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매직약 보급의 효과
“아, 큰일 났다. 저 급하게 가봐야겠어요.”
“어? 왜? 무슨 일인데?”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나는 미용실에 전화를 했다가, 김여사가 왔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일어났다. 김여사의 머리를 펴준 것을, 한 원장이 안다면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빨리 미용실에 가서 김여사의 머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김여사의 머리는 이미 감고 난 뒤였다.
한 원장은, 김여사의 머리가 완벽하게 펴진 것을 확인하고 믿을 수 없어 고개를 저었다.
김여사는 한 원장이 대체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하기에 그의 반응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심각한 곱슬머리를 해결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기에, 당연히 다 이야기 한 줄 안 것이다.
“준수씨가, 내 머리 핀 거 말 안했어?”
“준수가 이걸 폈단 말입니까?”
한 원장이 도깨비라도 본 듯한 얼굴로 김여사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흑인을 방불케 하는 곱슬머리가 정말 마법처럼 깨끗하게 펴져 있었다. 승철과 주변의 디자이너들이 한 원장의 말을 듣고서 하나 둘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김여사의 머리를 보고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뭐야? 김여사님 머리 흑인머리처럼 곱슬이지 않았어?”
“기적이네 기적.”
다들 김여사의 머리를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내가 미용실 문을 박차고 달려왔다.
탁탁탁탁.
미친 듯이 달려왔지만 이미 모두가 이 일을 알아 버렸고, 수습할 길이 없어 보였다.
“준수씨 빨리 좀 와봐.”
나를 본 김여사가 손을 흔들며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매직약에 대해 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유 사장 아니면 굳이 숨길 이유도 없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
하지만, 한 원장은 자기를 속인 것에 대해 적잖이 실망했다. 한 원장은 나를 보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한 원장이 돌진하여 오는 걸 본 나는, 간단하게 끝낼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
“원장님, 그게 제가.”
“준수야, 나 좀 보자.”
“어디가 한 원장 준수씨! 내 머리 안 해주고.”
김여사는 눈치 없이 떠들고 있었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김여사를 쳐다볼 수 없었다.
한 원장은 차가운 얼굴로 나를 보더니, 미용실 밖으로 나갔다.
덜컥.
쿵.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사실만 잘 전달하면 될 것이다.
그 시각 승철은 유 사장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시시콜콜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특히 내가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여 온 것은, 유 사장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 * * *
한 원장이 나를 끌고 가다 시피 하다가, 주차장 입구에서 멈춰 섰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한 원장은 나를 노려보며 말을 하였다.
“설마 그 샤기커트 말고 그 피는 걸 배우는 게 목적이었노?”
“네, 그게 목적이었습니다.”
이제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한 원장은 사실만을 원할 테니까.
한 원장은 한 번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는 사람이지만, 신의를 저버리면 절대 돌이키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한 번도 과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내랑 같이 가서 배우면 좋은 거 아이가? 니만 혼자 독식하려고 한 이유가 뭐고?”
“저는 유 사장이 우리 미용실과 거래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김 실장님이 이기게 해주기 위해서 그분을 모시고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한 원장은 이 일에 김 실장까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듣고 놀라는 눈치였다. 유 사장과 거래를 전면적으로 하기로 하였기에, 김 실장과는 정리를 하려던 참이었다.
“김 실장은 능력이 그렇게 좋지 않아가 그런 기다. 딱히 싫은 건 아이지만 우리가 앞서나가려면 앞서나간 사람과 거래를 해야 할 거 아이가?”
한 원장의 말은 전적으로 옳았다. 미용은 시대를 앞서나가는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분야였고, 기왕이면 그런 능력을 갖춘 동업자를 파트너로 삼아야 전반적으로 편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협력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거였다. 이제 김 실장은 유 사장보다 더 빠른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김 실장님도 일본에 다녀온 뒤로 많은 걸 깨달으셨어요. 이제 뒤쳐지지 않을 겁니다.”
그때, 유 사장이 차에서 막 내려서, 두 사람을 보고 아는 척을 하려다가, 눈치가 수상하여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유 사장이 없으면 세팅 펌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거라는 거 니도 알지 않나? 근데 와 유 사장이 싫은 거고?”
한 원장의 말을 들은 유 사장이 걸음을 멈췄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는, 몸을 벽 쪽으로 붙이고, 잠시 대기하기로 하였다.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유 사장님 능력이 출중한 거는 알고 있습니다.”
그 대단한 재준이 조차도 학을 떼게 만들었던 유평수(유사장)는 최대한 멀리 해야 하는 인물이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질 바에는 차라리 상종을 안 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는 유 사장보다 김 실장님을 더 좋아합니다. 유 사장은 무서운 구석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정이 착하신 원장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사람이거든요.”
“야야, 니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업은 사업인기라,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고 다 만나고 겪고 버티는 게 사업이야.”
나의 말을 들은 유 사장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 저 녀석이 자길 얼마나 안다고 저런 소리를 지껄인다는 말인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주먹을 날려 나를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고 지켜봐야 했다. 한 원장은 아직까지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거기다 저는 김 실장님에게 신세를 진적이 있잖아요.”
“아 그 초창기에 말하는 거고?”
“네. 그때 김 실장님이 원장님께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저는 미용실에 더 다니지 못했을 겁니다.”
맞는 이야기였다. 나는 김 실장에게 약간의 빚이 있었기에 그가 더욱 딱하게 느껴졌었다.
“그래 알았다. 그라믄 우선 김 실장에게 가보자.”
“네.”
한 원장과 나는 이야기를 그치고 김 실장의 재료상으로 향했다.
유 사장은 그때까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던 터라, 손톱이 주먹 가운데를 꾹 누르고 있었다. 어찌나 세게 누르고 있었던지 손 중앙에서 시뻘건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곧 파랗게 멍들 것처럼 선명한 자국. 유 사장의 마음도 멍들어 버렸다.
* * * * *
끼이이익.
요란하게도 울리는 문소리.
김 실장의 가게는 건물조차 너무 오래되었다. 가게 인테리어도 너무 오래된, 낡음 그 자체였다. 한 원장은 그 겉모습조차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원장님.”
“그래요, 올만이네예.”
“울 준수가 그 소매치기 사건 때문에 김 실장에게 은혜를 갚아야한다 캐서, 내 다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준수군이 그때 일을 그렇게 고마워하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다 같이 잘되자고 하는 거죠.”
사실, 그때 일을 두고두고 갚으려던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은혜를 갚는 사람이 되었다.
“이번에 일본에 가자고 제안했을 때 전 사실 불안했거든요. 하지만 준수군 뒤에는 한 원장님이 계시니까, 한 원장님을 믿고 시도했습니다.”
“아이고, 아입니더. 제가 최근에 김 실장님께 소홀했던 거는 잊어주이소.”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이 제품이 정식 출시되게 되면 전국적으로 세미나를 나가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한 원장님이 나서만 주신다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고, 나야 감사하죠. 공짜로 하는 것도 아이고.”
두 사람이 사이좋게 대화를 하는 것을 보는 나는, 왠지 뿌듯해짐을 느꼈다. 오랜 기간 싸워왔던 친구를 화해시킨 느낌이랄까.
한 원장은 김 실장과 향후 있을 일을 충분히 상의했다. 한 원장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매직약의 단가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직기의 가격은 자그마치 백만원이었다. 1998년대임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가격임이 분명했다.
“단가가 그렇게 높은데 사람들이 하겠나?”
“곱슬머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죠. 기적이잖아요 이거는.”
“네, 그래서 매직 스트레이트죠.”
“아 맞네. 매직스트레이트.”
“아마 할 사람 많을 겁니다. 단가 걱정 마시고, 우리 미용실 기술 세미나부터 하시죠. 샘플 가져왔어요.”
“그래 잘했다. 역시 니는 복덩이야.”
실제로 매직약과 매직기가 가져올 파란은 상상 이상이었다. 매직펌 단가 또한 약의 가격에 준하는 단가를 해야 했다. 덕분에 펌 하나에 백만원을 넘기는 미용실이 허다했다. 그것도 강북권에서 그렇게 받았고, 강남권에서는 그보다 더 쎈 가격을 받았다.
매직펌 하나만 하면 그날 일을 접고 가는 미용실이 많았다. IMF 시절임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돈벌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대단한 돈벌이의 독점권을 김 실장과 내가 따온 것이다. 매직은 그 이후 금방 50만원대로 떨어졌지만 그 가격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이대에서 매직펌을 본격 할인하는 시점까지, 단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 원장은 앞으로 있을 돈벌이를 생각하자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돈이 넘치고도 남는 한 원장이지만, 계속해서 발전하는 것이 좋아서, 또 다른 기술을 배우는 것이 좋아서 나오는 콧노래였다.
* * * * *
내가 배워 온 매직펌은 미용실 사람들 월급을 두 배로 껑충 뛰게 해 주었다. 샤기커트를 배워오면서 얻어 온 스트록 커트와 디스컨넥션 커트는 미용사들의 기술까지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스타일 헤어]의 자존감을 한 등급 업그레이드 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자 한 원장이 나를 뺀 미용실 사람들을 전부 호출했다. 소고기 파티를 해준다면서.
“자 이토록 어려븐 시기에, 우리는 매출이 두 배로 뛰었다는 것은 기적이다.”
“다 준수씨 덕분이죠.”
정 선생이 웬일로 내 칭찬을 해주었다. 정 선생의 말에 나머지 직원들도 거의 맞장구를 쳐 주었다. 몇 명은 당연히 그럴 수 없겠지만.
“글고, 샤기커트를 내가 직접 해보니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이가? 니들도 해보았을 거 아이가?”
한 원장이 정 선생을 포함하여 다른 디자이너들을 전부 쳐다보며 말했다. 다들 직접 해 보고 그게 어려운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맞습니다.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정말 거지커트가 되더군요.”
정 선생의 말에 다들 웃었다. 샤기커트가 간단한 커트가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위질 하나에 사람 머리가 한순간에 이상해지는, 그런 커트이니까.
“그라믄 니들도 쟈의 커트 실력을 인정한다는 말로 들어도 되긋나?”
“아, 그건….”
“인정합니다. 커트뿐만 아니고, 파마와 뿌리염색까지 전부 마스터 한 실력이에요. 사실 저보다 와인딩은 더 잘하더군요.”
“에이, 그건 아니죠.”
“맞아요. 인정할 건 하죠.”
“와, 대박이네.”
다른 선생들이 망설이는데, 정 선생이 나서서 말했다. 정 선생은 점점 나를 믿는 것 같았다. 한번 친해지기가 어렵지 잘 지내면 엄청 좋은 그런 사람이 정 선생이다.
“그래, 내 생각에도 웬만한 디자이너급은 넘어선 실력이다. 그리고 니들도 이번에 준수덕 좀 마이 봤다 아이가? 아니 그렇나?”
“맞죠. 저도 월급이 너무 많아서 놀랐습니다!”
“마누라가 좋아하더라구요.”
다들 한바탕 웃고, 한 원장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준수를 인턴으로 승격시켜 줄라고 하는데, 다들 이의 없쟈?”
한 원장의 말에 다들 인정하는 눈치였다.
“그래, 그라믄 그렇게 하자. 알긋제?”
“네.”
그렇게 나는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상태로 인턴이 되었다. 이것이 매직약 보급의 효과였다. 하지만, 그날부터 나는 손님을 한 명도 받을 수가 없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