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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33화 (33/200)

33화. 미용봉사(2)

노랑머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노랑머리는 양로원 중증환자가 누워있는 방에서, 웬 남자 노인을 바라보며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내가 끼어들기 난감한 상황이 이어졌다.

“날 버리고 갔으면 잘 살 것이지! 여기 이러고 누워있어?”

노인을 향해 분노 섞인 고함을 지르는 노랑머리.

노인이 그를 버리고 간 사람인 듯 했다. 혹시…, 아버지인가?

“왜 이러고 누워있어! 아버지. 어흑흑.”

아버지구나. 그를 버리고 간 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죽일 듯이 소리 지르던 그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서 눈에 초점조차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눈물이 날 수밖에.

그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내 손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 반지를 줄까? 그의 인생도 회귀를 하게 해 주면 달라질까? 나는 조심스럽게 노랑머리의 어깨를 잡았다.

“후회되는 순간인가요?”

노랑머리가 눈물을 훔치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 질문의 의도가 궁금한 듯이.

하긴 쌩뚱맞은 질문이기는 하다.

“후회하긴 하죠.”

“그때로 되돌리고 싶어요?”

노랑머리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되돌린다고 아버지가 날 버리고 가는 걸 바꿀 수 있을까요?”

그의 말이 맞다. 아버지가 그를 버리고 간 순간으로 돌린다고 해도, 또 다시 버림받을 것이다. 그걸 굳이 두 번 겪을 필요는 없다. 두 번이나 아플 필요는 없으니까.

“위중하신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누워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였다. 아버지의 머리는 자른 지 일년도 더 된 듯 보였다. 중환자가 되어 누워만 생활한지, 그만큼 되었다는 소리다.

“머리 직접 자르실래요?”

내 말에 노랑머리가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그의 속마음을 내가 읽어서 그런 건지, 아버지의 긴 머리가 불쌍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네. 그럴게요.”

원래는 돌아가시고 난 뒤에 만나게 될 두 사람이, 봉사활동을 계기로 만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노랑머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이발을 해드릴 수 있었다.

나도 그랬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두 분이 가실 줄 알았더라면, 머리라도 자주 해드릴 걸 하는 마음이.

위이잉.

바리캉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아버지를 붙잡고, 노랑머리가 바리캉을 들었다.

후두둑.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고, 노랑머리의 눈물도 같이 떨어진다.

바리캉 소리만 요란하게 들리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 * * * *

돌아가는 길에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바람 소리 조차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가족을 다 불행으로 몰아넣은 아버지의 말로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불쌍했으니까. 그런 마음이겠지. 그래서 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준비한 봉투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내 손을 잡았다.

“한잔하고 가시죠. 제가 살게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소주 한 잔이 고팠었다.

포장마차 한쪽에 마주보고 앉은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소주 두 병을 내리 비웠다. 오늘따라 술이 더 썼다.

“고맙습니다.”

소주를 연거푸 마시던 노랑머리가 난데없이 말했다. 고맙다는 말이 무척이나 힘들었던 듯 보였다. 지금까지 내게 말했던 고맙다는 말은 가식이었지만, 지금은 진심 자체였다.

원수인 내게 진심으로 감사하기가 어려웠을 거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소주, 자주 사줄 테니 말만 해요.”

위로 한마디보다 소주 한 잔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 후로도 우리는 별다른 말없이 소주잔만 내리 비워댔다. 백 마디, 천 마디 말을 한 만큼의 친분이 쌓이고 있었다.

* * * * *

양로원에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랑머리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노랑머리가 가게에 무단으로 나오지 않았을 때, 그런 상황일 거라고 예상했고 양로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서 진실을 확인했다.

그는 미용실의 식구들에게 장례식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이다. 이름을 속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빼고는 누구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것을 알지 못했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내가 자신의 정체를 알았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가긴 가야할 텐데.”

그렇다고 장례식에 다 안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곳에 가기는 하되, 이름을 한상호로 바꾸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노랑머리에게 직접 그걸 알린다고, 이름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장례식으로 바쁜데다, 그가 그런 주도면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를 대신해서 이름을 잠시 바꾸어줄 사람이 있다. 바로 유 사장이다. 나는 승철을 붙잡고 물었다.

“너도 장례식장에 갈 거야?”

“어? 그게 무슨 소리지?”

“유상호씨 아버님이 돌아가셨잖아. 상호씨가 유 사장 친척이라며. 넌 친하다면서 그것도 몰라?”

승철이 유 사장과 동문이면, 노랑머리와도 친분이 있을 텐데 두 사람은 전혀 친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싫어하는 느낌이 있었다. 승철이 장례식장에 가진 않겠지만, 유 사장에게 그 이야기를 흘릴 것이다. 내가 친척이 그것도 모르냐는 말을 했기에 더더욱.

“잠깐만 있어봐.”

예상대로 승철은 곧 유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가 조문을 갈 것이라는 말도 전하고 있었다. 유 사장이 아마 노랑머리의 이름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조문을 갔다 올 때까지는 바뀐 이름으로 있겠지. 그렇다면, 우리 미용실 사람들이 다 같이 가도 된다는 이야기다. 유 사장이 자기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고 발악을 할 테니 말이다.

“너 몇 시에 갈 거냐고 묻는데?”

“일 끝나고 갈 건데?”

“일 끝나고 간데요.”

승철은 앵무새처럼 유 사장에게 내 말을 전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장례식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 나는 미용실 사람들 모두에게 노랑머리의 아버지 소식을 전했다.

“뭐? 그런 일이 있으믄 야그를 했어야지. 이따 다 같이 조문 가야하지 안 긋나?”

“네, 그래야겠네요.”

미용실 사람들은 바쁜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조문을 가기로 하였다. 다행이다. 그의 아버지를 외롭게 보내지 않아서 말이다.

우리는 다 같이 우르르 장례식장을 향했다. 우리가 다 같이 간다는 소식을 들은 유 사장은 부랴부랴 장례식장에 등장했다. 명색이 친척인데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야겠지.

“아이고, 다 같이 오셨네.”

유 사장은 금방 온 티가 나는데도 계속 있었던 양 우리를 맞이했다. 유 사장의 노력 덕분에 장례식장 상주에는 유상호라는 이름이 써져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대충 인사하고 노랑머리에게 향했다. 장례식장에는 예상대로 손님이 매우 적었다. 아니 우리가 오지 않았다면 열명도 채 채우지 못한 듯 보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야야, 니는 이런 걸 와 말 안 했노.”

“…정황이 없어서요.”

“내가 이럴 줄 알고 다 모셔왔어요.”

수척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는 노랑머리. 티를 내지 않았지만, 우리가 온 것이 내심 좋은 듯 보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의 모습을 보자, 다 데리고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 사장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거짓말이 들킬 새라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밤을 새고 가고 싶었지만, 노랑머리가 힘들어 보여서 참고 돌아섰다.

노랑머리는 저런 힘없는 모습보다 차라리 욕하고 난리치는 게 어울리는데, 안 어울리는 모습을 계속 보기가 싫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어쨌든, 그가 가장 힘들 때, 내가 힘이 되어주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 * * * *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의 곱슬머리 비디오 영상은 예상대로 주문량이 폭주했다. 매직약이 워낙 생소한 제품이니까. 그걸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비디오는 매우 유용한 아이템이 되었다.

우리가 만든 A제품은 유 사장 제품인 B보다 4배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하였다. 신제품의 특성에 맞춘 전략이 승부를 갈랐다. 이에 분개한 유 사장은 나의 제품을 깎아내릴 궁리를 하였다. 하지만, 우리 제품을 깎아내린다는 것은 자기의 제품도 같이 깍일 것이기에, 쉽게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그것은 바로 B제품의 고급화였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나의 매직약은 대중화에는 성공하였지만, 고급화는 실패하였다. 대중화와 고급화는 같이 병행되기가 어려운 것이기에 더욱 그랬다. 바로 그것을 이용한 유 사장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A 제품보다 우리 제품이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제품입니다. 기왕이면 한번 더 업그레이드 된 제품을 사는 게 이득이잖아요.”

“저희 제품은 두 번째로 내놓은 신제품입니다. A제품이 먼저 출시되고 B제품이 A제품의 단점을 보완하여 나온 제품이라니까요.”

유 사장은 역시 난놈 이었다. 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고, 덕분에 나의 제품은 한 발 뒤쳐진 제품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A다음이 B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이치, 유 사장의 감언이설에 모두가 놀아났다. 같은 제품인데도 말이다.

유 사장 때문에 매출이 급감한 김 실장은 나와 한 원장을 긴급 호출하였다. 안 그래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느꼈던 나는 책임감을 느끼고 달려왔고, 한 원장도 적극 참여하였다.

“C세트를 발동시켜야 할 시점이 온 것 같은데요?”

“그래, 유 사장 이놈이 진짜 머리는 좋다 아이가?”

“그건 그렇고, 그걸 홍보해야 하는데 말이죠. 어떤 식으로 홍보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고급화! 고급화를 해야 하잖아. 같은 제품으로 말이야.”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같은 제품으로 고급화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작금의 세태가 그러했다. 같은 제품, 같은 사람, 같은 능력이지만 홍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계급화 된 사회. 그걸 가장 잘 이용한 것이 명품이고, 휴대폰이고, 가전제품이다.

“연예인을 이용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매직머리를 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연예인이 누가 있을꼬?

매직머리를 하고 인기를 끄는 연예인이야 찾으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생머리 연예인은 본인 자체가 인기 있는 것에 그칠 뿐이었다. 머리에서 찾을 수 있는 매력은 딱히 없기 때문이었다.

후에, 전지연이 나와서 엘라스텡 어쩌구 하긴 하지만 그건 후의 일이다. 지금은 생머리지만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구사하는 연예인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 때, 한 원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생머리가 굳이 길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죠. 단발머리도 괜찮겠죠.”

“아, 단발머리!”

나는 단발머리 생머리 연예인이 누군지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노래(포이즈)로 전국적인 인기를 구사하며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녀, 바로 엄정희였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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