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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8화 (18/200)

18화. 슬기로운 병원생활(1)

“간경화에요. 약물치료하고 며칠간 입원하시고 경과를 지켜봅시다.”

어머니가 우겨서 간 동네 의원은, 황달이 낀 어머니의 눈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성의 없는 그의 진료 태도에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정확하게 진료해주셔야죠! 간경화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간경화가 아니라, 담낭 쪽을 봐야 할 텐데, 뭔가 아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동네 의원에는 좋은 장비가 없어서 그걸 알아내기도 버거울 것이다. 담낭 쪽은 병을 알아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

“혹시 담낭 쪽은 괜찮을까요? 그쪽도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얘는, 담낭이 아니고 간이라잖아.”

“담낭 쪽은 큰 병원에 가셔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곳에서는 한계가 있어요.”

담낭 쪽은 증세도 거의 없고 간 안쪽에 위치해서 병을 알아내는 것조차 힘들다. 이대로 동네 병원에 있다가는 아무 조치도 못하고 집에 갈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든 한국대 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한국대병원은 대기도 길고 비싸잖니.”

“그래도 병원 바꾸자! 다른 병원에서 진료 받자. 엄마, 한국대병원으로 가요!”

“거기 입원하려면 오래 걸린데, 진료비도 엄청 비싸고…….”

“지금 돈이 문제에요? 내가 알아볼게 누구 아는 사람 있긴 하니까.”

나는 당장 한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김성순 여사가 한국대병원 부원장의 어머니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김여사? 지금 병원에 있다 카든데? 하이힐 신고 자빠졌다 아이가?”

“병원이요? 한국대병원이겠죠?”

“그래, 내한테 또 와달라꼬 어찌나 귀찮게 하든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순 여사를 만나서 설득하면, 엄마의 자리 하나쯤은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다면, 병원

있는 동안 김성순 여사의 머리를 내가 해준다고 하면 될 것 같았다. 여사님이 워낙 까다로우니까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가지고 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매직기가 필요한데.”

매직기는 1998년에 나오는 물건이다. 지금은 무슨 짓을 해도 그 비슷한 물건도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어쩌나?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묘수가 떠올랐다.

“고데기!! 고데기 하나 있지요 집에?”

“응 있어. 너 미용 배운다고 해서 사다놨잖아.”

“내가 좀만 있으면 한국대 병원에 입원시켜줄게요. 고데기 좀 어딨는지 알려줘요.”

“어 그래. 근데 고데기만 있으면 진짜 한국대 입원할 수 있는거야?”

“나만 믿어요, 엄마.”

“그럼 믿지.”

“어머니 머리 할 때 되셨네? 내일 머리 좀 잘라드릴까?”

“어? 너 벌써 그런 것도 할 줄 아니?”

“그럼요. 멋지게 해드릴게요.”

엄마는 고데기기 있는 곳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집으로 간 나는 금방 고데기를 찾을 수 있었다.

동그란 모양의 고데기를, 일자형식으로 된 매직기처럼 사용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데기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걸 머리에 사용해야 펴지는 머리야 그 머리는…….”

김성순 여사의 머리는 흑인 곱슬 저리가라의 강도를 자랑한다. 일반적으로 접근했다간 그분의 마음에 들 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매직기 비슷한 것이 필요하다.

일반 고데기는 열판이 한쪽으로만 가해져서 압축해서 누르는 매직기와는 달랐다. 특히 고데기의 위를 감싸고 있는 철은 커브가 되어 있어서 그걸로 그냥 폈다가는 모발에 자국이 남을 수 있었다.

“그래 이 철을 조금만 유연하게 피면 사용할 수 있겠어!”

철을 좀 더 유연하게 해주고 압착하는 강도를 조금 더 조절해주면 일반 고데기보다 더 잘 펴질 것이다. 매직기 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제 김여사를 만나러 가자.”

나는 철물점에 들러 고데기를 손보고는 그대로 김여사에게 향했다.

* * * * *

“아니, 잠깐만 만나게 해 주세요 .정말 잠깐만요!”

“김성순 여사님은 그렇게 함부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돌아가 주세요!”

한국대 병원에서도 최고로 비싼 병실에 김성순, 그 곱슬머리 할머니가 입원해 있었다. 나는 고데기를 들고서 소리쳤다.

“여사님 김성순 여사님!! 제가 그 곱슬머리를 완전 쫙쫙 펴드린다니까요 네? 여사님!”

김성순 여사는 바로 전까지 나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나가 곱슬머리를 펴준다고 하자, 순식간에 병실 문을 박차고 나와서 나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남의 병실에 와서……. 어? 니 한 원장네 샴푸보이네?”

“안녕하세요. 여사님! 제가 이걸로 여사님의 머리를 쫙 펴드리려고 왔습니다!”

“그거 고데기네? 그걸로 내 머리를 필수 있다고?”

“네 이거로 생머리처럼 쫙 펴드릴 수 있습니다!”

김성순 여사는 나의 모습을 쭉 훑어보았다.

아직도 추운 날씨인데 나의 얼굴에선 땀이 줄줄 흘렀다. 손은 고데기에 데인 듯 여기저기 붉게 화상을 입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고데기의 성능을 시험하느라 데인 자국이었다. 그 모습을 본 김여사가 조금 마음을 열었다.

“나는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니가 청소만 하다 온 것을 아는데 기술을 부릴 수 있다고? 그럼 고데기로 내 머릴 하기 전에 니가 다른 기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성순 여사를 쳐다보았다. 까다롭고 의심 많은 김여사를 설득하려고 어머니를 모셔온 것이다.

“이곳에서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나의 말에 김성순 여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누군가의 머리가 망가지는 걸 봐야하나 싶어서였다.

곧 엄마가 나와서 김여사에게 인사했다.

김여사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등장이 흥미로운 듯 눈을 크게 떴다.

“우리 어머니가 머리하실 때가 되어서요.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죠.”

“그래, 한번 해 보게나.”

김성순 여사가 아랫사람에게 턱짓을 하자, 아랫사람이 나와 엄마를 안내했다.

나는 씩 웃고는 바로 도구를 챙겨서 병실로 들어갔다.

회귀 전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대로 된 머리를 해드리지 못했다. 학원 다닐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랬고, 연애할 때는 더 시간이 없었다.

“엄마 내가 진짜 예쁘게 해줄게요.”

“그래, 고마워”

과거, 어머니 머리를 해드릴 때는 사실상 실습용으로 해드린 거였다. 누가 봐도 예쁘지 않은 머리임에도, 어머니는 늘 예쁘다고 하셨다.

30년 넘게 쌓은 기술로 엄마의 머리를 해 드리는 것이, 이토록 벅차고 기쁜 일인지 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동안 엄마만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답답해지던 이유가 좋은 거 하나 제대로 해 드리지 못했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정성스럽게 엄마의 머리를 완성해 나갔다.

엄마의 머리를 완성해 나가자 뒤에서 쳐다보고 있던 김성순 여사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말로만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자, 이제 다 되었습니다!”

드라이까지 마친 엄마의 머리는 정말 예뻤다. 기술과 정성, 진심까지 들어간 머리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기쁘게 만들었다.

김성순 여사는 박수를 쳐댔다.

엄마도 여사를 따라서 박수를 쳤다. 결국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제야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우리 아들이 진짜 미용사가 되었구나? 너무 자랑스럽다 정말.”

엄마가 일어나서 나를 꼭 껴안았다.

그러자 김성순 여사가 엄마의 자리에 냅다 앉았다.

“그래 좋아 어서 내 머리를 해보라구!”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흥, 그렇겠지 뭘 원하는데?”

“저희 엄마가 간경화라고 하는데 이 병원에서 좀 더 정밀한 검진을 받고 싶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입원을 하게 해주세요.”

“좋아, 대신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없어.”

“네, 당연히 머리가 마음에 들어야죠!”

나는 심호흡을 하고 고데기를 켰다. 매직기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머리결이 완성되었다. 확실히 드라이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윤기가 흘렀다. 대성공이다!

“다 되었습니다!”

“참나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

“네?”

“취업해서 샴푸만 하던 네가 어떻게 이런 기술을 익혔어? 설마 미래에서 오고 막 그런 건가?”

“아 하하, 그……. 그런가 봐요. 하하.”

“좋아 엄마 병원비는 공짜로 해 주지. 대신, 넌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 내 머리를 해 줘야해 알겠지?”

“헉, 네!! 네!! 감사합니다. 사모님은 평생 공짜에요!”

“지금 한국대 병원에서 공짜로 검진을 해준다는 거예요? 어머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가슴이 뜨거워진다. 돈이 없이도 효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좋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했을 뿐인데도,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 * * * *

김성순 여사가 약속한 특급 대우 속에서 어머니의 건강검진이 이루어졌다. 황달은 간이 이상한 게 맞았고, 그건 충분히 치료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회귀하기 전에도 황달이 오긴 했었지만, 내가 몰랐던 것.

그때, 이 일을 계기로 어머니의 건강을 챙겼어야 했는데, IMF가 터지고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하면서 어머니 건강을 챙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담낭암이 치료 불가한 지경까지 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어머니를 지킬 거니까.

“담낭암 1기입니다.”

“담낭암이요?”

“여보.”

“나 죽어요?”

예상대로 어머니는 담낭암이었다. 2000년에 4기에 발견된 그 암이 지금 치료 가능한 초기에 발견되었다. 기적이다.

어머니는 암 소식에 눈물을 훔치고, 아버지도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이건 정말 운이 좋으신 겁니다. 담낭암은 초기 발견이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충분히 치료 가능하시니 걱정 마세요.”

“운이 좋다니 암인데!”

운이 좋은 것이 맞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천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도 직접 황달을 보지 않았다면 미리 검사하진 않았을 테니.

어찌되었든 어머니의 병은 이일을 계기로 완전히 나을 수 있었다. 회귀하길 정말 잘했다.

* * * * *

나는 김성순 여사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쉬는 날 병원에 나왔다. 수술로 인해 치료비가 너무 많이 나오자 병원 측에서 내게 미용 봉사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어머니 때문에 병원에 매일 들르긴 했지만, 미용 도구를 들고 온건 처음이었다.

“저,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저 대기줄 안보이세요?”

간호사가 내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간호사가 턱짓을 한 곳을 보니, 장발의 병원복을 입은 남녀가 스무명은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최소 5시간은 꼼짝 못하게 생겼구나!

사각사각.

위이잉.

5시간동안, 들린 소리.

“헉헉, 담배 좀 피워야겠어.”

나는 아무 말도 없이 5시간 동안 머리카락을 자른 통에 기진맥진해 있었다. 마지막 고객을 겨우 끝내고.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옥상으로 향했다.

사실 담배는 안 피우려고 했는데, 그놈의 88 담배를 보니 잊었던 흡연 욕구가 솟아올랐다. 88이 2021에는 없는 담배라, 다시 맛보고 싶은 마음에 한번 폈다가 그날로 다시 피우게 된 것이다.

착칵, 스읍.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앞에 웬 긴 머리의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옥상 끝자락에서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았다. 가만두면 안 되겠다.

“그만둬!”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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