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슬기로운 병원생활(2)
여자는 내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18살쯤 되었을까? 앳된 얼굴의 소녀는 환자복을 입고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걸까? 아니면 정말 추운 걸까?
“정말 죽을 겁니까?”
회귀의 반지를 내어줄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그녀가 회귀를 원한다면, 내어줄 것이다. 회귀하기에 조금 어린감이 있지만 말이다.
“신경 쓰지 마시죠.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란 말 익숙하긴 하지만, 지금 내 면상으로 들을 말이 아닌데…….
“네, 아저씨는 좀 빠지라고요.”
“죽으려면 나 가고 나서 죽지 그래? 내가 보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쳇, 그러시던지.”
여학생은 오들오들 떨며 내가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음 담배를 또 꺼내 물었다. 그러자 여학생이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안 갈 거야?”
나는 여학생에게 담배 껍질을 보여주며 말했다. 담배는 몇 개만 피운 채 꽉 차 있었다.
“이거 다 태우고 갈 건데? 5시간을 쭉 개고생 했드니 내려가기가 싫으네.”
“쳇 그럼 다른 옥상에 가야겠다.”
여학생이 삐죽거리며 내려가려고 하였다.
나는 피식 웃고는 여학생을 따라 나섰다.
“그럼 나도 거기 가서 피워야지.”
“아 씨! 왜 이러지? 아저씨?”
“그냥, 오늘은 죽지 말자 꼬맹이. 뭐 때문에 죽으려고 하는 지나 좀 알자고.”
“알아서 뭐하게요?”
“돌아가게 해주려고?”
나는 회귀 반지를 다른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소녀는 내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것쯤은 눈치 챈 듯 보였다.
“뭘 돌아가? 설마 시간여행 같은 거요? 뭐 마이클 제이폭스 친척이라도 되시나?”
“하하, 글쎄.”
“난 절대 과거로 가지 않을 건데요? 빨리 스무살이 되고 싶거든요.”
하긴, 18살에는 스무살이 되는 것이 소원인 나이지.
회귀를 믿는다고 해도 안갈 확률이 놓겠네.
“그럼 왜 죽으려고 하는 거죠? 스무살이 되고 죽어야지.”
“그걸 왜 알려고 하지? 안 알려줄 건데?”
하, 당돌한 녀석.
여학생은 나를 째려보더니, 옥상에서 내려가려고 하였다. 나는 그녀를 쫓아가며 물었다.
“어디가요? 설마 다른데 가서 죽으려는 건 아니지?”
“오늘은 귀찮아서 안 죽을 겁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여학생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뛰어 내려갔다. 그녀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안도하고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 * * * *
한 시간 휴식을 취하고 돌아가니 다시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수술비용과 퉁 치는 것이니 괜찮다 생각하며 돌아보는데, 바로 뒤에 좀 전의 여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
“흥, 신경 끄시고 머리나 밀어주시죠.”
머리를 민다고 하는 것을 보니, 항암치료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앉자.”
위이잉.
내가 바리캉을 들고 스위치를 키자, 여학생이 질끈 눈을 감았다. 어지간히 싫었나보다, 머리를 미는 것이.
“하, 잠깐만.”
“어?”
“사실 아까 죽으려고 그런 게 아니었어요. 머리 자르기 싫어서. 머리카락 날리는 걸 마지막으로 느끼고 싶어서 그랬지.”
“아하, 아깝긴 하다 니 머리.”
나는 다시 한 번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분명 그대로 자르기 아까운 머리다. 그래, 버진헤어니까 가발로 만들 수 있을 거야.
“가발 만들어볼래? 니 머리로 말이야.”
“네? 그럴 수 있어요?”
여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내가 부탁해 볼게.”
“진짜? 와 감사합니다!”
여학생은 너무 좋아서 방방 뛰면서 소리쳤다. 낙엽만 굴러가도 꺄르르 웃는 여고생이, 암에 걸려서 고통받고 있는 것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나 보다. 내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빡빡, 아주 빡빡 밀어주세요!”
“아니, 빡빡 밀지는 말자. 예쁘게 잘라 줄 테니 걱정 말아.”
“빡빡 안 밀어도 돼요?”
“응, 어차피 항암치료라서 다 밀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상하게 자라면 또 자르면 되지. 나 매주 올 거거든? 매주 잘라줄게 걱정 마.”
“와, 아저씨 아니고 오빠였네. 미용 천재 오빠!”
“하하, 고맙다.”
여학생의 머리는 최대한 예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짧게 잘라주었다. 항암치료 시 머리가 많이 빠지면, 빠진 대로 또 잘라주면 될 일이다. 내가 매주 오면서 수시로 손을 봐주면 계속 예쁜 머리를 유지할 수 있다. 한창 예쁜 나이에 머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내가 더 싫었다.
“와, 나 오드리 햅번 같죠?”
“응, 그렇네? 정말 이쁘다.”
여학생은 매우 즐거워하며 갔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잘 보관해서 가발 만드는 공장에 보내주었다. 얼마 안돼서 예쁜 가발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어머니의 병실에 찾아갔다. 어머니는 내가 사람들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것을 몰래몰래 구경하시고 가곤 했다. 내가 사람들 머리를 잘 잘라줄 때마다 그렇게 기쁘신 모양이었다.
“고생했어.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더구나.”
“다행이네요.”
“우리 아들 실력이 정말 좋구나. 너무 자랑스러워.”
“아니에요, 다들 잘 해요. 우리 미용실 사람들 전부 잘해요.”
“응, 그래. 다 자랑스러워. 호호.”
나는 어머니와 한참을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후에 안 일인데, 내가 머리를 해준 사람들이 어머니를 찾아와서 이것저것 주고 갔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 덕에 병원 내에서 인기가 치솟았다고 한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났다.
* * * * *
병원 내에 소문이 퍼져서 다른 병동의 사람들까지 쭉 줄을 섰다. 덕분에 나는 또다시 5시간을 죽도록 커트해 댔다. 싫은 건 아니지만, 힘든 건 사실이다.
“휴, 힘드네.”
“저, 죄송하지만 제 머리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내게 말을 건 사람은 남자로, 얼마 전에 뇌수술을 하는 바람에 머리 반을 민 상태였다. 그 머리를 보기 좋게 만들어 달라는 소리였다.
“조만간 회사에 돌아가야 하는데, 이 꼴로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남자는 자신의 반쪽짜리 머리를 문지르며 피식 웃었다. 자기가 보기에도 이상한 모양이었다.
“허허, 좀 난감하시겠네요.”
“미용실에 가니 다 미는 수밖에 없다고 하던데, 선생님은 왠지 다른 방도가 있으실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글쎄요. 좀 볼까요?”
반만 잘린 머리, 사실상 빡빡 밀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2021년도에는 그와 비슷한 머리가 유행하였다. 짧은 투블럭, 언더컷. 그 머리라면 비슷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스타일이 다소 생소하실지 모르는데 괜찮으세요?”
생소하지. 현 시점에선 누구도 하지 않은 스타일일 테니까.
“네! 빡빡 밀지만 않으면 다 좋죠!”
“그럼 지금 해드릴게요.”
나는 최대한 사무적이고 깔끔하게 머리를 잘라주었다. 말대로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지만, 빡빡머리보다는 훨씬 도시적이다.
“자, 다 되었습니다.”
“우와, 정말 멋진데요? 제 전의 스타일보다 더 멋져요!”
“이건 임시방편이에요. 다음에는 전의 스타일대로 자르도록 하시구요.”
“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멋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딱 지금 만져드린 대로 손질하셔야 해요. 가르마가 다른 방향으로 가면 뭔가 모자라 보일지도 모르거든요. 하하.”
투블럭 스타일이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으니.
“네! 알겠습니다.”
남자의 머리를 마치고 어머니의 병실을 찾아간 나는 가방 속에서 여학생의 가발을 꺼내 들었다. 꽤나 예쁘게 만들어져서 여학생도 좋아할 것 같았다.
“어머, 가발이구나? 설마 내꺼는 아니겠지? 긴 생머리는 내겐 안 어울릴 거야.”
“네, 하하. 어머니는 항암도 안하셔서 가발 필요 없으시잖아요.”
“그래. 아차, 어떤 여학생이 편지를 주고 갔어.”
“아, 그 애 지금 어디에 있죠?”
“아 그게…….”
여학생은 항암치료를 하다가 상태가 나빠져서 현재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하였다.
나는 가발을 손에 들고서 여학생의 병실로 뛰어갔다.
“아, 그 미용사 오빠라는 분이시구나.”
여학생은 항암치료를 받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여학생의 옆에 가발을 놓고 말했다.
“야, 가발 만들어 왔는데 뭐하고 있어? 자식아. 내가 이거 만든다고 돈도 엄청 썼거든? 머리에 쓰는 거 보고 갈라고 했는데 왜 자고만 있어!”
여학생은 내 말에도 꿈쩍 않고 자고만 있었다.
휴우.
꽃과 같은 나이의 어여쁜 학생이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당장 해줄 것이 없었다. 그저 가발을 놓고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주에 올 땐, 꼭 깨어 있어라. 가발 쓰고 만나자.”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것이 최선이었다.
* * * * *
다음주. 김성순 여사도 퇴원을 하였고, 어머니도 이제 퇴원을 앞두고 있다. 이제, 이 병원에 더 오지 않아도 된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하다.
병원에 들어가니, 저번주보다 더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6시간 이상 잘라도 다 못자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다 잘라주어야 한다. 그게 약속이고, 또 기다린 사람들에 대한 예의니까.
나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자르고 또 잘라댔다. 겨우 6시간에 맞추어서 끝이 났다. 그 와중에 여학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정말 깨어나지 않은 걸까? 너무 궁금했던 나는 머리를 다 마치자마자 여학생의 병실로 뛰어갔다. 6시간 공복인 것 보다 그게 더 소중했다.
헉헉.
드르륵.
노크도 없이 병실 문을 열었다.
“어? 없네?”
병실에는 여학생이 없었다. 빈 침대만이 놓여 있었다.
그러자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아니 오빠?”
“야, 임마!”
여학생이 내 뒤에서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바로 그 가발을 쓰고서.
나는 눈물이 났다. 이름도 모르는 여학생이 깨어난 것이 뭐 그리 좋다고.
“언제 깼어?”
“오늘?”
여학생은 내게 가발을 흔들어 보여주었다. 머리카락이 조금 짧아졌을 뿐,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내 머리보다 더 나은데?”
“하하, 그렇구나. 좋네.”
“오빠는 맥가이버 같아. 헤어 맥가이버.”
“뭐? 야 그거 꽤나 괜찮은 별명 같다?”
맥가이버는 작은 도구로 뭐든 만들어내고 해결하는 사람으로 7080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머리를 다 고치잖아? 병원 사람들이 난리가 났던데요? 최고의 헤어디자이너라고.”
“야, 아니야. 무슨. 그냥 잘 해 드리고 싶었던 거야.”
“나 오빠처럼 헤어디자이너 될래요. 병 꼭 나아서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하하, 그래 녀석. 꼭 나아서 찾아와.”
“내 이름 꼭 기억해? 나 변민주! 변민주에요.”
“그래, 꼭 기억할게.”
변민주. 그녀는 정말로 나를 찾아오게 된다. 그렇게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
* * * * *
민주를 만나고, 다른 사람이 대기하는지 보려고 내려갔다. 그 곳에는 웬 모녀가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선생님! 우리 엄마 머리 좀 박박 밀어주세요.”
“아니야. 니 결혼식 하고 수술 한다니까?”
“그냥 지금 하자고! 한 달 더 있으면 위험하다잖아.”
“괜찮아. 니가 먼저지.”
그러자 딸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었다. 소리를 지른 건 아니었는데도, 소리 지르는 것처럼 절절한 울음이었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안 돼. 나 결혼 안 할 거야.”
“방법이 있어요. 어머니의 뒤통수를 밀면서도 업스타일을 해주는 방법이 있다구요.”
“정말이에요?”
그 방법은.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