갔다는 식으로.”

“그래 알겠으니 니 명함을 주고 가 보거라.”

“감사합니다!” 나는 하마터면 마님이라는 호칭을 쓸 뻔 했다. 최순진과 더 대화하다가는 진짜 머슴이 될 것 같아서 얼른 명함을 주고 갔다.

* * * * *

최순진은 약속대로 미용실에 전화를 걸어서 직접 와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한 원장은 예상대로 박근미씨를 매우 좋아하였기에, 최순진의 부탁에 적극 응답 하였다.

그날, 한 원장은 미용실 확장 사업을 몇 달간 중단할 것을 선언하였다. 사람들은 매우 섭섭해 했지만, 원장의 말에 대부분 수긍하는 눈치였다. 겨우 몇 달만 유예하는 건데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에서 그러했다. 그러는 사이, 세상은 많이도 변해갔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원장을 케어하기 앞서서 아버지를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질 무렵, 이사장이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물었다.

“요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가?”

“아, 그게 아버지도 망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서요.”

“자네가 설득하면 되지 않을까? 한 원장을 설득한 것처럼 말이야.”

“아버지는 저를 아직 어린애로만 생각하세요. 제 말은 들으려고 하질 않으십니다.”

“흠, 그래? 그럼 내가 설득해 드릴까? 아, 물론 술값은 자네가 내고 말이지.”

“아, 그렇게 해주실 수 있으세요? 안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이사장님에 대해 알고 계시더라구요.”

“오, 그거 잘 되었네. 조만간 만나게 해주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나는 아버지에게 이사장을 소개해 주었고, 이사장의 사회적 위치를 알았던 아버지는 그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이사장은 내 부탁을 받고서 아버지를 설득해주었고, 아버지는 앞으로 세상이 바뀔 것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진행하였다. 덕분에 한시름 덜 수 있었다.

* * * * *

한 원장은 그 이후로 박근미씨의 일을 도우러 자주 미용실을 비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솜이를 도와주었다. 다솜이는 막 디자이너를 달고 있었는데, 노련한 스텝이 도와주어야 실수가 덜하기 때문에, 내가 도와주곤 하였다. 물론 한 원장님이 시켜서.

“우리 딸 머리 좀 해주려고 하는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아주 화려하게 치장을 한 여자가 미용실에 들어왔다. 여자는 5살 정도의 작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그 아이를 최대한 예쁘게 꾸며달라고 말했다.

아이는 놀이동산에 간다고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여자는 놀이동산에 놀러가는 차림이 아니었다. 하이힐에 짧은 치마를 입고서 대체 무슨 놀이기구를 탄다는 건지…….

꼬마를 맡은 다솜이는 아이의 머리를 잠깐 빗더니 내게 달려왔다. 인상을 잔뜩 쓰고서.

“준수씨, 저 아이 머리 좀 이상해.”

“왜요?”

“좀 봐봐. 샴푸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아이를 샴푸실로 데리고 가려고 머리를 정돈하였다. 그런데 머리카락에서 뭔가 작은 것이 떨어졌다.

“어? 이게 대체?”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건.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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