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미용봉사(1)
“저랑 같이 다니던 남자 말씀이세요?”
“네, 그 남자가 노랑머리 그 도둑인거 몰랐어요? 난 딱 봐도 알겠던데?”
유상호를 처음 봤을 때, 그가 노랑머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 그의 이름이 달랐고,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유 사장이 직접 사촌이라고 했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노랑머리와 닮았다고는 생각 했지만, 설마 그가 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혼란스러움을 감추고 미용실에 돌아갔다.
미용실 입구에 서있던 노랑머리가 나에게 달려왔다. 그가 달려오는 모습에서 과거, 내게 달려오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치고 있었다.
“손님 오셨어요.”
노랑머리는 내가 눈치를 챈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웃고 있었다. 그 웃는 모습조차 내게는 악마의 미소로 보였다.
“네, 아……알겠어요.”
아, 이러면 곤란하다. 그에게 내가 눈치 챈 것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내게 복수를 하러 온 것일 텐데,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 지금까지와 다르게 돌변할 것이 분명했다.
“근데 어디 아프세요?”
노랑머리가 내 이마에 손을 짚으려고 하는데, 나는 순간 놀라서 손을 칠 뻔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노랑머리도 뭔가 눈치를 챈 듯 보였다.
실제로 노랑머리는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그때 내가 봤을 땐 그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미용실 내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 사람들 전부 도난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 물론 노랑머리의 얼굴은 본적이 없을 테지만, 그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으니, 그때 없던 스텝들도 그 사건은 아는 정도니까.
그들 중 누구에게도, 지금 내 상황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노랑머리가 쫓겨날 테니까. 그렇게 되면 그도 당장에 복수를 할 것이다. 감옥에서 몇 개월 썩고 나온 상태니까, 복수의 칼날도 무척이나 아플 테지. 당장에 복수를 피할 방도는 없었다. 복수를 늦게 할 수는 있을 테지만.
하루 종일 노랑머리의 모습만 쳐다보다가 끝이 났다. 혼자 고민만 하다 끝난 것이다. 이사장도 이 사건에 대해 알기 때문에, 그에게 물어보기도 겁이 났다. 어찌어찌 하다보면 한 원장의 귀에도 들어갈지 모를 일이니까.
* * * * *
멍하게 집에 들어가는데, 집에서 웃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버님 피자가 왜 이렇게 맛있어요?”
“허허, 고마워요. 맨날 해줄 수 있는데.”
소리를 듣자하니 김설아가 온 모양이었다. 나는 황급히 옷매무새를 만지고 머리를 가다듬고 들어갔다. 김설아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일.
“저 왔어요.”
“그래, 너도 어서 와서 피자 먹어라.”
“왔어요? 피곤하죠?”
따뜻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피로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설아씨 늦었는데 얼른 가셔야죠.”
“야, 너는 설아씨 보자마자 보내려고 하니.”
어머니는 이미 설아에게 빠진 듯 싱글벙글이었다.
아버지는 나보다 설아를 더 좋아하는 듯 환한 얼굴이었다.
“제가 저번에 티비에서 설아씨 나오니까, 세상에서 제일 예…….”
나는 황급히 피자를 들어 아버지 입에 넣어드렸다. 그 뒷말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버지 피자 좀 드세요.”
“웩웩, 너는 갑자기 왜 그러냐.”
그 모습을 본 준희가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한 얼굴로.
“이미 빠졌네. 빠졌어.”
우리 가족들은 김설아에게 홀딱 반해서는, 한마음으로 김설아에게 잘해주었다. 마치 며느리 감을 본 것처럼 말이다. 준희마저 그녀에게 잘해주었다. 그 까탈스러운 애도 김설아에게 만큼은 다정했다.
“가족들이 정말 화목해 보여요.”
식사를 마치고, 김설아를 집에 바래다주는 길이었다. 내가 회귀를 했기 때문에 화목해진 것을, 그녀는 알까?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화목하기 위해서요.”
“좋은 말이네요. 맞아요. 평안을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죠.”
문득 그녀에게 내 고민을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았다. 노랑머리를 모르는 그녀는, 그 현명한 머리로 어떤 해답을 줄지도 궁금해졌다.
“제가 고민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어요?”
“그럼요. 제 부족한 식견이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요.”
나는 친구의 친구 이야기라면서 내 상황을 이야기 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작지만 정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미안해지도록 잘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잘해주라고요? 무조건?”
“네, 복수하고 싶지 않아질 정도로 잘해주면, 미안해서라도 복수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 그렇겠네요. 고마워요 정말.”
역시 현명한 대답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노랑머리에게 잘해주면, 어느 순간 복수도 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미용 과외 같은 거 말이다.
* * * * *
“미용 봉사를 좀 다녀볼까 해서요.”
그때나 2021년도나, 미용사들이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다니면서 봉사도 하고 실력도 쌓곤 했다. 나는 사실상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노랑머리의 실력을 빨리 늘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 니가 잘하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실력을 더 쌓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가.”
“그래서 말인데요. 어디 아는 곳 없으신가요?”
“응, 여러 군데 알긴 하는데, 니 괘안긋나? 피곤할 텐데?”
“괜찮습니다. 상호씨랑 같이 다녀볼까 해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노랑머리가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자길 왜? 하는 얼굴로.
“저도요?”
“네, 같이 다녀요.”
“그래, 니도 파마 와인딩 같은 거 늘라면 다녀보는 것도 좋다.”
“아….”
그날 이후로, 나는 노랑머리를 데리고 전국에 있는 양로원과 고아원에 봉사를 다니게 되었다.
“운전은 제가 할 테니 좀 자둬요.”
“네네, 그러죠.”
노랑머리는 사실 이런 결정이 좋지 않았다. 봉사활동이라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배우러 간다고 해도 자기 인생에 이런 바람직한 행동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내 생각에도 그랬다. 남의 돈이나 훔치고 그랬던 그가, 갑자기 봉사를 하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다. 그가 중간에 그만 두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해봐요. 수습은 내가 다 해줄 테니까.”
“하고 싶은 거요? 그럼 머리도 자르게 해준다는 말이에요?”
“네, 본인이 원한다면 커트도 하게 해줄게요.”
“헉, 너무 파격적인데.”
한 원장의 차를 빌려서 수원에 있는 한 고아원을 찾아갔다. 차에 먹을 걸 잔뜩 실어서 간 덕에 아이들의 환심부터 살 수 있었다.
“와, 초코렛이다!”
“새우깡!”
아이들의 환심을 사고 난 뒤, 머리를 자르는 애들에게 과자를 하나씩 더 주기로 하자 아이들이 줄을 섰다.
나는 아이들 중 단발머리를 하는 아이를 먼저 앉혔다.
“이 아이는 귀밑 5센티 정도로 잘라달라고 하는데, 상호씨가 10센티 정도로 먼저 잘라보세요. 제가 나머지는 맞출게요.”
“정말, 그래도 괜찮아요? 저 아무 준비도 못했는데.”
“옆에서 지켜볼 테니 걱정 말아요.”
그렇게 아이들이 원하는 머리에 앞서, 노랑머리에게 먼저 연습을 시켰다. 평소 같으면 금방 끝날 작업이었지만,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노랑머리는 처음에 조금 떠는 것 같았지만, 간이 큰 사람이라 그런지, 금방 터득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작업이 재밌는지 몰입하는데, 그도 미용을 아주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재능도 아주 많아 보였다. 천재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범재 이상은 되어 보였다. 그래, 이렇게 그에게 최선을 다하자.
“재능이 아주 많으시네요. 잘하고 있어요.”
“재밌어요.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더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잘 해주는 덕분이겠지만, 노랑머리도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었다.
“아저씨 무섭게 생겼는데, 머리는 잘 자른다.”
“야, 무서운 게 아니고 잘생긴 거잖아.”
아이들이 노랑머리의 외모를 가지고 이야기하자, 노랑머리가 피식 웃었다.
“무서우니까 가만히 있는 거다 니들?”
“네! 다음에 또 올 거죠?”
“가만히 있으면 생각해 볼게.”
노랑머리는 어느새 아이들과 친해져 있었다.
“우리 다음 주에도 또 가는 거지요?”
“그럼요. 시간이 나는 대로 언제든지요.”
우리는 그 뒤로도 계속 봉사를 다녔다. 노랑머리는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어났다. 그가 미용에 빠져들게 하는 게 가장 첫 번째였는데, 이미 첫판에 달성한 것 같았다.
“자, 오늘 고생했으니까 받아요.”
나는 하루치 봉급을 담아서 노랑머리에게 건넸다. 그는 내가 건넨 봉투를 받고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이걸 왜 줘요? 내가 기술을 배운 건데?”
“고생했잖아요. 종일 먹은 것도 없이 힘들었는데.”
“와, 감사합니다.”
노랑머리는 내가 준 봉투를 마다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 스텝의 월급이 너무 작은걸 알기에, 생각해서 마련한 것이었다. 나도 큰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꾸준한 주식투자 리스트가 있으니까, 돈이 궁하지 않은 탓에 넉넉히 줄 수 있었다. 일종의 복수 방지용이지만 말이다.
* * * * *
다음 주, 양로원에 찾아간 우리는 그곳 할머니들의 파마를 말아주기 시작했다. 원래는 머리만 잘라주고 가는 경우가 더 많지만, 노랑머리의 파마 와인딩 실력을 늘려주기 위해서였다.
원래대로라면 노랑머리는 아직까지 샴푸만 해야 하지만, 그가 미용에 특급 재미를 빨리 느끼게 해주려면 와인딩을 하게 해주어야 한다. 나도 파마를 말면서 재미를 느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다.
“알다시피 끝처리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끝이 씹히면, 나중까지 굉장히 안 이뻐요.”
“네, 알겠습니다.”
노랑머리는 생각보다 더 열심히 파마를 말았다. 간이 큰 사람이라 그런지 전혀 떨지도 않았다. 내가 처음 롯드를 잡았을 때는, 어찌나 떨었던지 파마약이 공중에서 뿌려졌었다. 그런 나에 비하니 노랑머리의 재능이 상당한 것 같았다. 저런 재능을 갖고도 그런 짓을 했다니……, 이제라도 미용을 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그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을 접게 하기위해 시작한 미용 봉사였는데, 어쩌면 그의 인생까지 바꾸어놓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를 하면서 노랑머리가 생각보다 못된 사람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그런 짓을 하긴 했지만, 노인과 고아원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겉으로는 착한 듯 보여도 내면은 썩은 사람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 아닌가? 특히 사람들 머리를 잘라주거나 파마를 말아줄 때, 자신의 연습을 한다는 개념이 아니고, 진심으로 잘 해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미용인다운 모습이랄까.
“고생하셨어요. 이제 혼자 봉사 오셔도 되겠네요.”
“네? 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멀었죠.”
“농담이에요, 하하.”
“으하하하, 그죠? 저 잠시 물 좀 버리고 오겠습니다.”
“그래요. 커피라도 좀 먹고 다시 합시다.”
노랑머리는 기분이 좋아져서 촐싹거리며 뛰어갔다. 나도 잠시 담배를 태우려고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담배 후, 커피를 마시려고 양로원 건물에 들어서는데, 노랑머리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분노에 휩싸인 목소리로.
“당신이 여기 왜 있어!"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