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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25화 (25/200)

25화. 샤기커트의 진수(1)

“그 조건은 무엇입니까?”

잠시 승리한 기분에 취해있던 나는 정신을 챙기고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은 나와 김 실장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나는 당신네 미용실에서 저희 회사 제품 사용량을 50퍼센트로 맞춰주시는 것과, 또 하나는 그쪽 재료상에서 거래하는 미용실에 저희 제품을 진열하여 판매하게 영업하는 조건입니다. 전국에 그런 재료상이 하나씩은 있어야 하구요.”

“아, 그건…….”

나는 사실상 그런 능력까지는 없었다. [스타일 헤어]에서 단 1년만 일한 초보나 다름없는 미용사에게 그런 권한을 줄 리도 없고, 이 일은 김 실장과 나만 진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원장이 개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김여사가 나타나서 끼어들었다.

“내가 한 원장에게 전화 했어. 공항에 마중 나온다는데?”

“아이고, 여사님.”

“네?”

“왜왜? 뭐 내가 실수라도 한 거야?”

우리는 김여사가 말한 것을 알고 경악했다. 모든 것은 계약 조건이 전부 이행되고 난 뒤, 유 사장이 개입하더라도 타격이 없을 시점에 밝히려고 했는데 일이 틀어져 버렸다.

나의 표정이 좋지 않자, 사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나요? 하지만 이건 최소한의 조건입니다만.”

사장은 정말 많은 걸 양보하고 내건 조건이었다. 이런 것도 지키지 못한다면 계약을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할 것이다.

사장의 말에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 정도는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걱정 마시고 계약을 하시죠.”

“그래요. 지금 당장 계약서를 가져오죠.”

사장의 옆에 있던 비서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계약서를 가져왔다. 사장과 나, 김 실장은 신중하게 계약서를 살펴보고는 사인을 했다.

“감사합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드디어 염원하던 계약서를 손이 든 나는, 기쁜 마음으로 회사를 나섰다. 하지만 회사를 나서자마자 공항에서 만나게 될 한 원장이 두려워졌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 앞섰다.

* * * * *

“고맙다, 정말.”

회사를 나서자마자 김 실장이 나를 껴안으며 말했다.

“제가 고맙죠. 제 말만 믿고 여기까지 같이 와주시고,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잖아요.”

정말 이 일은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김 실장은 나의 말만 믿고서 없는 살림을 쪼개어 이번 일에 투자한 것이고, 회사 또한 잠시 휴업을 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나의 말만 믿고 오기까지, 김 실장도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무모한 건 맞지. 하하, 내가 지금까지 널 봐오면서 느낀 건, 네겐 무모한 것이 없더라. 그냥 모든 것이 네겐 쉬워 보여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예언자처럼 말이야.”

“예언자라뇨, 하하.”

나는 김 실장이 자신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는 것에 조금 놀랐다. 김 실장은 운이 없을 뿐, 머리는 비상한 사람이라고 한 원장이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김 실장, 대학 좋은데 들어갔다 아이가? 살림살이가 고되가 중퇴하지만 않았어도 대기업에 드갔을 기야. 운이 없는 사람이지.”

어쩌면 유 사장을 제치고 김 실장을 선택한 것이 신의 한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같이 이뤄낸 사이야말로, 사업을 같이 하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여느 드라마처럼 말이다.

“난 먼저 한국에 들어갈 테니 두 사람은 더 있다가 와. 여기 밤 문화도 아주 죽이거든.”

“그래, 내가 계약 감사의 의미로 한턱 쏠게.”

“아, 아닙니다. 밤 문화라뇨, 말도 안 통하는데요.”

나는 김 실장이 가자고 조르는데도 마다하였다. 음반 매장이 즐비한 신주쿠와 시부야, 오차노미즈 같은 곳에 먼저 가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일본 문화가 완전히 개방되기 바로 전으로 일본에서 만든 물건들은 직접 사가지 않은 이상은 구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그 시절 일본 노래들을 한국 가수들이 표절할 정도로, 좋은 노래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음반들을 사러 가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음반들은 고스란히 이사장에게 건네줄 것이다.

일본 음반 시장은 특히나 음반 가격이 [글로벌 표준]이 적용되어 있어서 귀한 음반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김 실장은 음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김 실장은 애들 갖다 줄 가마고치를 사러 백화점으로 향했고, 나는 신주쿠로 향했다.

“그럼 한 시간 있다가 공항에서 보자.”

“네 김 실장님.”

신주쿠 디스크 유니온 프로그레시브 록관에는 밤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내부로 들어가서 쭉 둘러보았다. 매대에는 그 시절 일본 오리콘 차트를 섭렵하는 노래로 가득했다. X나 GLAY, 허니 같은 음반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려던 나는, 비틀즈 음반이 있는 것을 보고 돌아섰다.

“어? 비틀즈?”

비틀즈 음반은 시대를 초월한 명반이고, 누구에게 선물해도 좋아할 만한 물건이었다. 그걸 그냥 두고 갈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얼른 뛰어가서 비틀즈 음반을 드는데, 웬 작고 마른 소녀가 그 음반을 같이 잡으려고 하였다.

“비트를즈!”

소녀는 내가 잡은 비틀즈 음반을 보고 아쉬움에 발을 굴렀다. 작고 마르고, 커다란 눈을 가진 그 소녀는 어딘가 익숙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말로 나에게 말하였다.

“그거 저도 갖고 싶습니다.”

나는 일본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곤란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나 한국사람인데.”

그러자 소녀는 어눌한 말투의 한국말을 구사하였다.

“아 한쿠사라이무니까?”

“어? 한국말 할 줄 아는가봐?”

“네, 어머니가 한쿠사라이무니다.”

나는 신기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너 이름이 뭐니?”

“나 아유이.”

“뭐? 아유이라고 니가?”

“네, 왜 그러무니까?”

아유이, 2년 뒤에 한국에서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그 아유이가 지금 내 앞에 있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녀에게 물었다.

“너 비틀즈 음반 갖고 싶어서 그러니?”

“네!”

이 아이를 이사장에게 소개해주면 좋아할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의 연락처를 받아내서 이사장에게 면접을 보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뜻밖의 횡재를 한 것이다.

“너 내가 비틀즈 음반 또 구해서 보내줄 테니까 전화번호 좀 줄래?”

아유이는 나를 수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아유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품안에 있는 명함을 꺼내 주었다. 명함 뒤에 있던 이사장의 명함도 같이 딸려 나왔다. 나는 그 명함이 같이 딸려 나온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그 명함까지도 아유이에게 내밀었다.

“아니면 여기가 아저씨가 일하는 곳이고, 이건 아저씨가 진짜 친하게 지내는 사람 명함이니까 서울에 오게 되면 연락을 좀 줘.”

“네.”

아유이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명함을 받고는, 그대로 달아나듯 가버렸다.

나는 아유이의 연락처를 받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녀에게 명함을 준 첫 한국인 매니지먼트 관련 사람이 자신과 이사장이라는 것에 만족하고 발길을 돌렸다.

* * * * *

공항 앞에서 만난 김 실장은 가마구치 두 개와 전기밥통을 들고서 낑낑대고 있었다. 나는 김 실장이 든 밥통을 나눠 들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일본에 오길 잘 했네요. 여러 가지로 말이에요.”

“그니까, 여러 가지로 좋아하게 생겼네.”

나와 김 실장은 비행기를 탔고, 하루 동안의 피로가 몰려와서 금세 잠이 들었다. 비행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늦은 시간까지 한 원장이 나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준수야! 어서 와!”

“고생혔다. 어여 오그라.”

공항에는 한 원장은 문론이고 승철이와 유 사장까지 나와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김 실장이 하품을 하며 늦은 걸음으로 오고 있는 걸 본 나는 턱짓으로 가라고 하였다. 김 실장은 금방 눈치를 채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대체 일본까지 왜 간 겁니까?”

유 사장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어쩐지 이번 일에 대해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았다. 유 사장이 나의 뒤를 쳐다보았지만, 김 실장이 이미 숨은 뒤였다. 한 원장은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껴안았다.

“가서 뭐하고 왔노? 김여사가 대단한 걸 가져갈 거라고 하든데?”

“아, 그게,”

다행인지 김여사는 매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한 원장이 생각하는 그 대단한 것에 준하는 뭔가를 빨리 생각해내야 했다. 승철도 내심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샤기커트를 배웠어요! 사이리즘이라고 들어보셨죠?”

사이리즘은 헤어교육의 선두주자로 디스컨넥션 기법 같은 희한한 커트 기법을 발굴해내고 교육한 곳이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자리 잡지 않았고, 조만간 서울 강남에서 그 교육이 시작될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니 한 원장이 알아들을 리는 만무했다. 그런데 그걸 유 사장이 알아듣고 끼어들었다.

“이야, 역시 대단해요. 그걸 어찌 알고 배우셨어요?”

역시 유 사장은 대단했다. 아무리 날고기는 미용사라고 해도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이 어려운 법인데, 유 사장은 그 트렌드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걸 알고 계셨어요? 유 사장님이야말로 대단하시네요. 한국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던데.”

나는 한국 사람이 아직 모른다고 생각하고 말한 것인데, 유 사장이 그걸 알고 있으니 조금 당황하였다. 그치만 그도 그 기술이 정확하게 어떤 기술인지는 모를 것이다.

“나야 일본에 친인척이 좀 있어서요. 안 그래도 일본에서 뭔 약을 개발한다고 하던데, 그 소식은 들었어요?”

유 사장은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일에 대해선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게 좋다고 판단하고 말을 돌렸다.

“제가 일본말을 몰라서요, 하하. 원장님 지금 가서 샤기커트 배우실래요?”

“옴마, 니 피곤하지 않긋나? 니만 괘안으면 나야 좋지.”

“지금 가시죠.”

“나도 따라가도 될까?”

유승철이 눈빛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유승철이라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래, 너도 가자.”

원래대로라면 한 원장에게만 기술을 가르쳐주어야 하지만, 나는 그냥 승철도 가르쳐주기로 하였다. 뭐 어차피, [스타일 헤어]의 식구들은 전부 가르쳐주어야 하니까,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나는 한 원장과 승철, 유 사장에게 디스컨넥션 커트의 기본과 스토록 커트의 기본 등을 시술하는 걸 보여주려고 미용실에 들어섰다. 미용실에는 커트를 할 모델이 미리 와서 대기 중이라고 했다. 승철이 데리고 온 모델이었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 곳에는 선정이가 서 있었다. 오늘의 모델이 바로 선정이인 것이다.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굳이 내 마음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

선정이와 승철이의 손에는 같은 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둘이 어느새 사귀고 있나보다. 나와 결혼을 했음에도 둘이 붙어먹었으니, 뜨거운 사이일 것은 인정한다.

“결혼 하냐? 둘이?”

내 말을 들은 선정이가 움찔했다. 내게 사랑고백을 했던 기억 때문에 뭔가 찔리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승철이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선정이가 날 좋아했던 것을 잊지 않았을 테지.

“응, 조만간 할 거야. 그치?”

승철이 말하자, 선정이가 수줍게 웃었다.

그래, 둘이 천생연분이고 내가 끼어든 거였구나. 그랬구나.

“축하한다. 근데 어쩌냐, 결혼식을 조금 미뤄야할지도 모르겠는데?”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승철이 내 멱살을 쥐며 물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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