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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20화 (20/200)

20화. 슬기로운 병원생활(3)

수술 부위만 밀고 헤어라인 쪽 모발을 남겨두는 것이다. 즉 이마와 뒷 라인 머리를 남겨두고 민다면, 수술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고, 그 남겨둔 머리를 활용해서 가운데에는 가체를 붙이고 몰아서 묶어준다면, 업스타일도 할 수 있다.

“수술 부위만 밀어주면, 충분히 업스타일 할 수 있어요. 수술하고도 결혼식에 지장 없을 거라구요.”

“정말 그럴 수 있어요? 그럼 업스타일은 누가 해주나요?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그렇다. 설사 그렇게 만들어준다고 해도, 업스타일을 완벽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미는 것도 내가 할 일이고, 업스타일도 내가 완벽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가 해드리죠. 약속합니다.”

“정말이죠?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네, 그럼요.”

“그럼 얼른 밀어주세요.”

“네.”

나는 손가락까지 걸고서 신부 어머니의 머리를 밀어 주었다. 업스타일은 꽤나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가운데에 머리를 고정시키고 들어가야 하는데 고정할 머리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모녀는 머리카락을 밀면서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에서 진짜 사랑이 느껴졌다. 꼭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얼마 뒤, 신부의 어머니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나는 공업용 실리콘을 이용해서 겨우 머리를 고정시켜 주었다. 조금 고생스럽긴 하였지만 어쨌든 성공적인 결혼식까지 마칠 수 있었다. 모녀의 눈물 섞인 미소를 보고 나자 나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슬기로운 병원 생활도 마치게 되었다.

어머니도 성공적으로 치료를 하셨다. 김여사가 최고의 의료진을 붙여준 덕이었다.

* * * * *

병원에서 나올 무렵 IMF가 터졌다. 덕분에 미용실 확장 사업은 전면 중단되었고 예전으로 돌아갔다. 한 원장은 자신이 망하지 않은 것이 박근미씨 덕분이라면서 그분을 더욱 숭배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한 것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만족한다. 1차적 목표는 성공했으니까.

IMF로 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구조조정의 피바람이 불었다. 강남권에 있는 많은 기업형 미용실들도 깊은 타격을 입고 망해갔다. 한 원장님은 현금이 생기면 계속해서 금을 사두었던 탓에 큰 타격은 입지 않았지만, 형편이 조금 어려워져서 같이 일하던 몇몇 디자이너와 스텝들이 그만두고 말았다.

우리 아버지의 사업도 결과적으로는 망하게 되었다. 내가 미리 이야기를 했었고, 이사장님이 따로 만나서 언질을 했기에, 크게 망하진 않았다. 전보다는 덜 망했다고 볼 수 있지만, 망한 건, 망한 거다. 내가 그동안 모아둔 돈을 아버지 사업에 꼴아박게 되었고, 집은 팔아야 했다. 만약 어머니의 병원비를 그냥 댔다면 정말로 길거리에 나앉을 뻔했다.

승철의 미용실에도 큰 데미지가 가해졌고, 결국엔 망하고야 말았다. [스타일 헤어]에 손님을 많이 빼앗겼던 탓도 있었다. 그렇게 전쟁 같은 IMF를 겪고 있는 즈음 승철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 오랜만이다. 웬일로 보자고 했어?”

오랜만에 만난 승철은 저번에 봤을 때보다 조금 야위어 있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한 듯 얼굴에서 우울감도 느껴졌다.

“부탁을 좀 하고 싶어서.”

승철은 조금은 불쌍한 눈빛을 하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임승철을 만난 이래로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그래, 무슨 부탁인데?”

“나 너희 헤어숍에 취직 시켜줄 수 있을까?”

승철이 만나자고 했을 때, 예상은 했었다. 이제 그에 대한 악감정 같은 건 접어 둔지 오래였기 때문에 그런 부탁은 들어줄 수 있었다. 다만 미용실 사정이 문제였다.

“우리 미용실도 있는 스텝 다 자르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야 거긴 원장님이 날 보내주기로 약속한 곳이었어!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거기로 가게 되었을 거라고!”

승철은 갑자기 화를 내며 말했다. 그동안 나를 많이도 원망한 듯 보였다. 어쨌든 내가 그의 기회를 앗아간 건 사실이니까.

“그래, 알았어. 내가 원장님께 부탁해 볼게. 근데 말이야. 샴푸부터 다시 배워야 할 텐데 괜찮겠어?”

[스타일 헤어]는 다른 데서 배우다 온 스텝을 잘 채용하지 않는다. 어쩌다 채용하게 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조건으로 받아준다.

승철은 나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금까지 배워 온 것이 있는데,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것은 사실상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것이다.

승철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아무튼, 난 너만 믿고 기다리고 있을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좋으니 취업 좀 시켜줘.”

“그래, 알았어. 걱정 마.”

승철은 이 난리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명성을 잃지 않고 있는 [스타일 헤어]만이 자신을 최고의 헤어디자이너로 만들어 줄 거라고 믿었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더라도, 미래를 위해서는 참을 수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승철이 [스타일 헤어]에 들어오게 된다면, 앞으로 만날 조력자들을 승철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도 야망이 있는 남자라서 나중에 큰 미용실을 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한 원장에게 그를 추천하였다. 그렇게 승철이가 나와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 * * * *

“어, 여기야 여기.”

“벌써 커피 묵고 있었구만 이사장.”

“어? 안녕하세요.”

한 원장이 다짜고짜 나를 끌고 간 곳은 이사장이 기다리고 있는 인근 카페였다. 한 원장은 카페에 들어가자 나의 옆자리가 아닌 이사장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사장과 한 원장이 나를 면접 보는 것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커피숍 테이블에는 서울과 경기도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너 아직도 느그집 아이고 월세 산다켔지?”

“아 네, 뭐 어쩔 수 없죠.”

아버지 사업 때문에 내 돈은 다 바닥이 나 있었고, 집은 월세로 전향한지 오래였다.

“내가 알아봤는데 우리 둘이 모은 돈으로 이곳에 집을 살 수가 있더구만.”

“여는 너무 시골 아이가? 서울이랑 너무 먼 것 같은데.”

이사장이 찍은 곳은 다름 아닌 판교였다. 2005년이면 집값이 몇 십배로 뛸, 바로 그 곳을 사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이곳은 어때? 여기도 살기는 좋아 보여.”

“응, 여그가 그나마 좋아 보이네 여 어떻노?”

두 번째로 짚은 곳은 앞으로도 쭉 개발 가능성이 없는 지역이었다. 나는 얇은 부동산 지식이지만 판교가 훨씬 나은 곳이라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사실 지금 마음이 복잡해서 이런저런 생각하기도 싫었지만, 판교를 사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정말 저 사주시게요?”

“그래 내 박근미 의원님 야그 들었다. 니가 내 때문에 엄청 고생했다 카든데 와 말을 안 했노?” 나는 이미 수차례 말을 했는데, 아마도 그때 들은 건 전부 흘려 들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판교를 사준다는데 조금 아부를 떨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말리고 그러는 게 죄 같기도 하고 그래서요. 다른 분들도 너무 좋아하시고. 원장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니까요.”

실제로 그때 무조건 말리고 들었다면, 원장은 물론이고 미용실 직원들 전부 나를 괴롭히고 미워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가, 내 너무 고맙기도 하고, 이사장님도 니 조언 덕분에 달러 쪼메 사주었다 카대? 안 그렇습니까?”

“네, 하하. 제가 덕분에 떼돈을 벌었어요.”

이사장은 내가 달러는 꼭 사두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 덕분에 꽤 많은 달러를 사 두었고, 지금 3배나 되는 폭리를 취하였다. 그래서 나에게 크게 한턱을 쏙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한원장의 연락을 받았고 둘이 돈을 합쳐서 나에게 집을 사 주자는 의견으로 모아진 것이었다.

“그럼 저는 여기 집을 사둘 테니 이 근방에 두 분도 하나씩 사두시죠?”

“오, 혹시 여기서 돈 냄새라도 맡은 건가?”

“잉? 야가 돈 냄새도 맡는답니까?”

이사장은 이제 나의 말이라면 똥을 사두라고 해도 들을 판이었다. 그런 내가 근방에 집을 사두라고 하자, 왠지 그 곳이 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똑똑한 양반이다.

“돈 냄새 잘 맡을 것 같지 않습니까? 쟤는 보물이에요 보몰.”

“아이고 무슨 말씀을, 운이 좋아요, 제가.”

“아 그라믄 내도 요기다 집을 쪼매 사둘까요?”

“하하, 우리 이웃사촌이 되겠네요.”

우리는 그 길로 판교에 날아가서 집을 샀다. 그 일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길이 남는 일이 되었다. 셋을 쭉 같이 가게 할 판교결의가 완성되는 날이었다.

집을 산 지역은 그야말로 노른자 땅이었다. 돈 냄새, 정말 돈 냄새가 나는 땅을 사게 된 것이다.

집을 사고도 돈이 남게 되었고, 두 사람은 남은 돈을 나에게 그냥 돈으로 주지 말고 주식으로 주자고 하고 투자사로 향했다. 나는 남은 돈을 당연히 NC소프트에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이사장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이사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 * * * *

“바쁜데 괜찮겠어?”

“아무리 바빠도 사장님 부탁인데요.”

이사장은 연기 교육을 마친 김설아가 오디션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전해왔다. 그녀를 발탁한 것이 나이기 때문에, 그녀가 할 드라마를 선택해 주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마침 김설아가 사무실로 들어와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준수씨.”

“아, 잘 지내셨어요?”

김설아, 그녀와 이렇게 인사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쁨이다. 그걸 입증이라도 하는 듯,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사장은 그걸 눈치 챘지만, 애써 티내지 않고 말했다.

“우리 설아씨가 이제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준비 중이거든.”

“아, 아직 더 배워야 할 것 같은데.”

김설아는 워낙 잘난 척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더 사랑을 받았다.

사실 그동안 이사장의 부탁으로 히트곡을 엄선해 주곤 하였다. 회귀한 덕분에 앞으로 히트할 노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니, 매번 히트곡만 골라주었다. 그래서 드라마도 선택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사장이 내게 판교 집을 투자한데도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서였다. 내가 앞으로도 쭉 도움이 될 거란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어디어디 넣으시게요?”

“어, 대략 세 군대 정도에 넣어 볼 예정이야.”

이사장이 가져온 것은, 일일연속극 두 개와 미니시리즈 조연 자리였다. 그 중 단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보고 또 보면’이었다. 다른 건 크게 대박 나는 작품이 아니었다. ‘보고 또 보면’만이 빅 히트를 친다.

“이거 ‘보고 또 보면’으로 하시죠.”

“어? 이거 작가가 입봉작이던데, 정말 히트할까?”

“네, 걱정 마세요. 반드시 히트 칠 겁니다.”

“그래, 자네만 믿어보겠어.”

“준수씨가 이런 것도 알려주고 그래요? 와 멋지다.”

“아유 뭘요. 그냥 감이 좋아요.”

“그냥 좋은 게 아니고 백퍼센트지.”

“와.”

김설아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어주었다. 저런 눈웃음을 보고 반하지 않는 게 이상할 테지. 하지만 그녀는 영부인감이다. 욕심을 버려야지.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어, 그래 가봐. 고마워.”

“고마워요. 준수씨.”

김설아가 다시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나는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또 입을 벌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 이사장이 갑자기 나를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아 그리고, 우리 새 걸그룹 오디션 보는 중인데, 좀 보고 뜰만한 애들 있으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는데.”

“아,”

나는 이사장의 손에 이끌려 연습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막 오디션을 준비 중인 그녀를 보고 말았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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