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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26화 (26/200)

26화. 샤기커트의 진수(2)

선정이는 이제 와서 내가 질척거리는가 싶어서 경악을 하고 서있었다. 승철이는 곧 나를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래그래, 니들 천생연분인거 알아. 어련하시려고?”

“근데 왜 결혼을 미루래?”

“샤기커트를 하면 올림머리가 힘들어. 머리 올리는 데만 두 시간은 걸릴걸?”

내 말을 들은 승철은, 그제야 손을 놓고서 인상을 구겼다.

“겨우 그거야? 난 또 뭐라고.”

“가지가지 한다. 누가 결혼해준다고 했어? 반지하나 맞춘 거 가지고 웬 오바야.”

선정이는 좀 전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새침하게 말했다.

사실 샤기커트를 진행하였을 때, 둘의 결혼식을 망치려고 일부러 더 오버해서 잘랐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한 말이었다. 둘이 연결되는 것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원하는 나니까. 그래야 선정이도 나를 빨리 잊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뭐, 지금 보니 완벽하게 날 잊은 것 같지만.

“빨리 준비나 하자. 샴푸 좀 해줄래? 나는 다른 준비를 해야 해서.”

승철에게 선정이의 샴푸를 맡기고 커트 준비에 들어갔다. 사실 준비랄 게 없긴 한데, 내가 커트를 잡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이기에, 사진 같은 걸 준비해야 했다. 마침 일본에서 사온 미용 잡지에 샤기커트를 하는 장면이 나와서 그걸 가지고 오려서 붙이고, 거기에 메모를 좀 하였다.

그걸 마치고나자, 한 원장님을 비롯하여 정 선생님과 유 사장, 조 실장까지 미용실에 들어왔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사실 커트 과정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곳 강사가 직접 자세와 가위질까지 알려준 대로 할 뿐입니다. 제가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의도는 없습니다. 아직 한참 배워야 하니까요.”

나는 말을 마치고 보란 듯이 아까 만들었던 자료를 꺼내 들었다. 금방 만들긴 했지만, 딱 봐도 공부를 해 온 티가 나는 자료였다. 그걸 본 한 원장과 정 선생, 조 실장은 흡족한 얼굴이었다. 의심이 많은 유 사장 빼고 말이다.

“그래, 퍼뜩 해보그라.”

“네.”

사각사각.

샤기커트의 기본은 층을 얼마나 정교하게 내느냐에 있다. 나는 선정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후두둑.

선정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잘라지고 있는 데에 약간 놀랄 뿐 큰 동요는 없었는데, 오히려 승철이 크게 놀라는 것 같았다.

“헉, 머리 다 자르네?”

“레이어드에서 좀 더 층을 내야 합니다. 예전에 지라시 머리랑 비슷하긴 한데 그 결이 좀 다릅니다.”

“아, 지라시 알재.”

“뭐, 지라시 정도야.”

정 선생은 뾰루퉁한 얼굴로 커트 과정을 지켜보았다. 사실 경력 10년을 바라보는 정 선생이, 경력 1년뿐인 나의 기술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일본에서 배워왔다는 소리에 참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제 질감 처리를 합니다.”

나는 전체 가이드라인을 다 만들고 다시 커트에 들어갔다. 질감 처리는 숱을 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커트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숱을 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것은 디스커넥션 커트 기술로서 숱을 치는 것과는 다른 겁니다. 머리 중간 중간에 짧은 커트를 해서 그 짧은 라인이 머리가 죽지 않게 받쳐 주는 역할을 하는 거거든요.”

“디스커넥? 뭔 뜻이고.”

“연결을 끊는 거요. 분리하는 거.”

“아, 뭔지 알긋네.”

나는 또 가위를 이용해서 스트록 커트를 시행하였다. 그 기술도 한국에서는 거의 처음 선보여지는 기술이었다.

“이것은 스트록 커트 기술로, 쉽게 생각해서 칼로 머리를 자르는 느낌을 가위로 내는 거라고 받아들이시면 될 겁니다. 칼로 자르면 모발에 손상이 오지만 이것은 모발 손상을 최소한으로 줄여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스트록은 또 뭔 소리고.”

“한방에 쭉, 아 그 당구 할 때 쭉쭉 치는 거요.”

“아 ,뭔지 알긋다.”

승철은 그 과정을 쭉 지켜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없었더라면 유 사장과 가장 친한 미용사인 자기가 저 기술을 가장 먼저 배워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승철이 저 기술을 배워 왔었고 그 계기로 한 원장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데 그걸 내가 하고 있으니 억울할 만도 하겠다. 때마침 유 사장이 승철에게 말했다.

“으따, 내가 저거 승철씨 일본 보내서 배우불게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아, 그래요?”

“긍게 아직 일본 개방이 안 된 상태라서, 좀 두고 보고 해불라고 했지.”

승철은 씁쓸한 표정으로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만 없다면 모든 게 완벽하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밤이었다.

그 와중에 선정은 나의 기술을 직접 보고 느끼며 각성하고 있었다. 사실 선정은 큰 욕심이 없는 캐릭터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의 모습, 승철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의지가 생겼다. 오늘은 선정 자신도, 뭔가 제대로 된 미용사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 날이 되었다.

드디어 샤기커트가 완성되고, 선정의 머리를 만져보려고 원장과 승철, 정 선생, 조 실장이 일어났다. 샤기커트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진정 정돈되지 않는 머리였다.

“이게 한국에서 유행한다구요?”

“내 보기에도 한국서 유행할 수가 없는 머리다 이거는.”

“그러게요, 숱 엄청 많이 친거나 다름없는 그냥 그런 머린데.”

“약간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그 말씀도 맞는 말씀이죠. 근데 저는 이게 몇 년 뒤에 유행한다고 보거든요.”

“야야, 근데 이 머리 업스타일 할 때 죽이겠다. 니는 2년은 머리 기르고 시집가야겠네?”

한 원장의 말에 선정은 피식 웃었지만, 승철은 당황한 듯 보였다. 앞서 내가 말해 주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러면 또 멱살을 잡힐 뻔한 것이 아닌가.

* * * * *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김주원의 회사를 향했다. 그가 약속한 돈을 하루라도 빨리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에게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자, 계약서 가져왔습니다.”

“오. 생각보다 빨리 가져왔구먼.”

김주원은 내가 내민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하고는 계약서를 가져가 버렸다. 그 계약서에 적힌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주도면밀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도 2000년 이후의 일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내 도움이 있으면 훨씬 편하게 부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약속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워낙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전부 검토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조금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 * * * *

“아이고, 그거 참 난감하겠구나.”

내가 한 원장과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정을 들은 이사장은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이사장도 그 사이 한 원장과 막역한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함부로 편을 들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오해가 없이 자연스럽게 설득해야 하는데, 엄두가 안나요. 지금 유 사장님과 한 원장님이 사이가 좋거든요.”

“그래, 그 양반이 워낙 사람을 잘 믿고 좋아하더구나. 너 같은 사람을 믿는 거야 당연하지만 좋은 의도가 아닌 사람도 많거든.”

“네, 아무튼 조만간 원장님께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데, 고민중입니다.”

“속이지 말고 잘 말씀드려, 그 양반은 자기를 속였다는 걸 알면 매우 충격 받을 거야.”

한 원장은 사람을 믿고 좋아하는 만큼 자기를 속이거나 배신했다는 것에 대한 화도 컸다. 어떻게든 좋은 방식으로 사실을 이야기해야 미용실 제품도 바꿀 수 있다.

“근데, 김설아씨는 잘 지내고 있는 거죠?”

“왜? 직접 물어보지 그러냐?”

“아, 톱스타 되실 분인데 제가 껄떡댈 수는 없죠.”

“허허, 껄떡대다니. 너한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닌데.”

“아무튼, 잘 좀 부탁드립니다.

김설아는 최근 본격적으로 연기연습에 들어갔다. 이 소속사가 가수만 주로 키우던 소속사기 때문에 어쩌면 그녀에게 불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만간 일일연속극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는 것이 운명이기에 소속사로 인한 불이익은 크게 없을 것이다.

“그래,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하더군. 잘 키우면 우리 회사 대표 연기자가 될 재목이라고 그러더라구.”

“아, 다행이네요.”

김설아는 실제로 연기를 좀 잘하는 편이었다. 막장 일인연속극의 대모인 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시작될 때마다 신인 연기자를 데려다 썼고, 그렇게 데뷔한 연기자는 거의 스타급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저번에 넣으신다던 드라마에는 넣으신 거죠? 그거 끝나면 영화에 바로 투입해야 해요. 그래야 일일연속극 이미지를 빨리 덮을 수 있거든요. 조만간 가을의 크리스마스라고 오디션이 진행될 겁니다.”

“어? 너는 그걸 어떻게 들었어? 넌 항상 정보가 너무 빠르다니깐.”

“미용실에 오는 탤런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죠.”

“아, 그렇구만. 앨범은 가져온 거지?”

“아, 맞다 앨범.”

나는 가방 속에서 앨범을 꺼내서 이사장에게 건넸다. 이사장은 무슨 보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 시절 일본음악이 한국음악보다 조금 앞서 있었기에 그걸 듣고 영감을 얻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일본음악과 한국음악의 수준이 십 몇 년이 지날 즈음에는 뒤집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한국은 대단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거 사면서 꽤 인상적인 아이를 발견했어요. 얼굴이나 목소리로 보아, 그 아이는 가수로 성공할 것 같거든요.”

“뭐? 일본 아이니?”

“네. 한국말도 조금 하더라구요. 엄마가 한국계인 것 같아요. 제가 사장님 명함을 줬거든요.”

“아, 어저께 갑자기 일본에서 국제전화가 와서 우리 회사에 대해 꼬치꼬치 물은 아이가 있다고 하던데, 설마 걔니?”

"하하, 벌써 전화를 했나보네요. 귀여운 녀석.”

아유이는 명함을 받자마자 국제전화를 걸어서 그 명함 속 회사가 정말 제대로 된 회사인지 물어봤다고 한다. 엉뚱한 말을 툭툭 내뱉던 그 아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지금 우리 미용실에도 전화해서 나에 대해 꼬치꼬치 묻고 있는데, 나는 아직까지 그 사실은 몰랐다.

“근데 김대통령의 공약 중 일본개방이 있는 거는 아시죠?”

“그래, 기억하고 있지. 그래서 준비는 하고 있다만, 우리나라가 일본문화에 잠식당할 거라고 다들 걱정하고 있어.”

“걱정 마세요. 일본사람과 한국사람은 생각과 좋아하는 게 달라서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겁니다. 그걸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문화를 통해 일본을 정복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 시절, 일본 문화 개방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게 문화를 잠식당하여 또 다른 의미의 식민지가 되지나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일본의 아이돌이나 가수들이 오리콘차트는 물론이고 빌보드까지 진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던 시점이니, 걱정할 만도 했다.

“우리가 정말 그들의 오리콘차트를 정복할 수 있을까?

“권보미라고 들어보셨어요?”

“응? 글쎄 처음 듣는 이름인데.”

“뭐, 우리나라에서 누군가는 일본의 오리콘 차트를 차지할거구요. 누군가는 일본의 안방을 차지할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니까, 걱정 마시고 일본에 진출이 가능한 뮤지션을 꼭 키워내셔야 해요. 아까 제가 말한 그 아유이도 그런 역할을 할 재목이구요.”

그때는, 우리가 역으로 일본을 진출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 될 거라는 말도 많았다. 그래서 일본 개방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측면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그걸 기회로 삼았고 승리했다. 그게 이사장의 손에서 이루어지게 도와주고 싶었다. 할 수 있는 한도에서.

그때, 미용실의 전화번호가 찍힌 삐삐가 울렸다. 무심하게 전화를 건 내게 한 원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니 오데고? 당장 튀어 온나!”

“무슨 일이세요?”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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