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매직약을 독점하라(4)
“김 실장님!”
김실장이 실언을 해버렸다. 수습하기엔 이미 늦어버렸네.
김 실장도 자기가 실수한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대머리 이사의 손을 꼭 잡고서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저 좀 믿어주세요. 진짜 멋지게 만들어 줄 테니까 걱정 마시라구요 네?”
나의 간절한 눈빛을 본 대머리 이사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 앉았다.
“만약에 실패하무니 율브린너처럼 빠빡이로 밀어버리게스무니다.”
“하하, 네. 실패 안하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우여곡절 끝에 대머리 이사님을 모시고 파마를 말기 시작했다. 파마는 방향성을 정수리로 몰아서 가운데서 만나게 함으로 모발을 풍성하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으로 2020년 즈음 한 미용사가 개발해 낸 방법이었다.
머리는 생각보다 잘 나왔다. 자신의 풍성해진 머리를 본 대머리 이사는 또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변화를 본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거시무 기적이 아니무니까? 경력이 1년이 맞스무니까? 20년을 해도 이 정도는 못하무니다.”
30년을 넘게 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문론 진짜 천재라면 그 안에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나는 진짜 천재가 아니니까.
“와, 여보 머리가 새로 난 것 같아요.”
“거 보세요. 나만 믿으시라니까.”
“역시, 준수씨는 대단해.”
대머리 이사는 거울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흡족하다 못해, 10년을 젊어진 자신의 모습이 매우 마음에 든 것으로 보였다.
후에 우리가 간 뒤, 대머리 이사는 한 달에 한번 꼴로 파마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할 때마다 제대로 된 머리를 해주는 미용사는 없었고, 파마를 너무 자주 한 탓에 머리가 다 녹았다고 한다. 덕분에 대머리 이사는 율브린너의 머리를 계속해서 하고 다녔다.
* * * * *
대머리 이사는 나와 김 실장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충분히 쉬고 난 뒤, 상쾌한 마음으로 일어났다. 오늘 결판을 내지 않으면 서울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과 함께.
대머리 이사와 함께 시세이* 본사에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경비가 뛰어와서 우리를 막아섰다. 경비는 대머리 이사를 알아보지 못한 듯 보였다. 대머리 이사는 자신의 민머리를 직접 까서 보여주며 자기가 그 이사임을 알렸다. 경비는 대머리 이사의 변신에 놀라 하며 그들을 들여보내 주었다.
“와, 십년을 넘게 봤는데도 몰라보므니다. 이거슨 기적이무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대머리 이사는 자신의 민머리를 까 보이며 자랑을 해댔고, 그때마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같이 있는 김 실장의 자존심도 올라갈 정도였다.
우리는 어제의 그 사무실에 들어가서 기다렸다. 어제처럼 30분이 다 되어서 쓰지마가 들어왔다. 쓰지마는 여전히 거만한 얼굴이었다.
“어제 회의를 한 결과, 우리는 한국의 거대 기업과 손을 잡고 개발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쪽의 기술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우리 기업이 그쪽의 기술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니, 우리에게 더 이상 관심 갖지 마시고 돌아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쓰지마는 냉정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대머리 이사는 쓰지마의 말을 번역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예상을 한 듯, 차분하게 그의 말을 들었다. 김 실장은 모든 게 다 끝났다며 절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끝난 모양이야.”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웬 여비서가 들어왔다. 여비서는 쓰지마에게 귓속말을 했다. 쓰지마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여비서는 곤란한 듯 쓰지마를 쳐다보다가 나가고,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 쓰지마와 대머리 이사가 당황해하며 90도 인사를 했다.
“하잇. 사장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이야 정말로 머리가 새로 난 것 같네?”
“하하, 저 젊은 청년의 기술이 정말 대단합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보러 온 걸세. 저 정도의 기술을 가진 청년이라면 우리 회사에서 기회를 한 번 더 줘도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네? 그게 정말이십니까?”
세 사람의 일본 대화가 오갔다. 돌아가는 것을 보아하니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해도 될 것으로 보였다.
사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장이 말을 하려고 하자 바로 일어났다. 분명 긍정적인 대답을 할 테지.
“당신의 기술이 놀랍더군요. 대머리를 그렇게 감춘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대머리 이사장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사장의 말을 통역하였다. 사장의 긍정적인 어조에 김 실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약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장의 말을 듣던 쓰지마는, 기분이 좋지 않은지 입을 씰룩거리다가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사장은 쓰지마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희 약을 가지고 강한 곱슬머리를 완벽하게 펴주신다면, 당신과 계약을 할 생각입니다. 자신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실력으로 검증하겠습니다.”
사장은 내 말에, 흡족한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사장과 나는 서로를 믿는 동지처럼 다정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 대화를 마무리했다.
사장이 나가고, 나와 김 실장, 대머리 이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목소리를 내었다.
“아주 강한 곱슬머리라 함은.”
“킴 요사님이 가장 적당하무니다.”
“김여사는 어디 간 거지?”
대머리 이사는 사내 전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김여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인데, 김여사의 전화기는 꺼져있다고 나왔다.
“전화기가 꺼져있스무니다. 하긴 한쿡 전화기라 요기서는 안 되는 거지요?”
“아, 그럼 어쩌지?”
그 시절은, 전화기가 있는 사람도 적었고, 있어도 잘 터지지 않았다. 김여사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쇼핑 끝나고 어디로 간다고 했어?”
“모르겠어요. 어쩌지?”
“아, 김여사니무 너무 바쁘셔서.”
당장 김성순 여사를 찾아야 한다. 머뭇거리다가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
“당장 백화점이라도 뒤져야죠.”
“그래, 어서 가보자구.”
“나? 나도 가무니까?”
나는 대머리 이사의 손을 꼭 잡고, 사무실을 나섰다.
“나 바쁜 사람이무니다.”
나는 듣든 둥 마는 둥 하며, 대머리 이사의 손을 놓지 않았다.
* * * * *
우리는 도쿄에 있는 백화점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김성순 여사의 머리카락도 볼 수 없었다. 온 백화점을 뛰어다니느라고 진이 다 빠진 우리들은 허망한 얼굴로 백화점 앞에서 만났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백화점엔 없는 모양이야.”
“여사니무, 너무 빠르무니다.”
우리는 갈 곳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허망하게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 엄청난 짐을 들고 백화점에서 막 나온 여자가 택시를 잡아탔다. 여자는 우체국으로 가자는 말을 하며 택시를 탔다. 그 말을 들은 대머리 이사가 소리쳤다.
“여사니문 쇼핑하고 우체국으로 바로 가스무니다 서울로 물건을 몇 개 먼저 보내곤 했스무니다!”
“아, 그걸 이제 이야기해요?”
“일단 가자구요.”
우리는 급히 일본의 우체국으로 향했다.
* * * * *
우체국에 온 뒤 어렵지 않게 김성순 여사님을 찾을 수 있었다. 하긴 일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우편물을 부치는 일 자체가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일 것이다. 매번 대머리 이사가 도와주었으니 그동안은 잘했지만, 오늘 혼자서 하려니, 힘들고 오래 걸려서 끙끙대고 있던 차였다.
“여사니무, 여기서 얼마나 있었스무니까?”
“아, 왜 이제 왔어? 나 죽는 줄 알았어.”
김여사는 나를 보고 반색하며 말했다.
“준수씨, 마침 잘 왔어. 나 머리털 좀 봐 겨드랑이 털도 이거보다는 안 부스스할 것 같지 않아?”
김여사의 머리는 폭탄을 막 맞고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퍼져 있었다. 티나터너도 울고 갈 폭탄 머리의 김여사.
“여사님 머리 제가 생머리로 만들어 드릴게요.”
“응? 진짜 가능한 일이야 그게?”
“가능 안 하면 우리는 다 죽스무니다.”
“응? 뭔 소리야 그게.”
나는 김여사를 모시고 급히 회사 본사로 달려갔다.
“빨리 가요. 시간이 없어요.”
“어 그래, 유 이사 그거 좀 우리 집으로 보내줘.”
“수고해요. 이사님.”
“아우, 나 이사야 이사. 바쁜 사람이무니다.”
대머리 이사님은 툴툴거리면서도 김여사의 심부름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 * * * *
김여사를 모시고 시세이#로 간 나는 바로 사장님을 찾아갔다. 사장은 나의 시술을 직접 관람하기로 하고, 다른 연구진들도 참석하였다.
“자, 이제 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초창기 매직스트레이트를 사용했던 기억들을 소환했다. 초창기에는 매직약을 마른 모발에 도포했었다. 아주 강한 곱슬머리는 유화(모발을 약액에 적셔서 변화되게 만드는 작업)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했다.
하지만 김여사의 모발은 좀 상해 있었고, 그걸 보충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급히 어디론가 뛰어갔다. 나는 약액을 담는 볼에 해초가루를 담아왔다. 그때는 모발에 영양을 주는 제품이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어떻게든 영양을 줘야 했고, 임시방편으로 사용하던 것이 바로 해초가루였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제 비법입니다.”
매직약을 충분히 도포 한 모발은 유화가 잘 되었고, 나는 안심했다. 매직의 기본은 유화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자, 이제 유화 과정이 끝나고 샴푸 후 시술에 들어갈 겁니다.”
김여사의 모발은 제대로 된 유화를 거치고, 샴푸 후 드라이를 마쳤다. 매우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보는 사람들도 졸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발이 다 마르자 피는 작업에 들어갔다. 김여사의 모발은 곱슬끼가 매우 심했기 때문에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작업해야만 했다. 김 실장은 옆에서 손으로 모발을 직접 잡아주며 집게 역할을 했다.
매직 작업의 핵심은 손의 악력과 완급조절에 있었다. 나는 프로답게 완벽한 조절을 하며 작업에 임했고 김여사의 모발은 거짓말처럼 일자로 펴져 나갔다. 그 작업을 하면서 모발을 태우는 일이 많았고 그 때문에 부작용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작용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 없이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와, 진짜 매직이다. 매직.”
사람들 입에서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이 기술은 매직 스트레이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때는 정말 그게 매직이었으니까.
중화는 어렵지 않은 기술인데 그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모발을 완전하게 다운시키면 안 되는 것. 나는 알게 모르게 그 작업까지 해주었고 김여사의 모발은 정말 생머리가 되었다.
나의 작업을 다 지켜본 시세이# 사장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약속대로 당신과 매직약 독점 계약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근데,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사장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 * * * *
머리를 마치고, 대머리 이사와 같이 어디론가 간 김여사는, 국제전화를 걸고 있었다.
바로, 한 원장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원장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김여사가 그걸 알리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계약을 하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